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꿈이 소중하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그림책 <우리는 학교에 가요>는 케냐, 캄보디아, 콜롬비아, 네팔 네 나라 아이들의 낯설고도 흥미로운 등굣길 풍경을 통해 우리에게 꿈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환기시켜준다. 서울교육박물관에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황동진 작가가, 독특한 콜라주 작업에 작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할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학교 가는 길, 그러나 이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 그려본다면, 학교에 가는 일상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오랜 시간의 공들인 결실이 드러나는 구성의 탁월함, 그림 하나하나에 깃든 아이들을 위한 마음, 그리고 호소력 있는 마지막 문장까지, 황동진 작가의 첫 책 <우리는 학교에 가요>의 출간은 작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의 기분 좋은 출발로 보인다.

 

(인터뷰 장소 : 서울교육박물관 / 사진.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4-20)

 

 

학예연구사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학예연구사란 직명이 한자어다보니까 잘 모르시는 분도 많은데, 보통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라고 하죠. 박물관에서는 학예연구사라고 하면,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유물들을 과학적으로 보존 처리도 하고, 그 다음에 기록도 하고, 그걸 가지고 전시나 교육 자료로 활용하면서 디스플레이까지 마무리하는 일을 합니다. 큰 박물관 같은 경우에 부서별로 담당 업무가 있고, 작은 박물관에서는 한사람이 이 모든 일을 다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학예연구사란 박물관을 움직이는 가장 중추적인 핵심 직원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독도서관 안에 이렇게 서울교육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드나들면서도 전혀 몰랐었거든요. 홈페이지 소개를 보니 개관 년도가 1995년이더라구요. 지금 재직하고 계시는 서울교육박물관에 대해 소개 좀 부탁 드릴게요.

 

우리 서울교육박물관은 지난 1995년에 개관을 했어요. 주요 전시하고 있는 목적이나 방향은,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많은 분들께 제대로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고요. 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이 오래된 전통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나 동기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연구하고, 그 후에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운영 주체는 서울시교육청이고, 정독도서관 부설 기관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현재는 한국 교육사를 바탕으로 끌고 가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고요. 우리 부모님 세대나 베이붐세대들이 추억이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옛날 교복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전시하는 쪽으로 많이 컨셉을 바꾼 상태이기도 하구요.

 

 

황동진 작가님께서는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려서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진 않았구요. 애초에는 제가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살면서 꿈이란 게 조금씩 바뀌어나가게 되잖아요? 이제 나이를 한살 한살 먹고 세월이 지나면서 꿈이 바뀌게 되는 거니까. 그전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 대학교 때쯤 됐을 때 학예연구사란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었던 거죠. 너무 힘들고 제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래서 이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시작하게 됐구요. 이제 이곳에서는 근무한지가 꽤 됐죠.

 

그럼 지금 하시는 일에는 만족을 하시고요?

 

만족하죠. 정말 만족하는데 이제 또 그림책이라는 다른 일을 벌이게 되니까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보니 직업하고 연관이 있었네요. 첫 번째 책의 소재를 학교 가는 길로 잡으신 게요. 학예연구사로 일하시는 바쁜 와중에 그림책 시작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미술 전공을 하셨다는 얘기도 앞에서 잠깐 들려주셨는데요.

 

욕심이 많아서 그렇죠(웃음). 그림책도 사실 대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됐어요. 20년도 넘은 얘기죠. 한참 된 얘긴데, 처음엔 단순히 그림책 작가를 일러스트레이터로만 생각을 했어요. 그 어떤 구성이나 서사 같은 건 아주 쉽게 본 거죠. 너무 몰랐던 시절이라... 저는 어렸을 때 코끼리나 개구리, 그런 단순한 그림과 짧은 글이 들어간 책을 보고 자란 세대인데요. 대학교 때도 그림책의 서사에 대해 분석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쑥쑥 넘겨 보는 거죠. 좀 쉬워보인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이거 해서 밥 먹겠나 싶어가지고 일단은 접었다가, 학예연구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까 옛날에 가지고 있었던 꿈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3년 전에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에 그림책을 잘 알려주는, 잘 배울 수 있는 아동문화컨텐츠 학과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이제 거기 입학을 해서 2년 반 동안 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학교에 가요>를 준비하게 된 거죠.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림책의 서사나 플롯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사실 이 작품 나올 때도 그림은 제일 뒤로 늦춰졌던 부분이에요. 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데 한 7, 8개월 정도 투자를 했고요. 그 다음에 그림은 한 5개월 정도 그리게 됐고요.

 

역시나 처음부터 구성에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이셨다는 게 이해가 가네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나중에 하나로 물리는 구성이 쉽게 나온 것이 아니었네요. 구성도 그렇지만 문장에서도 재미있는 리듬이 느껴져서, 이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시네요(웃음). 저 혼자만 생각했는데, 알아주셨으면 했는데.

 

그림 페이지는 페이지 전체에 그림이 꽉 찬 것하고, 프레임이 들어간 그림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그렇죠. 처음에 제가 편집한 그림이 따로 있어요. 따로 있는데, 책으로 나온 건 출판이 진행되면서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이 된 것이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프레임을 갖고 있는 그림과 아닌 그림, 그것도 전체적으로 규칙이 있잖아요? 레이아웃을 잡으면서 한 건데, 그림 속에서 어떤 진행이 이루어지는 것과, 제가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풀로 하고요, 다 애착은 가지만 그래도 어떤 리듬을 주기 위해서 조금 줄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부분은 그렇게 하얀색으로 테두리를 줬습니다.

 

다른 페이지랑 앵글이 달라지는 페이지를 보면서는 이 자유로운 시선 전환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림책은 보는 사람의 관점이나 보는 사람을 존중하면서 만드는 거지, 작가의 기분에 그려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서적인 상황을 극대화할 때는 정면성을 유지하고 싶어서 이런 앵글을 유도하는 건데요. 그 정면성이라는 게 어떤 피사체건 배경이 됐든지 간에 보는 사람의 눈이 정 가운데 위치하게끔 해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조감도 형식으로 볼 때도 정수리가 보이게 그리고요, 그 다음에 서 있는 방향을 볼 때는 배꼽 정도의 위치를 보게끔 정면성을 유지하는 것, 그럴 때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작업했습니다.

 

인물이나 사물, 풍경 경계선에 들어가는 테두리는 이 그림들을 잘라서 붙인 자국인 거지요?

 

콜라주 작업을 한 이유는, 그림이 약하니까 비주얼로 좀 어떤 특이한 느낌을 주려고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제가 그림을 엄청 잘 그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자르다 보니까 손가락이 거의 굳을 정도였는데, 한번에 되는 게 아니니까 실패하면 또 그리고 자르고 해야 해서...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인 이유는 그림책이라는 매체는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 기반을 갖고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인데요. 콜라주 작업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텍스트보다는 그림을 먼저 보잖아요. 보면서 제가 오려 놓은 라인을 따라 눈이 움직여요. 모니터링해보고 저도 느낀 건데요. 그러면서 그냥 단순히 잘 그린 그림보다 아이들이 정서적인 활동이 잘 일어나고요. 한번 볼 것도 두 번 보고 그런 면이 있죠. 원화 전시를 했었던 저 프린트물 같은 경우에는 종이책 보다는 훨씬 잘 표현이 되더라구요. 스캔을 받을 수 없는 작업물이라 하나하나 촬영으로 하느라고 편집팀에서 굉장히 힘드셨죠.

 

 

가위질하기 제일 힘들었던 그림, 실패를 많이 해서 재작업이 많이 들어간 장면도 있겠어요.

 

있죠. 특히, 네팔 이야기 부분인데요. 네팔에서 아이들이 힘들게 언덕을 오르는 장면. 사실 굉장히 크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지면에서는 디자인이나 규칙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어요. 많이. 실제로는 책에 인쇄된 그림의 두 배 정도 크기가 되죠. 이 장면에 아주 작은 사람까지도 다 오려붙이다 보니까 그많이 힘들었죠. 잡는 손은 큰데 그림은 작으니까. 사실 이 아이들 크기는 쌀알보다도 아요. 아이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어, 아저씨 이거 어떻게 잘랐어요?' 하고 알아봐서 너무 고맙고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작업하신 게 아닐까 단순하게 짐작을 해버렸었네요. 이 소재, 학교 가는 길이 그림책에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이 등굣길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만드셨다는 게 참 흥미롭고요. 저도 출근길에, 저는 회사에 가니까 다른 사람들의 등굣길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매일 같이 만나는 한 부자가 있어요. 아빠가 아들 유치원 등굣길 배웅을 해주는 모습을 매일 똑같은 시간에 봐요. 정류장에서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아빠가 같이 기다려주는 건데요. 매일 보는데도 질리지 않고 두 사람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라구요. 작가님이 등굣길에 대해서 이렇게 각별하게 관심을 가지신 까닭도 어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왔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네, 맞아요. 작품을 해야 하니까 아이디어나 소재를 찾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캐치를 하게 된 거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그 안에는 제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경험이나 알던 사람들이 다 녹아들어 있는 거죠. 처음 동기가 됐던 건 제 아이인데요. 굉장히 성실하고 착한 학생인데, 그런데도 보면 아침에 차에 탈 때까지, 제가 데려다주려고 할 때요, 탈 때까지 무슨 특공대가 어디 출동 나가는 것처럼 늘 바쁘더라구요. 그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또 운전기사처럼 대기를 딱 하고 있다가, 아이가 타면, 쳐다볼 시간도 없이 출발을 하는 게 재미있더라구요. 이걸 이야기로 한번 풀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시작이 돼서 일본, 중국... 여러 나라의 등굣길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찾다 보니까 처음에는 한 열 개의 나라 정도가 재밌는 에피소드가 모이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진행을 하면서 계속 가지치기를 한 거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책에 실린 네 나라가 나오게 됐고요.

 

네 나라를 구성하는 내용 중에는 사실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좀 도시락을 잘 못 싸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다음에 중학교 때쯤 되면요, 신문 돌리고 뭐 가사 노동을 하느라고 숙제 못 해오는 애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그나마 행복하게 사니까 배 안 곯고 요새 흔히 말하는 알바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친구들이 조금 이해도 안 됐고요. 제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어렸을 때는 심하게 무시까지 했었어요. '쟤는 왜 숙제도 안 해오나... 쟤는 왜 미술 시간인데 크레파스도 안 갖고 오나... 너무 한심하다...' 그런데 커서 제가 부모가 돼서 그런 것들을 느끼니까 너무 가슴이 아픈 거고, 어렸을 때 제 생각이 너무 창피하고 나쁜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친구들의 모습도 사실 조금씩 보여주려고 애를 썼고요. 케냐의 이삭 같은 아이가 그런 경우죠. 집안 일도 하고 공부도 해야 되는, 그렇게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지금도 동시대에도 끊임없이 생겨나잖아요. 우리나라라고 없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만약에 그런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 이 책을 본다면 좀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콜롬비아 편 같은 경우에서는 누나가 동생을 챙기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누님들이 본인들은 실내화를 못 사고 덧버선 신고 들어가는데, 부모님이 준 돈으로 저한테 이제 실내화를, 막내라고 또 귀엽게 컸다고 하얗고 반짝반짝한 걸 사주셨거든요. 저는 뭐 그게 고마운 줄도 모르고 실제로 손잡고 질질 끌려가듯이, 막내니까 어리광이 있어서 학교 가기 싫어하잖아요. 그랬던 기억도 있고. 그런 것들이 좀 녹아 있구요. 네팔 편 같은 부분을 보면 책 안에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요. 함께 학교에 가고, 또 그 과정에서 기다려줄 수 있는 친구들. 어렸을 때는 의미를 모르지만 커서 보니까 그런 친구들이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 아닌가. 혼자만 가지 말고 좀 같이 가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책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학교에 가요> 작업을 위해 조사하셨던 다른 나라의 특이한 등굣길 풍경 하나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 잠깐 언급하셨던 중국 아이들의 등굣길도 궁금해지는데요.

