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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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를 일컬어 ‘벽장 속 게이 또는 레즈비언’이라고 말한다. 이성애자처럼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밝혀도 사회가 아무런 차별도 억압도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자기 성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것이다. 아니 이성애자가 나, 이성애자야 하고 굳이 말하지 않듯이, 그런 세상이라면 동성애자도 굳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지 않기에, 오늘도 어느 나라 어느 장소에서는 그들의 성적 취향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차별받고 폭력을 당하며 또 때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벽장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이 숨기고 살아간다. 이토록 살아가기 벅찬 힘겨운 세상에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내 이중으로 시달리고 싶지는 않기에.

그럼에도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용감하게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밝히고 살아가는 이들이 분명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몇 년 전부터는 퀴어퍼레이드도 열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 땅에서는 그런다고 해서 누군가의 증오와 혐오로 살해당하지는 않는다(물론 자살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여기서 내가 뜻하는 것은 성정체성 때문에 일어나는 ‘살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은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 대체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그렇게 암담한 사회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게이 소년의 이야기이다. 벽장 속의 벽장에 갇힌 한 소년, 아니 두 청년의 이야기- 1980년대 사회주의 제체 하의 폴란드는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흑, 그러니까 ‘어둠’과도 같은 사회이다. 빵 한 덩이 얻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 하고, ‘자유’의 소식을 들려주는 라디오방송은 남몰래 들어야만 하고, 혹시라도 이런 체제 비판적인 소리를 하면 언제 어떻게 당에 고발당할지 몰라 모두가 숨죽이고 사는 세상.

이런 분위기 속에 소년 ‘루드비크’는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아무런 고통 없이 자라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홉 살 무렵,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또래 소년을 욕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이런 소년의 성향을 눈치라도 챘던 것인지 할머니는 루드비크가 소년답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엄마와 오랫동안 한 침대를 쓰면서 지나치게 친밀한 사이로 지내는 것도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렇게 키우면 비정상적인 애가 된다면서 딸에게 경고를 준다. 루드비크는 할머니의 ‘비정상’이라는 말에 바락바락 성을 내며 분노한다. 자신은 비정상이 아니라고. 어쩌면 이미 그 어린 시절에 자신이 남과 다름을, 그리고 그 남과 다르다는 이유가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줄 알았기에 자기는 비정상이 아니라고 그렇게 소리 높여 주장했던 것은 아닐까.

혼란과 수치심, 갈망…… 그런 시기를 보내며 루드비크는 대학생이 된다. 그리고 드디어 너, ‘야누시’를 만난다. 그것도 어느 찬란한 여름날 당에서 의무적으로 강요한 농촌활동에서……. 사실 이 작품은 애초에 현재 미국 뉴욕에 사는 ‘나’, 루드비크가 지난날의 연인인 ‘너’ 야누시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기에 이 두 사람이 지금은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루드비크는 폴란드를 떠나 미국이라는 자유로운 체제로 옮겨 왔음을 독자는 이미 알고 시작한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이 그 여름, 그 눈부신 계절, 열여덟이라는 찬란한 나이에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때문에 행복하면서도 고통받고,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음을 독자는 알고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그리고 한없이 서로에게 빠져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던 순간, 체제에 비판적인 루드비크와 달리, 폴란드 사회주의 체제를 신봉하는(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야누시와의 어쩔 수 없는 갈등 등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루드비크는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할머니와 엄마가 듣던 자유유럽 방송을 접하며 자란다. 자유가 있는 세상의 가치를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체제의 모순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체제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은, 사랑은 위험하기만 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숨겨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더 갈망한다. 그에 비해 야누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서구 사회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평등적인 교육의 기회를 얻었고, 병든 가족도 당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서방의 자유를 꿈꾸는 루드비크의 행위는 그가 보기에 몽상가적 기질일 뿐이며, 당에 충성하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나날이 굳건해져만 간다. 그렇기에 야누시는 루드비크와 이 체제 안에서 성공해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는 그럴 자신이 있다. 체제를 벗어나자고 어둠 속에서 함께 헤엄쳐 나가자고 말하는 루드비크와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자는 야누시,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지, 루드비크가 이미 뉴욕에서 저 멀리 떨어진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데도, 궁금증에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이 작품은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책 한 권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루드비크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다가 용기를 얻게 되는 계기도, 또 무엇보다 루드비크와 야누시가 가까워지는, 아니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계기도 바로 이 책 한 권, 그러니까 제임스 볼드윈의 <조반니의 방>에서 시작된다는 설정은 너무나 공감이 간다. 그리고 그 책은 두 사람 사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이 작품에는 앨런 홀링허스트의 <수영장 도서관>처럼 성착취도 없고(나는 <수영장 도서관>의 그 부잣집 게이들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소년들을 탐하는 것을 성착취로 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려고 여성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이의 눈에는 야누시가 하니아를 그렇게 이용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야누시는 그 체제 아래서 살아남으려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루드비크에게 중요한 순간에 누구보다 힘이 되어준 그 두 여성 캐릭터, 카롤리나와 하니아도 좋았다. 나는 그래서 이 착하고 슬픈 소설을 마음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루드비크가 야누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자유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야누시는 또 얼마나 그 억압된 체제 아래서, 여전히 벽장 속 벽장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을까. 두 남자의 사랑이 끝내 먹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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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7-19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수영장 도서관> 읽고 있는데 엉뚱하게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에서 스포일을. 크.... 하긴 뭐 수영장에서 헤엄치지 뭐 하겠습니까.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9 14:52   좋아요 1 | URL
아함, 아니 저런! 죄송! 하지만 제가 이글에서 쓴 <수영장 도서관>의 내용은 전혀! 스포일러 아닙니다! ㅎㅎㅎㅎ 그 책의 엄청난 비밀은 따로 있습니다. 안심하고 읽으세요~ㅎㅎㅎㅎ

독서괭 2021-07-19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홋 리뷰 읽지 말라고 하셨지만 읽었습니다. 예전엔 스포일러를 되게 경계했는데 이젠 장르물 외에는 괜찮더라구요~ㅎㅎ 서간소설이가 보네요. 몽마르트르유서도 읽어야 합니다만..

