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맛


서른 살 생일날 먹은 케이크가 냉장고에 아직 몇 조각 남아 있던, 그러니까 풋풋한 시절의 따뜻한 어느 날, 이랬다. 젊었다.


키친 테이블 위에 올린 팔로 오른쪽 볼을 괴고 조용히, 테이블 너머에서 잘그락 잘그락 설거지에 열중하는 뒷모습을 본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아무렇게나 옷을 걸친 저 사람. 아무래도 좋은 사람. 투명한 머그컵의 둘레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 뒷모습을 지켜보기 좋은 사람. 괜히 한 번 불러 볼까. 슬그머니 다가가 안아 볼까. 아니면, 하얗고 따뜻한 저 목의 줄기 어디쯤에 하얗고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으며 슬쩍 가슴을 움켜쥐어 볼까. 뭐야, 저리 안가? 후후, 이것은 어제 저녁 설거지 하다가 난데없이 유린당한 내 엉덩이의 복수다. 에이, 됐다, 못 만지게 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시선을 돌려 머그컵 겉면에 맺혀 있는 작은 물방울을 들여다본다. 뭔가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창이 넓은 집, 점심이면 스미는 햇살만으로도 초겨울은 거뜬히 넘길 수 있는 빛이 많은 집이라 유리로 된 물건들이 이 집 안에서 조금 더 아름다웠으므로, 혹시 저 사람 유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그 뒷모습과 내 눈 사이에 머그컵을 가져다 들고는 이리저리 초점을 맞춘다. 커피 마실래? 뒷모습이 전기포트 스위치를 올리며 말한다. 응, 커피. 무슨 커피 마실래? 음, 갈색. 검은 거 마시지 왜? 갈색이 달잖아. 검은 건 써. 그럼 마시고 이 닦아. 알았어. 꼼꼼히 닦았나 볼 거야. 머그컵 좀 갖다주고. 뒷모습이 잠깐 앞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뒷모습이 되어 찬장에서 커피를 꺼낸다. 아까 그냥 가슴 만져 볼 걸 그랬나? 갸웃갸웃 하는 동안 뒷모습이 양 손에 머그컵 하나씩을 들고는 앞모습이 되어 맞은편에 앉는다. 내 머그컵은 갈색, 앞모습의 머그컵은 검은색. 일루 와, 옆에 앉아. 싫어, 니가 와. 내가 간다. 그 사람 앉은 의자에 억지로 엉덩이를 들이민다. 에이 참, 멀쩡히 빈 의자 냅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왼쪽 엉덩이를 살짝 들어 내 오른쪽 허벅지 위에 반쯤 걸쳐 앉는다. 불편해? 괜찮아. 안아 줄게. 오른손으로 어깨를 둘러 감고, 방금 전까지 앞모습이었던 옆모습과 조용히 커피를 홀짝인다. 있잖아, 아까 자기 설거지할 때, 가서 가슴 만지려다가 참았어. 대단하지? 변태. 뭐가 변태야. 자기도 어제 나 설거지할 때 엉덩이 막 만졌잖아, 야하게. 그건 자기 엉덩이가 만지고 싶게 생겨서 그런 거고. 자기 가슴도 보면 막 만지고 싶게 생겼거든? 야, 설거지하는데 뒤에서 엉덩이는 보이지만 가슴은 안 보이거든? 아닌데. 자기 건 뒤에서도 귀퉁이 조금 보이는데? 변태야,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그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뽀뽀나 하자. 


으, 검은 맛.  



사랑에 대한 글은 이제는 읽기도 쓰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실은 본능, 충동, 욕망 등의 변장일 뿐이라고 단정하며 짐짓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성숙하다고 믿는 미성숙한 소년들을 뿌듯하게 만들기는 하겟으나, 그것은 사랑에 대한 온갖 미신과 기만을 재생산하는 담론들 속에서 달콤하게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없다.

