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o크라테스의 변명
5년 전 철원이었다. 북한군이 철책을 넘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 부대로 무전을 날리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때를 대비하여 지루하게 생긴 무전기를 지루한 표정으로 쳐다봐야 하는 지루한 시간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 죽이며 지루할 수밖에 없는 임무를 물샐 틈 없이 지루하게 수행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후임이 입을 열었다. “syo 병장님, 전 왜 이렇게 못 생기고, 키도 작고, 머리도 나쁘고, 집안도 후지고, 돈도 없고, 여자도 없는지 모르겠어요. 조물주 놈은 왜 저한테만 이렇게 박하게 굴었을까요? 불공평하게.”(물론 말투는 다나까 체였습니다만) 뭐지, 이 지루한 질문은? syo가 대답했다. “대신 그분이 너한테 그걸 줬네.” “뭘요?”(물론 말투는 다나까 체였겠습니다만) “니 코 옆에 붙은 그 점 큰 거.” “병장님, 전 진지하게 여쭤본 건데, 너무하시네요. 와, 나 욕 칠 뻔.”(물론 말투는 다나까 체일 수밖에 없었겠습니다만) 후임은 티 나게 삐져 홱 돌아앉았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무전기는 쳐다봐야지. 일인데. 공과 사는 구분하자. 우리는 지루해야 돼. 그게 우리 임무야. 얼른 다시 입 집어넣고 눈에 초점 풀고, 지루한 표정으로 복귀 안할래?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개새끼는 아니었습니다만)
실은 그게, 뭐 저런 질문을 가지고 걸맞지 않게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육박해 오는지, 그 모양이 퍽 귀여워서 놀려주려다 그만 나도 몰래 아무말 큰잔치의 입구를 개방하고 만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일단 뱉은 말을 절대로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것이 이 잔치의 암묵적인 룰이다 보니, 남은 선택지는 오로지 데코레이션과 패키징뿐이었다. 자, 들어 봐.
“너는 신이 있다고 믿니?”
“잘 모르겠는데요.”
“만약, 신이 있다면 도대체 왜 악이 있는 걸까? 신이 전지전능한데, 왜 착한 사람들은 고통 받고 나쁜 짓 하는 놈들은 떵떵거리는 불합리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걸까?”
“그러니까요.”
“사실 이건, 신의 눈으로 보기에 이 구도 자체가 선한 상태거나 혹은 완벽한 선을 위한 합리적 포석인 게 아닐까?”
“네?”
“자기 힘으로 아등바등 노력하고 법 없이도 살만큼 착한 사람이 보상받고, 야비한 술책으로 남의 것을 훔쳐 자기 배를 불리는 인간이 벌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 그건 인간 기준에서 그런 거잖아? 절대적으로 전지전능한 신이, 한낱 인간의 기준 같은 걸 따라야 되겠어?”
“그건 그렇지만......”
“아빠 바퀴벌레 한 마리가 가족 먹이겠다고 먹거리를 구하러 생활관에 나타났어. 우리 생활관에는 온통 과자부스러기니까. 제발 우리, 청소 좀 하고 살자? 하여튼, 과자부스러기를 발견하고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어. 그걸 본 내가 외치는 거지, 와, 대박, 하다하다 이제 바퀴벌레가 다 나오네, 이것들아? 그러면 니가 잽싸게 쓰레빠를 들고 뛰어가 그 벌레를 패겠지? 그럼 찍 하고 바퀴벌레는 죽겠지? 사실 그때, 바퀴벌레 소굴에서는 덩치 크고 몸통이랑 날개에 큼지막하게 LOVE&PEACE 타투를 새긴 건달 바퀴벌레가 그 아빠 바퀴벌레 집에 쳐들어가서 걔가 겨우내 모아 놓은 한 줌도 안 되는 과자 부스러기를 약탈하는 중인 거라. 애기 바퀴벌레들은 오들오들 떨며 속수무책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겠지만, 그때 걔네 아빠는 너땜에 이미 떡이 된 채 휴지에 쌓여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지. 그래, 걔네는 이제 다신 아빠를 볼 수 없을 거야, 이 험한 세상에. 그러나 건달 바퀴벌레는 안전한 소굴에서 신나게 과자 부스러기를 처먹으며, 아 세상 열라 살기 쉬워, 그러고 있을 거란 말이지.”
“헐.”
“그럼, 이 모든 사정을 다 알고 났다 치면, 니가 성실한 가장 바퀴벌레를 때려죽인 거, 악하거나 불합리한 일이 돼?”
