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올해로 꼭 등단 30년을 맞은 송언 선생님의 신작 동화 '김 배불뚝이의 모험' 속 주인공은 실제 모델이 있다. 작가이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송언 선생님이, 1학년 담임을 맡았었을 때 만난 친구다. 음료수와 사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먹보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매력이 넘친다. 범상치 않은 초등학교 1학년 김 배불뚝이와 함께 한 해 동안의 이야기가 다섯 권의 동화책에 담겼다.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의 답답한 틀 속에 꽁꽁 묶어두지 말고, 그들이 서로 어울려 놀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김 배불뚝이를 통하여, 또 작품 안팎에서 송언 작가가 일관 되게 주장하는, 아이들을 위한 어른의 역할이다.
(기획 : 웅진주니어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수염이 너무 멋집니다. 이 수염 때문에 생긴 별명이 있으신가요?
아, 애들이 지어준 게 있어요. 빗자루 선생님이라고, 이 수염이 바닥을 쓰는 빗자루 같다고요. 아이들 비유법이 참 신기하죠? 빗자루라는 비유가 재미있어서 이번 작품에서부터 아예 빗자루 선생님으로 못을 박았어.
등단하신 지 30년이나 되셨지만 매번 펴내시는 작품이 젊고 활기찹니다. 신작 <김 배불뚝이의 모험>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를 먼저 여쭤볼게요.
올해로 꼭 30년이 되죠. 개인적으로는 아, 내가 등단한지 30년이나 됐으니까 생각은 했지만 거기에 걸맞는 대단한 작품을 써야 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이 책의 실제 모델인 김 배불뚝이가 지금 4학년이거든요. 김 배불뚝이가 1학년이었을 때 그 1년 동안을 메모를 해뒀다가 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이 또 한 1년 걸리고, 그림 그리는 데 또 1년이 걸리고, 그리고 이러다 보니까 시간이 가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교직 생활을 하면서 또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면서 김 배불뚝이만한 캐릭터를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았어요. 김 배불뚝이가 보여준 그 모험, 그 모험의 세계는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계라는 거죠.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시대 아이들이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차단시켜 놓은 거죠. 아이들이 그 세계로 갈 수 없도록. 더 자연스럽고 멋진 모험의 세계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고 교과서 속으로 집어넣는 어떤 어른들의 행태. 배불뚝이를 통해 너희들이 진짜 원하는 세계가 이런 세계고, 어른들이나 학교가 너희들한테 해주어야 하는 게 이런 게 아닌가 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의도가 바탕이 됐죠.
김 배불뚝이도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번 책을 읽어봤을텐데, 읽고 나서 많이 좋아했겠지요?
걔는 뭐 항상 저만 보면 "제 책 언제 나와요?"(웃음) 그랬는데요. 책 자체보다 지난 번에 소년조선일보에서 취재를 해서 신문에 사진이 실렸거든요. 책보다 그 사진 실리는 게 그게 좋아서 아주 그냥(웃음). 얘가 신문에 났다는 게 아이들한테는 더 큰 이슈로 다가왔던 것 같애. 책 속의 주인공은 자신인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제가 니 얘기를 쓸 거야라고 일러줬었거든요. 오늘도 화장실에서 김 배불뚝이를 만나서 재미있게 읽었냐 물어봤더니, 무뚝뚝하게 "당연하죠"(웃음) 하더라고요. 근데 아이들은 그런면에서는 의외로 섬세하지가 않고, 무뚝뚝해. 자기 이야기에 대해서 좀 근사하게 답변을 해줬더라면 나도 전달하기 좋을텐데 말이에요. 당장은 뭐 어떻게 읽었든간에 오래오래 그 아이의 인생과 같이 갈 책이겠지요.