잠자냥 2021-07-19 15:18   좋아요 1 | URL
편지 형식이긴 한데, 딱히 편지 느낌은 크게 안 들어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7-19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영장 도서관보다 왠지 낫다는
느낌이 빡! 듭니다.

그 분야 쪽은 아무래도 저하고
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잠자냥 2021-07-19 16: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작품은 그렇게 적나라한 묘사가 없습니다. (아쉬워 하는 분들 있는 거 아닌지 원;;; ㅋㅋㅋㅋ)

새파랑 2021-07-19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영장과 수영 ㅋ 이런 내용의 책을 많이 안읽어봤는데 요즘 많이 올라와서 급 관심이 생깁니다 ㅋ 잠자냥님 🌟5개는 확실하니~~!!

잠자냥 2021-07-19 16:36   좋아요 2 | URL
수영장과 수영에 관한 책은 확실히 아닙니다! *껄껄껄* ㅎㅎㅎㅎ

바람돌이 2021-07-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마음에 안들어서 패스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잠자냥님 글 읽으니 꼭 봐야할 책같은 느낌이 팍 옵니다. ^^

잠자냥 2021-07-20 09:28   좋아요 0 | URL
아하 그러셨군요. 한번쯤 읽어보세요~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 20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박원복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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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세계문학전집에서 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제목만 보면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브라스 꾸바스’라는 이름도 그렇지만 ‘사후 회고록’이라는, 지루해 보이는 제목이 고개를 돌리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 작품을 관심 밖에 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웃픈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설탕을 잔뜩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신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 웃기고 슬프면서도 쓰고 달다. 형식부터 독특한 책으로 맨 앞의 ‘독자에게’를 제외하고 모두 160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부터 160장까지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가도 옆길로 새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면서 화자인 ‘브라스 꾸바스’는  넉살 좋게 말한다. 아, 내가 아까 20장에서 말했듯이 말이지……. 아니, 아까 84장에서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기억이 안 난다면 다시 가보라…….

브라스 꾸바스가 내 앞에서 자기의 지난 인생을 줄줄이,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참 재미나게도 이 화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후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 하면 죽음을 앞두었거나, 죽기 직전이거나 아무튼 노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쓰기 마련인데, 이 브라스 꾸바스는 이미 죽어서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이 작품은 “나의 차가운 시신을 가장 먼저 갉아먹은 벌레에게 그리움이 가득한 기념품으로 이 사후 회고록을 헌정한다.”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이 작품도 국내 초역이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을 쓴 ‘마샤두 지 아시스’는 브라질 소설가 가운데 최고봉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작품임에도 그 남다른 형식과 그 안에 담고 있는 생각 때문에 꽤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독특한 경험 때문에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우리말로 옮겨진다면 또 읽어 볼 것 같다.

‘삶을 두루 여행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브라스 꾸바스는 세상을 떠날 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쨌든 나는 1869년 8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2시에 나의 아름다운 까뚱비 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나는 64세로 그 세월은 험난하면서도 화려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었고 약 300꽁뚜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열한 명의 친구들이 나의 무덤까지 따라왔었다.”(17∼18쪽). 내가 죽을 땐 몇 명의 친구들이나 무덤, 아니 화장터까지 따라올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들 가운데에는 세 명의 여성이 있었음을 독자는 알게 되는데, 그중 두 사람은 브라스 꾸바스의 여동생과 그 딸, 그러니까 화자에게는 조카가 되는 여성이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 화자는 말을 조금 더듬더니, “그리고한 여인”이 있었음을 밝히는데, 이 여인에 대해서는 선뜻 자세히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면서 모호하게 처리한다. 독자는 이때부터 이 여성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여성은 브라스 꾸바스가 죽기 전까지 사랑했던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는 왜 그 여인과 결혼하지 않은 채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을까?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은 단순하게만 보면 이제는 남의 아내가 된 20대 시절의 첫사랑을 훗날 다시 만나 죽기까지 사랑하는 이야기다. 주위 시선을 피해 남편을 바보로 만드는 불륜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런 큰 줄기 가운데 매 장마다 펼쳐지는 브라스 꾸바스의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세계관, 가벼운 장난기로 가득한 것 같지만 조롱과 풍자, 비판처럼 냉담하고 염세적인 시선으로 삶을 돌아보는 데 있다. 게다가 꾸바스의 철학자 친구 ‘낑까스 보르바’라는 인물까지 등장해서 장광설을 쏟아내는데, 그의 이야기가 자못 논리적이고 말이 되는 듯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브라스 꾸바스 자신도 ‘이 책은 냉담함으로 세월의 무상함에서 이제 해방된 사람의 냉담함으로 씌어졌고 불평등 철학을 다룬 작품으로 이제 꾸밈없고 장난기 가득한 게으른 철학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이 책의 처음 몇 장(章)을 읽고 뜻밖의 발견을 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이 회고록 곳곳에 염세적 투정이 담겨 있을 거라는 꾸바스의 말도, 이 작품은 ‘우울의 잉크를 묻힌 소란스럽고 밝은 펜대로 쓴’ 산만한 작품으로 독자 열 명은커녕 기껏해야 다섯 명일 것이라는 냉소적이면서도 은근히 웃음이 터지는 표현들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진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꾸바스는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강요로 포르투갈로 유학을 떠나고, 대학 졸업 후 유럽을 돌아다니던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결혼, 연방하원의원 출마 권유 등등의 과정을 경험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꾸바스 그 자신은 물론 그가 사랑했던 가족, 마르셀라, 비르질리아 등 연인들의 심리 묘사를 보여주면서 인간의 이중성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순과 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중 ‘장화 이야기’는 생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꽉 끼는 장화를 벗으러 갔다. 안심이 되자 난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침대에 곧장 길게 누웠다. 장화에 끌려 다니던 나와 발이 상대적인 행복에 빠져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꽉 끼는 장화가 지구의 가장 큰 행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장화는 불쌍한 발을 아프게 하면서도 그것을 벗을 기쁨의 기회를 주기도 때문이다. 화가 날 정도로 발을 아프게 하면서도 나중에는 그 발을 편안하게 해주기에 당신은 제화공들과 에피쿠로스의 취향에 따라 값싼 행복감을 느낀다. (....) 나는 내 마음이 장화를 벗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실제로 쾌락이 그 장화를 벗겨버렸다. 그로부터 네댓새 뒤 나는 쓰라린 고통과 근심, 불편한 마음에 이어 빠르고 형언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나는 여기서 인생은 각종 현상들 가운데 가장 기발한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배고픔은 먹을 기회가 다가온다는 설정이 있어야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굳은살도 그것이 지상에서의 행복을 완벽하게 해주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인간의 모든 지혜는 목 짧은 장화만큼의 가치도 없다. (36장 ‘장화에 대하여’, 113~114쪽)


