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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가 소소해서 큰 기대 없이 괄약근을 풀었는데 뜻밖에 어마어마하게 우람한 친구가 쏟아져 나왔을 때, 좋았다면 그걸로 변태입니까? 그 위용에 압도당해 변기 레버에 손가락을 올린 채 몇 초간 멍때렸다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까? 쉽게 빨려 들어갈 것인가를 가늠해봤던 것 뿐인데도요? 다들 그러는 게 아니었나요? 남이 싼 건 클수록 더럽지만 내가 싼 건 클수록 기특하다는 심정, 그건 자유, 평등, 그리고 배꼽과 함께 인간이라면 다 갖고 태어나도록 하늘이 선물한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서두를 이런 드러운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지금까지의 syo는 이웃분들의 아름다운 서평을 감상하면서, 아, 내가 쓴 이 잡스럽고 허접스럽고 한 것은 도저히 서평 또는 리뷰라고 칠 수가 없겠다, 하는 자격지심에 몸을 낮춘답시고 지가 쓴 글들을 '일기'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이것이 또 일기라는 장르 입장에서는 불의의 타격을 받은 셈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기의 의견을 물어봤다면, 아니, 이런 같잖은 글 써놓고 어디서 일기를 들먹여 들먹이길, 서평이 먹고 남은 쓰레기를 왜 우리가 치워야 되는데, 야, 서평애들한테 이 똥 다시 다 가져가라 그래! 이랬을 것을, 겸손이 화를 부른 게지. syo가 미욱하여 서평의 눈치만 볼 줄 알았지 일기의 고충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기왕 일기라고 부를 거 앞으로는 일기다운 일기를 쓰겠다, 고 다짐을 한 번 해 본 것인데, 그러고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아침에 똥싼 이후로 기록적인 사건이 없었다. 그렇다면 똥인 건데, 얄짤 없이 똥인 건데, 정녕 똥으로 괜찮을까? 에이, 뭐 어때, 무릇 일기라 함은 원래 이런 걸 기록하는 장르 아니었던가. 하여 과감하게 똥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갑자기 일기 장르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이런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읽은 것들 중 단연 웃긴 책이다.


내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오 솔레 미오(O Sole Mio)」도 이들이 불렀는데, 후렴 부분을 놀랍게도 돌림노래로, 그것도 한 명이서 한 파트를 길게 끌어 부르면 그사이 다른 한명이 합류하고, 이렇게 둘이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 부분을 길게 끌면 마지막 한 명이 합류하여 마침내 화음이 폭발할 즈음, 모노톤으로 함께 'O Sole Mio'를 외쳐 대는 것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가 모노톤으로 '헛살았어'라고 외칠 만한 목청과 울림통이었다. 마침 공연을 본 건물은 약간 뾰족한 아치 돔 형태로 지어진 상당히 오래된 유럽식 교회였는데, 그 탓에 공명이 일어나 혹시나 누군가 두성음까지 뱉었다면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열두 제자의 육체에 금이 가 땅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역시 가장 위대한 악기는 신이 만든 인간의 몸이라는 울림통이었다. '시와 바람'의 메인 보컬로서 협연을 하려다가 한·독 양국 간의 외교를 생각해 묵묵히 박수만 쳤다. (56 57)



2


윤고은을 다시 읽고 있다. 예전에『알로하』에 데었던 생각이 나서 일부러,『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를 골라봤는데 아이고 재미지다. 애들 등록금이랑 어학연수 비용으로 쓰게 오늘에야말로 오래 묵은 1000만원 빚을 받아 오라고 보냈더니 이 화상이 돈 대신 된장 50리터를 짊어지고 온 이야기와, 후원의 대가로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고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소각되는 장면을 똑똑히 지켜 보아야 한다는 희한한 조건을 건 후원자를 만났는데 알고보니 그 후원자가 말하는 개였다는 데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참신하고 신기하다. 이런 작가를 죽어라고 까댔다니, 2년 전의 syo 역시 참신하고 신기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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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0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론이 이토록 배설적인 일기는 처음이네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문장입니다.

syo 2017-11-06 19:17   좋아요 0 | URL
흉내내셔서는 안되는 문장입니다. 식사 시간에 이게 무슨 민폐인지 모르겠어요^-^

이하라 2017-11-06 19:22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식사 시간이었네요ㅋ

프리즘메이커 2017-11-0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고 아름답습..니다!!

syo 2017-11-06 19:48   좋아요 1 | URL
꼭 보신 것처럼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cyrus 2017-11-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장실에 있다가 카타르시스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ㅎㅎㅎ

syo 2017-11-07 10:08   좋아요 0 | URL
과연, 괜찮은 해석입니다.

chaeg 2017-11-0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문장이 더 웃기다고 하면 최민석 작가님이 기분나빠하실까요^^;?

