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o는 맞춤법에 민감하지 않고, 맞춤법에 어긋난 글을 만나도 지적하거나 글쓴이에 대해 특정한 견해를 갖지는 않는다. 제놈도 허구한 날 틀리고 앉았거든. 그러나 뜻만 통하면 된다는 둥, 언어는 원래 변하는 거라는 둥 하는 대답을 만나면, 그것이 그저 악에 받쳐서 빽빽 질러댄 핑계나 변명은 아닌지 좀 면밀히 살펴 보는 편이다. 


핑계도 적당해야 한다. '환골탈퇴'는 syo에게 '환장하겠네, 이 골 때리는 놈 탈탈 털어서 퇴비로 쓰고 싶다'의 줄임말이다. 이런 경우는 소통이나 변화를 들먹여서는 안되는 치명적인 멍청함이 드러나는 케이스라 하겠다. 가전 제품에 녹황색 채소를 쑤셔넣었으니 '에어컨 시래기'는 당연히 고장일 수 밖에 없다. '김머중', '박ㄹ혜', '세종머왕' 같은 말은, 정말 그게 재밌냐고 물어보고 싶다. 재밌으면 장땡이냐고도 물어보고 싶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가운데 이중피동이 있다. '쓰다'의 피동형은 '-이'를 붙여 '쓰이다'로 충분한데, 또다른 피동형 공식인 '+지다/어지다' 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쓰여지다'가 되는 실수. 이런 건 정말 많이 틀린다. '보여지다', '놓여지다', '바뀌어지다'...... 그리고 문제의 '잊혀지다'가 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고,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노랫말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가수 이용이 1982년 발표한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의 <잊혀진 계절>의 도입부다. 여기서 우리는 맞춤법의 잣대를 들이밀어, '잊혀진 계절' 아니죠, '잊힌 계절' 맞습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syo는 이 여기야말로 우리가 기계적인 맞춤법의 압제에 맞서 소통과 변화를 외치며 들고 일어나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35년을, 우리는 '잊혀진' 계절을 노래하며 살았다.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서글프게 따져 물으며 각자 추억 속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35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서, 너는 잊혀진 것이 아니고 그저 잊힌 것이었다니! 아니야, syo는 <잊힌 계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잊힌 계절'에는 '잊혀진 계절'이 지닌 아우라가 없다. 아,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어야' 하는 건가요.' 라니......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맞춤법 책을 몇 권 읽게 되어서. 헤헤.



171020 - 171031 35권


문학 8권



1. 파묻힌 거인

: 이시구로, 이런 기억의 요술쟁이.


2. 걱정말고 다녀와

: 김현(전설 속의 그 분 아닙니다)의 산문은 시에 비해 매력이 없고 단조롭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시를 생각해 보면 그 간극이 참 놀랍다. 이부록의 삽화는 김현의 산문보다 시에 더 어울리겠다 싶을만큼 전위적이라 글이 더욱 아쉽다.


3. 더 나쁜 쪽으로

: 여전하시네요. 그래도 사랑합니다, 사과씨.


4. 나를 보내지 마

: 이걸로 이시구로는 끝. 험난한 길이었다. 가장 인기 많은 놈 중 하나로 마무리한 것도 의미가 있구나.


5.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 시집이 참 빽빽하다. 시어는 많지만 무엇을 가리키던 하나가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의미를 다 알 순 없지만, 어쩐지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6. 다정

: 서문을 읽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꾹 참고 읽어나가다 시인의 만행을 모르고 읽었다면 감탄했을 구절들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표제작까지 닿는 데 채 10편 안 되는 시들을 읽다 더는 못 읽고 덮었다. 알고는 못 읽겠다.


7.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아무래도 syo는 이다혜 기자의 글과는 안 맞다. 담담하고 따뜻한 글인 건 알겠는데, 읽을 책이 많은데 왜 이걸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쉬지않고 엄습한다. 별로 매력이 없다. 취향의 문제임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8. 저녁의 연인들

: 좋은 시마다 옆구리에 플래그를 하나씩 붙여 가며 한 권을 다 읽고나니, 옆구리가 비어 있는 녀석이 겨우 두 손에 꼽힌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로다.....




