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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가 소소해서 큰 기대 없이 괄약근을 풀었는데 뜻밖에 어마어마하게 우람한 친구가 쏟아져 나왔을 때, 좋았다면 그걸로 변태입니까? 그 위용에 압도당해 변기 레버에 손가락을 올린 채 몇 초간 멍때렸다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까? 쉽게 빨려 들어갈 것인가를 가늠해봤던 것 뿐인데도요? 다들 그러는 게 아니었나요? 남이 싼 건 클수록 더럽지만 내가 싼 건 클수록 기특하다는 심정, 그건 자유, 평등, 그리고 배꼽과 함께 인간이라면 다 갖고 태어나도록 하늘이 선물한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서두를 이런 드러운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지금까지의 syo는 이웃분들의 아름다운 서평을 감상하면서, 아, 내가 쓴 이 잡스럽고 허접스럽고 한 것은 도저히 서평 또는 리뷰라고 칠 수가 없겠다, 하는 자격지심에 몸을 낮춘답시고 지가 쓴 글들을 '일기'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이것이 또 일기라는 장르 입장에서는 불의의 타격을 받은 셈이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일기의 의견을 물어봤다면, 아니, 이런 같잖은 글 써놓고 어디서 일기를 들먹여 들먹이길, 서평이 먹고 남은 쓰레기를 왜 우리가 치워야 되는데, 야, 서평애들한테 이 똥 다시 다 가져가라 그래! 이랬을 것을, 겸손이 화를 부른 게지. syo가 미욱하여 서평의 눈치만 볼 줄 알았지 일기의 고충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기왕 일기라고 부를 거 앞으로는 일기다운 일기를 쓰겠다, 고 다짐을 한 번 해 본 것인데, 그러고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아침에 똥싼 이후로 기록적인 사건이 없었다. 그렇다면 똥인 건데, 얄짤 없이 똥인 건데, 정녕 똥으로 괜찮을까? 에이, 뭐 어때, 무릇 일기라 함은 원래 이런 걸 기록하는 장르 아니었던가. 하여 과감하게 똥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갑자기 일기 장르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은 이런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읽은 것들 중 단연 웃긴 책이다.


내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오 솔레 미오(O Sole Mio)」도 이들이 불렀는데, 후렴 부분을 놀랍게도 돌림노래로, 그것도 한 명이서 한 파트를 길게 끌어 부르면 그사이 다른 한명이 합류하고, 이렇게 둘이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 부분을 길게 끌면 마지막 한 명이 합류하여 마침내 화음이 폭발할 즈음, 모노톤으로 함께 'O Sole Mio'를 외쳐 대는 것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가 모노톤으로 '헛살았어'라고 외칠 만한 목청과 울림통이었다. 마침 공연을 본 건물은 약간 뾰족한 아치 돔 형태로 지어진 상당히 오래된 유럽식 교회였는데, 그 탓에 공명이 일어나 혹시나 누군가 두성음까지 뱉었다면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열두 제자의 육체에 금이 가 땅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역시 가장 위대한 악기는 신이 만든 인간의 몸이라는 울림통이었다. '시와 바람'의 메인 보컬로서 협연을 하려다가 한·독 양국 간의 외교를 생각해 묵묵히 박수만 쳤다. (56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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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을 다시 읽고 있다. 예전에『알로하』에 데었던 생각이 나서 일부러,『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를 골라봤는데 아이고 재미지다. 애들 등록금이랑 어학연수 비용으로 쓰게 오늘에야말로 오래 묵은 1000만원 빚을 받아 오라고 보냈더니 이 화상이 돈 대신 된장 50리터를 짊어지고 온 이야기와, 후원의 대가로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고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소각되는 장면을 똑똑히 지켜 보아야 한다는 희한한 조건을 건 후원자를 만났는데 알고보니 그 후원자가 말하는 개였다는 데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참신하고 신기하다. 이런 작가를 죽어라고 까댔다니, 2년 전의 syo 역시 참신하고 신기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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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0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론이 이토록 배설적인 일기는 처음이네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문장입니다.

syo 2017-11-06 19:17   좋아요 0 | URL
흉내내셔서는 안되는 문장입니다. 식사 시간에 이게 무슨 민폐인지 모르겠어요^-^

이하라 2017-11-06 19:22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식사 시간이었네요ㅋ

프리즘메이커 2017-11-0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고 아름답습..니다!!

syo 2017-11-06 19:48   좋아요 1 | URL
꼭 보신 것처럼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cyrus 2017-11-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장실에 있다가 카타르시스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ㅎㅎㅎ

syo 2017-11-07 10:08   좋아요 0 | URL
과연, 괜찮은 해석입니다.

chaeg 2017-11-0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문장이 더 웃기다고 하면 최민석 작가님이 기분나빠하실까요^^;?

syo 2017-11-08 13:15   좋아요 0 | URL
그러다 혼나세요 ㅎㅎㅎㅎ

더 웃기게 느껴지셨다면 기분 탓입니다. 아마도 똥 이야기라서 그럴 거예요.
세상에 똥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