“아무래도 그렇다고 하긴 힘들겠는데요. 그리고 제가 이런 이유로 벌레를 안 잡겠다고 했으면 병장님이 절 잡았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신이 뭐 하러 착한 인간 사정을 봐줘야겠어. 착해봐야 그건 인간의 사정이지 신의 사정이 아닌데.”
“그럴까요?”
“인간의 눈에 선해 보이는 것이 신의 눈에도 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야. 인간하고 신을 지금 동급에 놓은 거잖아. 한치 앞도 모르는 것들이 어디 전지전능한 척.”
“그것도 그러네요.”
“마찬가지야. 너한테는 장난처럼 들렸는지 몰라도, 어쩌면 그게 진실일 수 있지. 잘 생긴 얼굴, 큰 키, 집, 돈, 뭐 이런 것들이 가치 있다는 건 우리 관점이잖아. 심지어 지금, 여기에서의 관점이지. 생각 해 봐. 메시나 호날두 이런 애들이 요즘에야 발 잘 놀려서 수백 수천억 벌지, 2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호날두는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방직기 돌리고, 메시는 낮이면 뙤약볕에서 옥수수 따고 밤에는 탱고나 실컷 추며 살다 이름 없이 죽었을 걸? 다 그런 거야. 코 옆에 점이야 웃자고 한 말이지만, 실제로 니가 스스로 하찮게 생각게 생각하는 소소한 특징이 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거 하나면 큰 축복이다 싶을 정도의 절묘한 한 수였을지도 모르잖아. 실제로 우리는 모두 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저마다 가치 있고 공평하게 태어난 것인데, 단지 이놈의 자본주의 외모지향주의 사회가 몇몇 특성들만을 심하게 부각시켜서 대다수의 사람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니 눈에,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니가 좀 후지고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렇거나, 절대적인 기준에서 그런 건 아니라고.”
아무말을 아무말로 끝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syo의 필사적인 노력이 보이시는지.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저건 2할이 농담이고 3할이 헛소리며 또 4할이 개소리였다. 그냥 후임의 삐진 맘도 달래고, 지루한 근무시간 하하호호 웃으며 보내 보자고 한 말이었는데 아 글쎄, 후임 놈 말하길, “와, syo병장님, 이제 뭔가 좀 알 것 같아요.” 응? 잠깐만, 알겠다고? 어, 알 리가 없는데, 알면 안 되는 건데. 지금 나도 당최 모르겠는데 니가 어떻게 알아. 모르는 거야, 너 그거 아는 거 아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살려구요.” 야, 안 돼,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말 마음에 새기고 살고 그러는 거 아냐. 하지 마. 눈 초롱초롱해지지 말라고.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 둬, 제발.......
우리는 플라톤이 남긴 여러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식으로 순박한 사람들 놀려먹는 장면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 굳이 이런 추억을 떠올린 이유는, 요즘 좀 궁금해서다. syo는 왜 이렇게 뭐 하나 제대로 가진 게 없는 걸까, 불공평하게. 왜냐고? 그걸 모르겠어? 자, 들어 봐.......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다른 이름으로 정의하자면, 아마도 상상력일 것이다. 세상에는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존재하며, 답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의 질문에 무수히 많은 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세상을 아주 자세히 관찰하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답이 생겨나게 된다.
_ 김중혁, 『뭐라도 되겠지』
언젠가는 손바닥보다 더 큰, 둥글둥글하게 잘생긴 돌을 주워 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돌을 깨끗이 씻어 장독 속에 장아찌를 눌러놓는 용도로 사용했다. 나는 그 돌을 책을 펼쳐놓고 종이를 눌러놓는 문진으로 사용했다. 구멍이 뚫린 돌은 가죽끈으로 매달아 목걸이를 만들었고, 움푹 파인 돌은 작은 수생식물을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했다.
주워 온 돌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 하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쓸데가 없다. 그저 돌멩이 하나다. 쓸데가 없어서 돌은 이모저모로 쓸데를 만드는 사물이기도하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돌의 주인에게 달렸다. 돌의 용도를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_ 김소연, 『한 글자 사전』
자기 안에 있는 힘으로 자라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물은 발효를 하게 된다.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여 생명을 키우는 힘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식품으로서도 적합하다.
반대로 외부에서 비료를 받아 억지로 살이 오른, 생명력이 부족한 것들은 부패로 방향을 잡는다. 생명력이 약한 것들은 균의 분해 과정에서 생명력을 잃는다. 그래서 음식으로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_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세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세계에 대한 해석은 주변이라는 망을 통해 걸러지기 마련이다.
_ 노명우, 『인생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