syo 2017-11-08 13:15   좋아요 0 | URL
그러다 혼나세요 ㅎㅎㅎㅎ

더 웃기게 느껴지셨다면 기분 탓입니다. 아마도 똥 이야기라서 그럴 거예요.
세상에 똥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풍경소리 

구효서 외 / 문학사상사 / 2017


● 구효서,「풍경소리」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읽고 있다는,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딘가는 몸의 위치를 옮기는 방식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곳, 이곳과는 다른 이치로 운행되는 곳, 왜라고 묻지 않는 곳, 그리고 마침내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살아야만 하는 독자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실어 보내는 그런 곳이다. 맑고 예쁘게 빚어진 소설은 그곳을 비추는 그윽한 우물 같다. 목을 축이려 찾아들었다 기어이 마음을 축이고 돌아가는 글. 이 글이 대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압도적이다.


● 김중혁,「스마일」

김중혁의 소품이다. 음, 그러니까, 음..... 김중혁의 소품이다.


● 윤고은,「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확실히 젊은 작가는 뭔가 젊군,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윤고은은 syo보다 연상에다가 중견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15년차 소설가였다. 그렇게 고쳐 생각하고 다시 훑어보니, 이번엔 어쩐지 연륜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와, 쓰고 보니 정말 간사한 평이군.


● 이기호,「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스토리텔링 하나로 놓고 보면 단연 으뜸이다.「풍경소리」가 읽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다른 세계로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면,「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는 읽는 내내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 작품이겠다. 이기호의 스펙트럼이란. 이기호는 이런 소설가라는 쉬운 단정에서 달아나기 위해 이기호는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인 것 같다. 


● 조해진,「눈 속의 사람」

길게 이어져 내려온 단편 소설의 문법이 제공하는 무대 안에 단단히 자리잡고 흔들림 없이 과거를 서술하는 힘. 시작부터 끝까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삶을 많이 닮은 거라,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깊이 파고들진 않아도 탄탄히 다져진 문장과 그 문장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


● 한지수,「코드번호 1021」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가슴이 뭉근해지는 데가 없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평범하고 무난한 소품 느낌. 한지수의 다른 책을  찾아 읽겠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킬만 한 글은 아니었던 걸로.



+ 솔직히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syo의 눈은 무지렁이 눈이지만, 가진 게 그 눈 뿐이라 그 눈으로 봤는데 나머지 다른 작품을 다 합친 것보다「풍경소리」하나가 좋았다. 무조건 이거라고 생각했다. 경합이 있었다면 이기호라고 짐작했다. 심사평을 읽어보니 딱 들어맞았다. 와, 살다 처음으로 심사평하고 입을 맞췄다.


+ 그렇다면 구효서의 최근작 네 권을 노린다!「풍경소리」에 필적할만 한 글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2017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 

황정은 외 / 은행나무 / 2017


● 윤고은,「평범해진 처제」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무래도 윤고은의 재발견인 것 같다.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황정은에 대적할만 한 두 명의 젊은 여성작가'라는 추천을 듣고 윤고은의 《알로하》와 손보미의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읽으면서 syo가 풀어보려 노력했던(생각해보니 크게 노력하진 않은 것 같은)  미스테리는 그들이 문단에서 얻어낸 인정과 각광의 이유였다. 도대체 왜. 이해가 안 되는데. 이제는 재작년의 syo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왜. 이 정도로 쓰는 작가한테 대체 왜 그랬어. 이건 만약 syo가 20대 초반에 소설가가 될 마음을 품고 아등바등 노력했다면 40대쯤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래, 딱 이 정도로만 쓰고 싶었었지, 할 글이다. 가볍고, 개인적이고, 은근 비꼬고. 와, 윤고은의 책을 다시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 윤성희,「여름방학」

여름방학은 언제일까. 얼마나 고단한 길을 지나와야 여름방학에 도착할까. 누군가는 엉금엉금, 누군가는 성큼성큼. 누구에게나 여름방학은 오고,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이름을 바꿀 것이다. 여행을 떠나거나 이름을 바꾸거나, 언젠가는 결국 방학은 끝난다. 날은 점점 추워질 것이고 길은 점점 내려가겠지. 누군가는 여행의 기억을, 누군가는 옛 이름을 손에 쥐고 엉금엉금 성큼성큼 겨울방학을 향해 가겠지.


● 이기호,「최미진은 어디로」

그러니까, 투박하게 나눠 김언수의 이번 작품을 재미계통으로 분류한다치면, 하필 같은 책에 이기호의 작품과 함께 실린 것은 김언수의 불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김씨 문중에 태어나 작가명 가나다 순으로 작품이 배치된 책에서 이기호보다 앞서 읽히게 되었다는 점이겠다. 이 작품 딱 여섯 페이지를 읽는 동안, 김언수의 글 전체를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막판엔 내가 언제 웃겼냐는 듯 한 순간에 애잔하다. 아, 날 갖고 놀았어. 명불허전.