수학 / 과학 / 공학 5권



9. 인공지능 70

: 귀여운 책에 자꾸 손이 가는 걸 어떡하나. 귀여운 책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갖춘 평범한 귀여운 책이다.


10. 수학은 짝짓기에서 탄생하였다

: 얇아서 잠깐 읽기는 좋은데, 읽기 전후로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11.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 입문

: 맞네. 쉽네. 끝.


12. 공대생도 잘 모르는 재미있는 공학 이야기

: 정말 손나 유익하나 수학이나 과학에 전혀 기반이 없다면 100퍼센트 알고 지나가긴 힘들다.


13. 한 권으로 끝내는 세상의 모든 과학

: 이준호와 함께라면 어디든 가 보리~♪




읽기 / 쓰기 7권



14. 국어 독립 만세


15. 진짜 경쟁력은 국어실력이다

: 10년된 책이다. 


16. 소설 마시는 시간

: 글은 그저 그렇지만, 그림이 너무 예쁘고 책 전체의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든다. 술을 좋아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술이라고는 참소주하고 참이슬밖에 모르는 무지렁이라....ㅠ


17.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장석주를 떠나야 한다.


18. 행복한 책읽기

: 다시 읽고 다시 읽어도 또 한번 다시 읽을 만하다.


19. 우물에서 하늘 보기

: 어렵지 않은 시를 어렵지 않게 풀어 어려운 세상에 연고처럼 비벼 바른다. 세상 사는 사람들 세상 사는 일이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


20.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우리말 공부 책은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안 읽고 쓰기만 자꾸 하다보면 점점 춤이 과해져서 결국 도랑에 빠지더라.




정치 / 경제 / 철학 8



21. 박4모

: 그림도 그림, 센스도 센스지만 이 사람, 기본적으로 글을 참 잘 쓴다. 깜짝 놀랐다.


22.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 쉽고 요약이 잘 된 책. 김수행 선생님 입문서와 강신준 선생님 입문서를 섞어서 반 뚝 자른 것 같은 책. 


23. 초기 그리스 철학

: 이런 건 하나 가지고 있어도 되겠다. 완간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24. 니체의 인생 강의

: 하나로 꿰어 관통하는 큰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이 니체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임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이 책은 얇으나 가치가 크다.


25. 보수를 지켜라

: 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보수는 안전합니다"라고 표지에 써 있다. 읽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승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 배는 안전합니다" 거나 "손님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 개는 안전합니다" 거나. 여하튼 안심했다. 


26. 러시아 혁명 희망과 좌절

: 거의 모든 사람을 오른쪽에 두고 있다는 최일붕 선생님이 전해주는 러시아 혁명 이야기. 독한 서술은 여전하다. 상대적으로 좀 얇다. 


27. 조선자본주의공화국

: 그러니까. 이게 말이 되지, 상식적으로. 그것들도 그것들 밑에 사는 사람들도 어쨌든 사람인데, 사람 사는 게. 


28. 명랑철학

: 아, 니체란 인간. 조금 더 경외감을 느꼈고, 조금 더 정떨어졌다. 이 책처럼 해서는 니체의 사상이 나치에 의해 그저 오남용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는 어렵지 않나.




사회 / 인물 7권



29. 루쉰전

: 당성이 있는 편이라 루쉰의 적대자(인 동시에 공산당의 적대자)를 신랄하게 까고 루쉰의 혁명적 역량은 굵게 칭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좋은 평전이라 하겠는데, 문체가 평탄하면서도 힘과 깊이가 있다. 


