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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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형식보다는 실속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외양에 확 끌리는 때가 있다. 이 책의 표지가 바로 그런 예이다. 하얀 바탕에 빨간 색깔의 면기 하나. 그리고 그 면기 속에 담긴 젓가락 세 벌(빨간 색, 옻칠한 색, 엷은 노란색). 그리고 왼쪽에 상단에 까만색 글씨로 쓰인 ‘차폰, 잔폰, 짬뽕’이라는 제목. 너무나 깔끔하고 선명한 책 표지 속에는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맛깔스러운 내용이 가득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던 것일까? 표지와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책 내용에 다소 실망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이 책은 필자가 「신동아」에 연재한 글에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음식 문화에 대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닌 만큼 생각과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글을 슬 수 있었다고 했지만, 독자인 나로서는 전혀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없는 글이었다. 나름 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도 일본 주인공들의 이름과 지명에 익숙해지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지명이나 음식 이름 역시 이물감을 느끼게 했다.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음식 이름이 아니라 왠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만 받았다면 성명이 되려나?
한․중․일 음식의 역사라든지 각 나라 고유 음식의 기원 등이 맛깔스럽게 설명된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과 같은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려나 싶었는데 에세이도 논문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놓인 글이었다. 세계적인 음식이 되어버린 우리의 비빔밥 이야기, 매운 맛에 대한 동아시아 이야기도 어째 이야기하다가 만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나마 여덟 편의 연재에 덧붙인 ‘미래의 음식 문화’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나에겐 더욱 흥미로웠다. 세계화․대량화되고 있는 음식 문화 속에서 로컬푸드를 지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내보인 글은 인상깊었다. 필자의 자녀가 자라서 살아갈 2030년을 가정하여 그려본 그의 미래 음식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자동차를 없애고 주차장과 공지를 논밭으로 만들어 먹을거리공동체 센터를 만들었다는 그의 가상세계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베란다 밖에 들려오는 논두렁의 개구리 소리와 작물들이 자라나는 냄새,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삭막한 도심지 가운데에 고추와 무를 가꾸고 계신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들 것 같은 그곳에서 싹을 틔운 씨앗이 고추를 맺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무엇 하나 제 손으로 가꿔본 적 없는 우리 세대가 그런 먹거리들을 통조림이 아닌 살아있는 식물로서 대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우리들 생활의 질도 달라질 것이란 생각을 문득 해 본다. 먹거리 하나를 기르더라도 씨앗을 뿌릴 땅을 일궈야 하고 물을 주고 가꿔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얻는 것은 식물에 달린 열매만은 아닐 것이다. 무형의 상품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실제 숨쉬고 존재하는 것들의 만남,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이 무성한 세상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