_ 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_ 가즈오 이시구로,『남아 있는 나날』



둘 다 지금까지 키스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 시간이 흐르자 키스를 해 보았는지 못 해 보았는지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_ 스콧 피츠제럴드,『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검은 마음


이건 이 자리에서 지어낸 이야기다. 


"인간이 오감 중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것은 시각이야. 그렇지만 눈이라는 건 일방적으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오히려 시선은 때론 폭력이나 감옥처럼 동작하기도 해. 사르트르나 푸코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귀와 코와 혀는 어떨까. 메커니즘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역시 그 감각들 또한 주체를 위해 복무하는 경향이 커. 객체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데 쓰이는 메스나 망치 같은 거야. 어쩌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서로 다투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이런 이기적인 감각들에 너무 의존해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촉각은 어떨까. 만지는 것은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 역시 그 손을 통해 나의 체온을 느끼지. 맞닿아 있는 두 피부 사이에 우열은 없어. 경계만 있을 뿐이지. 그 경계 또한 우리가 모두 체온을 지닌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점점 흐려지고. 누구에게나 말없이 안아주는 따뜻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한 경험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생각해. 우리는 이제 촉각을 배우고 촉각을 익히고 촉각에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체온을 나누는 대상으로 인식할 때,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슬픈 싸움들을 종식시키고 하나된 인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눈동자만 굴리며 차갑게 쳐다만 보기보다 이 손, 오로지 이 뜨거운 손으로 말이지." 


"음, 시도는 좋았어. 그래도 아직 가슴은 안 돼."




어두운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웃음과 함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핵심. 악마가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려 힐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_ 금정연,『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나는 동물이다. 나는 내 욕망의 전략에 이끌리어 내가 선택하고 사유하는 양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사유하는 척한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예를 들어, 이쁜 여자의 젖·궁둥이, 내 코에 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오,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맵다-물 비린내,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과일, 단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욕망이다. 내 욕망은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그 나름의 필승의 전략을 짠다. 나는 백전백패다. 내 욕망은 나에게 억합하지 말라, 해방하라고 권유한다. 권유하는 것은 욕망이고, 나는 수락하고 선택한다. 끔찍하다.

_ 김현,『행복한 책읽기』



...


쓰고 보니 가슴 특집 같다. 가슴에 환장한 놈 같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오해입니다!


물론, 넌 참 가슴 좋아해, 이렇게 요약되는 말의 다채로운 배리에이션들을 사귀는 사람들로부터 참 많이도 들었고, 지금도 착실히 듣고 있다. 생후 일주일만에 분유를 먹어야 했던 불우한 성장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프로이트 이야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참 쓸모 없다, 그 할아범.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syo가 실제로는 꼭히 가슴이 아니라 그저 말랑말랑하거나 몰캉몰캉한 것이라면 어디든 좋아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요즘은 가슴에 집착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편인데 사실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굉장히 잔악무도하다. 바로 팔뚝, 등, 배로 옮겨 간 것이다..... 내 생각에도 정말 악랄하다..... 난 좋은데, 말은 안하지만 차라리 가슴 시절이 나았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나보다 가슴 큰 여자가 나타나서 너 꼬시면 어쩔래, 하는 식의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어릴 적에는 많이 들었으나, 그녀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두 가지는 첫째로, syo는 사실 가슴이 어찌됐건 그런 건 모르겠고 무조건 귀여운 게 장땡이라는 극성진성귀여움성애자라는 것과, 둘째, 이게 더 크리티컬한 건데, syo는 사실 가슴이 크건 작건 있건 없건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살며 그 누구에게도 "꼬심"을 당해 본 역사가 없는 인간이며, 미루어보건대 그런 기조는 앞으로도 한없이 무한하게 이어질 것 같다는 슬픈, 내게만 슬픈 진실......


하지만 귀요미 멍멍이들은 어쩐지 syo를 좋아하지. syo도 멍멍이를 좋아하고. 그럼 된 거야.


으하하하하 그럼 된 거야........ 




심상정,『난 네 편이야』를 마침.