브라스 꾸바스는 명성을 얻지도, 장관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고, 결혼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저세상으로 갔다. 물론 그는 자신의 ‘이러한 실패’의 곁에는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도 빵을 구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인생은 행복했을까 아니면 불행했을까? 그는 인생에게 승리했을까 패배했을까? 그는 이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것들, ‘자식도 남기지 않았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내 불행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았다’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대로라면 그의 삶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명성도 사랑도 얻지 못한 채 조촐한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쓸쓸히 죽어갔지만 사랑했고, 살아갔기에 그 삶은 그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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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7-15 10: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브라스 꾸바스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운명을 지키던 여자가 비르질리아, 단테와 함께 지옥 여행을 했던 베르길리우스의 여성형인 건 왜 그랬을까? 우연아니었을까?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습지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15 11:01   좋아요 5 | URL
오, 그것 참 말이 되는 소리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닐까요? *찰싹*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15 11:37   좋아요 3 | URL
ㅋㅋㅋ 어차피 오늘은 하루 종일 줘 터지기로 작정했습니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1-07-15 1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화 이야기는 와우 하게 되네요. 창비 세계문학전집 앞자리라니 더 읽고싶어지네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 이책의 인생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중간과정이 궁금해지는 리뷰라니 😐

잠자냥 2021-07-15 11:03   좋아요 4 | URL
장화 이야기는 저도 정말 으아, 했습니다. 이 책은 중간 과정도 꽤 흥미롭습니다. 체호프 다 읽으시면 언제고 한 번 읽어보세요. 사실 별 넷을 주었습니다만 별 다섯과 별 넷 그 사이 어디 즈음입니다.

미미 2021-07-15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얼마전에 이 책 보고 제목에 솔깃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본인이 회고를 하는 거군요! 조롱과 풍자,염세적인 시선,장광설 다 제가 완전 좋아하는것ㅋㅋㅋㅋ저도 독자 5명중 한명이 되고픕니다. 퐁당!

잠자냥 2021-07-15 11:04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브라스 꾸바스가 기뻐하겠습니다. 이 한국에서만 독자 5명을 넘어설 것 같네요.ㅋㅋㅋ

레삭매냐 2021-07-15 1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보고서는 올해 1월에 쟁여
둔 책인데 여적 안 읽고 뻐탱기고
있습니다.

궈궈씽.

잠자냥 2021-07-15 11:10   좋아요 3 | URL
요즘 읽을 책 많으시죠? 다 읽고 궈궈씽 ㅋㅋㅋ

독서괭 2021-07-15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제 <고독의우물>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잠자냥님 글 읽기 무섭습니다. 한동안 문학을 멀리하던 제게 좋은 소설을 마구 던져주고 계심… 아니 그래도 계속 던져주세요. 감당은 제가 해야죠 ㅋㅋ

잠자냥 2021-07-15 12:20   좋아요 2 | URL
<고독의 우물> 2권짜리! ㅎㅎ 힘내서 쭉쭉 읽으세요-
제 글 읽기 무섭지만 계속 읽으시겠다면 계속 좋은 소설 툭툭 던져드리겠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1-07-15 1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읽어볼게요. 저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몹시도 궁금합니다!!

잠자냥 2021-07-15 12:21   좋아요 2 | URL
ㅎㅎ 이 사랑은 속이고 시작하지 않아요- ㅋㅋㅋㅋ

mini74 2021-07-15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어서 쓰는 회고록에 설탕 잔뜩 넣은 에스프레소 같은 책이라니 ㅎㅎㅎ 장화 비유. 너무 멋집니다 *^^*

잠자냥 2021-07-15 20:23   좋아요 2 | URL
오오 역시 척하면 착하고 알아들으시는군요! ㅎㅎㅎ

붕붕툐툐 2021-07-15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라스 꾸바스는 참 입에 안 붙는 이름인데, 이렇게 페이퍼를 작성하시면 안 읽기가 어렵잖아요~ㅋㅋ
브라스 꾸바스는 왠지 장난꾸러기일 것만 같습니다~ㅋㅋㅋ

잠자냥 2021-07-15 23:05   좋아요 0 | URL
일단 방학 리스트부터…..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7-1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메이저(?)급 출판사 세계문학 전집에서는 창비가 유난히 손이 안가게 생겼더라고요 ㅋㅋㅋ 왤까 ㅋㅋㅋ