● 편혜영,「개의 밤」

편혜영의 글은 너무 음산해서 좋았고 때론 그래서 싫었다. 무섭다는 표현이 좋겠다. 어떤 무서움은 즐겁고 또 어떤 무서움은 괴롭듯 편혜영의 글은 항상 무섭다.  검고 질퍽거리는 늪처럼 무섭다. 짖지 않는 개나 악의 평범성, 괴물을 상대하다 괴물이 되는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지만, 어쩐지 쉽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늪을 늪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까.



+ 이상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뜻밖에 윤고은에 새로 주목하게 되었다. 분명히 별로였는데, syo의 눈이 밝아진 것일까, 윤고은의 손이 깊어진 것일까. 이제 윤고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윤고은과 함께 이기호 또한 두 권의 수상작품집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는데, 두 개의 글이 판이하다. 문장 가운데 이기호의 손에서 나왔음을 엿볼 수 있는 시그니처들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면 같은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고 해도 믿겠다. 


+ 윤고은과 이기호는 각기 다른 작품으로 두 권의 책에 등장했지만, 황정은은「웃는 남자」하나로 양쪽 상 모두에 후보로 올랐다. 이상에서는 실제 우수작으로 선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심사평에 「웃는 남자」에 대한 평이 계속 등장한다. 그럴거면 넣지, 왜 뺐을까. 의아한 지점이다. 솔직히 김중혁과 한지수의 이 작품들은 황정은을 밀어낼 만한 것들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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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1-0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멋져요^^

syo 2017-11-06 08:25   좋아요 0 | URL
허접합니다. 이런 걸 평이라고 써도 되나 종종 의심합니다....

비공개 2017-11-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권의 작품집을 사놓은지가 한참 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syo님 덕분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

syo 2017-11-10 14:45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시간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2017이니까 2017에는 읽으시는 것이ㅎㅎㅎㅎ
 


근래는 한 달 평균 90권쯤 읽고 있다고 멋쩍게 밝히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주변 환경과의 교감을 완전 차단한 채 꼿꼿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러분, 그 남자는 syo가 아닙니다. 열 쪽을 채 이어서 읽지 못하고 자꾸만 북플을 켜고 어디 재미난 새 글이 올라왔나 스크롤을 빡빡 넘기는 SNS 홀릭, 다시 열 쪽을 더 읽기도 전에 도대체 이놈의 챕터는 얼마나 더 봐야 끝나나, 좀이 쑤셔서 뒷장을 한 번 휘휘 넘겨 보는 집중력 조루, 그나마 읽는 중에도 얌전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떨고, 콧털을 뽑고, 방금 콧털 뽑은 손가락인데 입에 넣어서 손톱을 물어 뜯고, 하여간 왠갖 잡스러운 짓은 골고루 다 하면서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syo는 그런 꾸러기 독서가랍니다. 혈액형은 ADHD형. 좌우명은 쉬지 말고 분주하자.


그런 syo이므로, 이건 뭐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불지옥에 들장미가 폈는지, 5차원 시공간을 건너다 잘못 배달되었으리라 짐작되는 탈 태양계급 집중력이 솟아올라 정말 꼼짝도 않고, 북플도 안 들어가고, 콧구멍에 손가락 한 번을 안 집어 넣고 꿋꿋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은총과 영광의 책은 바로『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요놈 요 착한 놈


이런 식이면 하루에 다섯 권도 충분히 제껴 드릴 수 있는 기적의 당일배송 스피드로 책의 절반을 정복했을 무렵, 일은 벌어졌다.


크르르렁......피유.......드르르르릉......피유.......드르르컥.....크르르렁.....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깨어 있다는 오전 10시였다. 열람실에 가득했던 정적의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면학 분위기를 불싸질러 살해한 코골이의 폭군 네로는 바로 syo의 등 뒷자리에 엎어져 있는 더벅머리 아저씨(떡진 머리의 호남형, 사건 발생 당시 50대 추정)였다. 미안, 너무 오랜만이라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젠 틀린 것 같아. 안 돼, 이렇게 널 보낼 수 없어, 가지마 중력아. 이미 늦어버린 걸, 정적이 사라진 마당에 내가 여기 남아 뭘 더 할 수 있겠니. 조금만 더 옆에 있어주면 안 되겠니,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syo야, 힘을 내, 비록 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헤어지지만, 나는 언제나 너의 마음 속에 함께 있을거야, 힘이 들면 나의 이름을 불러보렴. 중력아...... 자, 그럼 이제 정말로 안녕, 안녕, 안ㄴ...... 안 돼, 가지 마, 중력아! 중력아! 집중력아!!!!