 

중국은 제가 조사할 때만 해도 그냥 저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다 그렇지만요. 최근에 어떤 포털 사이트에 동영상도 떴더라구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등굣길' 해서 케이블 안에 들어가서 위험하게 학교에 가는 모습이 있었죠. 중국은 정말 너무 넓다보니까 여러 나라의 환경이 다 섞여 있어요. 그 중에서도 옛날에 차마고도 같은 그런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굉장히 높은 산악지대에 있어서 사다리를 위에서 선생님이 잡아주고 손을 끌어줘야지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제가 흥미를 느꼈던 곳은 일본의 눈 많이 오는 지역인데요. 선진국이라 실제로 많은 고난을 겪는 학생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양 옆에 눈이 어른들 키보다도 높게 쌓여 있는 길을 아이들이 걸어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등굣길 풍경을 <우리는 학교에 가요>의 한 꼭지로 넣어보신다고 가정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등굣길이 아주 짧은 사람도 있고, 긴 사람도 있는데. 정독도서관 올라오는 길에 또 학교가 많잖아요. 참 예쁜 길인데, 매일 출근하시면서 보는 길이니까 이 골목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이 떠오르는데요. 굉장히 가슴 아픈 게, 우리나라 학생들 등굣길 뒷모습을 보면 너무 슬퍼요. 처음에는 우리나라 학생들 등굣길고 하나 넣으려고 했었어요. 보통 일반적인 가정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되면 어머니들이 깨우는 데 너무 힘이 들잖아요. 그런 장면들부터해서 뭔가 꿈과 희망을 주면 좋겠는데, 싸우는 장면만 생각나고 아이들 이렇게 뒷모습이 늘어진 장면만 떠오르더라구요. 실제로 초등학교 1, 2학년만 되어도, 제가 아침이 많이 봤는데 많이 쳐져 있어요. 책에 묘사한 나라들은 훨씬 더 쳐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교육을 통해서 자기의 인생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옷을 입고 찢어진 가방을 들어도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학교에 간단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사는 우리나라는 아이들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가기 싫은 데엘 가는 것처럼 학교에 가는 모습이죠. 아닌 학생도 있지만요. 그런 것들이 가슴 아프고요.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하셨나요?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는데, 거기서 조금 조금씩 골고루 다 배웠어요. 저랑 가장 친하고 잘 아는 분들 얘기가, 대학 시절하고 이번 책하고 그림이 너무 바뀌었대요. 옛날에는 잘 그리긴 했지만, 그게 뭐 기교적인 거였었죠. 그런데 지금은 아동 심리나 그런 걸 다 배우고 표현하려고 애를 쓰니까, 그림의 이야깃거리나 느낌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얘기를 많이 들어요. 공부한 보람을 정말 많이 느끼죠.

 

말씀해주신 걸 듣고 나니까 숙명여대 대학원 아동문화컨텐츠 학과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지는데요. 그림책 작가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곳에서 배우신 과정, 커리큘럼에 대해서 짧게 소개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숙명여대 아동문화컨텐츠학과는 일단 다른 데서 교육 받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면요. 그림이나 시각적인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게 아이들한테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걸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요. 물론 제가 그 강의를 구성한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배운 것으로 느끼기에는 그렇다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의도나 얼마나 많이 팔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책이냐는 거죠. 0.5%밖에 안 되는 소수 집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로 아이들을 위하는 작가들이 있어야되지 않나, 그런 아주 좋은 컨텐츠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학과가 생겨났고요. 실제 교육도 그렇게 받고, 그러면서 하여간 제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여러 출판사에 갖고 다니면서 들은 공통적인 얘기가, 어디서 공부했냐 그리고 이 글의 구성이 너무 단단하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국내에서 그림책을 공부할 수 있는 유명한 곳도 여럿 있는데, 그곳 비해서 이 아동문화컨텐츠 학과만의 강점이라면 정말 본질을 알고 나서 아이들을 위한 아주 좋은 음식을 만드는 그런 음식점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세상에 나온 첫 번째 책, 처음 손에 쥐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많이 행복했죠. 행복했고,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컸어요. 책이 많이 팔린다던지, 제가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요. 너무 많은 매체들이 책을 만들 때 제목이나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언뜻 볼 땐 누추해보일 수 있고 매가리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고, 나왔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가장 행복했죠.


기억나는 독자 분들 반응으로는 어떤 것이 있으세요?

 

초등학생들은 저희가 행복한 거군요! 하는 굉장히 어른스러운 말도 들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걸 꼭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다분히 교육적인 대답을 했더라구요. 정말로 기분 좋았던 대답은, 진짜요? 아저씨가 진짜로 이거 했어요? 그거죠(웃음). 짧지만 많은 얘기, 좋아요. 아이들이 또 너무 체계적으로 얘기하면 거짓말이잖아요. 그 표현이 제일 좋았고, 어른들한테 들은 얘기는 제일 좋은 게 그거죠. 서평을 써주신 분이였는데, 본인이 파주에 살면서 지나가는 탱크를 얻어 타고 학교에 가셨던 적이 있대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자기 어렸을 때 그 학교가는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학교의 의미, 학원 폭력이니 그런 게 많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어른으로서 가슴 뭉클했다. 특히 뒷장면을 보고 거의 다 뭉클했다고 하시니까, 감동을 줬다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그게 제일 기분 좋죠(웃음).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 작가님이 가지신 꿈 하나를 이룬 과정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첫 번째 작품에서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고요. 마지막 문장을 보고 뭉클했거든요. 크게는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을 빌려 해주셨다고 보고, 이 꿈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까닭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아, 예 맞아요. 사실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틀이나 정말 제가 말하고 싶은 얘기는 '일상의 소중함'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서 대통령도 되고 싶고, 요즘은 연예인도 되고 싶고 그런 여러 가지 꿈이 있는데 꿈은 꼭 가져야죠. 잊어버리는 게 나쁜 거죠. 그런데 그 꿈을 이루는 방법은 뭐 로또를 산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천지가 개벽해서 지위가 바뀌길 바라는 그게 꿈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그냥 다 존경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나는 그게 좋은 꿈이고 그게 꿈의 올바른 형태잖아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하루하루 모여야지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통 등산을 하다 보면 왜 처음에는 우리가 급한 경사라고 못 느끼지만 다 올라와서 보면 굉장히 높이 올라와 있잖아요. 자기가 높이 올라간다는 걸 인지하고 올라간다면 겁나서 못 올라갈 것 같아요. 그 한발 한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닦고 세수하고 밥먹고 또 어딘가로 공부하러 간다든지 일하러 간다든지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거.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제발 그 결과만 보고 가지 말고, 과정이 제일 중요한 거고 과정을 이루기 위해선 하찮은 일부터 하나하나 이렇게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죠.

 

 

그렇다면 어렸을 때, 대학시절보다 더 어렸을 때 작가님께서 갖고 계셨던 꿈 중에서 혹시 지금 이루셨거나 아직은 아니지만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게 있다면 여쭤봐도 될까요?

 

아주 어렸을 때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꿈인데요. 중간 중간, 사람이란 게 조금 더 좋아보이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럴 땐 잠깐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메인도로로 들어왔다가... 삶이란 걸 긴 여행이라고도 표현하잖아요. 근데 그 여행이란 게 요즘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물리적으로 빨리 도착을 해서 많은 걸 퍽퍽퍽퍽 점 찍듯이 돌아다니면서 증명사진처럼 탁탁탁탁 찍고, 맛집도 가보고 그러면 뿌듯한 게 있고. 또 길을 잘못 들어서 샛길로 가서 어떤 구멍가게에서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서 사는 얘기 듣고 그 마을에서 나온 나물 하나 무쳐 준 거 얻어 먹고 시간이 돼서 가야될 때 못 오고 또 다시 오고 이런 여행도 있고요. 둘 중에 어떤 게 낫다 소중하다 옳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제 생각은 꿈이란 건 그 큰 줄기만 있으면 약간 빠졌다가 다시 와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도 정말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게 제 꿈이지만, 현실이 있고 일상이 있어서 포기 안하고 계속 가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계속 생각하고요. 그래서 지금의 제 일상 역시 꿈을 계속해서 이루어가는 과정이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요>를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의미 있는 출발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직 자기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모른다기보다는 꿈이란 게 아직 생기지 않은 아이들도 있을텐데, 사실 그 꿈을 가져라라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을 가져라' 이 한 마디로 끝나면 너무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자기 꿈,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고민하는 이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을까요? 굳이 애써 찾으려 하지 말고, 각자가 꿈이 나타나길 천천히 기다려보면 될까요?

 

그 기다리는 방법이 문제인데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대로 그러니까 오늘만, 아니면 잠깐, 그 다음에 요거 하나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절대 그러면 안 되고, 당장 꿈이 뭔지 모르더라도 어떤 지표가, 도표가 대각선으로 막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꿈이 뭔지 모르더라도 앞으로 찾아올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는 모호할 수밖에 없잖아요. 너무 뚜렷하기도 참 어려운 그런 시기죠. 어린 나이라면. 그런 아이들일수록 특히 부모님들이 그날그날 해야할 일들, 그리고 꼭 그 자리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밥을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야 되고. 그게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면, 제 경우에도 그렇고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한 2~3학년, 3~4학년 정도 되다 보니까 거의 뭘 시켜서 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어려서 그런 것들을 잘 잡아주면, 그런 습관들이 잘 잡히면 아이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서 실제 어린 아이들은 못 하는 게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제도나 그런 게 잘못 돼서 어른들이 잘 할 수 있는 아이들 손다리를 다 묶고 키우는 거거든요. 많이 가르친다고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교육을 시키다보면 능력이 개발이 될 거고요. 체조선수가 꿈이었다가, 화가가 꿈이었다가 꿈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그 과정들 인생들이라는 게 아름다운 거고, 하여간 잘 살기 위해서는 꿈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매일 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원래는 우리나라로 한정해서 여쭤보려고 하진 않았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이 책을 볼 초등학생 아이들한테 응원 한마디 해주신다면요?(웃음)

 

응원이요? 응원까지...(웃음) 지구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로, 모든 활동은 교육적이지 않은 게 없었고, 학교가 없던 시절에도 뭐 사냥을 하는 법을 배운다든지, 낚시를 하는 법을 배운다든지, 비형식적인 교육도 있었잖아요. 그렇듯이 학교라는 건물, 이 체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에서 가장 좋은 제도 중의 하나인데요. 비록 요즘 어른 학생들에게도 할 게 너무 많고 학원도 너무 많고, 그래서 학교 가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나이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학교 가는 걸 많이 싫어하진 않고, 중고등학생보다는 초등학생들이 친구 만나는 즐거운 마음에 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 쭉 잃지 않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고 또 성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미선 2012-06-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터뷰 가슴에 와 닿네요. 우리 아이들은 등교길이 고행길 같아 보여요. 오히려 험난한 길을 걸어서
저 아이들의 학교길이 행복해 보이네요. 어쩔까나 우리아이들....
다음책은 아이들이 신나하는 도서관 이야기 써 주세요. 서가사이 이책 저책 손길가는대로
구석에 앉아서 책에 빠진 아이들요...

박경미 2013-01-0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등학교때 처음 정독도서관 가서 공부했었는데...
그래서 황동진작가님 많이 보았어요~^^
배우 엄태웅씨 닮아서 눈길이 많이 갔던것 같아요.^^
저도 지금 꿈꾸고 있는것 이루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간직하고 있거든요...^^
인연이 더 닿는다면 저의 동화에 삽화를 그려주시면 영광일것 같아요.~^^

지금, 초등학생 저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작가님처럼 저의 소박한 꿈도 이루어지는 날이 분명 오겠지요. ^^

풋풋했던 청년모습에서 저와 같은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것도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됩니다.~^^

항상 지금처럼 새로운꿈에 도전하시는 승리하는 삶 살아가시리라 믿으며...^^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섬뜩하리만치 대담한 설정으로 풀어내며, 위험 수위를 한참 넘긴 오늘의 맹목적인 소비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 끝도 없이 새로운 물건을 욕망하는 오늘의 우리 모습. 이에 대한 적지 않은 문제의식을,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 책 대상작 <지도에 없는 마을>을 선택한 독자들의 분주한 손길에서 엿볼 수 있다. 파격적인 작품과 상반되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매력을 가진 최양선 작가님께 직접 들어본 <지도에 없는 마을> 이야기.