주인공 김 배불뚝이의 실제 모델이 있는 캐릭터다보니까 그 아이의 모습도 반영이 되었겠지만, 이 캐릭터에서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겠지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게 경험만 가지고 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제 작품 같은 경우에는 주로 제자들한테서 소재를 가져오니까 경험이 한 50이라면 작가적 상상력으로 문학적 장치를 하는 것이 또 50, 50대 50정도로 봐야지요. 예를 들자면은 <김 배불뚝이의 모험> 2권 '선생님 팔기 대작전' 같은 경우에는 그 1학년 아이들이 설마 선생님을 팔겠다고 휠체어에 싣고 튀어나갔겠느냐 이말이지요. 그렇지만 읽을 때는 진짜 같거든. 이런 부분이 작가가 상상력으로 채우는 부분이죠. 그리고 배불뚝이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험의 세계는 작가가 채워놓은 거죠. 물론 단초는 제공을 해, 배불뚝이 얘가 창의성이라든가 상상력이 굉장이 뛰어나고 순발력이 있어요. 배불뚝이인데도(웃음). 그래가지고 걔가 자꾸 나한테 자극을 줘. 모험이 가능할 법한 자극을 주는 거죠.
빗자루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조건 타이르고 감싸주기만 하는 선생님은 아닌데요. 학교에 안 나오겠다고 떼쓰는 학생에게는 그럼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아이들은 굉장히 당황할텐데요.
그러니까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뭐냐하면 교사의 눈으로 아이들을 봤을 때는 교사와 피교육자인 아이와의 관계만 있어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제도권 교사가 못하게끔 탁 억눌러 놓죠. 그런데 나는 작가의 눈을 또 하나 갖고 있어야 하니까, 작가로서요. 그러니까 또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벼려두는 게 아니라 3, 4월 쯤에는 탐색을 먼저 하는 거예요. 잘만 하면 내 동화 속 주인공이 될 만한 기질이 있는 녀석들이 누구인가. 예비 후보를 찍어 놓고 그런 아이들이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내가 더 부추기지. 막는 것 같으면서도 부추기는 거죠. 어디까지 가나, 얘네들이 나한테 어디까지 원하는가. 동심이 요구하는 극대치는 어디까지일까. 그걸 알아야 하니까요.
한편에서는 학교 생활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학교라는 이 좁고 답답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상상의 세계, 모험의 세계로 갈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자극을 주는 거지요, 아이한테. 아이가 그런 기미를 보이면, 예를 들어서 물어본 것처럼 '저 전학 갈 거예요' 그러면 아는 거지, '그래, 가!' 그랬을 때 얘가 어떻게 나오나. 그래서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계속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녀석이 재치있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잘 가면 그날은 내 기록에 메모를 해두고 시원치 않으면 기록에도 없는 거야. 에이, 오늘은 별로다(웃음). 뭔가 문학은 끊임없이 새롭고 역동적인 흐름을 가져야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니까.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똑같으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문학을 할 수 있느냔 말이죠.
탐색 기간에 선발된 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배불뚝이가 대단한 먹보라 동화 속에도 아이들 좋아하는 군것질거리가 많이 나오는데요. 요즘 초등학교에서 특별히 유행하는 간식거리가 있다면요?
초코렛, 마이쮸, 사탕, 슬러시도 먹고, 문방구에서 뽑기도 해 먹고, 떡볶이랑 아이스크림은 기본에,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다양해요. 그런데 이제 배불뚝이가 재미있는 건 이런 거죠. 단순한 먹보가 아니라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먹보라는 거죠. 이를테면 나한테 와가지고 "선생님 수수께끼 놀이 해요." 그래서 나도 처음엔 수수께끼를 하자는 줄 알았지. '비로 시작해서 '백'으로 끝나요." "장난하냐?" "네 글자인데 두 번째 글자는 '타'예요." "아, 비타오백."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배불뚝이가 내 책상에 놓여 있는 비타오백을 아주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 봐. 쳐다보면서 "선생님, 저 비타오백 좀 주세요." 그렇게 한다는 거지. 다른 먹보 같았으면 떼쓰듯이 선생님 사탕 주세요, 초코렛 주세요 이럴 거 아냐. 그럼 누가 줘(웃음). 그런데 배불뚝이는 이런 수수께끼에서만 보더라도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죠.