모든 것이 끝났다. 활자가 눈에 온전하게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환대를 통하여 타자에게 크르르르렁을 선물하지 않으면, 누구든 피유~ 를 향유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드르르르렁의 주어인 '우리 대한국컥'은 현법 10조가 말하는 '크르러렁'을 이미 내포하고 있피유~" 똘레랑스에 관한 대목을 읽고 있는데도 점점 똘레랑스라는 것은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싹 트고 있었다. 아, 미추어 버리겠네, 저 아저씨끼를 그냥 확 조져버릴


수는 없었기에, 조용히 마음 속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저씨.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그때였다. 갑자기 아저씨가 고개를 확 쳐들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탁탁 치면서 말하는 것이다. 으아, 이거는 아이지(아니지). 그래, 그건 아닌데, 이건 뭐지? 텔레파시? 정신지배? 와, 중력이가 떠나면서 능력이한테 뒤를 부탁했나? 능력아, 너니? 너 온 거니?


그렇다면 이것은 남는 장사였다. 집중력 <<< 초능력. syo는 얼룩말을 노리는 한 마리 암사자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기회를 노렸다. 잠시 후, 다시 아저씨의 코골이가 들리기 시작했다. syo는 미소를 지으며, 정신 집중을 위해 살포시 눈을 감았다. 아저씨, 제 말 들리죠, 아저씨, syo는 10억이 필요합니다, 10억이요, 아저씨! syo에게 10억을 주세요, 10억을 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슬쩍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싸, 10억인건가! 그때 아저씨가 입을 여시더니, 


아, 아니야, 자꾸 이러면 안 되잖아. 라고 하셨습니다. 


아. 아니구나. 이러면 안 되는 거였네요. 죄송합니다. 전 되는 줄 알구요.





1인칭은 힘이 세다. 직접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문장을 온전히 책임지는 일이 독자에 대한 봉사다. 감당할 수 있는 1인칭 관점에서 시작하여 점차 외연을 확대하는 태도가 좋다.

_ 이강룡,『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나는 자꾸만 삶을 비장하게 만드는 말들이 싫다. 사는 게 힘들기만 한 사람은 인생을 예찬할 수 없다. 나는 완주와 기록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삶을 선물로 여기게 만드는 순간들을 더 천천히 들여다 보고 싶다. 

_ 김하나,『힘 빼기의 기술』



의문스럽고 알 수 없고 낯설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긍정. 낯선 것은 다르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하며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을 환영하고 포용할 수 있는 긍정. 이런 긍정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운명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_ 이진우,『니체의 인생 강의』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_ 피에르 자위 지음, 이세진 옮김,『드러내지 않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문명'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삶의 환경을 긍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을 때에라야 우리는 문명애 속한 사람입니다. 

_ 장동석,『다른 생각의 탄생』



외부의 자유는 재산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자유는 다른 재간, 바로 웃음으로 얻을 수 있다. 웃음은 자유이다. 억지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 웃는 웃음은 마음의 자유와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마음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_ 금정연,『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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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7-11-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집중력이 5분을 못간다는 걸 너무 잘알아서.. 인정하고 5분마다 새로운 책을 읽으며 독서돌려막기로 다독을 유지중입니다..ㅎㅎㅎ

syo 2017-11-03 21:00   좋아요 0 | URL
다들 비슷하게 사는군요..... 큰 위안이 됩니다.

cyrus 2017-11-03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꺼풀이 자꾸 내려가는 것도 중력의 영향입니다.. ㅎㅎㅎ 밤 12시 이후로 책 읽기가 힘들어요.

syo 2017-11-03 21:01   좋아요 0 | URL
12시 이후에는 숙면을 위해 읽는 거입죠. ㅎ

독서괭 2017-11-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재밌어서 도망간지 오래였던 제 중력이 잠시 돌아왔네요 ㅋㅋㅋㅋㅋㅋ 아아 syo님의 이런 능청스런 글 너무너무 좋아요 ㅋㅋ

syo 2017-11-03 21:45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께 가을을 맞아 가을전어 같은 글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떠나간 syo의 중력이도 기뻐할 거예요ㅎㅎ

이하라 2017-11-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혈액형이 ADHD형인데 한달 90권의 독서라니 같은 혈액형인데 왜이렇게 다른 걸까요? ㅠㅠ

syo 2017-11-03 23:52   좋아요 0 | URL
제가 ADHD- 형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ㅎ

사마천 2017-11-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DHD형, 역시. 유머로 승화되네요 ^^

syo 2017-11-03 23:53   좋아요 0 | URL
웃픈 현실입니다. 저는 웃플테니 사마천님은 웃으시길 ㅎㅎㅎ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웃는 남자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


● 웃는 남자 / 황정은


황정은 칭찬은 이제 입아프고, 골수 황빠인 syo가 해 봐야 객관성도 떨어지겠으나, 그래도 말할 수 밖에. 황정은은 도대체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 걸까.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세계를 읽는 syo보다 생생하고 디테일하다. 선명하면서도 아련하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봐야 만들 수 있을 인물들이 처연하게 전시된다. 재능 없이 이게 되나? 어쩐지 황정은에게 3시간만 주면 syo의 인생을 보란 듯 그려내 듣고 있는 syo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을 것 같다. 아, 맞아, 내가 딱 저렇게 아팠다니까, 근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면 과연 syo의 가치는 무엇인가. 언젠가 우연히 황정은 같은 촉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가 빚을 이야기 속에서 먼지같은 배역이라도 기꺼이 맡겠다는 마음으로 순순히 나를 넘겨줄 수 있도록, 그저 살아내는 일 밖에는 할 게 없겠다. 묵묵히, 자신의 입으로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말을 하려들지 않고.



