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꾸미기 위해 역사를 오남용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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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남루한 인생에도 생일은 온다. 따박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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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일, 그것은 인생 한마당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서글픈 진실을 깨닫는데서 시작된다. 그걸 모르는 상태로는, 팔자주름이 알바에서 계약직,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될 때까지 꾸역꾸역 살아봤자 어엿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보험도 안 되는 중2병을 고2때까지 앓았던 syo에게 어른의 삶이란 한없이 요원한 것이었다. 당시 syo가 보건대, syo는 도저히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래야 아닐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잘 생기고(아니다), 이렇게 똑똑하고(틀렸다), 이런 역경 충만한 유년기(고만고만했다)를 보내면서도 착한 심성(아이고, 멍청한 놈아)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정석을 ‘읽고’ 앉았으니 성적이 안 나오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격이 저절로 도야된(맞고 싶냐?) 탓인가. 아, 젠장, 거기다가 글까지 잘 쓰다니(염병하네), 뭐지? 난 왜 이렇게 완벽하지?(아, 정말 뭐지, 이 새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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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핸드폰이 워낙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2019년이 아니라 2019세기의 추석 연휴까지 알아낼 수가 있지만, 이 단락에서 하려는 짧은 이야기는 핸드폰은커녕 무선 ‘전화기’조차 산업혁명 대접을 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syo가 하는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 MSG가 참 풍부하다. 취향에 맞게 거품을 걷어내고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한 해가 마무리 될 때쯤이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입수된 새해 달력이 집에 쌓인다. 일단 달력이 손에 들어오면 설과 추석 연휴가 어떤 모양새로 포진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당연히 첫 번째 할일이었고, 그러고 나면 내 생일이 무슨 요일이 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4월로 되돌아가곤 했다. 언제부턴가 내 생일 아래에 ‘臨時政府樹立記念日’이라는 기묘한 상형문자가 찍히기 시작했다.
아빠, 여기 이상한 거 적혀 있어. 내 생일 왜 이래? syo가 물었다. 아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독을 시작했다. 보자..... 시...정....립기념일? 시정...... 시정부..... 아, 임시정부수립기념일! 아빠가 신이 났다. 그렇지, syo엄마, 이거 임시정부수립기념일 맞지? syo엄마는 꿀도 안 먹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빠, 임시 그게 뭔데? 이번 벙어리는 아빠였다. 아놔, 이 엄마 아빠가 나 몰래 꿀 먹고 다니나? 아, 임시정부 좋은 거지, 훌륭한 거지. 그 일제시대에..... 일제시대가 뭐야? 그, 일본 놈들이 막 쳐들어와서..... 아빠, 나 그거 알아. 이순신 장군님이 물리쳤잖아. 거북선! 거북선! 아니, 그때가 아니라..... 그때가 아니야? 그럼 일본 놈들이 또 쳐들어왔어? 아빠, 일본 놈들은 왜 자꾸 쳐들어와, 쳐들어오길? 걔넨 원래 그래...... 그럼 일제시대도 이순신 장군님이 물리쳤어? 아니, 일제시대는 그러니까 김구...... 아빠, 김구는 뭐야? 아빠, 근데 나 요즘 학원에서 구구단 가르쳐준다? 이일은 이 이이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오 십오..... 하여튼 임시정부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으려고 만든 훌륭한 단체야. 꼭 알아야 돼. 아빠, 그럼 임시정부가 좋은 거야, 정부가 좋은 거야? 다시 꿀 한 숟가락. 어...... 아빠, 임시반장이 좋은 거야, 그냥 반장이 좋은 거야? 나는 반장이고, 영식이(가명)가 임시 반장이었는데......