 

(인터뷰 장소 : 인문카페 창비 / 사진 : 창비 어린이 편집부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9) 

 

 

<지도에 없는 마을>은 분량에 비해 사건과 플롯이 굉장히 촘촘하기 때문에, 설계하는 과정이 까다롭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첫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맨 처음에는 사라진 도시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물에 담긴 도시에 대해서요. 작년 초에 어떤 분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어요. 잠실 있잖아요. 그분이 어렸을 때 잠실에 살았던 분인데 어렸을 때는 그 지역은 그냥 물이였대요. 개간을 해서 오늘의 잠실의 모습이 된 거라고 하더라구요. 듣고서 처음에는 물에 잠긴 사라진 도시를 생각하다가 그렇게 시작을 한 것 같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사물로 변신을 한 가족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아이만 남고, 나머지 아이들이 다 사물로 변신하게 되는 내용의 단편을 제가 쓴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두 가지가 합쳐져서 장편으로 가면 좋겠다, 처음 세운 얼개는 그랬습니다.

 

사실은 불편한 동화였습니다. 필요성을 알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그래서 외면하고 싶은 주제를 건드리기 때문에요.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평소 생각이 어떠신지요?

 

보면 사람들이 중독되어 있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면 쇼핑도 그렇고. 일종의 마음의 병처럼 생각이 되는데요. 자아나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니까 사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하는데 결국 그게 그렇게 채워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또 광고, TV 광고를 보면 굉장히 불편함을 느껴요. 광고에서는 자꾸만 사라고 사라고 하는데, 저게 없으면 안 돼! 넌 바보야! 도태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 평소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에요. 화가 나고 저런 것에 속으면 안 돼, 항상 느끼죠. 자동차 광고도 특히 그렇고 그런 것들이 다 저를 불편하게 하는데요. <지도에 없는 마을>이 아이들 책인데, 이런 주제를 아이들 책이기 때문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요. 어렸을 때는 다른 공간에 살다가 어느 순간 어른이 돼서 현실에 온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아이들 사는 공간도 현실도 똑같으니까요. 그리고 제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도 굉장히 명품에 대해서 많이 알고 또 좋아하더라구요. 명품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것의 가치가 아닌 소비에만 너무 집중을 하니까요. 명품 자체는 굉장히 좋은 거잖아요. 명품이라는 게 굉장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지는 건데 그걸 생각하기보다 명품으로 자기 자신을 채우려고 하는 어떻게 보면 방법이 잘못된 그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모여서 이걸 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로 쓰고 싶었어요. 그냥 적나라하게 쓰기는, 현실 그대로 쓰기에는 좀 뭐하니까 재미있게 다른 방법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지도에 없는 마을>을 사라고 사라고 해야 하는 입장인데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웃음). 집착이란 것이 어떤 물건이냐에 따라서 좀 더 경계해야 할 게 있을텐데, 사람들이 이 물건에는 정말 집착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 한 가지만 꼽아주세요.

 

스마트폰이요. 저희 애들은 핸드폰이 없어요. 안 사줬어요. 엄마도 절대 스마트폰으로 안 바꿀 거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어요. 큰애는 정말 아빠가 오면 스마트폰만 계속 만지더라구요. 그래서 주말에는 저희 신랑 핸드폰을 제가 압수해요. 신랑도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어요. 전철을 타도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있잖아요. 그럼 저는 당당하게 '나는 아니야' 하면서 책을 보죠. '나는 너희들과 달라' 이러면서. 자부심을 약간 느끼면서 책을 봐요, 저는(웃음). 물론 스마트폰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은데, 너무 매달려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우리가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물건이 스마트폰인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이런 물건이라면 집착을 좀 해도 괜찮지, 이렇게 허용해주실 수 있는 물건은요?

 

근데 모든 물건이 집착만 안 하면...(웃음). 집착해서 좋을 물건은 없겠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랑, 새로운 걸 계속 갖고 싶은 거랑은 다르잖아요. 어느 정도 적당한 선이 있어야지.

 

보담, 해모, 리안, 구진, 호돈... 등장인물들에 이국적인 이름을 지어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지도에 없는 마을>의 무대가 현실이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실이 아닌 공간이니까 한국적인 이름으로 가면 오히려 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였어요. 생활동화가 아니니까 중의적으로 가자, 완전히 이국적이지 않으면서 또 너무 한국적이지 않은 이름으로 하려고 했죠.

 

처음에 보담이를 여자아이로 생각했다가 나중에 일러스트를 보고서야 성별을 제대로 알았거든요.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어공주 이야기,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공주를 사람으로 만든 바다마녀에 주목하셨어요.

 

제가 마녀를 좋아해서요. 마녀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마녀의 나쁜 이미지는 사회, 역사가 만들어놓은 측면도 크니까요. 마녀사냥이라든가 중세시대에 여자를 사악한 존재로 몰아가던 것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던 그런 것처럼. 그런 것들을 알고 나서는 마녀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애착이 생기더라구요. 사람들 마음에 마녀 같은 구석이 다들 있으니까. 그래서 마녀를 좋아해요.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 의해서 나쁜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렇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지도에 없는 마을>의 바다마녀 해모는 어찌 보면 상당히 과격한, 동화책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캐릭터인데요.

 

해모가 어떻게 보면 저랑 가장 닮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해모랑 소라. 소라보다도 해모가 가장 저랑 닮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해모예요.

 

아니! 이 얘기를 들으시면 독자분들이 놀라지 않을까요.

 

아이고. 그럼 소라라고 해주세요, 소라(웃음).

 

 

표지에도 등장하는 '거대한 고물상'은 물론 일러스트가 있긴 하지만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특히 작품 초반의 인상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우디를 좋아해요. 건축가 가우디를 좋아해서 그의 건물 같은 공간을 생각했어요. 굉장히 신화적인 느낌이 드는. <지도 없는 마을>에 나오는 고물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었죠. 무언가가 새로 태어나는 신화적인 공간이요.

 

그래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공간 묘사에 공을 많이 들이지 않으셨을까 짐작했습니다.

 

많이 어렵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지도에 없는 마을>의 공간이 현실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썼거든요. 사람들이 판타지라고 하지만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을 해요. 작품에 나오는 바다라든가 하는 공간이 없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 공간이 새롭다기 보다 저에게 익숙한 현실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도에 없는 마을>, 추리소설처럼 몰입해서 속도감 있게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유머 코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건, 의도하신 바였는지요?

 

의도했다기보다도 그런 데 소질이 없어서요. 재미있게 말도 잘 못하고. 몇사람만 있을 때는 곧잘 얘기를 하는데 사람이 조금만 많아지면 말수가 적어져요. 제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지도 않고요. 소질이 없으니까 안 되는 것 같은데요(웃음). 좀 그런 편이에요. 어두운 면도 많고요.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이긴 한데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그 다음 이야기, 2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자작나무 섬 초등학교에 부임하기 전까지 교장 선생님의 개인사도 정말 궁금하고, 바벨탑 쇼핑 센터 사람들이 무슨 일을 더 벌일지도 걱정이 되고요. 나중에 엄마는 잘 살 수 있을지... 혹시 속편을 염두에 두셨는지요?

 

글쎄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웃음).

 

책을 읽은 아이들도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해보게 될 것 같아요. 특히 자신의 소비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고요. <지도에 없는 마을>을 읽고 나서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될 지 모를 독자분들처럼, 한 편의 동화가 작가님 개인의 관심사를 단숨에 확장시켜주었던 경험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파란 시간을 아세요?>랑 <파울로의 눈물>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파란 시간을 아세요?>는 많이 아시는 것 같아요. 워낙 화가분이 유명하셔서. <파올로의 눈물>은 눈물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예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마을이 있어요. 그곳에 사는 사람은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단 한 사람만 빼고요. 파올로라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슬플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울고 항상 눈물을 흘리는데 이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꽃이 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파올로가 울면 꽃을 가질 수 있어서요. 그러다 어느 순간 파올로는 영웅이 돼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든 순간부터 파올로는 사람들 앞에 나오고 싶지 않아서 숨게 돼요. 숨다가 결국 이 사람은 떠나요. 그리고 파올로가 배를 타고 떠날 때 물속에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서 떠난거죠. 파울로가 떠난 다음,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돼요. 그러면서 다시 꽃이 피게 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인데, 이 책이 그런 경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시는 책하고 쓰신 책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웃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와, 이번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수상작 <지도에 없는 마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시간 차가 좀 나는데요.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는 2009년에, <지도에 없는 마을>은 작년에 썼어요. 그 작품이 4월에 나오는데 아마 보시면 아실 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커다란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 두편의 동화가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하나의 방향은 같다라고 생각을 해요. 먼저 쓴 작품에서는 제 자신을 그냥 다 보여준 것 같아요. 물론 읽는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그걸 알고 있잖아요. 그랬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도에 없는 마을>이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조금은 객관적으로 쓴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이야기만으로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보기는 힘들었거든요. 작가님의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직접 여쭤보고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동화 쓰기 전에 소설을 습작했었고, 처음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을 한 것도 어떤 작품을 읽고서였는데요. 그때도 그 작품이 판타지였어요. 되돌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판타지가 중요한 하나,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왜 그런 애 있잖아요. 튀지 않고 묻혀 있는 애. 그런 아이였어서 특별히 의식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 동화를 쓰는 데 가장 큰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실인 것 같아요.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럼 요즘 작가님이 마음에 안드는, 작가님을 가장 괴롭히는 현실은...

 

저도 애들이 있고 하니까 애들이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저 혼자 어떻게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진짜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은데 놀 수 있는 공간도 친구도 없는 거예요. 엄마로서 가장 힘든 때가 그 때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또래하고 어울려 놀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예요. 제가 그 부분을 대신 채워줄 수가 없는데, 채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힘든 것 같아요. 엄마로서도 힘들고 또 아이도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다요.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걱정할 게 적어지죠. 전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아닌 저하고 제일 가까운 저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 같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를 생각하면... 그게 그래서 제가 동화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자녀분들이 혹시 이번에 나온 엄마 책도 읽어봤나요?

 

예, 저희 큰애가 남자애라서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요.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고, 딸은 1학년인데 솔직히 어려울텐데도 엄마가 쓴 거라고 읽더라고요. 대견해요. '이거, 이해가 되니?' 물어봤더니 이해가 된대요. 근데 큰애가 '이해도 안 되면서!' 이래요(웃음). 작은애는 조금씩 조금씩 읽는데, 큰애 같은 경우에는 학년이 높으니까 한번에 싹 읽는데 재미있어 했어요.

 

 

아들딸이 보담이처럼 수업을 땡땡이친다면 용서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보담이는 호기심이 너무 왕성해서 그런거였는데(웃음).

 

용서 못해줄 것 같아요!(웃음). 그런 애들이 있어요. 주변에 보담이 같은 아이들이 있어요. 말썽도 많이 피우고 애들도 괴롭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 혼란스러운 게, 객관적으로는 안쓰럽잖아요.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니까요. 그런데 이런 아이가 현실적으로 저희 애들이랑 부딪히는 걸 보면 '어우, 쟨 정말 왜 저래(웃음)' 하게 돼요, 어쩔 수 없이. 그런데 보담이도 솔직히 그런 아이니까, 이게 동화와 현실의 차이겠지요(웃음).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죠.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하고요. 그러면서 제 아이한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을 때도 있고, 저도 사람이다보니까 그런 아이를 보면 미울 때가 있고. 그런데 이제 그렇게 생각을 안 하려고, 한번 거르게는 된 것 같아요. 동화를 쓰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애가 밉다고만 생각하고 삐뚤어진 면만 볼 수도 있겠는데, 개인적으로 동화를 쓰다 보니까 조금 다르게 한번 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쟤가 참 마음이 아픈 아이구나.