● 이혼 / 김숨 


소진된 여자를 조명하는 시선의 폭과 깊이를 따져 보면 김숨만 한 눈과 손이 또 어디 있을까. 담담함 속에 언제 터져나와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억눌린 슬픔이 박동하고 있다. 어쩐지 요즘은 김숨의 글을 만나면 잠깐이나마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내가 중학교 이 학년 때던가. 엄마가 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다알리아 화분을 하나 사왓는데, 아버지가 돈을 함부로 쓴다며 초등학생 혼내듯 엄마를 혼냈잖아.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 나만 크면 식모살이를 해 먹고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하고 이곤하겠다고......"
 눈빛을 흐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스스로가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_김숨 <이혼>



● 존엄의 탄생 / 김언수 


김언수는 처음 읽는다.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syo의 눈에도 턱턱 걸릴만큼 아마추어의 문장을 구사한다. 이를테면 "여자는 몹시 혐오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라는 문장은 자칫 여자의 얼굴이 혐오스럽다는 식으로 읽히는데, 여자는 상당한 미인이고 이후의 맥락을 고려하면 "여자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나 "여자는 혐오감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와 같은 식으로 읽는 게 올바른 해독이겠다. 이런 식의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잊고 몰입하려 하면 꼭 다시 나타나 집중력을 흐린다. syo같은 해태눈깔한테도 걸렸다면 문제 있는 건데, 혹시 퇴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진수야 내 말 잘 들어. 내 시는 쓰레기야. 내 재능은 수준 미달이고 더이상 높이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형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예요."
 심이 다시 술잔을 비웠다.
 "나는 공부에도 큰 뜻이 없어. 그러니 아마 대학에서 교양 강의나 하며 빌빌대다가 마땅한 대책도 없이 어느 날 퇴출당하겠지. 그게 나라는 인간의 정확한 크기야. 하지만 이게 슬픈 일은 아냐.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 사실 우린천재가 아니고 뭘 해낼 만한 대단한 재능도 아직까지 발견 못한 숨겨진 잠재력도 없지. 네 영화를 만들어주겠다고 뻥치는 그 영화사 사장은 다단계 판매나 하는 사기꾼이야. 네가 유능하다고 만날 자랑질하는 김 피디는 충무로가 다 아는 등신이지. 그리고 너의 유아적이고 망상적인 시나리오에다 돈을 낼 골빈 투자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어. 지금까지 없었듯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진수야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싸늘한 진실이야."
 심이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술잔을 비웠다.

 "잘난 사람 되는 거 힘들어. 이제 너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더이상 못난 사람은 되지 말자."
_ 김언수, <존엄의 탄생>



김언수는 읽은 바 없어 추천을 못하겠고, 읽고 전율했던 황정은의 책들과 읽고 엉엉 울었던 김숨의 책들.




 

.


약탈 정치 

강준만, 김진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


세월호 이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봐도 보는 게 아니었고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syo의 개똥 같은 성격에 노무현 말부터 이명박 말까지를 꼬박 대학에서 보내면서도 홧병 터져 화염병을 들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온갖 더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syo는 열심히 학점을 만들고, 등록금을 만들고, 사랑을 만들고 살았다. 실패했지만 게임도 만들고, 중간에 관뒀지만 영화도 만들었다. 만들 것이 많아서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가 통할까. 하여튼 syo가 이것저것 만드는 사이에 MB도 이것 저것 만들고 있었다. 남일당 건물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산성을 만들었고, 전국의 강에 녹조라뗴를 만들었고, 오만 공직에 영포회와 TK인물을 꽂아 넣어 제 세상을 만들었고, 진부하게도 비자금까지 만들면서 결국 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눈만 돌리면 알 수 있었던, 모르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모를 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연속적인 악행들을, syo는 몰랐다. 그러고도 누가 물으면 대학생활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망할 놈. 등신. 그러니까 아무 망설임 없이 박근혜를 뽑았지. 


2014년 이전의 정치적 기억이 전무했던 syo를 위해, 그리고 대충은 알지만 디테일이 약한 다른 정치새싹들을 위해, 강준만 선생님이 이명박근혜 10년을 아주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역시 막대한 언론 자료를 인용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검색만 잘 해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을 그냥 모아 놓기만 했을 뿐이라고 이 책을 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게 잘 가르치는 강사의 기본기다. 취합. 


