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웃는 남자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


● 웃는 남자 / 황정은


황정은 칭찬은 이제 입아프고, 골수 황빠인 syo가 해 봐야 객관성도 떨어지겠으나, 그래도 말할 수 밖에. 황정은은 도대체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 걸까.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세계를 읽는 syo보다 생생하고 디테일하다. 선명하면서도 아련하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봐야 만들 수 있을 인물들이 처연하게 전시된다. 재능 없이 이게 되나? 어쩐지 황정은에게 3시간만 주면 syo의 인생을 보란 듯 그려내 듣고 있는 syo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을 것 같다. 아, 맞아, 내가 딱 저렇게 아팠다니까, 근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면 과연 syo의 가치는 무엇인가. 언젠가 우연히 황정은 같은 촉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가 빚을 이야기 속에서 먼지같은 배역이라도 기꺼이 맡겠다는 마음으로 순순히 나를 넘겨줄 수 있도록, 그저 살아내는 일 밖에는 할 게 없겠다. 묵묵히, 자신의 입으로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말을 하려들지 않고.



● 이혼 / 김숨 


소진된 여자를 조명하는 시선의 폭과 깊이를 따져 보면 김숨만 한 눈과 손이 또 어디 있을까. 담담함 속에 언제 터져나와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억눌린 슬픔이 박동하고 있다. 어쩐지 요즘은 김숨의 글을 만나면 잠깐이나마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엄마, 아버지하고 이혼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엄마가 그랬잖아. 아버지하고 이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모르겠다......"
 "왜 몰라?"
 "그러게......"
 "내가 중학교 이 학년 때던가. 엄마가 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다알리아 화분을 하나 사왓는데, 아버지가 돈을 함부로 쓴다며 초등학생 혼내듯 엄마를 혼냈잖아.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 나만 크면 식모살이를 해 먹고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하고 이곤하겠다고......"
 눈빛을 흐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스스로가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_김숨 <이혼>



● 존엄의 탄생 / 김언수 


김언수는 처음 읽는다. 확실히 재미는 있는데, syo의 눈에도 턱턱 걸릴만큼 아마추어의 문장을 구사한다. 이를테면 "여자는 몹시 혐오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라는 문장은 자칫 여자의 얼굴이 혐오스럽다는 식으로 읽히는데, 여자는 상당한 미인이고 이후의 맥락을 고려하면 "여자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나 "여자는 혐오감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와 같은 식으로 읽는 게 올바른 해독이겠다. 이런 식의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잊고 몰입하려 하면 꼭 다시 나타나 집중력을 흐린다. syo같은 해태눈깔한테도 걸렸다면 문제 있는 건데, 혹시 퇴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진수야 내 말 잘 들어. 내 시는 쓰레기야. 내 재능은 수준 미달이고 더이상 높이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형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예요."
 심이 다시 술잔을 비웠다.
 "나는 공부에도 큰 뜻이 없어. 그러니 아마 대학에서 교양 강의나 하며 빌빌대다가 마땅한 대책도 없이 어느 날 퇴출당하겠지. 그게 나라는 인간의 정확한 크기야. 하지만 이게 슬픈 일은 아냐.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 사실 우린천재가 아니고 뭘 해낼 만한 대단한 재능도 아직까지 발견 못한 숨겨진 잠재력도 없지. 네 영화를 만들어주겠다고 뻥치는 그 영화사 사장은 다단계 판매나 하는 사기꾼이야. 네가 유능하다고 만날 자랑질하는 김 피디는 충무로가 다 아는 등신이지. 그리고 너의 유아적이고 망상적인 시나리오에다 돈을 낼 골빈 투자자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어. 지금까지 없었듯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진수야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싸늘한 진실이야."
 심이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술잔을 비웠다.