잠자냥 2021-07-16 22:07   좋아요 1 | URL
에이 거짓말한다 문학에는 손 다 안 가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7-17 09:02   좋아요 1 | URL
맞아 ㅋㅋㅋ 수능볼때도 비문학 지문을 좋아했던 나 ㅋㅋㅋ 하지만 이거 읽고 싶은 제마음은 진심이예요 😫

coolcat329 2024-03-15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는 이 책 40페이지까지 읽다가 포기합니다. 산만한 글이 이해가 안가고 무엇보다 소설이 너무 재미가 없네요. 빛소굴에서 나온 <정신과 의사>를 읽고 작가에게 관심이 가서 이어서 읽는 건데 사뒀던 책이라 중도포기가 그저 마음 아픕니다. ㅠㅠ

잠자냥 2024-03-15 09:0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맞지 않는 책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재미난 책이 많으니 꾸역꾸역 읽지 마시고 다른 책으로 어서 가세요!! ㅎㅎ
 
두 발의 고독 -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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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일상이다. 그렇기에 그 행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 일상의 행위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가 생기기도 한다. <두 발의 고독>의 저자 에켈룬 또한 걷는다는 행위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가 뇌전증을 앓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는 뇌전증 진단으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걷는다. 집 가까이를 산책하던 그의 발걸음은 점차 반경을 넓혀 남반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북반구 아이슬란드에 이르기까지, 도심에서 야생의 황야지대, 태양이 작열하는 스텝지역, 열대우림, 용암이 끓는 화산 꼭대기, 그 어렵다는 맹그로브밀림, 산등성이, 초원지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곳을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서 그는 두 발이 선사하는 자유와 고독의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고, ‘길’에서 남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나 또한 에켈룬처럼 걷기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걷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저자처럼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필요성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걷기는 허리 통증을 줄여준다. 디스크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걷기 시작했는데, 이제 걷기는 내 일상이다. 걷지 않는 날은 무기력하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먹은 듯하다. 회사에서도 점심을 먹고는 산책에 나선다. 동행은 없다. 혼자 그렇게 30분쯤 걷고 돌아오면 오전의 업무가 정리되고, 오후를 다시 보낼 기력이 되살아난다. 허리 통증이 가라앉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도심 걷기는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에켈룬이 말했듯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가장 좋은 점은 주변으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는 다는 것’이고 점심 내내 나는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덕분에 그 짧은 걷기를 통해 육체와 정신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늘 같은 길을 걷지는 않는다. 어제는 저 길을 거닐었는데, 오늘은 이 길로 가볼까? 내일은 저쪽 길이 어떨까? 걷기 전에 궁리를 해본다. 궁리 없이 걷다가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도심인데도 이 길은 꽃이 흐드러져있고, 저 길은 소나무가 많으며 가을이면 또 어떤 길은 유독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다. 운이 좋으면 사람이 뜸한, 그래서 분위기가 한결 좋은 카페를 발견하기도 한다. 비단 장소의 발견뿐만이 아니다. 걷다보면 생각에 잠기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렇게 쓴 글에서 뜻밖의 사유의 흔적을 만나기도 한다. 주중의 도심 산책은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이나 집 뒤의 작은 산, 더 나아가 둘레길, 한강 주변 산책으로 확장된다. 에켈룬이 점차 더 넓은 세계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긴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록 나는 저차처럼 세계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그러리라, 하는 꿈을 마음에 새겨본다.

걷다 보니 그처럼 좋아했던 자전거도 멀리 하고 있다. 에켈룬이 달리기보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걷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며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안온하고 느긋한 느낌을 선사한다. 속도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느긋하게 홀로 걷기는 최상의 휴식이자 가장 좋은 치유임을 <두 발의 고독>은 알려준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은 이미 앞서 누군가가 걸었던 길임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길들과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 행동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길을 나서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와야 하듯이,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고, 출발이 있으면 도착이 있으며 시작과 끝,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와 탄생과 소멸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위대한 탐험가는 늘 길을 잃었고, 잃음으로써 더 큰 발견을 했다는 저자의 말은 길 잃기의 가능성 자체가 닫혀버린 현대인에게 길 잃을 자유와 실패할 자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한다. 걷기를 예찬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오롯이 두 발이 이끄는 고독과 자유의 기쁨을 이토록 매혹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기록은 흔치 않다. 오늘은 또 어떤 길을 걸을까, 설렘으로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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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6 1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걷기를 너무 좋아해서 여행지에 가면 무조건 어떻게든 걸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다가 다리 아파서 숙소 돌아와 뻗어버리기도 하고 그러지만 말입니다.
안그래도 이 책 읽고 싶어 찜해두었는데 잠자냥 님 벌써 읽으셨네요.
저 족저근막염으로 걷지 말라 그랬는데 그래도 걷고 있어요. 대체 안걷고 어떻게 사나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의 심정으로 걷고 있습니다. (안돼!!)

걷는다는 그 행위 자체도 좋아하지만, 걸으면서 생각하는게 너무 좋아요. 저는 걸을 때 진짜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거든요. 상황극도 걸을 때... 그리고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

후훗.

저도 이 책 읽어볼게요!

2021-07-06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6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1-07-06 10:57   좋아요 4 | URL
여행 가고 싶어요. ㅠㅠ 휴 완전 낯선 거리를 너무나 걷고 싶은 요즘입니다.
걷다 보면 정말 생각이 술술 떠오르죠? 책 읽은 것 정리도 머리에서 더 잘 정리되고.
이 책 읽다 보면 노르웨이 같은 데서 사는 거 축복 같다는 생각 들어요.