30. 루쉰, 길 없는 대지

: 루쉰이 걸어왔던 행로를 되밟으며 그의 삶을 조명하는 1부와, 작품들을 하나씩 해설하는 2부로 이루어진 책. 그러니까, 전기와 해설서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31. 가거라 용감하게, 아들아

: 과연 모든 책에서 어떤 견해와 맞서 싸우는 투사 박홍규 선생님. 다른 전기를 한 권 읽고 와서 보면 눈이 넓어진다.


32. 시사인 527

33. 한겨레21 1183

34. 한겨레21 1184


35.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 사회학 책이고 심지어 남의 나라 사회학 책이긴 한데 사회학자나 사회학자 워너비가 아닌 그냥 읽고 쓰는 일을 즐기는 소소한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조언이 대량 등장한다.




아, 맞춤법 책을 3권이나 읽었는데, 뭐 나아진 게 하나도 없지...... sy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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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과도기 2017-10-3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쯤 농담이고 반쯤 진담으로, 한국어 맞춤법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전공 연구자들도, 각 대학의 한국어 전공 교수들도 ‘가끔‘ 헷갈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어 어문 규범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시무룩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한국어 어문 규범은 평생에 걸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니까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전공자인 저도 매일 낯설어하는 게 한국어 어문 규범입니다).
매번 재미있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을 주책맞게도 길게 했네요...^^;

ps. 본문 보다 생각난 것: 어문 규범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한국어 문법을 따지고 들어가 보았을 때, 요즘의 10-20대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노랫말은 아무래도 ‘양화대교‘(Zion-T)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syo 2017-10-31 20:14   좋아요 0 | URL
국립국어원장이 자기도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충격고백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힘이 나지만 인간의과도기님의 고퀄 리뷰를 보면 더 힘이 나겠습니다ㅎㅎㅎ 언제 또 올리시나 한참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마침내 목이 빠졌습니다....

다락방 2017-10-31 20:55   좋아요 0 | URL
앗 인간의 과도기 님이닷!!!!

인간의과도기 2017-11-01 07:54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글 잘 쓰시기로 유명한 두 분께서 이리 저를 반겨주셔서, 어떻게 답변하는 것이 좋을까 밤 동안 고민하다 이제야 답댓글을 답니다.
제가 천성이 부지런하지 않은 데다, 최근 개인적인 고민이 있어 글을 쓰는 데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조만간(올해 안에?)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힘내 보겠습니다. 목 빠지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두 분께 드립니다 ㅜㅜ

단발머리 2017-10-3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장석주를 떠나야 한다.
의 이유를 알고 싶네요.

전체중에서 35번을 제일 먼저 읽고 싶어요.
근데, syo님 진짜 많이 읽으시네요. 부럽....
난 대한민국 평균 핸드폰 사용시간 3시간 지키느라 ㅠㅠ

syo 2017-10-31 23:35   좋아요 0 | URL
댓글로 대답하기에는 이유가 많고도 길어요. 점점 애증의 관계 비슷하게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고.

35번은 강력추천입니다. 17번은 장석주의 책을 3권 이상 읽은 사람에게는 비추입니다. ㅎㅎ

cyrus 2017-11-0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한국 맞춤법 검사기도 받아들이기 힘든 맞춤법을 알려줘요. 한글 프로그램이 자꾸 ‘잊혀지다‘를 ‘잊히다‘로 고치라고 할 때 제일 짜증나요.. ㅎㅎㅎ

syo 2017-11-01 12:2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냉혹한 한컴.

2017-11-0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11-01 12:27   좋아요 1 | URL
syo는 걍 씁니다! 웬만하면 구어체다보니 맞춤법 검사하면 멘탈이 털려서요...

봄밤 2017-11-1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쇼님 <저녁의 연인들>아직 못읽어봤는데 왕추천인가요? 아아 어서 읽어봐야겠군요!
그런데 언제 이렇게 다독다독하시는 건가요. 쇼님의 읽은 책 소개하는 페이지도 소화를 못하는 저는...(눈물)

syo 2017-11-11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참 좋았습니다^-^
부디 syo가 해태눈깔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