얼추 저런 분위기였을 것이다. 아빠는 대충 알고, 엄마는 주방으로 슬쩍 물러나고, 동생은 배밀이를 시작하고, syo는 알고 싶은 것은 산더민데 구구단을 외우느라 긴 세월을 탕진하고...... 아름다우나 혼탁한 가정환경이었고, 구구단을 외우기 전에 이순신은 알아도 구구단을 외우고 나서도 김구를 모를 수도 있는 사회 환경이었고, 인터폰과 인터체인지는 있어도 인터넷은 없던 정보 환경이었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실체는 그저 희미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임시 정부는 수립기념일이 달력에 떡 박힐 만큼 ‘좋은’ 것이고, 그 좋은 날이 내 생일과 같은 날이라는 사실만이 뜻깊었다. 그것은 아무 날도 아니다보니 뜻 없는 甲午, 丙申 따위로 달력의 빈 공간만 채우는 날짜에 태어난 범인들과 syo를 차별화해주는 역사적 증거물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syo는 누군가 생일을 물어오면 명확한 날짜 대신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라고 알려주곤 했다. syo야, 니 생일 언젠데? 임시정부수립기념일. ......뭐? 임시정부수립기념일. ......그게 언젠데? ......뭐? ......응? ......모르냐? .......응? ......모르네, 너 모르네. 한국 사람이 되서,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모르네, 저놈 저거. ......그래 모른다. 쯧쯔, 젊은이여, 널 보니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려는지를. 뭐 이런 식이었다.
중2병이 한참 절정일 때는 더욱 심각했다. 내 생일이 임시정부기념일이어서 내가 위대해지는 것을 넘어서, 마치 수립기념일이 내 생일이이서 임시정부가 위대해지는 것처럼 굴었다. 4월 13일? 아, 그날은 내 생일이고, 겸사겸사 임시정부도 수립되고 그랬지. 어느 해는 총선일까지 겹쳐 빨간 날 자격까지 받았는데, 아, 그때는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였다. 이번 본인의 탄신일은 때마침 휴일이라 자네들이 참석하기가 참 맞춤할 걸세. 뭐,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소소한 행사가 있다고 하니, 참석하기 전에 다들 가서 한 표씩 권리를 행사하고 오시게나. 본인의 탄신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가의 안위 역시 그에 만만치 않게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아차차, 자네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지?(지는) 그러면 그냥 휘 한번 둘러보시고 바로 걸음 하시게나. 주차 사정이 넉넉지 못하니 왠만하면 대중교통들 이용하시고. 아차차, 자네들은 아직 면허증이 없지?(면허증은커녕 민증도 없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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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만행들은 물론 살짝(살짝?) 기분 나쁠 수는 있었겠으나, 결국 친구들에게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라는 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책시행자의 의도를 제 멋대로 해석하는 소수 반골들이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syo는, syo의 생일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임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 syo의 생일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2018년까지는 확실히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2019년. 학계의 누적된 연구 결과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는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수립기념일을 기존의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정정 발표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옳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몰랐으면서 스스로를 반인반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 권위를 이용하려 들었던 syo는 마침내 역사의 철퇴를 맞았다. 4월 11일, 임시정부수립기념일에 맞춰 전혀 예상치 못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몇 개 받고 만 것이다. 무려 20년에 걸쳐 만들어 낸 자승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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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 임시정부수립일을 빼앗겨 생일마저 빼앗기겠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않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_ 김사인, 「화양연화(花樣年華)」 부분
때로는 한계가 가능성을 이겼고,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했다. 어쩔 땐 '이제 그만할까'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쩔 땐 '그래도 계속해 봐야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2년이 훌쩍 지나갔다. 나 자신과 지난하게 싸우며 지켜 낸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현재 점수는 이대일, 무승부. 서점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쉽게 판가름이 나지 않는다. 전반전에서 지나치게 힘을 쏟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가벼운 부상까지 입었지만 덕분에 다음 시합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_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이 세상에 살게 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임을 알았다. 25년이 되어서야 명암이 표리인 것처럼 해가 드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를 분리하려고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치워버리려고 하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돈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늘어나면 잠자는 동안에도 걱정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기쁘다. 기쁜 사랑이 쌓이면 사랑을 하지 않던 옛날이 오히려 그리워질 것이다. 각료의 어깨에는 수백만 명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다. 등에는 무거운 천하가 얹혀 있다.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하면 분하다. 조금 먹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마음껏 먹으면 그다음이 불쾌하다.
_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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