 

심사평도 책에 인쇄가 되어 있고 직접 들으신 평도 있겠고 그리고 온라인 서점의 리뷰들. 마음에 드셨던 <지도에 없는 마을> 후기가 있으세요?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라는 이야기가 정말 좋더라구요. 아, 그런가? 내가 창조했나?(웃음) 그러면서 지난날을 이렇게 되돌아보니까... 아! 그 얘기를 하면 좋겠어요. 어일 때 샘터에서 일하고 싶은 게 제 꿈이었어요. 대학로에 있는 샘터 출판사 있잖아요. 중학교 때 처음 대학로라는 델 가봤는데, 샘터 건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건물에 담쟁이가 덮여 있는 걸 보고, 그냥 그것만으로도 저기서 꼭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화를 쓰고 싶다고 처음 생각하고 서점에 가서 가장 먼저 손에 들었던 책도 샘터에서 나왔던 그림책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였나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책을 가장 먼저 들고 봤거든요. 어느 순간에 되돌아보니까 왜 처음에 가졌던 마음 같은 것 기억을 하게 되잖아요. 내가 처음에 그 그림책을 봤었지 하면서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장소와 공간에 대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지도에 없는 마을>에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보니까, 비슷한 영역의 작품을 쓸 계획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집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외계 소년과 지구 소녀의 사랑? 우정과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연애라고 하면 너무 가볍고요. 사랑에 가까운 우정?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또 외계인이 나오다 보니까 공간이 또 달라지겠죠?

 

<지도에 없는 마을>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또 앞으로 읽어주실 알라딘 독자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해주세요!

 

뭔가 자기가 자신의 마음을 옮길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 하나씩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마음을 주는 물건들이 있잖아요. 이게 마치 나와 같은, 그런 애착이 가는 물건이 하나쯤은. 돈의 가치, 다른 사람들이 만든 가치가 아니라 내가 만든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그런 것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발적인 제목이 주는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기엔 이르다. 장난감처럼 엄마를 사고 파는 이상한 세상에서, 생애 처음으로 엄마를 갖게 된 여덟 살 현수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순식간에 달려나가는데, 이 괴짜 같은 동화를 신나게 따라가다 도착하게 되는 지점은, 엄마와 나의 거리가 한 뼘 좁혀진 바로 그 자리다. 제16회 창비 좋은어린이 책 수상작, <엄마 사용법>의 김성진 작가가 제시하는 엄마 사용법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신통하고, 이제 막 시작된 봄처럼 따사롭다.


(인터뷰 장소 : 인문카페 창비 / 사진 : 창비 어린이 편집부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9)



지난 주에 볼로냐 국제도서전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여행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나요?

 

볼로냐 도서전도 궁금하긴 했지만 여행을 간다는 게 우선 즐거웠거든요. 유럽 가는 게 처음이라서. 인상 깊었던 건 이거였던 것 같아요. 도서전 입구에 긴 통로가 있는데 그 빈 벽에 판넬을 쭉 세워놨어요. 이게 뭔가? 처음엔 공사가 안 끝난 건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도서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기 그림을 붙여놓는 자리였던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 포스트잇이나 명함 같은 작은 종이에다가요. 처음에는 한두 개가 붙여 있었는데, 나중에 한바퀴 돌고 왔더니 그 벽이 꽉 차 있더라구요. 와! 멋있다! 그 종이는 한 사람이 하나씩만 붙여놨는데, 더 많이 눈에 띄기 위해서 여러 장 붙이고 싶은 욕심이 날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 그림들, 날 것의 그림들, 날 것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열정을 느꼈던 건 그 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관에 갔더니 우리 전래동화 그림책들을 외국인들이 무척 관심 있게 보는 거예요. 한국에서 있을 때는 전래동화가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그림,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긴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가서 보니까 전래동화가 이렇게 새롭고 독특하게 보게 되더라구요. 그 독특함이라는 게 특별한 색깔이라는 게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는 그림책들에서 나온다는 걸 느꼈어요.

 

<엄마 사용법>에서 사용하신 대화체 문장 때문에 긴장감 있게 읽게 되는 효과가 있었거든요. 좀 더 귀 기울여서 읽게 되더라구요.

 

문체는 이 아이 생각을 하다가 나온, 인물에서 문체인 것 같아요. 현수라는 아이가 어떤 아이일까 생각하다보니까 현수가 어쨌어 저쨌어하는 문장이 저절로 만들어지더라구요. 문장이 한번 만들어지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같은 형식으로 쭉 가게 된 것 같아요.

 

장난감 엄마라는 건 아이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를 결합해놓은 것 같아요. '장난감'이랑 '엄마'. 이 생명 장난감이란 소재는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하고요.

 

사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제목이 먼저 나왔어요. 그러니까 '엄마 사용법'이라는 제목에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고민만 하다가 사실은 묵혀 놨었죠. 머릿속에 던져 놓고 아, 뭔가 나올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두었다가 한 6개월 정도 지났었나? 우연히 친구가 애완견을 분양 받아서 키우게 됐는데, 그 집 아이가 강아지가 생기니까 제일 처음하는 게 인터넷 검색이더라구요. 강아지 키우는 법을 배우려고 '어떻게 하면 강아지가 날 좋아하나요?' 이런 것들을 검색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까, 애완견에 대해서도 저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데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훨씬 소중한 엄마에 대해서 우리가 보통은 당연히 나한테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받아야 된다는 생각만 하잖아요. 그때 아, '엄마 사용법'이 이 이야기였구나라고 깨닫고 그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었죠. 그리고 나서 생명 장난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요. 엄마를 사온다면, 강아지처럼 사온다고 하면 그런 엄마는 어떤 존재가 될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장난감처럼 조립부터 시작하게 되겠구나.

 

엄마 사용법. 은근히 입에 붙기 힘든 제목이에요. 어떤 동료는 <엄마 사용설명서> 좀 빌려달라고...(웃음). 우리 대부분이 가장 친밀한 존재인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배우려는 노력을 쉽게 하지 못하는데, 아이들도 <엄마 사용법>을 읽고 자각하지 못했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아요.

 

어린이들이 읽는다고 전제하고, 말씀하신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썼는데 재밌는 건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의 반응이었어요. 한 선배가 이 책을 전철 안에서 읽었었나봐요. 문자가 왔어요. 이거 우리 애도 읽어야겠지만 우리 집사람이 먼저 읽어야겠다, 야. 어른들이 읽고 오히려 아이들한테 잘해줘야지하는 얘기를 더 많이 하시더라구요. 정작 아이들은 이걸 읽으면 오~ 조립한 이야기가 재밌어요!(웃음). 그래서 아 그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방식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거구나 했지요.

 

현수랑 장난감 엄마, 그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고릴라인데요. 주문한 엄마가 태어나는 모습을 같이 보고 싶다는 민지의 청을 현수는 뿌리치잖아요? 생명 장난감은 눈 뜨고 처음 본 사람을 따르게 되어 있는데, 엄마가 자기 대신 민지를 먼저 보고 좋아할까봐 걱정이 돼서요. 그래서 거절을 하니까 민지가 '고릴라 똥이나 맞아라'하고 악담을 퍼붓는데 깜짝 놀랐거든요. 뭐? 고릴라 똥이라고?(웃음) 이야기 뒷부분까지 읽으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데, 특별히 고릴라라는 동물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으세요? 고릴라를 좋아하시겠지요?

 

고릴라의 느낌을 좋아해요. 고릴라를 보고 있으면 나이든 현자 할까... 고릴라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이 든 어른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런 느낌 때문에 고릴라를 좋아하기도 해서 <엄마 사용법>에 동물을 넣기로 했을 때 자연스럽게 고릴라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느낌이 뭔가 사람하고 가깝잖아요. 굉장히 마음이 깊을 것 같은 동물이고요.

 

나중에는 고릴라가 말도 하는데 말투가 엄청 느려요. 고릴라들은 원래 그렇게 느릿느릿 말을 할까요?(웃음)

 

고릴라가 처음부터 말을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웃음). 성격으로 봐서도 그렇고요.

 

파란 사냥꾼들이 고장난 장난감들을 잡아다 가두는 차에 피노키오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피노키오도 나무 인형에서 사람이 되는 장난감 엄마랑 비슷한 존재인데요.

 

피노키오가 이 이야기 종류에서는 어떻게 보면 원전격이라고 할 수 있고, 관련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넣었던 부분은 아이들한테 이 존재가 뭔지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였고요. 사실 제가 생각한 원류는 사실은 책속에서도 썼지만 알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신화적인 측면을 염두하고 쓴 거였어요. 피그말리온 같은 경우가 피노키오의 원전이라고 보거든요. 신화적인 측면에서 그런 깨어나는 이야기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엄지 공주, 아니면 콩깍지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들이라든가 원류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쪽이긴 한데, 아이들한테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피노키오 상징을 사용했던 거죠.

 

현수가 좀 엉뚱한 아이라서, 해가 쨍쨍한 날에 느닷없이 선생님한테 오늘 비가 올 것 같냐고 물어봤다가 핀잔을 듣잖아요. '미안하지만, 질문은 그만하고 이제 제발 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런데 현수는 주눅 하나 들지 않고 선생님 잘못이 아니니까, 미안할 필요없다고 귀엽고 응수를 하는데요. 작가님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재치 있는 답변할 줄 아는 센스 있는 학생이셨는지요?

 

낯선 사람하고 얘기하는 걸 굉장히 쑥스러워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현수 같은 아이를 굉장히 부러워했어요. 자기 생각을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기 때문에, 등장인물에 그런 성격을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현수 같은 아이가 정말 부러웠으니까.



<엄마 사용법>이 가진 여러가지 분위기가 집필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전반적인 속도감, 재기발랄함과는 상반되게 현수를 보면서 안쓰러운 대목이 종종 등장하니까요. 현수에게는 한번도 엄마가 없었고 그래서 너무나 엄마를 갖고 싶어했고, 나중엔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생기지만 언제 잡혀갈지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이 애달프게 느꼈졌거든요.

 

그때 그때 순간의 기분에 몰입을 하게 되니까, 주인공을 따라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즐거운 대목을 쓸 때는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고, 슬픈 대목을 쓸 때는 긴장이 되고. 그리고 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다시... 감정을 따라가면서 집필을 한 것 같습니다.

 

다들 한번씩 이런 숙제를 해봤을 것 같아요. 행복한 우리 가족의 모습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하는 현수를 보면서, 작가님이 기억하시는 가장 행복했던 장면이 궁금해졌어요.

 

이건 조금 약간 다른 얘기인데요. 행복해던 기억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혼을 내시면요. 저희 큰 형은 가만히 회초리를 맞았어요. 혼 내는 게 위에서부터 이렇게 순서대로 내려오는데, 그 다음으로 작은 형은 회초리 앞에서 약간 몸을 틀고요. 그런데 저는 밖으로 도망을 갔어요(웃음). 도망 가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면 작은 형이 저를 찾으러 와요. 아버지는 걱정이 되셔서 혼내는 건 잊으시고, 돌아온 게 다행히라고 생각하셨죠. 그래서 저는 혼도 안나고, 항상 얼른 와서 밥 먹어라로 끝이 나죠. 그게 기억이 나네요, 행복했던 일보다. '내가 도망갔을 때 아빠가 오히려 날 걱정하고 데리러 왔어' 그렇게 생각했던 날들이요.

 

아주 영특하셨네요!(웃음). 그리고 너무나 절묘해서 감탄했던 것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현수 엄마를 막 감시하고, 그래서 현수가 위기를 느끼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림 없는 상태에서 글을 먼저 쓰시고 나중에 그림이 입혀진 책으로 보셨을텐데, 책하고 정말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라 만족이 크셨을 것 같아요.

 

김중석 작가님을 만난 게 굉장한 행운인 것 같아요. 첫 책을 내는 신인이 이런 그림을 받아서 작업을 할 수 있다라는 게. 아마 제가 봤을 때는 그분 그림 작품 중에 <엄마 사용법>에 있는 그림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이게 걸작이에요, 그분의 걸작(웃음). 앞으로 김중석 선생님, 그리신 작품 중 대표작이 뭡니까 물으면 <엄마 사용법>이라고 하셔야겠다(웃음).