배불뚝이처럼 맘대로 하고 싶어도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미움을 받을까 봐 겁나서 하고 싶은 걸 꾹꾹 참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런데 이 부분을 알아야 해요. 얘네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란 말이야. 1학년 아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심이 있어요. 즉 제도권에 물들지 않은 동심이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1년만 지나면요, 열이면 아홉 아니 백이면 아흔아홉이 제도권화된 동심을 보여요.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1년 동안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을 했다고 해야 할까, 순응을 해가지고 자기 본래의 동심을 잃어버린다니까. 1년만에. 그래서 1학년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배불뚝이처럼 유치원에서 갓 학교라는 제도권에 들어와가지고 미처 학교에 적응하거나 순응하지 않은 순수한 동심, 그야말로 자연산 그대로의 동심을 보여줄 수 있는 학년이 1학년이에요. 그리고 타고난 동심을 즉각 발휘할 수 있어야 해요. 선생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이 요구하는 판단 기준에 적응하거나 물들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순수한 동심에서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순수한 동심을 가진 아이들이 문제아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난 그게 오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배불뚝이를 끊임없이 1년 동안 실험했지만 그 실험의 결과 난 배불뚝이처럼 잘 자기만의 색깔과 상상과 동심을 발휘하면서 헤쳐나가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문제아다, 부적응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는 거는 난 제도권화된 관점이라고 봐요. 주의해야 할 점인데, 선생님들의 몸에 배어 있어. 동심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왔으니까 이제 질서를 지키라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그야말로 훈육하고 교육시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는 문학이 탄생할 수 없어요, 그런 토양에서는. 그 관점 밖에서 아이들 본래의 모습을 자꾸 자극해서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동심의 본질이 뭔가를 발견해내야겠죠. 그런데 이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배불뚝이만큼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는 많지 않아요.
배불뚝이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이 싸움대장 동주인데요. 나중에는 결국 동주가 전학을 가게 되잖아요.
그쯤에서는 전학을 보내야죠. 배불뚝이가 주인공이니까(웃음). 전학을 안 보내면 이게 갑자기 이야기 중심이 동주한테 너무 가버리면 혼란이 오잖아요. 그러니까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였어요. 거기까지만 딱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줘야 돼(웃음). 만약에 동주가 주인공이거나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동주가 전학을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결국 동주가 끝까지 같이 있으면서 동주의 동심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정말 좋은 이야기 소재도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동주의 역할은 거기까지여야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더 갔을 때는 배불뚝이한테 타격을 주니까.
배불뚝이가 마치 보조 교사라도 된 것처럼 '새끼 선생님' 노릇을 하고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되니까, 배불뚝이를 따라하려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장면이 또 기억에 남아요. 책 속의 같은 반 아이들도 그랬지만, 실제로 교실에서 주목 받길 바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표현이 서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선생님께서 어떻게 채워주시나요?
중요한 건 '새끼 선생님'이라는 상상력을 최초로 발견한 게 배불뚝이라고. 모든 모험의 출발점, 상상력의 출발점은 배불뚝이인데 다른 아이들이 거기에 다 들어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리더십인 건데요. 파랑머리가 "선생님, 저도 배불뚝이처럼 새끼 선생님 시켜주세요" 하면, "그건 배불뚝이가 만든 거니까, 너는 니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라"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도 간절하면 한번씩 시켜주죠. 그런데 그걸 다 일일이 문학 속에 담아낼 수는 없지.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 골고루 시켜줘요. 얘도 한번 시켜주고, 쟤도 한번 시켜주고 하지만 문학의 흐름은 일관되게 배불뚝이를 중심으로 가야 하니까,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한번 또 새끼 선생님 하게 되면 좋아가지고 근데 새끼 선생님이란 제도는 없단 말이야. 그런데 배불뚝이가 그걸 개발하고, 그게 재미있다는 걸, 새끼 선생님이 있음으로 해서 훨씬 수업이 재미있다는 걸 아이들한테 증명했고, 아이들이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데까지 확산시켰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배불뚝이의 상상력이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혼자 막 그냥 장난치다 끝나는 게 아니죠.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맡는 고충을 작가의 말에서 토로하기도 하셨는데, 아직 나이가 어린 1학년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은 집 바깥의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고 썼더라, 1학년 담임을 한번 잘못하면 삼년은 늙는다고 썼었던가요? 실제로 제가 1학년 담임을 처음 했을 때 실감으로 정확하게 3년이 늙더라고요. 아, 그말이 참 와닿더라고. 경험이 많은 여선생님들은, 아이도 키워보고 아이 다루는 솜씨라고 할까 기술이 뛰어나세요. 그런데 나이 든 남자가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할 때는, 정말 얘네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니까. 배불뚝이는 제가 두 번째로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만난 제자였는데요.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다고 여유는 조금 생겼지만, 배불뚝이를 비롯해서 이동주, 나대현, 구봉준... 버글버글하잖아요. 내가 머리가 왜 허얘졌겠어(웃음). 정말 힘들죠. 그런데 힘들지만 이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동심이 원하는 게 무엇이라는 걸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려면 교사로서 발언하는 것보다 작가로서 발언하는 게 더 확장된 의미를 띨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두 배로 더 힘든 거예요. 다른 선생님은 그냥 애들만 잘 보면 돼, 그런데 나는 잘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해라, 더 해라 할 때가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두세배로 힘들죠. 작품 하나 건지려고, 그 고생을 한다니까(웃음).
