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책값은 책 나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소엔 책값이 비싸다는 생각은 한다. 차 한 잔, 식사 한 끼 값도 안된다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한 달에 차 한 잔 사 마시고, 식사 한 끼만 사먹는 사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또 책값이라는 것이 희한한게 정말 좋은 책에 대해서는 책값이 터무니없이 싸다고 생각하게도 된다. 그러니 책값은 책 나름이랄 수밖에 없다.
최근 새물결에서 출간된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를 읽고 있다. 저자의 서문 앞에 역자의 글이 짧지 않다. 자부심이 대단하다 느껴지고 기대감도 자연히 같이 높아졌다. 하지만 읽다보니 뭔가 불편하다. 일전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내용은 그때보다 더 쉬워진 게 분명한데 문장이 영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간간히 받는다. 그래서 따져보니 최근 새물결 출판사의 인문서들의 번역은 조형준 번역가가 주도적으로 한 모양이다.

이런 저런 글들을 읽다보니 최근 그가 주관하여 번역해 내놓은 토마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가 정가 99,000원(알라딘가 89,100원)으로 출간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핀천의 책도 안 읽어봤으니 그 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고전책을 추천하는 책들에서 작가의 이름과 책의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어 어렴풋이 좋은 책인가보다 짐작할 따름이다. 두 권을 합치면 페이지 수가 1500쪽이 된다고 하니 번역에 힘도 들었을 것이고 출간에 공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글을 읽어보니 굳이 1500쪽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것을 늘렸다는 부정적인 글도 있고, 오자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만 700부만 찍었다는데 아직 품절이 안된 것을 보니 출판사의 변론처럼 잘 안나가는 책이 맞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독자들의 말들처럼 비싸서 일반 독자는 쉽게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더 동의한다. 참고로 원서는 2만원 대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비싸다고 무조건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99,000원의 가격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개인적으로는 6-7만원 선 정도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결론은 편집과 번역의 질에 달려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오는 의견으로는 번역에 썩 우호적이지는 않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비롯된 기획자에 대한 내 느낌도 썩 우호적이지 않다.) 확인은 책을 봐야 하겠기에 그저 일단은 시립 도서관에 신청부터 하고 봐야겠다만 비싼 돈으로 구입해야할 책에 번역이나 오탈자에 대한 잡음이 있다면 구매에는 많이 망설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토마스 핀천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구입할 것임은 분명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책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700명에 못 미친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출판계에서는 다리박매 보다는 박리다매가 더 의식있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선입견이려나? 노이즈에는 성공한 듯 한데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궁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베르토 망겔(난 '망구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의 초기작인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을 구입했다. 1250쪽 정도에 6만원에 못 미치는 가격이었지만 구입 결정은 번역가를 따지지 않은 결과이다. 이 책을 몇 부나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같은 사람이 적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현재도 인문학 전문사전 1위이고 인문학 100위 안에 5주째 들고 있다는 것이 반증한다.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저자의 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읽은 이들의 입소문이 좋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읽기 전이다.
책을 사고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것과 아주 무관하게 오늘 밤 문학동네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곳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열린책들에서 소개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번역가의 섬세함에 찬사를 보낸 것을 아주 우연히 들었다. 최애리 번역가로 불어전공자였지만 영문학 번역도 아주 훌륭했다고 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봤더니 글쎄 [인간이 상상한....]가 떡하니 제일 위에 뜨지 않겠는가! 책을 읽기도 전에 번역가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니 이는 가격과 무관하게 기쁜 경험이다. 물론 그 기대가 깨지지 않기 전까지만 유효한. 하지만 적은 리뷰로 보았을 때는 번역이 주는 배신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기억해 둬야지 최애리 번역가!
두꺼운 책을 읽다보면 그 두께 만큼이나 기하급수적으로 오탈자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초에 읽은 [쟁경]이 그랬다. 책은 참 좋았는데 오탈자가 정말 많이 발견되었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기쁨이 컸기에 노엽다기 보다는 안타까움에 출판사에 살짝 쪽지로 알려드렸었다. 다행히 재쇄에 반영하신다는 말씀을 들어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지만 재쇄를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책은 읽어보면 좋았는데 말이다. 10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이었는데 가격은 3만원 대였다. 아주 단순하게 가령, 이 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500쪽당 2만원이라고 쳐서 [인간이 거의 .....]는 5만원, [중력의 무지개]는 6만원이면 될 것 같긴하다. 너무 단순화 시켰나??^^

- 사진 출처 : yes24 [서양미술사(포켓에디션)] 도서정보
[인간이 거의 ....]가 있기 전까진 [쟁경]이 가장 두꺼운 책이었고 그 전에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가 가장 두꺼웠다. 700쪽이 조금 안되는 책이었고 가격은 [쟁경]과 같다. 다만 [서양미술사]의 경우에는 올 칼라 도록이 많이 삽입되어 그 가격도 전혀 비싸게 여겨지지 않았다. 도리어 [중력의 무지개]나 [인간이 거의....]의 가격을 볼 때 38,000원 이상이 되어도 되지 않겠는가 싶어진다. 요샌 문고판이 나와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생겨 더욱 기쁜 책이다.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보니 판형은 작아졌던데 쪽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속은 들여다 보지 못했지만 응서점 상세보기를 통해 보니 칼라가 살아있어 다행이다. 앞의 책들을 보니 착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큰 책을 읽어본 바로는 이해가 아주 쉽게 잘 된 책이니 번역 논란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쭉 써놓고 보니 논란이 되고 있는 [중력의 무지개]의 가격이 비싸도 너무 비싼 감은 있는 듯 하다. 안나까레니나가 1200쪽이 좀 안되지만 3-4만원 선이고, 초역임을 감안하더라도 번역에 노력을 많이 기울인만큼 많은 독자들이 함께 널리 읽게 하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나름의 이유야 다 있겠지만 토마스 핀천이 궁금한데 이 책으로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공들인 작품이 널리 읽힐 때의 기쁨 만큼 큰게 어딨으랴?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제도적으로 작은 출판사에서 대작을 출간할 때에는 지원을 해 준다던가 하는 다른 묘책이 있으면 좋겠다. 대형 출판사와의 공동 출간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가? 암튼 700부 한정 판매라니, 그래서 그 가격이라니,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아쉽다. 번역이 어려운 걸 보면 내용도 어려울 거야 흠,, 세뇌 세뇌 세뇌 그래! 참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