족저근막염 얼른 나아야 할 텐데요. ㅠ_ㅠ

행복한책읽기 2021-07-06 10: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찜해뒀는데. 잠자냥님 리뷰 보니 빨랑 읽고픕니다. 허나... ㅡㅡ

잠자냥 2021-07-06 10:54   좋아요 4 | URL
쌓였죠?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7-06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딩동댕~~~ ㅋㅋㅋ

독서괭 2021-07-06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 걷고 싶어지네요~ 하지만 오늘 많이 덥군요^^; 전 요즘 격일로 아침달리기 하는데 넘 좋습니당 ㅎㅎ

잠자냥 2021-07-06 12:32   좋아요 3 | URL
우아 아침 달리기! 부지런하삼! 더운 날 저녁에 열심히 걷고 맥주 한 잔하면... 캬- ㅋㅋㅋㅋㅋ 그래서 배가 안 들어가요. ㅋㅋㅋ

mini74 2021-07-06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아지덕에 산책이 늘었어요. 다른 강아지들과 인사도 나누고 ㅎㅎ 길 위에 강아지들의 삶도 있더라고요 *^^*

잠자냥 2021-07-06 17:22   좋아요 4 | URL
넴~ 강아지, 특히 큰 개 산책시키는 분들은 자연스레 걷는 일이 많아질 거 같더라고요! ㅎㅎ

붕붕툐툐 2021-07-06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도심 걷기가 왤케 부럽죠? 뭔가 분주한 강남대로에서 홀로 자유를 만끽하며 걷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건 잠자냥님!!ㅋㅋㅋㅋㅋ
(직장도 집도 시골인 1인~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6 22:39   좋아요 2 | URL
툐툐 님이 저 발견할 일 없겠다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7-06 22:47   좋아요 2 | URL
아~ 잘못 짚었네~ 시내면.... 명동인가? 종로? 을지로? 쳇!ㅠㅠㅠㅠ

잠자냥 2021-07-06 22: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아니 툐툐 님이 집도 직장도 시골에 있다면서요! ㅋㅋㅋ

책에빠진나 2021-07-11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어린이라는 세계’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다음책 뭐 읽을까 하다가 잠자냥님 글보고 결정했습니다!

잠자냥 2021-07-11 10: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길 바라겠습니다!

오라오라 2021-07-1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걷기 다음은 스쿼트 추천드립니다. ^^ 스타팅 스트렝스라는 책 추천드립니다.

잠자냥 2021-07-11 22:41   좋아요 0 | URL
넵,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1-08-06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잠자냥님 역시나 2관왕~ 축하드립니다. 잠자냥님 팬입니다(부끄)

잠자냥 2021-08-06 15:36   좋아요 3 | URL
하하하, 아 이 글이 뽑혔군요. 알 수 없는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세계. ㅎㅎㅎ 괭님이 전해주신 반가운 소식 휴가 중인 저에게 더 큰 기쁨~~!!

새파랑 2021-08-06 16:46   좋아요 2 | URL
팬 1명 추가 바랍니다.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8-06 16: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초란공 2021-08-06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2관왕~!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8-06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당선작~
 
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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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책은 읽는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 읽기라는 행위조차 왜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종종 드는 책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수록 그래도 감이라는 게 생겨서 그런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졌는데, <수영장 도서관>은 아주 오랜만에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하는 회의감에 여러 차례 부딪혀야만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은 것은 이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전작, 2004년 부커상 수상작인 <아름다움의 선>을 꽤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앨런 홀링허스트의 작품은 애초부터 읽기 수월하지는 않다. 지나치리만큼 세밀한 묘사 때문에 좀 읽다 보면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품도 꽤 길다. <아름다움의 선>은 빽빽한 글씨로 600쪽을 훌쩍 넘고, <수영장 도서관>도 500쪽이 넘는다. 섬세하고 우아한 문장, 진저리날 만큼 세밀한 묘사 등등 어떤 의미에서는 요즘 작가의 책을 읽는 것 같지 않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 <수영장 도서관>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때는 그런 탓이려니 했는데, 실은 게이 섹스에 대한 과한 묘사가 몇 번이나 책을 덮게 만들었다.

그래도 또 읽었나갔다. 작가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스물다섯의 예쁘장한 게이 청년 ‘윌리엄’은 남부러울 것 없는 처지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어쩐지 차별도 많이 받을 것 같고, 박해도 받을 것 같고,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에게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의 잘 나가는 귀족 가문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유명한 사립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를 나왔고, 할아버지는 또 엄청난 부자라서 그에게 럭셔리한 아파트를 척하니 사주셨고, 그는 그런 아파트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한량처럼 지낸다. 아니 그가 하는 일이라곤 고급 신사클럽인 ‘코리’에 가서, 수영을 신나게 하고 이 남자 저 남자 몸을 탐색하고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일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것도 부족해서 공중 화장실에서 급만남을 꾀하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자신처럼 공중 화장실에서 파트너를 찾아 전전하던 한 노인이 심장 발작이 와서 쓰러진다. 멍청하게 서 있는 다른 남자들을 헤치고 윌리엄은 그 노인을 심폐소생술로 구해주는데, 그는 알고 보니 같은 코리 회원인, 여든 넘은 ‘찰스’이다.

스물다섯 게이 ‘윌리엄’과 여든 넘은 게이 ‘찰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고급 신사 클럽 코리의 회원이라는 것 외에 둘 다 귀족 출신에 명문 사립학교를 거쳐 그 학교에서 게이로서의 정체성과 성(性)에 눈을 떴고 옥스퍼드를 나온, 어떤 면에서는 영국 사회에서 주류이면서도 그들의 성 정체성 때문에 비주류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찰스는 윌리엄에게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지 않겠느냐면서 십대 때부터 적어 나간 일기를 건네는데, 윌리엄은 그 일기를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수영장 도서관>은 이렇게 빅토리아 시대 말기에 태어난 ‘찰스’라는 인물과 1950년대 후반 태생인 ‘윌리엄’이라는 인물의 삶을 겹쳐 보여주면서 1900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영국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다뤄나간다.