 

그리고 <엄마 사용법>에 악역이 한 명 나옵니다. 정태성이라고(웃음). 정태성이 알고 있는, 정태석이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이랑 현수가 얘기하는 거랑은 조금 미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엄마랑 구름을 같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거였어요. 엄마랑 구름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 흔히 볼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구름 보는 걸 좋아해서요. 산책하면서 구름을 보는 걸 좋아해요. 하늘에서 구름 모양이 자꾸 변하잖아요. 야, 저 구름 예쁘다 그러다가 다시 보면 구름이 모양이 또 바뀌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그럴 줄 알았는데...(웃음)

 

저도 갑자기 밖에 나가 엄마랑 같이 구름을 보고 싶어지네요! 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건요. 태성이나 현수처럼 작가님이 갖고 계시는 엄마의 이상형이라고 해야 할까, 현수를 빌려서 들려주시지 않았던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엄마 사용법>에서 현수가 엄마한테 원하는 게 분명하게 있잖아요. 어떤 부분은 제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바라는 건 엄마가 절 혼내주시는 거? 과자 만들어주면서 재료 심부름 시켜주는 것? 다른 친구들 보면서 이런 게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중학교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가, 고등학교 지나고 대학생이 되면서 친구들이 하는 투정을 듣잖아요.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 우리 엄마 왜 이래하면서 투덜투덜(웃음). 우리 엄마가 나 야단쳐하고 하소연하는 그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과자를 만들어줬다라는 것보다 그것 때문에 심부름을 시키는 것, 뭣 좀 사와라 하는 것 자체가 부러웠거든요. 그런 엄마가 부러웠기 때문에 <엄마 사용법>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그렇잖아. 사람들은 이웃집 아이한테는 야단을 안 쳐요. 잘해주잖아요. 내 아이한테는 야단을 쳐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야단을 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제가 가장 엄마한테 바라는 모습 같습니다.

 

고릴라도 그렇고 현수네 엄마도 그렇고 마음이 생긴 장난감이잖아요. 장난감에 마음이 생기면 무거워진다는 설정, 마음의 무게를 보여주는 장치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썼던 말인데요. 처음 막 배달된 엄마는 가볍잖아요. 그래서 엄마가 들어 있는 박스도 현수가 거뜬히 들 수 있고요. 나중에 사람이 되고 나면 무게 차이가 생기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설정이었어요. 써놓고 보니까 정말 중요한 말이었구나 생각했고요. 가끔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쓸 때는 몰랐었다가 나중에 의미를 알게 되고 그게 정말 중요한 문장이 되는 경우들이요.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 현수는 '엄마 사용법'을 완전히 익히게 되는데요. 이제 아빠 차례로 넘어와서 아빠가 아내 사용법을 배워야 될 것 같아요. 아빠도 현수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아빠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아빠도 기본적으로는 현수를 이해해주려고 하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은 책에 엄마와 현수와의 관계만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나중에 이어질 엄마하고 아빠하고의 관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빠는 거기에 맞춰서 엄마를 현수처럼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상 삼관왕이시더라구요. KB작가상이랑 한국안데르센 상, 그리고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수상까지.


KB같은 경우에는 얼마 안 됐지만 단편 부문에서 빨리 자리를 잡은 공모전이라고 생각하는데 2010년도부터 신인들을 대상으로 단편 공모를 했었어요. 저 때도 그랬고 한회에 천 편 가까이 응모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안데르센 상 역시 단편 공모전인데, 이름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웃음). 창비 좋은 어린이 책은 꼭 갖고 싶은 타이틀이었죠.


이렇게 상을 받은 작품들을 무조건 좋은 동화라고 할 수 없지만, 수상작 중에 좋은 작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만큼 독자분들도 매년 기다리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데요. 작가님께서도 작가인 동시에 동화를 읽는 독자기도 하니까 여쭤보고 싶어요. 독자분들이 문학상, 어린이 문학상에 기대하는 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로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문학상 수상작 심사에서 똑같은 작품을 뽑지는 않잖아요. 한발이라도 앞선, 전진을 했다라고 하는 작품들을 뽑기 때문에 그래서 기존 작품과는 뭔가가 다르겠지 이런 기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 활동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글은 계속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10년? 처음에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대학교 때는 학자가 되고 싶었죠. 사회학자가 되고 싶었다가 대학원을 안 가게 됐고, 그렇다면 뭔가 창의력이 있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은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해보자. 시나리오 쓰는 일은 한 2~3년 정도 한 것 같아요. 그쪽에서 일하다가 돈 떨어지면 취직을 하고, 취직했다가 돈이 좀 모이면 다시 글을 쓰고. 그런 반복을 하다가 동화를 쓰자 생각한 건 어린이 독서지도를 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화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쓰는 건 당연히 소설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관심을 안 가졌었거든요. 독서지도를 하면서 동화를 읽으면서, 아 내가 예전에 진짜 몰입했던 이야기들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렸을 때 봤던 동화책. 피노키오라든지 몬테크리스토 백작... 다시 이 이야기들을 읽게 되니까 무언가가 돌아온 느낌이 들었지요.


요새는 공부랑 학원 때문에 아이들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많고...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들께서 간혹 동화책 나이가 지났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가끔 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할 정말 멋진 책들이 많은데...


그건 제가 봤을 때 어머니들께서 약간의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독서지도를 하다 보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똑똑하거든요. 책이라는 것이 사고력을 길러줄 수밖에 없거든요. 영어를 하든 사회를 하든 과학을 하든 모든 공부의 기반은 사고력의 문제니까요.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는 아이들이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많요. 초등학교 3, 4학년에 올라가면 책을 읽은 아이와 읽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격차가 확 벌어져요. 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고력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문제들을 풀어야 하거든요. 달라져요. 부모님께서 정말 아이가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진짜 괜찮은 아이가 되길 원하신다면 책을 진짜 많이 읽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것은 특히 어렸을 때 결정이 많이 나죠.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솔직히 읽힐 시간이 더 부족하고, 그때 가서는 본인 스스로가 읽고 싶어하지 않으면 정말 방법이 없으니까. 저학년 때 책을 많이 읽혀 줘야 아이들이, 진짜 어머니들이 원하는 그런 아이가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정말 중요하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즐겨서 읽으시는 작품을 소개해주셔도 좋고요.


예전에는 움베르토 에코를 많이 좋아했고요. 요즘에는 주로 이제 신화 계열 책들을 많이 읽거든요. 신화 해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요. 한국 동화작가로는 마해송 선생님. 그분이 <토끼와 원숭이> 쓰신 것 맞죠? <떡배 단배>를 어렸을 때 읽었는데 처음에는 한국동화인 줄 몰랐었고요. 그 <떡배 단배>하고 <토끼와 원숭이> 이야기는 세계 어느 동화하고도 견주어도 앞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작품이 많이 안 알려졌더라구요. 저는 한국동화 중에서 딱 한 작품만 고르라고 하면 이 작품을 꼽을 것 같아요. 최고예요!

 

<엄마 사용법> 이후에는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세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긴 한데, 구상하고 있는 단계라서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인공들이 저절로 엉뚱한 데로 갈 때가 있거든요.

 

그럼 그 주인공들을 따라가시는거죠?

 

예, 그러니까 글을 쓰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흔히 작가를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신과 같은 존재라고. 근데 전 그말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말 안에는 작가가 이렇게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 말이 틀렸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라는 건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성경에 창세기가 있잖아요.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설계를 딱 했거든요. 아마 하느님의 뜻대로 됐으면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났을 거예요. 근데 주인공 아담하고 이브가 갑자기 엉뚱한 짓을 하거든요.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거기서부터 긴 이야기가 뻗어나오는 거잖아요.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내가 설계를 하고 인물과 배경까지 다 만들었는데 주인공이 갑자기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갑자기 이야기가 커지고 증폭되고 달라지고. 하느님이 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거든요. 요즘에는 그런 재미를 좀 느낄 때가 있어요. 나 생각이랑 관계 없이 얘기가 가고 있네? 생각도 못한 엉뚱한 길로 튀었는데 좋다! 그래, 가보자! 이렇게요. 그래서 아직 다음 작품은 틀도 세우고 배경도 만들었는데 그 인물들이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엄마 사용법>,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어주시길 바라고 계세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가장 기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재미있다, 없다일 것 같은데요. 감동? 이런 건 아이들 입에서 잘 나올 수 없는 단어니까 일단은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읽고 나서 따뜻한 느낌, 왠지 엄마 옆에 가서 기대고 싶은 느낌 같은 걸 받았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엄마 사용법>이 엄마를 한번 안아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쑥스럽겠지만 엄마를 한번 안아주면 좋겠어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4-16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나무꾼? 동화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눈에 익을 이름, 또는 좋아하는 이름. 지은이나 옮긴이란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 책 기획실.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담은 어린이 책 번역과 논픽션 집필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멋진 독서 체험을 선사해온 햇살과나무꾼이, 2012년 봄 또 한 권의 새로운 책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를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험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20여 년 간 어린이 책과 함께 걸어온 햇살과나무꾼의 치열하고도 즐거운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인터뷰이 : 햇살과나무꾼 박정선 실장님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7)

 

알라딘 : 알라딘에서 햇살과나무꾼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집필과 번역을 합쳐 400종 가까이 됩니다. 올해로 기획실이 설립된 지 얼마나 됐는지요?

 

햇살과나무꾼 : 실제로는 92년부터 내부에서 준비를 시작해 사업자등록증을 낸 건 94년이구요, 첫 책이 나온 게 93년이던가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지금까지 작업한 책이  전집이 1천종 정도 단행본이 3~4백권 정도되는 것 같아요. 구성원은 총 7명입니다.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햇살과나무꾼 : 대표이신 강무홍 주간님이 지은 이름이에요. 사람들은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데 햇살이 비치면 덥지 않냐 물으시기도 하는데, 나무하는 계절은 겨울이니까요. 처음에 강무홍 주간님이랑 저랑 같이 시작을 했거든요. 회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그 때 그런 모습이 떠올랐대요.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모습이 이미지로 떠올라서 햇살과나무꾼이 되었죠. 나무꾼이 나무를 떼서 따뜻한 겨울을 나듯이, 저희가 기획.집필한 책들이 어린이의 마음에도 따뜻하게 전파됐으면 좋겠다는 해석을 이후에 저희가 붙이긴 했어요.

 

알라딘 : 20여 년이면 활동 초기와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작업 방식의 변화도 클 것 같습니다.

 

햇살과나무꾼 : 엄청나게 변했죠. 1990년대 초반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것이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었고요. 서점에서도 어린이 코너를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어린이 책의 위상도 그랬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고. 어린이를 위한 무언가를 따로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적을 때였어요. 지금은 교육 열풍에다가 어린이의 인권, 어린이도 보호받아야 한다, 애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윽박지르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많이 있지만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어린이란 개념 자체가 척박했고, 지금은 과잉이죠. 너무 과잉이 되어서 부모가 자기 일, 자기 존재까지 잊은 채 어린이들만 위하는 게 지나치다 싶죠.


강무홍 대표님과 제가 둘 다 운동권 출신이에요. 공장에 있다가 사회에 나와보니까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옛날 운동권들은 웬만큼 일어를 할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번역을 한번 해보자 했는데, 출판사에서 정해준 번역만 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기왕 번역하는 거 재밌는 책을 하자는 것과, 우리가 운동에 청춘을 바쳤는데 내가 바친 청춘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이후에 사는 것은 참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했을 때 사회과학을 연구할까? 아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결국은 인간해방이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인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 어린이라고 하는 코드를 잡고, 이어서 어린이 책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번역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요. 원서 사기도 힘들고, 해외여행 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클릭 한번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 있어?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 수소문해서 국제전화로 어렵게 책을 구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골라서 번역자가,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찾아가 이 책 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는 것이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죠. 그리고 영어 책이든 불어책이든 무조건 일어 번역서를 가지고 우리말로 옮겼어요. 저희도 일어를 했듯이, 일어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일어본을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고요. 원본을 소중히 해야한다 그런 개념보다는 비용 절감을 중요하는 게 과거의 풍토였죠. 지금이야 저희가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옛날에는 '기획? 어린이책을? 어린이책을 뭐하러 그렇게 공들여서? 그것도 외국의 저작권료까지 물어가면서?' 하는 반응들. 너희는 곧 망할거다, 쓸데 없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현지, 동시 출간되는 책도 많고, 출간되기 전에도 원고가 검토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 그러니까 소공자 소공녀 그런 것들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세계명작, 아직도 그걸 읽고 있었던 때였어요. 당시 해외 현대어린이문학이라고 하는 건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각각의 계층들, 특히나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그런 사람들이 주체가 된 문학의 모습이었는데요. 사회제도 이런 것들도 많이 발전되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들이 일천한 상태였던 거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보니 굳이 현재 영국에서 나오고 있는, 이제 막 출판되고 있는 좋은 어린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죠. 또 그런 책들은 로열티를 꼭 냈어야 하거든요. 뭐하러 그렇게 큰 돈을 들이느냐라는 거였죠. 다른 나라 아이들과 같이 발맞춰서 커나가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게 뭐가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햇살과나무꾼이 유명 작품들을 다 독식했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당시에는 그런 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경쟁자가 없었어요. 이제는 출판 환경이 많이 바뀌었죠. 저희는 뒤로 한발 물러나 있고, 미국이나 일본에서 뜨는 작품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경쟁자들도 많고 하니까요. 저희는 이제 묻혀 있는 좋은 작품을 찾는 데 주력을 하고 있죠.