스기타 아쓰시,『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를 읽는 중.

발터 벤야민,『모스크바 일기』를 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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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28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움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syo 2018-01-28 23:0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구합시다! 멍뭉이를 풀어라~~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달달하니 좋네요.. ㅎㅎ

syo 2018-01-29 00:08   좋아요 0 | URL
저땐 참 애긔애긔했네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01-2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여움성애자입니다ㅎㅎ 물론 가슴도...ㅋ

syo 2018-01-29 19:05   좋아요 1 | URL
아뇨 전 가슴은 아닙니다(단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창 너머로는 햇살이 쏟아지는데, 눈으로 보면 너무 따뜻할 것만 같은 풍경인데도 실제로는 영하 14도. 산더미 같은 책들을 쌓아놓고 오늘 읽어야 할 것들을 오늘 읽을 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손에 쥐기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돌아보면, 


펄떡펄떡 맥이 뛰는 설렘을 품어 안은 채 몇 개나 되는 새벽을 지치지도 않고 건너 온 기억도, 또 가늠할 수 없는 질량에 한껏 짓눌려 이제 더는 못하겠다며 꽁무니를 내뺀 기억도, 모두 다 활자에 업혀 내게 온 것들이다. 읽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변덕이 심한지, 읽는 일이 즐기는 일이 되는 낮과 읽는 일이 버티는 일이 되는 밤을 번갈아 지나오다 보면, 어떤 때는 3일이 다 가도 해가 지지 않고 또 어떤 때는 한 달 내내 밤과 밤과 밤만이 이어진다. 어느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낮과 밤이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다른 생각의 침략 없이 읽고 읽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창 밖으로 내려 앉은 새벽, 세상에서 가장 밝았던 어두운 그 새벽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또 한 번 활자의 꾐에 빠져 나를 잊고 싶다. 멀리 멀리 나를 쫓아보내고 싶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도 모든 것을 다 이룬 그 새벽을 아마 다시 마주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행여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오늘 읽어야 할 것들을 내일에서야 읽지는 않는 날들이 쌓아 이룬 주름들 가운데 어딘가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활자를 손 끝으로 한 자 한 자 쓸어가며, 연필로 종이를 밀어가며, 스탠드 불빛 아래 엎어져가며, 그렇게 만들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 내가 달리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햇살이 쏟아져도 충분히 추운 날이다.



의미를 상실하여 절망하면 독서는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독서의 의의가 가장 풍부하게 자라는 곳은 바로 책의 세계다. 인간의 최초의 선의는 불꽃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디찬 현실 세계의 공기에 의해 쉽게 꺼져버린다. 불꽃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땔감을 넣어야 하지만 메마르고 추운 세상에는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땔감인 독서가 지속되어야 한다. 세계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지속되는 독서다.

_ 탕누어,『마르케스의 서재에서』



2


벼랑 끝에 오래 서 있어 본 사람은 생각한다. 어쩌면 이렇게 매일 심연을 내려다 보며 살아야 하는 여기 이 위태위태한 벼랑 끝 한 뼘의 땅이, 결국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자리는 아닌가 하고. 벼랑 끝에 처음 서 본 사람은 발버둥을 친다. 벼랑 아래로 떨어져 본 사람은 포기하거나 다시 산비탈을 오른다. 그러나 벼랑 끝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어쩔 줄을 모른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희망을 너무 오래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앞도 뒤도 모두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으면서 동시에 앞도 뒤도 모두 내 자리 같다. 그리하여 결국은 여기만이 내 자리가 된다. 벼랑 끝에 오래 서 있어 본 사람들은 어느 방향으로도 쉽게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다른 곳에 선 사람들은 말한다. 너희들은 절망에 중독되어 있다고.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절망에 중독된만큼 희망에도 역시 중독되었다. 희망과 절망은 길항한다. 그러나 딱 한 군데, 희망과 절망이 공모하는 자리가 있다. 그곳이 벼랑 끝이다. 심연에 아직 몸을 담그지는 않았으나 누구보다 오래도록 내려다 보는 이들이 내몰린 자리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평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_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책』

     


3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를 읽기 시작하다.