아, 정말 이런 어마어마한 양아치와 한 하늘을 이고 잘도 살았구나.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다시는 이 꼴 안당해야지 하면 생각나는 책 몇 권 더 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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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0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듯 뒤돌아 보았다고 양아치는 아니겠죠. 촛불집회가 오기까지 늦은듯 뒤돌아 본 사람들이 더 많았을텐데 다들 양아치는 아닐거에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것이다라며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정말 대책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늦은듯 돌아본 1인으로서 찔려서 외마디를 남기고 갑니다;;

syo 2017-11-01 22:32   좋아요 0 | URL
syo가 한 하늘을 이고 잘도 살았다는 양아치는 MB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봅니다.

이하라 2017-11-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말씀이었군요. 독해력이 딸리는 걸 들켜버리고 말았네요. 제대로 이해 못한 채 댓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

syo 2017-11-01 23:1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이건 syo의 글이 들쑥날쑥 근본이 없어놔서 그렇습니다.

이하라 2017-11-01 23:30   좋아요 0 | URL
syo님 글솜씨는 많은 분들께 정평이 나있는걸요. 이건 저의 오해와 이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syo 2017-11-02 00:15   좋아요 0 | URL
정평이라니 그럴리가요. 다시 읽어봐도 헷갈릴만 합니다^^

갱지 2017-11-02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황정은씨 소설은 궁금해졌습니다-:-)

syo 2017-11-02 07:25   좋아요 0 | URL
이런 입장에 처한 사람 마음을 표현하려면 나는 어떻게 쓸까- 생각해 보면서 읽으면 참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17-11-02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정은 과 김숨은 관심작가이고 김언수의 책은 캐비넷인가 읽어보고 그 뒤로 더 읽겠다는 생각은 안들었는데, 쇼님 책에 관한 글 올리는 거 보면 저랑 좀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후훗. 그나저나 김숨의 한 명은 사두고도 안읽었네요. 어디있지? 회사에 있나, 집에 있나....어디엔 있겠지요..... ( ˝)

syo 2017-11-02 08: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말씀대로 우리가 비슷하게 느낀다면, <한 명>은 읽다가 그냥 아주 퐁퐁펑펑 우실 거예요.

독서괭 2017-11-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언수를 김연수로 보고 어라 김연수가 문장이 그럴 리가 없는데..(당황)ㅋㅋ 김언수였군요. 다행입니다.
근데 syo님이 박근혜를 찍으셨다고요? 너무 의외라 농담인 줄...
저도 황정은씨와 김숨씨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

syo 2017-11-02 09:45   좋아요 0 | URL
김연수느님이 당연히 그러실 리가 없지요. syo는 골수 김연수빠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건은 전국민 앞에 사과합니다. 정말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당시 대선국면에서 처음 알게 된..... 게다가 MB때는 투표 자체를 안했으나 아마 했다면 여지 없이 찍었을걸요 MB ㅋㅋㅋ
 


syo는 맞춤법에 민감하지 않고, 맞춤법에 어긋난 글을 만나도 지적하거나 글쓴이에 대해 특정한 견해를 갖지는 않는다. 제놈도 허구한 날 틀리고 앉았거든. 그러나 뜻만 통하면 된다는 둥, 언어는 원래 변하는 거라는 둥 하는 대답을 만나면, 그것이 그저 악에 받쳐서 빽빽 질러댄 핑계나 변명은 아닌지 좀 면밀히 살펴 보는 편이다. 


핑계도 적당해야 한다. '환골탈퇴'는 syo에게 '환장하겠네, 이 골 때리는 놈 탈탈 털어서 퇴비로 쓰고 싶다'의 줄임말이다. 이런 경우는 소통이나 변화를 들먹여서는 안되는 치명적인 멍청함이 드러나는 케이스라 하겠다. 가전 제품에 녹황색 채소를 쑤셔넣었으니 '에어컨 시래기'는 당연히 고장일 수 밖에 없다. '김머중', '박ㄹ혜', '세종머왕' 같은 말은, 정말 그게 재밌냐고 물어보고 싶다. 재밌으면 장땡이냐고도 물어보고 싶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가운데 이중피동이 있다. '쓰다'의 피동형은 '-이'를 붙여 '쓰이다'로 충분한데, 또다른 피동형 공식인 '+지다/어지다' 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쓰여지다'가 되는 실수. 이런 건 정말 많이 틀린다. '보여지다', '놓여지다', '바뀌어지다'...... 그리고 문제의 '잊혀지다'가 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고,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노랫말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가수 이용이 1982년 발표한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의 <잊혀진 계절>의 도입부다. 여기서 우리는 맞춤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잊혀진 계절' 아니죠, '잊힌 계절' 맞습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syo는 이 여기야말로 우리가 기계적인 맞춤법의 압제에 맞서 소통과 변화를 외치며 들고 일어나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35년을, 우리는 '잊혀진' 계절을 노래하며 살았다.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서글프게 따져 물으며 각자 추억 속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35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서, 너는 잊혀진 것이 아니고 그저 잊힌 것이었다니! 아니야, syo는 <잊힌 계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잊힌 계절'에는 '잊혀진 계절'이 지닌 아우라가 없다. 아,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어야' 하는 건가요.' 라니......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맞춤법 책을 몇 권 읽게 되어서. 헤헤.



