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무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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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가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이 책의 일부를 들었을 때 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되었음에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 탐미주의 문학'의 공식을 머릿속으로 세워버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지는 것은 여전했고 이번에 읽어보자 마음을 먹고 어느 정도까지 읽었을 때에는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모습이 예상되기는 하였지만 그저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줄로만 알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소설을 쓸 때 중요시 여긴 것이 바로 '재미'라고 했다지만 책은 정말 눈을 떼지 못하게 독자를 집중시킨다.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만(卍)]이라는 제목은 네 인물이 마치 제목의 글자처럼 서로 얽히고 얽혀 서로에게세 헤어나오지 못하는 관계를 드러낸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고서야 저 길한 글자가 이 이야기의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 얽힘의 가장 중심은 바로 아름다운 여인 미쓰코였고 그 팜파탈의 여인에게 가키우치 부부와 와타누키가 거미줄에 걸린 채 빠져나오지 못하는 형국이 얼핏 우리가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 드라마 속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변태적이고 막장의 이야기 전개만 있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건너 뛰며 읽었거나 중도에 그만 뒀을 테지만  [만(卍)]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쩌면 사람이 이다지도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인지를 보게 되어 불편하면서도 뭔가 덧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불교 용어인 만(卍)과 연관이 있어 어느 순간 제목이 단순히 내용을 이미지화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를 소노코가 마치 고해성사를 늘어놓듯이 그 긴 이야기를 상대에게 단순하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서술하였는데도 쫑긋 귀를 기울여가며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단지 탐미라는 주제로만 시선을 끈 소설가가 아니라 문장의 힘도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증명한다. 실제로는 오사카 사투리로 쓰였다고 하는데 역자도 표준어로 구사해야했던 소노코의 말을 무척 아쉬워했다. 하지만 표준어로 쓰였어도 충분히 소노코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번역이 매끄러운 덕도 있겠다. 어쨌든 소노코의 말로 네 남녀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기도 적잖이 놀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소노코의 목소리를 빌려 조롱하고 허무해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욕망에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리는 그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바로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것이 씁쓸해진다.

 

반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느낌이 조금 다른데 50살도 넘게 차이나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집착하는 구니쓰네의 모습이나 너무나 아름답기에 남의 아내도 빼앗는 시헤이의 태도 등은  [만(卍)]에서 여성을 탐하는 모습과 닿아 있으나 문장은 많이 다른 느낌이다.  [만(卍)]이 소노코의 말로 서술되어 차분하면서도 조곤조곤 이야기 듣는 느낌이라 몰입이 잘 되는 반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일본 문화와 문학의 깊은 내용이 함께 있어 글이 고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내용 풍성해지는 매력이 있다. 우리와 다른 문화에 때때로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색다른 문화를 만난다는 점에서는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만(卍)]이 네 남녀가 점점 파멸로 향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끝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에서는 시게모토가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를 만난다면 그는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할 것인가 여인으로 대할 것인가와 같은 궁금증을 가져가며 읽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살았을 때는 물론 지금도 쉬이 받아들여지는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때나 지금이나 대문호로 추앙받는 것은 그가 단순히 여체를 탐하는 변태적인 상황 설정 속에 숨어 있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아름다운 여인이 무엇이길래 스스로가 악의 화신이 되고 자신과 남을 파멸로 몰아넣는가, 도대체 아름다운 여인이 무엇이길래 오랜 시간 아들이 모정을 마치 여인에 대한 사랑인 듯 느끼도록 상황이 전개되는가와 같은 물음을 소설을 읽으면서 묻게 된다. 어쩌면 평소에 던지기 힘든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욕망이나 성(혹은 그 어떤 대상에 대한 탐심이라할 수도 있는 모든 욕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극한 상황에까지 가야 인간은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처음엔 탐미주의라는 말에 내 안의 욕망을 들여다보자라는 간단한 생각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작품을 읽고 단순히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탐미주의 작가라고 부르기엔 스스로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도 잘하는 장동건이 미남 배우라고만 불린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연달아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가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소재로 내게서 어떤 질문을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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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1-0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에서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장난이 아닌데요. 탐미주의 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님의 페이퍼 읽고 나니 궁금해지고, 작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네요.

다만, 감당이 될지, 그게 좀..... 걱정됩니다. ^^

그렇게혜윰 2014-01-09 20:31   좋아요 0 | URL
묘해요, 진짜 막장 느낌도 나는데 뭘 건드려요...그래서 다니자키 준이치로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그럭저럭 감당은 됩니다. 다음 책으론 <열쇠>를 시작했어요.

숲노래 2014-01-09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을 살필 때에
아름다운 문학이 되겠지요~

소재가 무엇이든지요.

그렇게혜윰 2014-01-09 20:3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세요..^^

페크pek0501 2014-01-10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소설을 쓸 때 중요시 여긴 것이 바로 '재미'라고 했다지만 책은 정말 눈을 떼지 못하게 독자를 집중시킨다" - 이런 책이라면 제가 충분히 찜해 둘 만하네요.

재미있는 글을 쓰기...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것만큼 필수인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혜윰 2014-01-10 18:45   좋아요 0 | URL
묘하게 끌어당겨요...스스로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었나 의아할 정도로요...
일단을 다른 작품 몇 더 읽어야 작가에 대해 좋다 싫다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낯선 호감이라서요^^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만은 분명한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