이 작품의 거의 절반을 넘어가기까지는 윌리엄, 그리고 찰스의 화려한 남성편력기가 그려져서 대체 작가는 이런 설정으로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진다. 물론 찰스에 비해 1980년대에 20대를 보내고 있는 윌리엄의 생활은 한결 자유롭고 편해 보인다. 파트너를 찾기도 쉽고 어떤 사회적 제재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 태생인 찰스는 그의 성적 지향성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고 징역을 산다. 동성애에 관한 차별적 법이 어느 정도 느슨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윌리엄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찰스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그를 처벌함으로서 모종의 이익을 얻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윌리엄의 할아버지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초반부터 그토록 자유로운 윌리엄의 성생활을 노골적으로 그려낸 것은 1980년대 영국은 과거에 비해서는 동성애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얼마쯤은 자유로워졌음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물론 그 이후 대처 집권 시기에는 동성애 마녀사냥법이 부활해서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도 퇴색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이전 시기까지만 그리고 있다).

찰스의 일기를 통해 맞닥뜨린 엄청난 진실- 자신이 지금 누리는 성적 방종이 어찌 보면 높은 지위와 신분, 부(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며 그 바탕은 다른 동성애자를 탄압한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모순을 마주한 윌리엄은 당연히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기의 자유로운 생활의 모순을 마주한다. 게다가 스킨헤드족으로부터 뜻밖의 린치도 당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동성 섹스 파트너를 공공연한 장소에서 찾으려다 경찰의 함정 수사에 걸리는 일도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예쁘장한 부잣집 게이 도련님의 생활은 이런 균열을 겪으면서 그 자신이 완벽하게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성(城)이 자신의 성(性) 정체성 때문에 언제고 흔들릴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친구를 위해서도 무언가 행동할 것임을 은연중 암시하고, 실제로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또 아무리 찰스가 자기 할아버지로부터 박해받은 피해자임이 틀림없다 하더라도 그의 개인적 한계(포르노 제작 등)를 알고 난 뒤에는 그의 회고록 쓰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윌리엄의 각성은 그다지 센세이셔널하지는 않다. 그 또한 찰스처럼 미성년자인 10대 소년을 늘 자기 파트너로 점찍지 않는가. 게다가 그 청년들은 둘 다 유색인이거나 노동자 계층 출신이다. 그는 그런 소년들에게 시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듯이 대한다. 식민지 관리로서 유색인을 대해왔던 찰스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게다가 제아무리 윌리엄은 각성했다 하더라도 마지막은 결국 또 다른 아름다운 미소년에게 눈길을 주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윌리엄 분명 전과 달리 자신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언제고 무너질 수 있음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또 다른 쾌락을 좇기를 멈추지 못한다. 어느 정도 성장했으나 결코 미완성인 성장. 어쩌면 인간의 성장이 다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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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29 1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스토리 시작하기 전까지 읽었습니다. 배려해주셔서 흑흑,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9 10:56   좋아요 4 | URL
잘하셨습니다. 스토리는 그래도 재미납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1-06-29 12: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리뷰보고 어, 왜 또 올리셨지? 했는데 ㅋ 지난번 댓글에 줄거리요약을 리뷰로 또 착각을 했었네요.
레삭님도 섬세한 묘사 칭찬하셨는데 ‘진저리날만큼‘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이군요. 우아한 문장 참 좋은데요~^^작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딱 부잣집 좋은 교육받고 자란 그런 외모더라구요.
<아름다움의 선>은 점점 더 읽고 싶어집니다.

잠자냥 2021-06-29 13:05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 그러게요, 계속 이 책 이야기 하고 있어요. 별로였다면서!? ㅋㅋㅋㅋ 이러다 수영장 도서관 마니아 되겠어요. ㅋㅋ

작가 사진 저도 궁금해서 책 읽다 말고 찾아봤어요. 전 다른 호기심 때문에 ㅋㅋㅋㅋㅋㅋ (진짜 남자한테 인기 많았나 싶은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29 13:11   좋아요 5 | URL
ㅋㅋㅋ 당연히 마니아시죠.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작가 사진보고 모스크바 신사 작가 에이모 토울스도 떠오르더라구요. 역시 부잣집 멀끔한 백인 남자. 그 분도 문체가 우아했던걸로. 기억하는데요.

잠자냥 2021-06-29 13:16   좋아요 5 | URL
아 맞아요! 에이모 토울스하고 좀 비슷하죠. 부잣집 도련님 상 ㅋㅋ

아니 저 이러다 BL마니아 되는 거 아니에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1-06-29 13:34   좋아요 4 | URL
저는 잠자냥님이 리뷰를 두번 쓰신 걸 보고 평점과는 별개로 이 책에 애착이 있다고 느꼈어요 ^^

잠자냥 2021-06-29 14:11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30 09:3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의도와는 다르게 수영장의 최고 독자가 되셨어요.

잠자냥 2021-06-30 09:34   좋아요 1 | URL
이거 본문 시작 전에 ‘스포일러‘ 표시를 했는데도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셨어요. 아마 책 안 읽고 그냥 리뷰만 읽겠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분들을 위해 그 적나라하게 야한 부분 한 장 찍어서 올려줄 걸 그랬나봐요. ㅋㅋㅋㅋㅋㅋ 저 아래 쇼님 같은 분을 위햌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6-30 09:38   좋아요 1 | URL
오오~부탁드립니다 🙈🙈🙈

잠자냥 2021-06-30 09:4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6-30 15:30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수영장 도서관 마니아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리뷰… 가만 있어봐 ㅋㅋ 마니아 알고리즘에 파티원이 다섯명이라고 했는데 ㅋㅋㅋ

잠자냥 2021-06-30 15:39   좋아요 1 | URL
아이고, 쟝쟝 이 사람아, 알았어~ 오늘 집에 가서 내가 야한 부분 찍어 올려볼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29 13: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지 못하지만, 작가에게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
들이 접점을 이루지 못했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맹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해 불가 영역에 있는 이야기들
이 쏟아지니 제가 감당을 하지 못
한 게 아닌가... 뭐 그랬다고 합니다.

