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풍경소리 

구효서 외 / 문학사상사 / 2017


● 구효서,「풍경소리」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읽고 있다는,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딘가는 몸의 위치를 옮기는 방식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곳, 이곳과는 다른 이치로 운행되는 곳, 왜라고 묻지 않는 곳, 그리고 마침내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살아야만 하는 독자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실어 보내는 그런 곳이다. 맑고 예쁘게 빚어진 소설은 그곳을 비추는 그윽한 우물 같다. 목을 축이려 찾아들었다 기어이 마음을 축이고 돌아가는 글. 이 글이 대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압도적이다.


● 김중혁,「스마일」

김중혁의 소품이다. 음, 그러니까, 음..... 김중혁의 소품이다.


● 윤고은,「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확실히 젊은 작가는 뭔가 젊군, 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윤고은은 syo보다 연상에다가 중견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15년차 소설가였다. 그렇게 고쳐 생각하고 다시 훑어보니, 이번엔 어쩐지 연륜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와, 쓰고 보니 정말 간사한 평이군.


● 이기호,「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스토리텔링 하나로 놓고 보면 단연 으뜸이다.「풍경소리」가 읽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다른 세계로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면,「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는 읽는 내내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꽁꽁 묶어놓는 작품이겠다. 이기호의 스펙트럼이란. 이기호는 이런 소설가라는 쉬운 단정에서 달아나기 위해 이기호는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인 것 같다. 


● 조해진,「눈 속의 사람」

길게 이어져 내려온 단편 소설의 문법이 제공하는 무대 안에 단단히 자리잡고 흔들림 없이 과거를 서술하는 힘. 시작부터 끝까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삶을 많이 닮은 거라,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깊이 파고들진 않아도 탄탄히 다져진 문장과 그 문장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


● 한지수,「코드번호 1021」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가슴이 뭉근해지는 데가 없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평범하고 무난한 소품 느낌. 한지수의 다른 책을  찾아 읽겠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킬만 한 글은 아니었던 걸로.



+ 솔직히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syo의 눈은 무지렁이 눈이지만, 가진 게 그 눈 뿐이라 그 눈으로 봤는데 나머지 다른 작품을 다 합친 것보다「풍경소리」하나가 좋았다. 무조건 이거라고 생각했다. 경합이 있었다면 이기호라고 짐작했다. 심사평을 읽어보니 딱 들어맞았다. 와, 살다 처음으로 심사평하고 입을 맞췄다.


+ 그렇다면 구효서의 최근작 네 권을 노린다!「풍경소리」에 필적할만 한 글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2017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 

황정은 외 / 은행나무 / 2017


● 윤고은,「평범해진 처제」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무래도 윤고은의 재발견인 것 같다.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황정은에 대적할만 한 두 명의 젊은 여성작가'라는 추천을 듣고 윤고은의 《알로하》와 손보미의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읽으면서 syo가 풀어보려 노력했던(생각해보니 크게 노력하진 않은 것 같은)  미스테리는 그들이 문단에서 얻어낸 인정과 각광의 이유였다. 도대체 왜. 이해가 안 되는데. 이제는 재작년의 syo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왜. 이 정도로 쓰는 작가한테 대체 왜 그랬어. 이건 만약 syo가 20대 초반에 소설가가 될 마음을 품고 아등바등 노력했다면 40대쯤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래, 딱 이 정도로만 쓰고 싶었었지, 할 글이다. 가볍고, 개인적이고, 은근 비꼬고. 와, 윤고은의 책을 다시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 윤성희,「여름방학」

여름방학은 언제일까. 얼마나 고단한 길을 지나와야 여름방학에 도착할까. 누군가는 엉금엉금, 누군가는 성큼성큼. 누구에게나 여름방학은 오고,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이름을 바꿀 것이다. 여행을 떠나거나 이름을 바꾸거나, 언젠가는 결국 방학은 끝난다. 날은 점점 추워질 것이고 길은 점점 내려가겠지. 누군가는 여행의 기억을, 누군가는 옛 이름을 손에 쥐고 엉금엉금 성큼성큼 겨울방학을 향해 가겠지.


● 이기호,「최미진은 어디로」

그러니까, 투박하게 나눠 김언수의 이번 작품을 재미계통으로 분류한다치면, 하필 같은 책에 이기호의 작품과 함께 실린 것은 김언수의 불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김씨 문중에 태어나 작가명 가나다 순으로 작품이 배치된 책에서 이기호보다 앞서 읽히게 되었다는 점이겠다. 이 작품 딱 여섯 페이지를 읽는 동안, 김언수의 글 전체를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막판엔 내가 언제 웃겼냐는 듯 한 순간에 애잔하다. 아, 날 갖고 놀았어. 명불허전.


● 편혜영,「개의 밤」

편혜영의 글은 너무 음산해서 좋았고 때론 그래서 싫었다. 무섭다는 표현이 좋겠다. 어떤 무서움은 즐겁고 또 어떤 무서움은 괴롭듯 편혜영의 글은 항상 무섭다.  검고 질퍽거리는 늪처럼 무섭다. 짖지 않는 개나 악의 평범성, 괴물을 상대하다 괴물이 되는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지만, 어쩐지 쉽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늪을 늪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까.



+ 이상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뜻밖에 윤고은에 새로 주목하게 되었다. 분명히 별로였는데, syo의 눈이 밝아진 것일까, 윤고은의 손이 깊어진 것일까. 이제 윤고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윤고은과 함께 이기호 또한 두 권의 수상작품집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는데, 두 개의 글이 판이하다. 문장 가운데 이기호의 손에서 나왔음을 엿볼 수 있는 시그니처들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 보면 같은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고 해도 믿겠다. 


+ 윤고은과 이기호는 각기 다른 작품으로 두 권의 책에 등장했지만, 황정은은「웃는 남자」하나로 양쪽 상 모두에 후보로 올랐다. 이상에서는 실제 우수작으로 선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심사평에 「웃는 남자」에 대한 평이 계속 등장한다. 그럴거면 넣지, 왜 뺐을까. 의아한 지점이다. 솔직히 김중혁과 한지수의 이 작품들은 황정은을 밀어낼 만한 것들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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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1-0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이 멋져요^^

syo 2017-11-06 08:25   좋아요 0 | URL
허접합니다. 이런 걸 평이라고 써도 되나 종종 의심합니다....

비공개 2017-11-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권의 작품집을 사놓은지가 한참 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syo님 덕분에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

syo 2017-11-10 14:45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시간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2017이니까 2017에는 읽으시는 것이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