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는 한 달 평균 90권쯤 읽고 있다고 멋쩍게 밝히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주변 환경과의 교감을 완전 차단한 채 꼿꼿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러분, 그 남자는 syo가 아닙니다. 열 쪽을 채 이어서 읽지 못하고 자꾸만 북플을 켜고 어디 재미난 새 글이 올라왔나 스크롤을 빡빡 넘기는 SNS 홀릭, 다시 열 쪽을 더 읽기도 전에 도대체 이놈의 챕터는 얼마나 더 봐야 끝나나, 좀이 쑤셔서 뒷장을 한 번 휘휘 넘겨 보는 집중력 조루, 그나마 읽는 중에도 얌전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떨고, 콧털을 뽑고, 방금 콧털 뽑은 손가락인데 입에 넣어서 손톱을 물어 뜯고, 하여간 왠갖 잡스러운 짓은 골고루 다 하면서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syo는 그런 꾸러기 독서가랍니다. 혈액형은 ADHD형. 좌우명은 쉬지 말고 분주하자.


그런 syo이므로, 이건 뭐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불지옥에 들장미가 폈는지, 5차원 시공간을 건너다 잘못 배달되었으리라 짐작되는 탈 태양계급 집중력이 솟아올라 정말 꼼짝도 않고, 북플도 안 들어가고, 콧구멍에 손가락 한 번을 안 집어 넣고 꿋꿋이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은총과 영광의 책은 바로『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요놈 요 착한 놈


이런 식이면 하루에 다섯 권도 충분히 제껴 드릴 수 있는 기적의 당일배송 스피드로 책의 절반을 정복했을 무렵, 일은 벌어졌다.


크르르렁......피유.......드르르르릉......피유.......드르르컥.....크르르렁.....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깨어 있다는 오전 10시였다. 열람실에 가득했던 정적의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면학 분위기를 불싸질러 살해한 코골이의 폭군 네로는 바로 syo의 등 뒷자리에 엎어져 있는 더벅머리 아저씨(떡진 머리의 호남형, 사건 발생 당시 50대 추정)였다. 미안, 너무 오랜만이라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젠 틀린 것 같아. 안 돼, 이렇게 널 보낼 수 없어, 가지마 중력아. 이미 늦어버린 걸, 정적이 사라진 마당에 내가 여기 남아 뭘 더 할 수 있겠니. 조금만 더 옆에 있어주면 안 되겠니,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syo야, 힘을 내, 비록 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헤어지지만, 나는 언제나 너의 마음 속에 함께 있을거야, 힘이 들면 나의 이름을 불러보렴. 중력아...... 자, 그럼 이제 정말로 안녕, 안녕, 안ㄴ...... 안 돼, 가지 마, 중력아! 중력아! 집중력아!!!!


모든 것이 끝났다. 활자가 눈에 온전하게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환대를 통하여 타자에게 크르르르렁을 선물하지 않으면, 누구든 피유~ 를 향유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드르르르렁의 주어인 '우리 대한국컥'은 현법 10조가 말하는 '크르러렁'을 이미 내포하고 있피유~" 똘레랑스에 관한 대목을 읽고 있는데도 점점 똘레랑스라는 것은 실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싹 트고 있었다. 아, 미추어 버리겠네, 저 아저씨끼를 그냥 확 조져버릴


수는 없었기에, 조용히 마음 속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저씨.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그때였다. 갑자기 아저씨가 고개를 확 쳐들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탁탁 치면서 말하는 것이다. 으아, 이거는 아이지(아니지). 그래, 그건 아닌데, 이건 뭐지? 텔레파시? 정신지배? 와, 중력이가 떠나면서 능력이한테 뒤를 부탁했나? 능력아, 너니? 너 온 거니?


그렇다면 이것은 남는 장사였다. 집중력 <<< 초능력. syo는 얼룩말을 노리는 한 마리 암사자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기회를 노렸다. 잠시 후, 다시 아저씨의 코골이가 들리기 시작했다. syo는 미소를 지으며, 정신 집중을 위해 살포시 눈을 감았다. 아저씨, 제 말 들리죠, 아저씨, syo는 10억이 필요합니다, 10억이요, 아저씨! syo에게 10억을 주세요, 10억을 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슬쩍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싸, 10억인건가! 그때 아저씨가 입을 여시더니, 


아, 아니야, 자꾸 이러면 안 되잖아. 라고 하셨습니다. 


아. 아니구나. 이러면 안 되는 거였네요. 죄송합니다. 전 되는 줄 알구요.





1인칭은 힘이 세다. 직접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 문장을 온전히 책임지는 일이 독자에 대한 봉사다. 감당할 수 있는 1인칭 관점에서 시작하여 점차 외연을 확대하는 태도가 좋다.

_ 이강룡,『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나는 자꾸만 삶을 비장하게 만드는 말들이 싫다. 사는 게 힘들기만 한 사람은 인생을 예찬할 수 없다. 나는 완주와 기록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삶을 선물로 여기게 만드는 순간들을 더 천천히 들여다 보고 싶다. 

_ 김하나,『힘 빼기의 기술』



의문스럽고 알 수 없고 낯설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긍정. 낯선 것은 다르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하며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을 환영하고 포용할 수 있는 긍정. 이런 긍정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운명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_ 이진우,『니체의 인생 강의』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_ 피에르 자위 지음, 이세진 옮김,『드러내지 않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문명'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삶의 환경을 긍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할 수 있을 때에라야 우리는 문명애 속한 사람입니다. 

_ 장동석,『다른 생각의 탄생』



외부의 자유는 재산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자유는 다른 재간, 바로 웃음으로 얻을 수 있다. 웃음은 자유이다. 억지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 웃는 웃음은 마음의 자유와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마음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_ 금정연,『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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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7-11-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집중력이 5분을 못간다는 걸 너무 잘알아서.. 인정하고 5분마다 새로운 책을 읽으며 독서돌려막기로 다독을 유지중입니다..ㅎㅎㅎ

syo 2017-11-03 21:00   좋아요 0 | URL
다들 비슷하게 사는군요..... 큰 위안이 됩니다.

cyrus 2017-11-03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꺼풀이 자꾸 내려가는 것도 중력의 영향입니다.. ㅎㅎㅎ 밤 12시 이후로 책 읽기가 힘들어요.

syo 2017-11-03 21:01   좋아요 0 | URL
12시 이후에는 숙면을 위해 읽는 거입죠. ㅎ

독서괭 2017-11-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재밌어서 도망간지 오래였던 제 중력이 잠시 돌아왔네요 ㅋㅋㅋㅋㅋㅋ 아아 syo님의 이런 능청스런 글 너무너무 좋아요 ㅋㅋ

syo 2017-11-03 21:45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께 가을을 맞아 가을전어 같은 글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떠나간 syo의 중력이도 기뻐할 거예요ㅎㅎ

이하라 2017-11-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혈액형이 ADHD형인데 한달 90권의 독서라니 같은 혈액형인데 왜이렇게 다른 걸까요? ㅠㅠ

syo 2017-11-03 23:52   좋아요 0 | URL
제가 ADHD- 형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ㅎ

사마천 2017-11-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DHD형, 역시. 유머로 승화되네요 ^^

syo 2017-11-03 23:53   좋아요 0 | URL
웃픈 현실입니다. 저는 웃플테니 사마천님은 웃으시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