171020 - 171031 35권


문학 8권



1. 파묻힌 거인

: 이시구로, 이런 기억의 요술쟁이.


2. 걱정말고 다녀와

: 김현(전설 속의 그 분 아닙니다)의 산문은 시에 비해 매력이 없고 단조롭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시를 생각해 보면 그 간극이 참 놀랍다. 이부록의 삽화는 김현의 산문보다 시에 더 어울리겠다 싶을만큼 전위적이라 글이 더욱 아쉽다.


3. 더 나쁜 쪽으로

: 여전하시네요. 그래도 사랑합니다, 사과씨.


4. 나를 보내지 마

: 이걸로 이시구로는 끝. 험난한 길이었다. 가장 인기 많은 놈 중 하나로 마무리한 것도 의미가 있구나.


5.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 시집이 참 빽빽하다. 시어는 많지만 무엇을 가리키던 하나가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의미를 다 알 순 없지만, 어쩐지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6. 다정

: 서문을 읽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꾹 참고 읽어나가다 시인의 만행을 모르고 읽었다면 감탄했을 구절들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표제작까지 닿는 데 채 10편 안 되는 시들을 읽다 더는 못 읽고 덮었다. 알고는 못 읽겠다.


7.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아무래도 syo는 이다혜 기자의 글과는 안 맞다. 담담하고 따뜻한 글인 건 알겠는데, 읽을 책이 많은데 왜 이걸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쉬지않고 엄습한다. 별로 매력이 없다. 취향의 문제임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8. 저녁의 연인들

: 좋은 시마다 옆구리에 플래그를 하나씩 붙여 가며 한 권을 다 읽고나니, 옆구리가 비어 있는 녀석이 겨우 두 손에 꼽힌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로다.....




수학 / 과학 / 공학 5권



9. 인공지능 70

: 귀여운 책에 자꾸 손이 가는 걸 어떡하나. 귀여운 책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갖춘 평범한 귀여운 책이다.


10. 수학은 짝짓기에서 탄생하였다

: 얇아서 잠깐 읽기는 좋은데, 읽기 전후로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11.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맞네. 쉽네. 끝.


12. 공대생도 잘 모르는 재미있는 공학 이야기

: 정말 손나 유익하나 수학이나 과학에 전혀 기반이 없다면 100퍼센트 알고 지나가긴 힘들다.


13. 한 권으로 끝내는 세상의 모든 과학

: 이준호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 보리~♪




읽기 / 쓰기 7권



14. 국어 독립 만세


15. 진짜 경쟁력은 국어실력이다

: 10년된 책이다. 


16. 소설 마시는 시간

: 글은 그저 그렇지만, 그림이 너무 예쁘고 책 전체의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든다. 술을 좋아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술이라고는 참소주하고 참이슬밖에 모르는 무지렁이라....ㅠ


17.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장석주를 떠나야 한다.


18. 행복한 책읽기

: 다시 읽고 다시 읽어도 또 한번 다시 읽을 만하다.


19. 우물에서 하늘 보기

: 어렵지 않은 시를 어렵지 않게 풀어 어려운 세상에 연고처럼 비벼 바른다. 세상 사는 사람들 세상 사는 일이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


20.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우리말 공부 책은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안 읽고 쓰기만 자꾸 하다보면 점점 춤이 과해져서 결국 도랑에 빠지더라.




정치 / 경제 / 철학 8



21. 박4모

: 그림도 그림, 센스도 센스지만 이 사람, 기본적으로 글을 참 잘 쓴다. 깜짝 놀랐다.


22.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쉽고 요약이 잘 된 책. 김수행 선생님 입문서와 강신준 선생님 입문서를 섞어서 반 뚝 자른 것 같은 책. 


23. 초기 그리스 철학

: 이런 건 하나 가지고 있어도 되겠다. 완간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24. 니체의 인생 강의

: 하나로 꿰어 관통하는 큰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이 니체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임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이 책은 얇으나 가치가 크다.


25. 보수를 지켜라

: 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보수는 안전합니다"라고 표지에 써 있다.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승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 배는 안전합니다" 거나 "손님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 개는 안전합니다" 거나. 여하튼 안심했다. 


26. 러시아 혁명 희망과 좌절

: 거의 모든 사람을 오른쪽에 두고 있다는 최일붕 선생님이 전해주는 러시아 혁명 이야기. 독한 서술은 여전하다. 상대적으로 좀 얇다. 