그런데 두세배로 힘들지만 그런 배불뚝이가 만났을 때 뭔가 이야깃거리를 찾았을 때는 보상 받는 거예요. 힘든 것 이상으로. 그래서 견디는 거예요. 1년에 3년치를 늙든, 5년치를 늙든 이렇게 보상 받는 게 있으니까요. 그런데 1년 내내 그랬는데 건질 것도 없었다, 그러면 아주 팍 늙는 거예요(웃음).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제목에도 들어간 '모험'이라는 단어가 정말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감동 있게 읽은 책이 <톰 소녀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의 작품인데 100여 년 전에 이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은 그 거대한 미시시피 강에 뗏목을 띄워 놓고 모험을 떠난다고. 그게 가능했어요, 그 시절에는. 그게 어색하지가 않았다고. 그런데 지금 한강에다 뗏목을 띄워 가지고 얘네들을 서해 바다까지 모험을 시킨다고 하면은 누가 공감을 하겠어요. 너무나 많은 세상의 변화가 왔다고. 그야말로 이 시대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다니는 아이들, 모험이란 단어조차도 잊어버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상상력,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통로가 뭐냐, 그것을 저는 배불뚝이의 모험을 통해 보여준 거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학교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잖아요. 순간순간 재치를 발휘하면서 답답한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상상의 모험, 상상력을 통해서 건너갈 수 있는 모험의 세계가 있다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거죠. 김 배불뚝이가. 이 시대의 현실의 아이들이 그나마 모험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통로가 이런 지점이 아닐까.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동화작가로 활동하는 선생님,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글쓰기가 교사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하고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인기 1순위야(웃음). 아이들이요, 어른들이 이제 한번쯤 생각해보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든가 영화의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바람 이런 것들과 똑같이, 아이들도 한번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게 소원이에요. 그걸 쓰는 선생님이 담임이니까, "선생님, 제 얘기는 안 쓰실 거예요, 안 될까요?" 이렇게 묻기도 하죠(웃음). 나대현은 며칠 전에 저한테 와서, "선생님! 나대현의 모험도 하나 쓰세요." (웃음) 그랬죠.
이런 건 있어요. 작가 생활도 해야 되고 교직 생활도 해야 되니까 시간 적으로 늘 쫓기죠. 방학이 아니면 집중적으로 동화를 쓸 시간도 없고. 애들하고 공부도 해야지, 강연도 다녀야지, 맨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말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희망을 갖게 되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의 10년의 화두가 '동심이란 무엇인가'였어요. 아이들다운 마음, 아이같은 마음이 대체 뭐냐. 너도나도 말은 많이 하는데 나는 내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아이들의 삶을 아주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탐색하고 기록하고 정리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요.