장석남,『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읽다.

이진경,『철학과 굴뚝 청소부』를 다시 읽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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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오늘 글은 그런 책을 읽으셔서 그런가 무지 철학적!?( “)
암튼 토비 님 화이티잉~~~~!!(소리 크게 질러서 저렇게 갈라진 거에요!! ㅎㅎㅎㅎ)

syo 2018-01-26 16:5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철학적은요 무슨, 공부하기 싫어서 징징대는 거예요 저거 다 ㅎ

화이팅은 잘먹겠습니다!!^ㅠ^

2018-01-26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1-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문단 너무너무 좋아요.
이렇게 마음을 와닿는 글을 ‘알라딘 서재-일기장에‘서 만났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잘 읽고 가요. 고마워요, syo님~~^^

syo 2018-01-26 20:33   좋아요 0 | URL
단발님 그동안 어디가셨던 거예요. 알라딘이 텅 빈 줄......^^

. 2018-01-2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서재는 여러 번 들락날락했는데 댓글 다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늘 syo님 서재를 먼저 찾곤 해요. 예전만 해도 좋아하는 작가따라, 좋아하는 수상작따라, 또는 꽂히는 표지나 제목에 따라서 책을 고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syo님 후기를 따르게 되었네요(왠지 쑥스러워 하실 것 같지만😸). 물론 양적인 면에선 발끝도 못 미치지만요🌝 제 취향대로만 골라 읽으면 아무래도 장르가 한정되서 인지.. 특히나 한국사나 소설쪽만 보게 돼서.. 인문학도나 돼볼까하고 고른 서적은 하나같이 지루하기만 해서요.
말이 길었는데 여하간 syo님 서재를 조용히(음침하게) 자주 들르는 저같은 사람도 있답니다😋 모쪼록 아침저녁으로 날이 싸늘한데 부디 단디 입으셔서 감기 예방하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syo 2018-01-28 10:54   좋아요 0 | URL
어마어마한 댓글이네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닉네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님🤗
제 짤막한 후기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합니다. 말씀 듣고 나니 요즘은 많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있어서 민망하네요ㅎㅎㅎㅎ
아무쪼록 .님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좋은 책, 재미진 책 많이 읽으시길 응원합니당😀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그해 우리의 마음들을 기억한다.

 

눈발이 옅어 겨울도 옅은 고장에 뜻밖의 큰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이 얼었다. 아이들은 매일 걷는 길을 조심조심 걸었고, 학교에 모여 매일 듣는 수업을 듣거나 매일 보는 교재를 보며 겨울방학을 녹였다. 몇몇은 화가 났다. 마음이 얼었다. 그래도 숨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길이 얼었고, 얼어붙은 길 위에서는 언 마음이나 녹은 마음이나 모두들 조심조심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들은 탈주를 포기하고 교실에 앉아 그저 조금씩 딱딱해지는 중이었다. 마음의 모서리가 줄곧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모서리가 다른 모서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만 해 봐. 이곳은 웅크린 모서리들의 각축장. 겨울이 옅은 고장에 사는 아이들의 안으로, 안으로 겨울이 열렸다.

 

또 그해 그 여자아이가 맥없이, 잘못 없이 받은 상처와 우리의 잘못을 어림한다.