잠자냥 2021-06-29 13:09   좋아요 4 | URL
저는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ㅋㅋㅋ 아 근데 넘사벽도 있습디다. 폴스타프 님은 어떨지 기다려 봅시다. ㅋㅋㅋㅋ

물감 2021-06-29 13: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는 퀴어문학에 약한 것 같아요....출판사에서 서평요청이 왔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ㅋㅋㅋ
저라면 절대 좋은 평을 하지 않았을거라 다른 분들께 미안해질테니 그냥 안읽어야겠어요 하하핳

잠자냥 2021-06-29 13:28   좋아요 5 | URL
아니 이거 서평 요청 거절하신 거 맞죠? 책 이미 받으셨고, 써야 했다면 지옥문 열린 겁니다. ㅋㅋㅋㅋㅋ
존 치버 <팔코너>는 이 책에 비하면 아가 수준... ㅎㅎㅎㅎㅎㅎㅎ
(근데 서평 요청 받고 리뷰 쓰신 분들 평도 그닥 좋지는 않더라고요. 무쟈게들 힘드셨나 봅니다. ㅋㅋㅋㅋ)

syo 2021-06-29 14: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퀴어문학 엄청 좋아하는데, 왜 이 글을 읽고 나니까 역뽐뿌를 받는 걸까요 ㅋㅋㅋㅋㅠㅠㅠㅠ

잠자냥 2021-06-29 15:49   좋아요 3 | URL
ㅋㅋㅋ 쇼 님은 읽어보세요~ 김봉곤하고 박상영 책도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거의....우아..... 말잇못.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6-29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왜 읽지 하면서 500페이지를 다 읽고도 모자라 리뷰까지. 잠자냥 끝내주심. 저는 동성애자들도 계급에 따라 보는 시선들이 다르다고 느껴요. 부와 지위를 못 가진 동성애자들은 더 천대받는. ㅠ

잠자냥 2021-06-29 23:57   좋아요 2 | URL
네, 어느 사회나 부에 따라 계급이 나눠진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mini74 2021-06-30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영장과 게이 하니까 괜히 숨그네가 연상되네요. 수영장이 은근히 그런 장소인가봐요.

잠자냥 2021-06-30 15:26   좋아요 0 | URL
어머나... 저 숨그네 읽었는데 내용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기억 안 나죠?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30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후감 올리고 드디어 본문을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 많이 비슷하고 조금 달라서 뭐랄까, 위안도 되고 안심도 되는 묘한 기분이네요.
별점은 몇 개를 줄까 잠깐 생각하다가 만일 <아름다움의 선>보다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 네 개로 했습니다.
역시 잠자냥 님 리뷰가 오호, 정말 좋습니다. 또 한 수 배웁니다. @.@

잠자냥 2021-07-30 09: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많이 비슷하고 조금 다른 그 무엇을 발견하는 재미가 또 다른 이의 리뷰를 읽는 묘미겠지요. 이 책은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정치소설 맞습니다. 성 정치, 그리고 (영국의) 제국주의 비판이 담긴 정치소설이랄까요? ㅎㅎ

전 <아름다움의 선>이 아무래도 더 좋았어요. ㅎㅎㅎ
암튼 <수영장 도서관> 다 읽고 나서는 이 작가 책이 또 번역된다면 읽을까..... 싶었는데 읽을 것 같습니다.

 
몽마르트르 유서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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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의 삶을 다룬 앨런 홀링허스트의 <수영장 도서관>을 읽은 다음 곧바로 레즈비언의 삶을 그린 구묘진의 <몽마르트르 유서>를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같은 성소수자, LGBT의 삶을 담고 있어도 그 안에서도 더 약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 도서관>의 게이 ‘윌리엄’과 ‘찰스’는 영국의 백인 남성이다. 둘 다 귀족 집안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고 옥스퍼드를 나와 한 사람, 특히 윌리엄은 거의 한량처럼 지내며 섹스에만 탐닉하고 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스킨헤드족으로부터 린치를 당하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동성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와중에 경찰에 붙잡히기도 하는 등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겪을 일이 없는 사건을 겪으며 자기가 속한 세계의 모순을 깨닫고 어떤 변화를 겪지만 그 변화는 그렇게까지 혁명적이지 않다. 그는 전보다는 성장하지만 그래도 소설의 결말은 그가 다시 눈부신 매력을 뽐내는 어린 청년에게 눈길을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는 아무리 린치를 당하고, 자신의 조부가 동성애자를 학대하는 일에 앞장섰고 그로 인해 큰 이익을 얻었던 사람임에도 귀족 출신이며, 옥스퍼드를 나온 여유로운 집안의 백인 남성으로서의 지위는 변함없이 확고하게 그의 배경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에 비해 <몽마르트르 유서>의 레즈비언 ‘조에’의 삶을 보자면 첫 장부터 그리 녹록치 않다. 우선 <수영장 도서관>이라는 다소 발랄한 제목에 비해 ‘유서’라는 비극적인 단어가 들어간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몽마르트르 유서>의 레즈비언 ‘조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갔을까. 이 작품의 대부분은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조에는 백인 남성은커녕 백인 여성도 아닌, 동양 여성으로 타이베이 출신이다. 유학생 신분의 그녀는 3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연인 ‘솜’으로부터 결별당한 채 그들 사이의 자식과도 같았던 반려 동물 ‘토토’마저 잃고 철저히 고독과 외로움에 휩싸인, 파리에서의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몽마르트르 유서>는 그런 처지의 조에가 헤어진 연인 솜을 그리워하며 절절히 써 내려간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글에서 조에는 때로는 솜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며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책 끝부분에 실린 솜의 편지들을 읽노라면 솜 또한 조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왜 조에와 헤어져야만 했을까? 조에의 편지를 통해 솜은 조에보다는 레즈비언으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삶을 버거워 했음을, 특히 가족들로부터 끊임없이 압박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둘의 사랑은 물론 결별에 그 누구도 돌을 던질 수는 없다. 그 누가 솜의 배신을 배신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선택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두 연인이 여느 이성애 커플과 똑같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 돌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다시 <수영장 도서관>의 ‘윌리엄’이 떠오른다. 옥스퍼드를 나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아파트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파트너가 있음에도 그의 눈을 피해 일회성 만남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그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그저 쾌락만 좇는 삶,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위협도 없는 너무나 안온하기 짝이 없는 세계로 보인다. 늙은 게이 ‘찰스’의 삶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는 사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그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다. 심지어 자신의 회고록을 남기겠다고 윌리엄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백인 남성의 게이 섹스라이프는 회고록으로도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에, 이 동양인인 데다가 레즈비언 여성은 유학생 신분으로 ‘나는 예술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탁월한 예술을 완성하는 일이다’(76쪽) 말하며 글로써 자신의 예술을 꽃피우고자 여러 번 다짐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세상의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그 모순을 견디다 못해 결국 삶을 스스로 마감하게 된다. 고작 스물 몇을 넘긴 나이에……. ‘조에’와 ‘솜’은 왜 ‘윌리엄’이나 ‘찰스’처럼, 그 백인 남성들처럼 끝까지 살아남아, 그들처럼 여전히 당당하게 사랑을, 쾌락을 좆으며 살아갈 수 없었을까.