나는 이제 동심에 대해서 알겠다라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그런데 동화를 쓰고 있으면서도 동심이란 게 대체 뭘까를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동심을 동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이 도움이 됐으니까, 힘들어도 받아들이는 거죠. 이제는 학교 밖의 동심, 도시 밖의 동심을 사냥하러 떠나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동심에 대한 탐색을 좀 더 넓혀가고 새로운 동심 이야기도 좀 쓰고 싶고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어린이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이제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은 분들이라면 공통된 소망 중 하나가 오래오래 동화를 쓰는 것일텐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동심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탐색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후배 작가분들께 동심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작가 학교 수업을 십년 동안 했었는데요, 작년까지. 이 작가 학교에서 지망생 분들께 했던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요. 우선 서둘러 결혼부터 해라. 아이를 낳아서 키워 봐라. 그러면 동심이 뭔지, 동심에 대한 밀착도가 커질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키워라. 머리로 아이들을 이해하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생활에서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를 넓혀야 아이들이 뭘 원하고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두가지를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다시 배불뚝이 이야기로 돌아가서, 극 초반부 김배불뚝이가 멧돼지처럼 꼼짝도 안하고 버티고 있어서 빗자루 선생님이 고생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멧돼지란 표현은 참 재밌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고집불통에 물러설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꽤 힘드실 것 같거든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이번에는 후배 작가가 아닌 후배 선생님들을 위한 팁으로 여쭤봅니다.
나는 말 안 듣고 버티는 이런 아이들을 기술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안다기 보다 그 순간을 오히려 즐기는 쪽이에요. 선생님들한테는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애들이랑 그냥 노는 거니까.
작품 속에서 빗자루 선생님이 배불뚝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시는 말씀이, 너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려준 고마운 학생이다'였는데요.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꼭 주어야 하는 것, 현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의 동심의 특성 중의 하나가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때 행복감을 느껴. 아이들이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통로가 뭐냐면 대게가 놀이, 놀이나 상상. 그러니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면서 공부를 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나 학교가 아이들의 행복은 뒷전이고 공부를 맨 앞에다 놓으니까, 말로는 21세기가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라고 말로만 그래놓고, 개똥이나 뭐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길러주지도 않으면서 머릿 속에다 집어 넣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잖아요, 우리 현실이. 중요한 건 아이들 상상의 세계, 창의성의 세계에 어른들이 동조하는 거예요. 그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거라고. 그러니까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여지를 좀 줘야 하는데, 학교나 어른들이 가장 안 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
아이들 서넛이 모여서 열심히 놀면서 막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체험을 해, 교과서에서 체험할 수 없는 걸. 멋진 체험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시계를 보면서 '학원 갈 시간이다, 고만 놀아!' 이런다고.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 현실에서 내 동화를 읽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아이들한테 컴퓨터 게임 같은 놀이 말고, 서로 어울려 놀면서 정말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와 여유를 아이들한테 주면 아이들이 얼마든지 스스로 잘 노는데, 그러면서도 교과서 공부도 하고요. 양날개처럼 스스로 즐기는 상상력의 계도 키워주고 우리 사회가 이뤄놓은 사회적인 틀이 있잖아요, 아이들한테 원하는 그것도 키워주고. 그 양쪽이 같이 가야 하는데, 한쪽에 너무 쏠려 있다고. 우리 어른들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아이들을 못 집어넣어서 안달을 하는지. 이 아이들한테 숨통도 틔워 주면서 공부도 하라고 여건을 마련해줘야죠. 그런 이야기가 책 마지막에 니가 정말 학교나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뭘 해주어야 하는지 다 보여줬다, 이런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죠.
아이들에게 여유를 마련해주는 것을 책 읽기의 측면에서 말씀해주신다면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직접 선생님이 읽어주면 애들이 알아서 도서관으로 가요. 아이들은 제가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그 감동을 살려서 읽어줬을 때 자기가 읽는 것보다 몇 배 더 즐거워해요. 책 읽어주기, 책 읽고 독후감 쓰라고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선생님이랑 부모가 정말 좋은 동화책을 선별해서 읽어주거나 같이 읽는 것, 난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봐요. 그럼 애들이 다양하게 아하, 이야기의 세계가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니까. 책 속의 세계가 이렇게 풍요롭고 모험이 넘치고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