 

옆 반 아이가 창문을 열고 내지른 소리가 우리 반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 고개 좀 들어 봐.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거칠게 열어젖힌 창문 바로 아래 우리 학교의 담이 있었고, 그 담 너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 위로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작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의 입이 뿜어낸 나쁜 말들의 손끝이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한 번 보라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여자아이가 웅크린다. ! 나는 어때? 저 새끼는 고자야! 나쁜 말이 커지고 여자아이는 더 작아진다. 아가씨! 놀다 가라니까? 오빠가 잘해 줄게!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미끄러져 휘청한다. 길가에 면한 여섯 개 학급의 창가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어이, 아가씨, 괜찮아? 그러다 넘어져! 여자아이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이미 너무 작아져 있다. , XX,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너 걱정하는 거 아냐! 여자아이는 여섯 개 학급을 겨우겨우 지나쳐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을 돌아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끈적거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그 무섭고 더러운 말들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을까? 그 검은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창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겯고 매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자기 지갑을 열어 서로의 손에 먹거리를 쥐어주는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더운 여름 한 번 건네주면 땀에 찌들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새로 빨아 가져온 체육복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는 친구였다. 저 친구가 한 문제를 더 풀면 내 등수가 떨어지더라도 그 한 문제를 기어이 알려주고 차라리 제 잠을 줄여 공부를 더 하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샤프를 쥐고 다시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부끄러워 마땅한 것은 우리의 입이 만든 말들이었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뱉은 부끄러움들이 그 아이가 걷는 길 위에 미끄러움으로 쌓이고, 얼음이 아니라 말이 만든 그 미끄러움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넘어지면 더 큰 부끄러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이는 그 지옥 같던 여섯 개 학급의 옆길을 더 조심스레 더 천천히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슬픈 발걸음 말고 다른 보폭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몰랐고,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큰 도로를 향해 여자아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여자에서 다시 연령이나 외모, 직업, 결혼여부 따위로 매겨지는 수많은 하위호칭들의 터널 속을 강제로 걸어 나가면서, 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조심스레, 천천히, 포착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넘어지지 않으려 웅크리며 걸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녀의 보폭을 그녀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걷고 싶다면 성큼성큼 걷고, 잠시 멈춰 서서 여섯 개 학급의 창문 속에 숨은 머저리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다면 손가락도 하나 펴서 시원하게 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빚은 말들과 그 말들로 더러워진 어느 겨울의 풍경을, 어린 날의 치기나 한때의 추억이라며 한 젓가락 술안주로 소비하는 친구들이 아직 남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만든 부끄러움은 끝내 우리의 것이며,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부끄러움을 부인하는 일이 더 큰 부끄러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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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1-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지요.
하지만 너무 읽을 책들이 많아서 잠시 미루어
두었었는데 예약이 되었다는 말에 오늘 아침에
집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타이틀 단편을 읽었는데 그것 참...

점강이 아닌 점층적 자각으로 이끈 점이 문학
적 클리셰이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
니다.

syo 2018-01-24 16:22   좋아요 2 | URL
솔직히 제 눈에 조남주 작가는 재능있는 소설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지영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문학적˝으로 기똥찬 데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는 아니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이만큼 읽히고 이만큼 호명되는 건, 제 취향이랄지 작가나 작품의 ˝문학적˝ 역량 바깥에서 작용하는 뭔가가 있고, 그게 소위 문학적이라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기준인 건지 메타적으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데도 있는 게 아닌가 하구 뭐 그렇지요.

레삭매냐 2018-01-24 16:34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신랄하게 더 까고 싶더라구요...

시류에 영합한, 시류를 만들어낸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니깐요.