 

알라딘 : 오늘의 햇살과나무꾼을 만든 중요한 순간, 어떤 도약의 시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햇살과나무꾼의 첫 발걸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이거예요. 그러니까 햇살과나무꾼이 좀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단행본 시장에서 좋은 책을 고르려고 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엄마들이 등장한 것,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단체의 등장, 좋은 책을 찾는 하나의 바로미터로서 옮긴이도 보게 되고 작가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부터죠. 초기에는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사람 이름을 써야지, 햇살과나무꾼 옮김이 뭐냐. 지금은 곰돌이co. 같은 이름도 있고, 이런 이름들을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웬 햇살과 나무꾼 옮김? 항의 들어온다는 거예요. 신뢰성, 공신력 다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는 거죠. 당시에 작가 이름 대신 '편집부 옮김'이 들어가는 어린이 책이 많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 하죠. 그래서 '햇살과나무꾼 옮김'을 써도 될 만큼 저희가 알려지고 옮긴이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던 것, 그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번역 인세를 받기 시작한 시점. 그전까지는 번역료가 다 매절이었는데 인세를 받는다는 건 본격적으로 '번역 기획'을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인세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만부는 넘어가줘야 손익분기가 나오는 게 되니까.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너무 소모적으로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매절한 원고에 대해서는 출판사가 돈을 주고 산 거니까 관여하기가 힘들고. 내 자식을 팔아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인세가 1%라도 걸려 있으면, 출판사에서 그 책을 바꿀 때 꼭 얘기를 해주시고.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못 팔리면 못 팔린대로 우리가 인세를 적게 받는 것으로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요. 또 많이 팔리면 많이 팔리는대로 계속 인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기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희가 집필을 하기 시작한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어요.


알라딘 : 이쯤에서 햇살과나무꾼에서 새롭게 펴낸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햇살과나무꾼 : 동물 이야기, 식물 이야기 이런 책들이 사실 넘쳐나죠. 다큐멘터리들도 많고요. 생태계에서 왜 아주 신기한 것들이 많잖아요. 어! 와! 얘네들이 어떻게 저렇게 사나, 저 해달 좀 봐봐 진짜 귀엽다! 이런 감상이 하나 있고, 또 학교에서 '포유류는 어떻습니다' 하고 배우는 것이 하나.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따로인 것은 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의 생태를 보는 건 이런 것들이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잖아요. 어린이들은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렇다면은 동물들의 신기한 모습들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주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열매가 엉뚱한 데서 맺힌다거나, 그냥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갑자기 '그래서 말이죠' 하고 결론을 딱 꺼내놓는 것은 별로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두 가지를 합쳐 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 다음에 나올 책은 거꾸로 살아가는 동물들한테 배우는 생태계인데요. 우리가 흔히 낙타들한테는 다 혹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혹이 없는 낙타 얘기를 하는 거죠. 또 포유류는 전부 새끼를 낳는다고 알고 있는데, 알을 낳는 포유류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냥 포유동물이란?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세 번째 권은 식물. 특이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을 통해 배우는 생태계 이야기입니다. 신기한 생태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고, 그 생태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그런 것들이 재미있게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을 한 거죠.

 

알라딘 : 신기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책 속 동물을 하나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스스로 떼죽음을 당하는 노르웨이레밍 얘기를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너무 불쌍하기도 했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어린이 책에서 이런 잔인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신 분도 있죠. 한 동물만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진 않은데요. 불가사리가 자기 위장을 꺼내서 먹는 것도 재미있고... 해달이 물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돌에 딱딱 부딪쳐 전복 같은 것들 껍질을 까먹잖아요. 해달이 어떻게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지도 책에 나오지만, 그 해달의 생태를 아는 것도 중요한데 이 생물들이 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마다 생태계라고 하는 것에 엮여 있고, 먹이그물 먹이사슬에 얽혀 있고. 해달의 가죽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자꾸 잡아가니까 해달이 많이 사라지고, 해달이 먹는 해초숲까지 사라지게 된 거예요. 해달이 없으니까 해달이 까먹었던 성게들이 갑자기 증식을 해버린 거죠. 그래서 성게가 해초들을 막 끊어버려서 숲이 사라지게 되는 것. 그렇게 해서 한마디로 인간이 생태계를 깨뜨리는 거죠. 그런 것들까지도 이 책에 같이 포괄하고 싶었어요.

 

요즘 어린이 논픽션에 아쉬운 게 있다면 이건 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요.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인간의 시각으로 '아... 동물이 잡아가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같은 식의 의인화를 하는 것들요. 인간의 감정을 넣어서 하는. 그런데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고, 그렇게 잡아먹는 것도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무 인간의 감정으로만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사실 가죽을 벗기는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좋은 다큐멘터리라도 너무 감정이 실려 있거나, 그런 나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건 싫거든요. 요즘은 워낙 퓨전의 시대이긴 하지만.

 

문학을 읽는 내 감정의 상태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흥미로울 때의 내 뇌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다큐는 다큐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픽션에는 논픽션의 문법이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탐구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의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저 어린이 책이라는 이유로, 이야기의 허울을 씌워서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햇살과나무꾼에서 쓰는 책들은 되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친절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처럼 꾸며져 있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이야기처럼 쉽게 씌여져 있어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거기 숨어 있는 사실과 본질 때문인 것. 그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하면서 야 이거 진짜 재미있네! 하는 것 있잖아요. 정보가 정말로 잘 배열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저 자신도 그런 논픽션이 좋아요. 인문적 방식으로 자연과학을 알려주려고 하는 책보다는요.

 

알라딘 : 다시 번역 이야기로 돌아가서, 번역할 작품을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이 있으시다면. 사실 판매량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으실 것 같거든요.

 

햇살과나무꾼 : 저희가 고르는 기준이라고 하는 건, 낼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일단 기획서를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것인데. 선택의 순간에 던지는 질문은 '이 책 꼭 우리가 해야 돼?'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과감히 포기를 해요. 계속해서 생각하는 건 보이지 않는 햇살과나무꾼의 독자들이에요. 그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고르려고 애를 써요. 정말 안 팔릴 것 같지만 정말 좋은, 그런 책이 있다면 선택을 해요. 그리고 출판사를 찾는 거죠.

 

번역서는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결과와 판매 동향을 알고 난 뒤에 가져와서 할 수 있고, 새로운 출판사가 단 기간에 종수를 늘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요, 번역 자체의 고유의 기능은 사실 정말로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한다, 그런 문화의 선구자적 느낌이라고 할까요? 진짜 문화의 벵가드로서의 그런 역할. 우리도 한국의 고유한 것,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어필을 하듯이, 외국의 그런 것들을 번역해서 들여오면 되잖아요. 퓨전이나 세계화도 좋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을 만날 때 정말 기쁘거든요. 독자들이 아 이 책은 정말 독특하다, 햇살같다, 그런 애기를 들을 때.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좋은 작품들을 골라서 번역을 하려고 애를 쓰죠. 기왕이면 그 책들이 다 잘 팔리면 참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번역을 하면서도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업무라는 것도 잊고,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책들을, 이런 책들만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알라딘 : 혼자 하는 번역과 햇살과나무꾼처럼 여럿이 하는 번역, 무엇이 다를까요.

 

햇살과나무꾼 : 일단 기획성, 혼자서 어떤 책을 기획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내부 시스템을 갖춘 회사 조직이나, 출판사와의 오랜 관계나 노하우 같은 것들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니까. 똑같은 책도 어느 출판사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단지 잘 팔리고, 못 팔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 팔린다는 건 그러니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는다는 것이잖아요. 사계절이면 사계절, 비룡소면 비룡소, 출판사마다 자기 독자군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 독자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도 실패를 많이 하죠. 이 책은 차라리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훨씬 잘 될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책들이 있어요. 그렇게 책이 독자를 찾아가게 해주는 것, 이런 것들은 개인이 하기에 조금 힘이 들 수 있죠.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아무리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일단 한국말도 잘 해야 하고요. 저희 작업의 경우엔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잖아요. 어린이 소설과 논픽션, 그림책 이 세 가지가 다 번역의 문법이 달라요. 동화 번역을 잘 한다고 해서 어린이 논픽션 번역까지 자동으로 잘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림책 번역? 그거 진짜 쉽지 않아요. 그림책 중에서도 영유아 그림책 번역, 진짜 어렵거든요. 영어로 보면 쉬워요. 이 쉬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그게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런 여러 장르를 다 번역을 해낼 정도가 되려면,많은 연차가 쌓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번역을 주 업으로 하면서 혼자 쌓아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햇살과나무꾼은 회사니까 선배들이 가르쳐줄 수 있고. 저희는 최소 3년차는 넘어야 혼자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저희를 프리랜서 모임으로 알고 계시기도 하는데 일반 회사와 같이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인턴 기간은 1년이에요.

 

알라딘 : 좋은 어린이 책 번역, 나쁜 어린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햇살과나무꾼 : 일단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별도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먼저 기본, 보편을 지키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어린이 책으로서 더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번역의 기본은 '원작을 살리는 번역'이에요. 원작자가 누구든 간에, 그 번역자의 필체가 그 여러 책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가끔씩 봐요. 이건 누구 번역 같다, 생각이 드는 번역은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번역자는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원작자의 문체, 문체라고 하는 건 그 작가 고유한 것이잖아요. 그것이 비록 한국말로 옮겨지더라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번역자의 할 일이고 기본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 책이라는 명명 하에, 이 부분은 좀 재미없는데 애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 고쳐보자, 한 두줄 정도는 빼자는 건 안 될 일이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원본 대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살짝 문장이나 단어를 뺀 번역들을 보게 되는데요. 이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문학이라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짝살짝 빼고 또는 자기 문체로 바꾸어버리면, 원작의 향기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데. 아무리 어린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자가 지루하고 따분한 몇 행을 써 놓았으면 번역에도 그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빼야할 문제는 아니다. 일반 성인물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요새 번역 가지고 말들이 많잖아요. 뭐 의역이니, 직역이니. 이런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의역이라고 하는 게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번역자한테 의역할 권한을 주었는가하는 문제. 그걸 번역의 개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고요. 어떤 어린이 책은 긴 문장을 탁탁탁탁 끊어놓죠. 그렇게 되면 문체가 달라져요. 탁탁탁탁 아주 경쾌한 문체가 되어버리거든요. 원작자는 그렇게 안 썼는데 그렇게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라딘 : 엄격하게, 최선을 다해 원작자의 문체를 살린다는 번역을 번역다운 번역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필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쓰기는, 논픽션에 요구되는 미덕일텐데요. 집필하는 책에 일관되게 담고자 하는 햇살과나무꾼만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햇살과나무꾼 :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뭔가라고 물으면 결국 가치관일 것 같아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것은 다 한 가지 분야를 다룬 책이 수십 종이잖아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어떤 관점에서 정보를 독자한테 전달할 것이냐. 위인전, 역사에선 특히 사관이 중요하겠구요. 생짜 그대로 훈계하듯이 이건 옳지 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말고. 또 설익은 좌파의 느낌이 너무 내거나 너무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 말고요.