 "잘난 사람 되는 거 힘들어. 이제 너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더이상 못난 사람은 되지 말자."
_ 김언수, <존엄의 탄생>



김언수는 읽은 바 없어 추천을 못하겠고, 읽고 전율했던 황정은의 책들과 읽고 엉엉 울었던 김숨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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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정치 

강준만, 김진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


세월호 이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봐도 보는 게 아니었고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syo의 개똥 같은 성격에 노무현 말부터 이명박 말까지를 꼬박 대학에서 보내면서도 홧병 터져 화염병을 들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온갖 더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syo는 열심히 학점을 만들고, 등록금을 만들고, 사랑을 만들고 살았다. 실패했지만 게임도 만들고, 중간에 관뒀지만 영화도 만들었다. 만들 것이 많아서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가 통할까. 하여튼 syo가 이것저것 만드는 사이에 MB도 이것 저것 만들고 있었다. 남일당 건물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산성을 만들었고, 전국의 강에 녹조라뗴를 만들었고, 오만 공직에 영포회와 TK인물을 꽂아 넣어 제 세상을 만들었고, 진부하게도 비자금까지 만들면서 결국 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눈만 돌리면 알 수 있었던, 모르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모를 수 없을만큼 거대하고 연속적인 악행들을, syo는 몰랐다. 그러고도 누가 물으면 대학생활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망할 놈. 등신. 그러니까 아무 망설임 없이 박근혜를 뽑았지. 


2014년 이전의 정치적 기억이 전무했던 syo를 위해, 그리고 대충은 알지만 디테일이 약한 다른 정치새싹들을 위해, 강준만 선생님이 이명박근혜 10년을 아주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역시 막대한 언론 자료를 인용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검색만 잘 해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을 그냥 모아 놓기만 했을 뿐이라고 이 책을 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게 잘 가르치는 강사의 기본기다. 취합. 


아, 정말 이런 어마어마한 양아치와 한 하늘을 이고 잘도 살았구나.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다시는 이 꼴 안당해야지 하면 생각나는 책 몇 권 더 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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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0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듯 뒤돌아 보았다고 양아치는 아니겠죠. 촛불집회가 오기까지 늦은듯 뒤돌아 본 사람들이 더 많았을텐데 다들 양아치는 아닐거에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것이다라며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정말 대책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늦은듯 돌아본 1인으로서 찔려서 외마디를 남기고 갑니다;;

syo 2017-11-01 22:32   좋아요 0 | URL
syo가 한 하늘을 이고 잘도 살았다는 양아치는 MB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봅니다.

이하라 2017-11-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말씀이었군요. 독해력이 딸리는 걸 들켜버리고 말았네요. 제대로 이해 못한 채 댓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

syo 2017-11-01 23:1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이건 syo의 글이 들쑥날쑥 근본이 없어놔서 그렇습니다.

이하라 2017-11-01 23:30   좋아요 0 | URL
syo님 글솜씨는 많은 분들께 정평이 나있는걸요. 이건 저의 오해와 이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syo 2017-11-02 00:15   좋아요 0 | URL
정평이라니 그럴리가요. 다시 읽어봐도 헷갈릴만 합니다^^

갱지 2017-11-02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황정은씨 소설은 궁금해졌습니다-:-)

syo 2017-11-02 07:25   좋아요 0 | URL
이런 입장에 처한 사람 마음을 표현하려면 나는 어떻게 쓸까- 생각해 보면서 읽으면 참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17-11-02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정은 과 김숨은 관심작가이고 김언수의 책은 캐비넷인가 읽어보고 그 뒤로 더 읽겠다는 생각은 안들었는데, 쇼님 책에 관한 글 올리는 거 보면 저랑 좀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후훗. 그나저나 김숨의 한 명은 사두고도 안읽었네요. 어디있지? 회사에 있나, 집에 있나....어디엔 있겠지요..... ( ˝)

syo 2017-11-02 08: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말씀대로 우리가 비슷하게 느낀다면, <한 명>은 읽다가 그냥 아주 퐁퐁펑펑 우실 거예요.

독서괭 2017-11-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언수를 김연수로 보고 어라 김연수가 문장이 그럴 리가 없는데..(당황)ㅋㅋ 김언수였군요. 다행입니다.
근데 syo님이 박근혜를 찍으셨다고요? 너무 의외라 농담인 줄...
저도 황정은씨와 김숨씨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

syo 2017-11-02 09:45   좋아요 0 | URL
김연수느님이 당연히 그러실 리가 없지요. syo는 골수 김연수빠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건은 전국민 앞에 사과합니다. 정말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당시 대선국면에서 처음 알게 된..... 게다가 MB때는 투표 자체를 안했으나 아마 했다면 여지 없이 찍었을걸요 MB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