아무래도 방송작가 출신이다 보니 말랑한 감성을 공략
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남 오빠에게>도 소설이라기 보다 왠지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yo 2018-01-24 17:07   좋아요 2 | URL
허허.
전 신랄하게 까려했던 것은 아닌데;;;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시류에 영합‘과 ‘시류를 만들어 낸‘ 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syo의 기준에서 보면 천지차이입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는 시류에 영합했거나 시류를 만들어 냈다기보다 ‘시류를 드러낸‘ 소설이라고 보고 싶고,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몸으로 느끼고 또 그 중 일부는 힘들여 증언하는 어떤 현상에 서사와 언어의 옷을 입혀 많은 사람들이 ˝맞아, 이거 내 얘기야. 딱 내가 이랬다고 말을 하고 싶었어.˝ 하게 만드는 것도 문학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큰 집단의 언어를 대신 구현해 주었다는 데서 충분히 가치있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건데, 제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이 느끼신 것들, 더 신랄하게 까고 싶으신 마음을 그대로 이해합니다. 평소 레삭매냐님의 글을 열심히 읽고 판단하건대, 소설에 대한 안목으로 보면, 레삭매냐님은 syo가 토를 달기에 너무 높은 데 있는 분이시기도 하구요. 작품 자체나 작가의 역량에 대해서는 뭐 별로 다르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실제로 제 주변의 여성분들도 이 작품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 작품이 말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니데이 2018-01-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날씨도 많이 추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독서괭 2018-0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이 슬픈 글에 귀여운 별명을 불러 죄송하지만 입에 짝짝 붙네요..ㅎㅎ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ㅜㅜ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 저도 인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의아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그런 이중성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오싹해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syo 2018-01-25 14:14   좋아요 0 | URL
토비가 인기가 좋아지면 우선 닉네임을 바꾸고, 나중에는 영어 이름으로 쓸까 싶습니다.
아임빠인땡큐앤유밖에 못하는 영어긴 하지만요.ㅎㅎ

아트 2018-01-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syo 2018-01-28 23:0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ㅎㅎ 제가 감사합니다.
 



꽈배기의 멋 /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금 / 북스톤 / 2017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누가 물어봐도 가장 친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20년도 더 먹은 친구 녀석은 아무말에 매우 능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아니 이놈이 만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사람을 빡치게 만들었다. 나보다 작은 게 너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었는데. 키 크는 비결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여기 어디쯤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협박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돈데 나는 왜 안 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땜에 우리 동네 무파마 멸종 직전이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도 김치한테 미안해서 김장이라도 배울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그 김치에 생굴이 잔뜩 들어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던 가을의 어느 날, 분명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자꾸 날이 덥다며 윗도리를 펄럭대는 그 녀석의 복근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를 발견한 syo는 그걸 못 본 척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나, 점점 더 격렬히 배를 까고 옷을 펄럭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배꼽을 내 눈알에 갖다 대기라도 할 기세라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야, 장난 아니네 복근. 아아, 이거? 뭐 그렇지. 그게 복싱 다닌 결실이냐? 그러자 녀석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요즘 너무 웃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계속 웃다보니까 배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친구야. 니가 그놈의 복싱 배우는 중만 아니었으면, 그때부터 넌 삼겹살을 앞니로 씹어야 했거나, 네이버에 '임플란트 잘하는 곳' 따위를 검색하고 있거나 그랬을 거야.


여러분의 펀치가 syo의 모니터를 뚫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 어금니의 안보는 탄탄하다는 믿음에 힘입어 과장을 보탠 아무말을 하자면, 최민석의 에세이『베를린 일기』를 읽고 났더니만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윗몸 일으키기가 열다섯 개 늘었어요! 과연 복근 전문 트레이너 최민석 작가. 최신작(이라 쓰지만 묵은 에세이 모음집)『꽈배기의 맛』과『꽈배기의 멋』은 그보다는 좀 약해 일곱 개 반 정도, 레그레이즈 세 개 정도 늘려준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린다는데, 그만큼 웃긴다는 이야기지만 막상 글 자체의 꼴은 빌 브라이슨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가까워 보인다. 세 스푼 더 웃긴 무라카미.




그리고 덜 웃긴 최민석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


여친이 교사라, 교육 정책이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코딩이 교육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싶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여친은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예술 콘텐츠 제작에 관한 프로젝트식 수업을 원하고, syo는 두 과목을 원한다. 노동법과 젠더.


