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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평점 :
1
처음 확인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짝꿍애가 도대체 넌 왜 그렇게 국을 흘리냐고 물어왔다. 진짜였다. 엄청 흘리고 있었다. 숟가락에 국물을 가득 적재하면 여지없이 줄줄 흘리는 것이다. 미세하지만 명백하게, 나는 손을 떨고 있었다. 국물을 숟가락 절반 분량으로 연속 두 번 떠 먹는 공법을 도입하자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헤아렸다. 나는 수술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의사를 포기했다(나중에 안 바, 진짜 문제는 성적에 있었다.) 나는 조준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군인을 포기했다(이 결정은 2년여의 군 생활 + 3번의 예비군훈련을 통틀어 쏜 수백발의 총알 중 표적에 통산 열 네발을 집어넣음으로써 잘한 선택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사진사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취미로는 찍을 수 있겠지.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건 아닐거야. 집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눈물이 다 말라 있었으므로, 엄마 아빠는 어린 나의 여린 맘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냄새도 맡지 못했을 것이다.
사달은 다음 해에 났다. 졸업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현상해봤는데 모든 사진 속의 모든 인물들이 진동하고 있었다. 뭐야 이놈들은, 것 참 가만히 있질 못하고- 라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럴리가 없잖아.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졸업여행이 아무것도 남지 않고 먼지처럼 사라졌으므로,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그대로 올라타고 안방으로 쳐들어 간다. 엄마, 나를 왜 이렇게 사진도 못 찍는 빙신으로 낳았어! 아빠,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가 그렇게 허구헌날 술을 마시니까! 이것 좀 보라고, 내 손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잖아! 으아아아아 아아아앙. 그리고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는 잠시 나를 지켜보는 것 같더니, 이내 내 뒷통수를 후려 갈겼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기고는 방에서 나갔다. 야, 너 내일부터 아빠한테 존댓말 해.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2
삶이란 대체로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다양한 가능성들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대개는 그냥 스쳐지나가고, 내 손에 쥐어지는 거라곤 내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아니지, 우리 아빠가 좀 더 잘했더라면, 것도 아니지, 우리 할아버지가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식의 회한과 원망뿐이었다. 포기를 배우는 일은 내리막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점차 맹렬히 쉬워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자꾸 주워올리는 일만 반복하다가 정신차려보니 대학에 와 있었고, 학생증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칙칙한 회색 인간이 되어 칙칙한 회색 인간들 속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칙칙한 회색인간들이 싸이월드라는 세계속에서는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비결은 사진, 사진이었다. "곱창집에서 내 영혼의 동반자들과 함께. 새끼들아, 반가웠다. 사랑한다." "크림 파스타 with 오빠. 아, 행복이란 이렇게 작고 소소한 데서 오는 걸까?"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이따위 똥글들도 사진만 하나 떡 걸어놓으면 다 멋있어 보였다. 아, 학생 식당에서 2800원 짜리 돈가스를 먹어도 사진만 있다면, 사진기만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스테이크 하우스가 되는 마법이라니.
그러나, 과거를 잊은 인간에게 미래는 없었다. 없는 살림 쪼개서 무리하게 디카를 하나 사 봤지만 멋진 신세계는 열리지 않았다. 다 이놈의 손 때문이었다. 사진이 제 아무리 돈가스를 스테이크로 바꾸는 요술을 부린다 해도, <돈가스>를 찍으면 <도ㄴㄱ ㅏ스스스스스스>가 나오는 경우에는 별 도리가 없는 듯 했다. 결국 사진은 다시 질시와 부러움의 영역으로 되돌아가고, 신입생의 밤은 술과 술과 술로 젖어만 갔다.
3
살다 보니 사진을 만날 일이 많았다. 좋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화가가 될 필요는 없듯, 사진 한 방 제대로 못 찍는 놈도 좋은 사진을 보고 감탄하고 감동받기는 다반사였다. 그러나, 사진을 대하는 근본적인 마음가짐이 질투와 좌절로 칠해져 있었기 때문일까, '아, 이 사진 아름답다.' 보다는 '아, 이 사진 잘 찍었다.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아주 가끔 사진집을 본다거나, SNS에 도는 좋은 사진들을 만날 때면, 사진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사진 뒤에 숨어 있을 촬영자를 소환해 찬탄과 부러움을 쏟아붓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진과 나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점점 팽창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흔들린 사진이 있었다. 흐르는 사진이 아니라, 흔들린 사진이.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사진. 책의 제호와 작가의 이름이 써 있는 그 공간 옆에 작게, 윤곽이 번져나가 어떤 식물의 줄기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할 필요도 없는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이 있는 곳을 찾아 훌쩍 페이지를 넘겼고, 76쪽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
떨리지 않는 것은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움직이지 않고, 떨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울 자격이 없다.
운다는 것은 내 영혼이 떨리기 때문이다.
운다는 것은 내 영혼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운다는 것은 내 영혼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흔들린다고 두려워 마라.
비로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줄기>를 <ㅈㅜ우우우우ㄹ기이이이이>로 찍었는데 <흔들리는 줄기>로 읽히는, 나아가 <흔들리는 사람>으로도 읽게 되는 근사한 사진과 글의 앙상블이었다.
4
한 페이지를 앞에 놓고 묵묵히 생각해본다. 아, 흔들리지 않는 피사체를 내가 흔들리게 찍었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찍은 거라고 여길 줄은 왜 몰랐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배제하는 척, 실은 흔들리는 내 자신을 온당하게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이유가 사진을 흔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흔들린 사진을 사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사진에 움직임이 필요하다면, 움직이지 않는 사진으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방법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움직이는 사진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는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할 수 없는 것을 전체로 치환해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유기한 것은 온전히 자신만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5
그렇다고 바로 "이제는 사진이다!" 라며 들로 산으로 떠날 엄두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내가 흔들어 놓은 사진을 미워하지 않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서른을 넘기고 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진작 이 사진을 만났더라면, 아마 스무살의 나는 싸이월드에 사진을 찍어 올리며 "내 사진 흔들리는 거, 나도 알아. 인정할게. 하지만 새끼들아, 산다는 건 원래 흔들리는 거야." 등등의 같잖은 지랄글을 반드시 쓰고야 말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