소설 속 인물인 ‘조에’와 ‘윌리엄’이 완전히 소설 속 인물로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몽마르트르 유서>의 ‘조에’는 작가 자신 그러니까 ‘구묘진’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묘진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94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여성학을 전공하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꾸며 살아갔다. 그러나 이듬해 유작인 <몽마르트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자살은 소설 속 ‘조에’의 삶이 그러하듯이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던 인습과 차별, 억압으로 가득한 세계와의 싸움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 아니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이다. <수영장 도서관>의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 역시 성소수자, 게이이다. 백인 남성으로 ‘윌리엄’처럼 옥스퍼드대를 나왔고 게이의 삶을 다룬 소설 <아름다움의 선>으로 2004년에는 맨부커상을 받으며 작가로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소설의 재료가 되어 그가 작가로서 승승장구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데, 왜 같은 성소수자인데도 한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저 대만 퀴어문학의 전설과도 같은 별로 남아야만 했을까. 전설과도 같은 별이 아니라, 지금도 태양처럼 빛나며 작품 활동을 할 수는 없었을까. 차별 속의 차별, 억압 속의 억압이라는 말이 <몽마르트르 유서>를 읽고 난 뒤 내내 떠나지 않는다. 구묘진, 아니 ‘조에’가 만일 동양인 여성이 아니라 백인 남성이었다면 아무리 연인을 잃었다 한들 스스로 세상을 등졌을까. 어쩌면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연인을 잃어버리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조에의 죽음을 지켜보며 모든 차별 속의 차별들, 억압 속의 억압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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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28 12: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것처럼 같은 퀴어문학인데 제목부터 확 갈리네요. 왜이렇게 화가나죠? 저는 도서관은 패쓰할거지만 유서는 보관함에 담겠습니다.

잠자냥 2021-06-28 12:11   좋아요 4 | URL
휴, 그러게요. 제 느낌으론 같은 성소수자라고 해도 남성과 여성이 처한 위치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암튼 이 지구는 백인 남성에겐 천국인 느낌.... -_-

새파랑 2021-06-28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구묘진˝ 장편소설이라길래 우리나라 작품인줄 알았어요 ㅎㅎ 이러한 연관된 독서읽기 좋네요~!! 전 단순히 <버지니아 울프를 누가 두려위하랴>를 읽고, 아무 상관없는 ˝버지니아 울프˝ 책 읽고있는데 ㅡㅡ
이런 장르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차별없는 사랑에는 공감이 듭니다^^

잠자냥 2021-06-28 12:12   좋아요 3 | URL
네, 대만의 전설적인 퀴어 문학가라고 합니다. 짧은 생애라서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책은 다른 책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또 부지런한 독서가는 그 길을 잘 따라가지요. 그럴 때 독서의 세계는 아주 풍부해지는 것 같은데, 새파랑 님은 참 그걸 잘 하시는 것 같아요. ㅎㅎ

레삭매냐 2021-06-28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금 엄하지만 <수영장 도서관>
리뷰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젭알.

잠자냥 2021-06-28 14:1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매냐 님이 잘 쓰셔놓군 ㅋㅋㅋㅋㅋ
알겠습니다요-

coolcat329 2021-06-28 1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구묘진...대만 작가군요.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 거기다 결말까지 같아 작가가 참 가엾고 불쌍하네요. 이 작품이 그녀의 유서같습니다. 이렇게 비교해서 멋진 리뷰를 남기셨으니 수영장을 힘들게 읽은 보람이 있겠습니다.

근데 ㅠ 그렇게 글을 잘쓰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아 글을 쓰면서 이겨내보지 참 안타깝습니다...

잠자냥 2021-06-28 17:53   좋아요 4 | URL
네, 그냥 소설로 읽기엔 너무 작가의 삶과 겹쳐져서 참 여러 모로 안타깝더군요. 에휴.

붕붕툐툐 2021-06-28 2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별 속의 차별, 억압 속의 억압 사라지는 세상 함께 꿈꿔봅니다~🙏

독서괭 2021-06-29 0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품이 있었군요!! 퀴어소설 좀 읽어보려 하다가 <콜미바이유어네임>이랑 <딸에 대하여>을 읽었는데 이 소설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21-06-29 09:25   좋아요 1 | URL
네, 구묘진 작가 책이 두 권 번역되어 있던데 둘다 퀴어 문학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