학교 교육의 실용성에 대한 우스개는 역사도 깊고 판본도 다양하다. 선생님, 전 문과 가고 법대 갈 건데 미적분은 어따 써요? 더 크게는, 계산기가 이렇게 좋은데 수학은 뭐하러 배워요? 같은 질문들에 다양한 대답들이 짝을 맞추어 해피엔딩부터 막장엔딩까지를 골고루 연출한다. 실용성 면에서 보면 노동법만큼 실용적인 과목이 있을까? 이 교실의 서른 명 아이 가운데 스물아홉 명은 장차 한 번은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노동법은 창인 동시에 방패이며, 비록 그 창은 군데군데 날이 빠지고 방패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래도 맨주먹 맨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젠더는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고 물어온다면 젠더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젠더.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흐릿하게 보여 명확히 가리켜 짚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안경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보기 불편한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또 다른 안경이기도 하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한다. 어떤 눈은 배우지 않으면 뜨이지 않고, 어떤 배움은 이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나 아닌 사람과 어우렁더우렁 살기 위해 언어와 사회규범을 배우듯, 그리고 그것들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착용하는 쪽에 가깝듯, 우리에겐 학습하기보다 장착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초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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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을 ‘젠더 교육’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의 ‘성’이 뜻하는 정의가 고리타분해요.

syo 2018-01-23 15:25   좋아요 0 | URL
성교육과 젠더교육은 지향점 자체부터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교육인 것 같아요. 말을 대체할 게 아니라 교육 유형 자체를 교체해야 할 판이지요.

붉은돼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꿀꽈배기를 즐겨먹는데요
달달하니 소생같은 초딩 입맛에 딱인데, 다만 한가지 혼자 한 봉지 쯤 다먹으면 입천장이 좀 아프다는 ....

syo 2018-01-23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유서 깊은 맛동산성애자 집안 출신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쪽은 주로 과자 본체보다는 땅콩 부스러기에 입천장을 쓸리는 경우지요.

프리즘메이커 2018-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 같은 맛깔나는 글...syo님의 일화만 따로 묶어서 읽고 싶어요

syo 2018-01-24 07:12   좋아요 0 | URL
별 것 없는 소소한 인생입니다.
프메님 오랜만이네요 ㅎ

레삭매냐 2018-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급 작가를 표방하는 최민석 작가가 계속해서
책을 발표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있는 모양이네요 :>

초기작들을 읽었는데 신간들은 다른 책들에
치어서리.

syo 2018-01-24 16:13   좋아요 0 | URL
원래 B급이라는 것이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요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막상 전 이 작가의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1


시립도서관 가운데, syo가 사는 곳에서는 구로도서관이 제일 가깝다. 지하철 세 정거장 하고 도보로 노래 두 곡 듣는 거리.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간다. 뛰면 이십 분 안짝이다. 그렇다고 뛰지는 않는다. 물론 걷지조차 않는다. 가끔 다리는 왜 있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바지를 입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남자는 바지를 입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문명사회다. 세 살에 미적분을 마스터하고 일곱 살에 제5 외국어가 네이티브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열세 살에 플라톤에서 시작해 마침내 열 일곱에 지젝을 완전정복한, 취미가 Fast Fourier Transform 암산인 남자라면 물론 세계적인 천재로 추앙받겠지만, 그런 그라도 바지를 입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타는 순간 즉시 돌아이로 급전직하하여 구금 및 벌금의 처분을 받게 됨은 물론, 덤으로 2호선 하의실종남으로 등극하여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이치다. 그리하여 다리는 머리보다 위대하고, 바지는 걷기보다 위대하다. 그렇다는 것은, 일단 바지를 입었다면 다리가 할 바 중요한 임무를 완수한 것이므로, 그까짓 걷기 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겠다. 뭐, 어쨌든 지하철 역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었잖아. 택시 탈 수도 있었는데.