 

일단은 좋은 가치관에서 정보를 취합해야 하겠고요. 두 번째로는 아이들한테 열려 있는 집필, 독자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어린이 책 집필을 하고 싶어요. 어떤 책은 정말로 교과서 내용,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열해 쓰는 데 그치기도 하잖아요. 그 반대편에 똑같은 정보를 주더라도 단순히 그 정보를 달달 외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들이 있죠. 읽었던 사실들은 혹시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 순서대로 따라 읽으면서 사고 훈련이 되는 그런 책들을 쓰고 싶죠.

 

사실은 저희가 이제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동화는 번역을 하면서 왜 논핀션은 집필을 하느냐. 문화나 정서나 이런 것들은 전세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데, 정보나 이런 것들은 쉽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한국에 현재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각시켜서 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필요성 때문에 논픽션은 번역이 아닌 집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이세움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말 한마디>라는 책이 있어요.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책을 써보자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게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죠. 내 머릿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재취합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잘못된 책들을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경우도 생기는 거죠. 명언 취합을 하다보니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대요. 아무리 찾아도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스피노자 연구자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왜 한국에서 스피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회자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로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그냥 안중근 의사가 어떤 책에서 보고 글귀가 좋아서 그 얘기를 쓴 거래요. 이런 비슷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자료 조사하다보니 전부 다 거짓말인 거예요. 정말 그래서 저희가 우리끼리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이다(웃음). 이 책이 사실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책 속의 글들이 틀린 거잖아요.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든지, 지구가 멸망하면 이런 것들은 에피소드로 만들어내기 좋잖아요. 특히 어린이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좋은 말이고. 일본은 자료가 굉장히 많고 잘 관리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자료를 잘못 담은 책들도 꽤 많거든요. 조사를 해봤더니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을 번역해서 출판, 이걸 또 다른 곳에서 보고 자료로 취합하면서 틀린 것들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거죠.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독자분들의 신뢰가 두터운데,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햇살과나무꾼 : 앞서 말씀드린 저희가 번역서를 선택하는 기준 같은 것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한번은 어떤 독자분께 이 책은 햇살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 독자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에서 의뢰하셨을 때 저희 답지 않은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이 책은 번역을 못하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하기도 하고요. 의뢰 받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지 더 철저하게 보게 됐어요. 몇몇 출판사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알라딘 : 어린이 책 번역을 막 시작하신 분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조언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햇살과나무꾼 :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햇살과나무꾼 번역학교를 하면서 했던 얘기인데, 번역이 혼자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번역을 많이 해봐야 하겠죠. 좋은 번역서를 많이 봐야되겠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번역을 잘 하는 건 기본인데, 그 번역가의 소신이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경쟁력. 경쟁력은 어차피 자신이 키울 수 밖에 없어요. 이 책도 괜찮고, 저 책도 괜찮겠다 해서는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자기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때 좋은 번역이 나오거든요. 그림도 그래요. 화가분들하고 작업을 예로 들면요. 화가가 마음에 들어한 원고에는 그림도 잘 나와요. 그런데 그냥 직업상 의뢰가 들어와서 그냥 했다, 좋은 그림이 나오지 못하죠. 번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는 청소년 성장소설이 잘 맞는다, 하면 그 분야에서 출판된 책과 원서를 섭렵한 다음에 번역할 책을 고른다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하기 쉬운 시행착오들이 칼데콧 상을 받았다,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미국에 사는 내 동생이 뭐 미국에서 요새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들 한다 했다면 그 책들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관심을 아예 꺼야 돼요. 그런 작품들은 누군가가 이미 계약을 했을 거예요(웃음).

 

알라딘 : 이건 참 실용적인 팁이네요!

 

햇살과나무꾼 : 그런 책들보다는 나만의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게 현실적이겠죠. 묻혀 있는 책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그런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른다면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처음부터 번역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난항을 겪겠죠. 그런데 번역은 정말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어요. 그건 확실해요. 정말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해요.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앞으로 십 년 후 햇살과나무꾼의 모습을 그려보신다면요?

 

햇살과나무꾼 : 이십 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자부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저희가 떼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좋은 책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유가 된다면 번역 작가 양성이 꿈이에요. 논픽션 작가 양성도 그렇고,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은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후에는 어린이도서관이라든지 좋은 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본은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좋은 책을 우리가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것, 그것이겠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보광 2017-11-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신을 가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독자가 햇살과 나무꾼이라는 이름을 믿고 사는 책을 만드시니 그 자부심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한 어린이 책 많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는 캡슐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작고 소심한 동동이가 선택한 상대는 '고약한 왈가닥', '여자 깡패', 시도때도 없이 오빠를 못살게 구는 얄미운 여동생 묘묘!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동동이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빠의 몸.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소개팅까지 대신 치러야 하는 동동이 앞에는, 마법처럼 '영혼이 훌쩍 자라는' 놀라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3월 오후,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의 김소민 작가를 만났다. 아이들을 끔찍히 좋아하고, 그만큼 떡볶이를 좋아하고, PC방 나들이가 취미인 동화작가. 해사한 웃음이 매력적인 김소민 작가가 아이처럼 밝고 꾸밈 없는 말로 자신의 두 번째 동화책을 이야기한다.

 

(사진 : 비룡소 홍보기획부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08)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작가들이 책이나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데, 이 소재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처음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은 저학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배려나 이해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제가 놀이터 같은 데 자주 가서 아이들이랑 자주 어울리고 관찰도 하는데요. 애들이 잘 놀다가도 갑자기 얼토당토 않게 싸우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이해'를 말하면 전혀 못 알아들어요. 이 아이들이 엄마를 이해하거나 친구를 이해하거나 강아지를 이해하려면... 애들은 강아지도 잘 때리거든요(웃음). 어떻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이해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영혼을 바꾸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면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알아듣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거고요.

 

캡슐 마녀라는 건, 한 2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사랑의 리퀘스트란 프로그램을 제가 보고 있었거든요. 때마침 제가 많이 아팠었고요. 약을 먹고 골골거리고 있는데 TV에 나온 아픈 아이를 보는 순간, 그애처럼 약봉지를 들고 있던 저에게 강한 연대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면서 뭔가 이 캡슐 속에서 마녀가 튀어나오면 좋겠다! 여기서 시작해 어떤 영상들이 쭉 떠오르고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이해를 하는 것, 서로 배려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차례차례 정해놓은 순서대로라기보다 짬짬이 메모해두었던 것들, 그 생각들을 불려나가게 됐어요. 영혼을 바꾸는 것에 대해선 정작 제가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써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동동이랑 묘묘 또래 아이들하고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궁금해요, 그 애들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딱 초등학교 1학년. 요새 입학철이잖아요, 두근두근할 거잖아요. 처음 학교에 가는 게 얼마나 좋을까. 저도 입학식에 가 있고 싶어요. 입학할 나이가 되어 보고 싶어요,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는 그 첫 느낌을 갖고 싶어요.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보면, 예전 그 경험을 다시 한번 새로 하게 되는 거라고 말씀들 하시더라구요.

 

저도 빨리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봐야겠군요!(웃음)

 

많은 동화에 작가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에서 역시 작가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찾아볼 수 있나요?

 

저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애들은 책을 보면 딱 제가 묘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하하. 제가 태권도를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거든요. 정말. 아침에 태권도학원에 가면 저녁까지 집에 안 오고, 사범님네 집에 가서 밥까지 먹을 정도로 항상 사범님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고. 특히 도복을 너무 좋아해서 맨날 입고 돌아다녔어요. 저희 오빠는 또 정말 착하거든요. 제가 아기였을 때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오빠는 저랑 다섯 살 차이가 났고 이름이 민기였거든요. '민기야, 소민이 좀 보고 있어' 엄마가 말씀하고 밖에 나가셨는데, 정말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오빠가 꼼짝 안하고 앉아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대요. 그렇게 순둥이거든요. 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런 오빠가 누굴 때린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저는 묘묘처럼... 아주 묘묘랑 똑같이 악랄하게 오빠를 괴롭히진 않았지만(웃음) 태권도를 좋아하는 건 정말 묘묘랑 꼭 닮았어요. 밥을 안 먹어도 태권도 연습은 열심히 했지요.

 

너무 착한 오빠라 동동이랑 묘묘처럼 싸울 일이 실제로는 거의 없었겠어요. 그럼 혹시 아버님은 약사...(웃음)

 

틀리셨구요(웃음), 약국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게 저한테 좀 있나봐요. 약국에 가면 맛있어 보이는 이상한 게 너무나 많고. 어른들이 바카스를 마시는 그런 모습이 왠지...(웃음)

 

왈가닥 캐릭터를 좋아해서 그런지 묘묘한데 눈길이 많이 갔는데, 조역이다보니 출연 분량이 너무 적어서 드려보는 질문이에요. 아빠 몸 속으로 들어간 동동이가 영혼이 바뀌자마자 얄미운 동생 묘묘를 야단치잖아요. 그동안은 기 한번 못 펴고 살다가... 아빠 호통에 깜짝 놀란 묘묘가 대성통곡을 하는 그 장면은 그대로 끝이 나는데요. 그 후에 아빠가 사과하는 장면, 묘묘의 마음을 풀어주는 대목이 이야기 전개상 필요하진 않지만, 현실에서라면 이렇게 자기 속을 뒤집어놓은 부모님을 순순히 용서해주는 아이들은 없을 것 같거든요.

 

저도 사실 생각은 했었거든요. 뭔가 화해하고 넘어가야되지 않나, 그랬는데요. 아이들은 제가 생각할 때 어른들처럼 담아두지 않는 것 같아요. 너그러워요. 직접 낳아서 키워본 적이 없어 잘 알진 못하겠지만. 놀이터에서 싸울 때는 엄청나게 싸우지만, 또 다음날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정말 철이 없는 것 같은데도 또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보살필 줄 아는 그런 것들. 책속에서도 영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직전, 동동이가 묘묘를 보면서 측은해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부분에서 말씀하신 화해의 느낌까지 다 녹여서 전하고 싶었어요.

 

그 다음으로 아빠로 변신한 동동이를 기다리고 있는 게 민숙자 아줌마와의 소개팅인데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동이가 엄마가 생기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과 동시에 떠올리게 되는 게 바로 '엄마 냄새'잖아요. 엄마를 끌어 안았을 때 나는 향기를 동동이 친구들은 우유 냄새라고도 하고 장미꽃 화장품 냄새라고도 했어요. 작가님은 엄마 냄새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세요?

 

이야기 마지막 아빠 결혼식에서 동동이도 새 엄마 품에 안겨서 비누 냄새를 맡잖아요. 아주 연한 비누 냄새, 비누 냄새인데 약간 반찬 냄새도 섞인. 저는 지금도 엄마를 잘 껴안는데요, 엄마를 좋아해서요. 지금도 이 다음에도 엄마를 생각할 때도 엄마 냄새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제 단편 '새우젓 냄새'도 냄새에 집착하는 이야기인데요(웃음). 엄마 냄새, 저에게는 약간 반찬 냄새가 섞인 아이보리 비누 냄새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지갑 속에 끼워져 있던 낡은 연애편지 한장으로 동동이를 낳아주신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셨잖아요. 연애편지가 나중에도 한번 더 나오지만, 아주 예쁜 글이었거든요. 두 편지 모두 다. 그래서 김소민 작가님은 연애편지를 엄청나게 많이 써 본 고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애편지를... 진짜 연애편지는 써 본 적이 없어요.

 

앗 그게 정말이세요?

 

왜나하면 제가 쓴 편지를 친구가 읽게 된다면 그 후로는 그 친구를 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타요. 연애편지를 남자에게 쓰게 된다면, 그 편지를 끝으로 다시는 못 만나게 될 지도 몰라요. 책속에 쓴 건 투영, 연애편지를 쓰고 싶은 욕망의 투영이라고나 할까. 하하.

 

민숙자 아줌마한테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동동이 뒷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작가님이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어떤 페이지에 있을지 궁금해요.