27. 조선자본주의공화국

: 그러니까. 이게 말이 되지, 상식적으로. 그것들도 그것들 밑에 사는 사람들도 어쨌든 사람인데, 사람 사는 게. 


28. 명랑철학

: 아, 니체란 인간. 조금 더 경외감을 느꼈고, 조금 더 정떨어졌다. 이 책처럼 해서는 니체의 사상이 나치에 의해 그저 오남용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는 어렵지 않나.




사회 / 인물 7권



29. 루쉰전

: 당성이 있는 편이라 루쉰의 적대자(인 동시에 공산당의 적대자)를 신랄하게 까고 루쉰의 혁명적 역량은 굵게 칭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좋은 평전이라 하겠는데, 문체가 평탄하면서도 힘과 깊이가 있다. 


30. 루쉰, 길 없는 대지

: 루쉰이 걸어왔던 행로를 되밟으며 그의 삶을 조명하는 1부와, 작품들을 하나씩 해설하는 2부로 이루어진 책. 그러니까, 전기와 해설서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31. 가거라 용감하게, 아들아

: 과연 모든 책에서 어떤 견해와 맞서 싸우는 투사 박홍규 선생님. 다른 전기를 한 권 읽고 와서 보면 눈이 넓어진다.


32. 시사인 527

33. 한겨레21 1183

34. 한겨레21 1184


35.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 사회학 책이고 심지어 남의 나라 사회학 책이긴 한데 사회학자나 사회학자 워너비가 아닌 그냥 읽고 쓰는 일을 즐기는 소소한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조언이 대량 등장한다.




아, 맞춤법 책을 3권이나 읽었는데, 뭐 나아진 게 하나도 없지...... sy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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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과도기 2017-10-3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쯤 농담이고 반쯤 진담으로, 한국어 맞춤법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전공 연구자들도, 각 대학의 한국어 전공 교수들도 ‘가끔‘ 헷갈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어 어문 규범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시무룩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한국어 어문 규범은 평생에 걸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니까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전공자인 저도 매일 낯설어하는 게 한국어 어문 규범입니다).
매번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을 주책맞게도 길게 했네요...^^;

ps. 본문 보다 생각난 것: 어문 규범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한국어 문법을 따지고 들어가 보았을 때, 요즘의 10-20대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노랫말은 아무래도 ‘양화대교‘(Zion-T)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syo 2017-10-31 20:14   좋아요 0 | URL
국립국어원장이 자기도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충격고백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힘이 나지만 인간의과도기님의 고퀄 리뷰를 보면 더 힘이 나겠습니다ㅎㅎㅎ 언제 또 올리시나 한참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마침내 목이 빠졌습니다....

다락방 2017-10-31 20:55   좋아요 0 | URL
앗 인간의 과도기 님이닷!!!!

인간의과도기 2017-11-01 07:54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글 잘 쓰시기로 유명한 두 분께서 이리 저를 반겨주셔서, 어떻게 답변하는 것이 좋을까 밤 동안 고민하다 이제야 답댓글을 답니다.
제가 천성이 부지런하지 않은 데다, 최근 개인적인 고민이 있어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조만간(올해 안에?)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힘내 보겠습니다. 목 빠지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두 분께 드립니다 ㅜㅜ

단발머리 2017-10-3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장석주를 떠나야 한다.
의 이유를 알고 싶네요.

전체중에서 35번을 제일 먼저 읽고 싶어요.
근데, syo님 진짜 많이 읽으시네요. 부럽....
난 대한민국 평균 핸드폰 사용시간 3시간 지키느라 ㅠㅠ

syo 2017-10-31 23:35   좋아요 0 | URL
댓글로 대답하기에는 이유가 많고도 길어요. 점점 애증의 관계 비슷하게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고.

35번은 강력추천입니다. 17번은 장석주의 책을 3권 이상 읽은 사람에게는 비추입니다. ㅎㅎ

cyrus 2017-11-0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한국 맞춤법 검사기도 받아들이기 힘든 맞춤법을 알려줘요. 한글 프로그램이 자꾸 ‘잊혀지다‘를 ‘잊히다‘로 고치라고 할 때 제일 짜증나요.. ㅎㅎㅎ

syo 2017-11-01 12:2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냉혹한 한컴.

2017-11-0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11-01 12:27   좋아요 1 | URL
syo는 걍 씁니다! 웬만하면 구어체다보니 맞춤법 검사하면 멘탈이 털려서요...

봄밤 2017-11-1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쇼님 <저녁의 연인들>아직 못읽어봤는데 왕추천인가요? 아아 어서 읽어봐야겠군요!
그런데 언제 이렇게 다독다독하시는 건가요. 쇼님의 읽은 책 소개하는 페이지도 소화를 못하는 저는...(눈물)

syo 2017-11-11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참 좋았습니다^-^
부디 syo가 해태눈깔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