여담이지만, 바깥 출입이 거의 없는 요즘, syo의 다리는 바지를 입는 용도보다는 주로 간지러울 때 긁는 용도로 사용되는 중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_ 리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


느리게 가는 데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일찍이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체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 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_ 프레데리크 그로,『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떄 걷는 것은 여러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_ 다비드 르브르통,『걷기 예찬』




2


지하철 역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들어갈 때는 분명 입구 앞 긴 의자에 잘 생긴 외국인 남자가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나오면서 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영악하게 생긴 꼬맹이 두 명이 그 외국인 옆에 찰싹 붙어 함께 셀카를 찍고 있었다. 요즘도 외국인 신기해 하는 꼬맹이들이 있단 말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어서라기보다는 잘생긴 외국인이어서 저러는 듯했다. 아 어린노무자식들이 벌써부터 잘 생긴 건 알아가지고,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 못 생기고 속도 좁아 이래저래 빡친 syo 아재가 혀를 끌끌 차며 슬쩍 지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그 외국남이 자기들 사진 좀 찍어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영어였다! 앗, 야생의 외국인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는 데는 one, two, three, one more time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기에 곤란할 일 없이 일단락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난감한 전개가 이어졌다. 바로 syo의 앨범을 호올쭉한 거지로 만든 유년기부터의 고질병, 수전증 때문에...... one more time을 남발하며 몇 장 찍었으나 역시나 죄다 조금씩 흔들려 있었고 계속 찍어 본들 더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았기에 핸드폰을 돌려주며 변명을 시도했다. 근데 여기서 일이 터질 줄이야..... 아무 생각 없이 Because of my handshake, 까지 내뱉고는 뭐? 핸드셰이크? 손 떠는 게 핸드셰이크라고? 와, 인디언이 역삼동 땅투기하는 소리 하네. 이 덜떨어진 미친놈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앙 이 망신 난 몰라!! 하는 내면의 아우성, 자발적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얼어 있는 syo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남자,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인도양이든 뭐든 건너 와, 마음씨도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처럼 광활한 그 남자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syo는 그 손을 맞잡았다. 마치 처음부터 악수가 의도였던 사람처럼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손을 잡고 위 아래로 살짝 흔들며 말했다. Have a nice day and a nice trip. Yeah, thank you. 그의 손은 정말 따뜻했다. 


그러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는데, 등뒤에서 들렸다. 야, 저 사람 동공에 지진났어. 아 어린노무자식들이 벌써부터 관상보는 법은 알아가지고.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


쪽은 팔렸지만,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실제 삶에서 영어가 얼마나 필요한가외는 무관하다.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는 1퍼센트에겐 신분을 상징하는 수단이며, 99퍼센트에겐 1퍼센트에게 빌어먹는 수단이다.

_ 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아니오'라는 목소리에는 사회 개혁을 위한 연대 정신과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모색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

_ 이하준,『고전으로 철학하기』

    


3



김소연,『시옷의 세계』를 마치다.

김서영,『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을 마치다.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을 마치다.

탕누어,『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읽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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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2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 야매 어학원에서 배웠다 그러고 이제 동공지진은 아이쉐이크라고 할께요. ㅋㅋㅋㅋㅋ

syo 2018-01-20 18: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아이쉐이크 좋다ㅋㅋㅋ
그러나 분명 그 순간에는 아이쉐이크가 아니라 아이퀘이크 수준으로 흔들렸을 거예요. 아, 등줄기에 땀이 다 나더라니까요 이 추운 겨울에.

겨울호랑이 2018-01-2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syo님 논리대로라면 제 머리는 모자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군요... 그랬군요. 어쩐지...syo님 덕분에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ㅋㅋ

syo 2018-01-20 23:32   좋아요 0 | URL
네?? 겨울호랑이님 머리가요??
그렇다면 도대체 제 머리는 뭐가 되는 걸까요....(아이퀘이크)

겨울호랑이 2018-01-20 23:46   좋아요 1 | URL
가끔은 제가 영화 「메멘토 」의 주인공같은 부분이 있어서요 ㅋㅋ

서니데이 2018-01-21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올해는 영어공부는 더이상은 안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즐거운 일요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syo 2018-01-21 10: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ㅎㅎㅎㅎ
원래 안하지만요 ㅎ^^

서니데이님두 힐링선데이되세요~

2018-01-21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1-2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