 

캡슐 마녀한테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래서 이 그림. 처음 화가분이 그려주신 걸 보고 진짜 빵 터졌고, 아이들도 재밌어할 것 같았거든요. 이 대목에서 뭔가 상쾌해하지 않을까, 게임 레벨도 20단계나 올라가 있고, 캡슐도 두개나 더 주고 가고. 헉! 이러면서 신나하지 않을까. 이 장면 보면서 막 신나했으면 좋겠다. 기대를 많이 품고 있어요.

 

 

 

아이들과 자주 만나시는 건, 동화 쓰시는 것하고도 연결이 되나요?

 

동화를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아이들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요. 틀에 갇혀 있지도 않고, 선입관도 없고, 너그럽고. 우리 어른들은 안 그렇잖아요.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아이들은 자연하고 더 가까워서 자연을 알고 지내는 것에서는 어른들의 선배가 아닌가 싶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도 얘네들은 하느님 부처님 같은 대답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럼 전 깜짝 놀라면서 애들은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요. 좋아하다 보니까 그런 데 가서 놀다가 아이들 고민 같은 걸 듣게 되면, 또 나름 일리가 있는 말들이고요. 아이들은 말썽만 피우는 게 아니라 각자 다 분명한 입장이 있더라구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제가 모르는 게 생기면 또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좀 귀찮아하긴 하지만(웃음).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것,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미워하면 정말 미워하잖아요. 아이들은 그냥 살짝만 미워하고 금방 또 받아주고. 그런데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어른들의 미움을 학습하는 것 같아요. 왕따 문제 같은 것들도 너무 가슴 아프고.

 

동동이가 캡슐을 먹기 전에, 육체와 영혼 중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의 정의를 내려야 할지 헷갈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육체와 영혼,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진정한 존재의 주인은? 단호하게 영혼이요. 아이들이 어리지만 끌려다니기만 하지 말고, 그 너그러움 그대로 개개인만의 영혼을 가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캡슐 복용 전 주의사항에 나오는 성분 소개를 보면, 보름달 늑대의 욕심 25%, 살모사의 교활함 12%, 산양의 순진함 8%... 그리고 나머지는 비밀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비밀을 공개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 그건 영업 비밀이라서 안 되는데... 캡슐 마녀한테 허락을 받아야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두 영혼 중에서 한 영혼이 불쑥 커 버리면 약 효과가 끝나버린다는 것도 주의사항 중 하나죠. 캡슐 마녀가 이렇게 약을 제조한 이유가 따로 있겠지요?

 

작품은 항상 끝을 맺어야 하구요, 이왕이면 그 끝에서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것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당장 아이들한테 시급한 문제는 성장이잖아요. 육체의 성장만큼 중요하게 가슴도 자라주어야 하는데.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서 처음부터 정했던 목표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영혼이 자란다는 게 뭐지?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궁금해하길 바라기도 했어요.

 

수리수리 약국에는 두 사람의 영혼을 바꿔주는 캡슐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병,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병, 사소한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병 등등을 고치는 다양한 약이 있는데요, 작가님이 처방 받고 싶은 또 다른 캡슐이 있다면요?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부끄러움을 잘 안타는 그런 캡슐이 필요해요!

 

마녀 할머니처럼 유능한 약사가 된다면 고쳐주고 싶은 사람들의 병이 있나요?

 

일단 현대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병은 다 고쳐주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도 많이 아프셨거든요. 갱년기 증상에 젊어서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고단한 몸,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병이 왔는데 한꺼번에, 관절부터 시작해서 안 아프신 데가 없는데 약을 먹어도 듣지 않았어요. 호흡 곤란도 몇 시간씩 오는데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으로서 많이 고통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의 모든 병을 다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의 몸을 갖게 된 동동이가 발도 커지고 털도 나고 방귀소리도 엄청 커져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신체적인 변화 외에 어른과 아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요?

 

비근한 예가 되겠지만 고정관념 같은 것들 있잖아요. 어른들은 보통 한 사람을 낙인 찍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절대 뒤도 안 돌아보잖아요. 어른들은 이렇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정말 다양하게 보더라구요. 이면을 보는 건 아이들이 아닌가 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아이와 어른이 똑같은 게임을 할 때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웃음)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바보와 아이들만이 진짜 답을 알고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 같아요. 어른들은 고정되어 있는 면이 많지만, 아이들은 변화무쌍한 생각들을 할 수 있고... 그런 생각의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요?

 

동동이가 민숙자 아줌마와의 첫 데이트를 앞두고 코치를 받을 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른다는 말에 아빠가 이렇게 대답해요. '상대방을 좋아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이 사랑이다'. 나중에 동동이가 쓰게 되는 편지글에 나오는 '평생 당신을 걱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같은 프로포즈도 너무 근사하고.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말과 행동을 몇 가지 더 알고 계시면 들어보고 싶어요.

 

하하. 그걸 알면 제가 벌써 결혼을 했을텐데... 선물 공세? 떡볶이 사주기!(웃음). 사실 동동이가 어떻게 보면 연애의 고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요. 기본적인 데이트 원칙은 다 알고 있잖아요. 먹을 거 사주고, 차 태워주고, 같이 놀고. 아이의 눈으로 조금 엉뚱한 판단을 해서 그렇지만.

 

연애의 고수답게 택시 타고 드라이브하는 장면도 꽤 로맨틱하거든요. 민숙자 아줌마는 동의할 수 없으시겠지만! 동동이가 딱 만원어치만 드라이브를 시켜달라고 기사님께 부탁하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드리는 질문! 지금 제가 만원을 드리면 어디로 떠나고 싶으세요? 추천해주실 만한 택시 드라이브 코스가 있으세요?

 

여기(신사동)서 만원어치면 한 사당까지 갈 수 있으려나요? 그럼 사당 떡볶이 집에? 사당동 조스 떡볶이!

 

 

 

아빠가 된 동동이가 묘묘 머리를 감겨 주다가 같이 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아빠도 이렇게 울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 순간이 바로 영혼이 자란 순간이었던 거죠? 영혼이 자란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쓰신 것 같아요. 작가님도 이렇게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 경험,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한번 꼽아주셨으면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님이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크게 자랐다고 생각되는 멋진 사람, 작가님이 꼽는 '영혼의 키다리'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소개시켜 주세요.

 

'영혼의 키다리'라. 게임을 하다 레벨이 올라가는 건 많이 봤는데 말이죠...(웃음) 아,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아이가 한명 있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엄마랑 둘이서 같이 사는 아이이였는데, 엄마가 매일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신대요. 어느 날 또 엄마가 잔소리를 하셨는데 그게 불쌍했다고 했어요, 엄마의 잔소리가. 평소에는 그냥 엄마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그랬는데, 그날은 똑같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꼭 나를 보며 우는 것처럼 보였었다고. 듣고 나서 한동안 멍했어요. 저도 사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아주 최근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걔는 너무 빨리 성숙한 건지, 가슴도 짠하고 벌써 그런 감정을 느낄 나이는 아닌데. 그래서 그 친구가 요새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영혼이 급속도로 성장한 사람이 아닐까...

 

책 띠지에 너무 크게 써 있어요. 수상고료가 천만원!(웃음) 실례지만 주변에서 상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많이들 물어보지 않으세요?

 

이미 술값으로 많이 나갔구요, 계속 물어 뜯기고 있구요... 만신창이가 돼 가는 것 같아요(웃음).

 

애들 게임비도 좀 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물론 이미 한턱 냈죠! PC방 가서 초코파이도 사주구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두 번째 문학상 수상이세요. (김소민 작가의 첫 번째 책은, 2011년 5월 출간된 '제5회 소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실험용 너구리 깨끔이>)

 

처음 상을 탔을 때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정말 상을 주시긴 했는데 제가 계속 쓸 수 있는 깜냥이 있을까? 자문도 많이 하고 자학도 많이 하게 되고 또 잘 써야 하는데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첫 작품을 쓰면서는 너무 많이 힘이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읽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을 좋아하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텐데 내가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될텐데 하는 걱정이 많았고요. 주제도 들어가야 하고, 뭔가 도움이 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해, 이런 생각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 가 있었는데요. 이번에 쓸 때는 TV에서 본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던 것, 거기 하나 더해서 힘든 아이들이 읽었을 때 재밌다, 신난다 기분이 한껏 좋아졌으면! 그런 바람이 컸어요.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에 작은 여운이 남아 주면 충분하다고. 정말 재미있게 써보고 싶다, 애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다, 이런 생각 하나만 가지고 썼더니 오히려 저도 더 행복했던 것 같고, 또 아이들도 그래서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는데.

 

아 지금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아주아주 잘 나가고 있어서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작가님이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을 뽑는 심사위원이라면 어떤 작품에 마음이 가실 것 같으세요?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제가 나름대로 보기에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에요.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어떤 글은 정말 진심으로 썼다는 게 느껴지고요. 어떤 작품에는 쓴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것저것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제 마음에 딱 와 닿는 이야기, 인물, 대화, 문장들이 있는 작품이라면 수상작으로 뽑고 싶을 것 같아요.

 

수리수리 약국이 워낙 발랄하고 즐거운 동화책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앞으로 슬픈 이야기도 쓰실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거든요.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사실은 제가 아직 캡슐 마녀의 마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웃음) 일단 가장 큰 것은, 이제 두 번째 작품까지 내고 나니까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구요. 독자가 한명 두명 늘어난다는 건 좋게든 나쁘게든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사람이 하나둘 생긴다는 것이니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책읽기인데요. 쉬운 그림책을 쉽게 쉽게 보다가 글밥이 갑자기 확 많아진 책을 접하게 되는 시기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이 때 재밌는 책을 못 만나게 된다면? 한 10살부터 계산해서 90년 정도는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거, 그 좋은 책을 평생 못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한테 아,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신나는 거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캡슐 마녀의 다음 이야기도 쓰고 싶고요.

 

 

속편도 꼭 써주세요! 그리고 제가 동화 작가로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해주신 애기로 짐작해보자면 PC방이랑 놀이터...(웃음), 그리고 또 작가님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캡슐 마녀를 쓰기 직전까지 지방에서 작은 레스토랑 사업을 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지방에서 요양도 할 겸 내려갔어요. 굉장히 바쁘게 지냈던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도 많이 건강해지고 할 즈음에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구요. 그렇게 정신 없이 살다가 저도 캡슐 마녀를 만나서 아주 행복해졌어요. 그리고 일상은 짐작하셨듯이 PC방, 놀이터, 떡볶이집...(웃음) 틈틈이 여행도 다니고요. 본과를 졸업하고 나서 법대에 편입을 하면서 아동 인권,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상담소든 인터넷이든 어떤 곳이든 장소와 역할에 상관 없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존중해줄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봐야겠다하고 있어요. 지나온 제 삶의 여러가지 경험들이, 아이들이 신나게 살아가는 데 힌트를 줄 수도 있으니까.

 

올해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것 있으세요, 2012년에.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이 많은 아이들한테 재미있었다는 얘기, 신났다는 얘기 많이 듣고 싶구요. 그리고 늘 주위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더 늦기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는데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게 될 알라딘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 드릴게요. 또 같이 PC방에 다니는 친구들한테도 인사해주세요!

 

알라딘 독자분들께는요. 저도 마음이 많이 어두웠던 적이 있고 힘들어도 보고 아파도 보고 그랬는데, 어쨌든 좀 가볍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처신을 가볍게 하자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살 수 있으니까요.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을 읽고 잠깐 마음이 가벼워지고 상쾌해질 수 있다면 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PC방 절친들이 사실은 제 정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얘기해줘도 믿지도 않고요! 에이 무슨 이모가 이러면서. 백수인줄 알고 있어요. 그 친구들한테는 이모한테 좀 예의를 좀 갖춰라...(웃음) 이모한테 반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댓글(1) 먼댓글(1)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첫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
    from 엄마는 독서중 2012-03-19 04:07 
    제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읽었다.^^내가 재밌다고 소문냈더니, 초등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려고 차례를 기다린다. 저학년에게 좋은 책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고학년들이 더 좋아한다. 이해의 폭이 더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작가님의 미모와 인터뷰도 알라딘에 올라와 있다. http://blog.aladin.co.kr/tenam/5482391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정소담 2012-03-1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들이 너그럽다'는 말이 여운이 남네요~ 좋은 인터뷰 기사 잘 봤습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