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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ㅣ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문경민 작가는 교사로 재직하다가 마흔 살에 등단해서 <훌훌>로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과 권정생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책이, 문학이, 소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고, 다 같이 잘 살면 그게 좋은 거다.
p.188 <나는 복어/작가의 말/어떤 믿음>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는 죽고 아버지라던 남자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누가 뭐라든 다 지난 일로 덮고 멀쩡한 척하는 게 내가 선택한 탈출구였다." (p.9)
별명이 청산가리인 두현의 자기소개와 같은 문장이다.
비록 두현이는 어릴 적 겪은 아픔을 가슴 한편에 두었지만 든든한 지원자인 조부모 아래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준수라는 힘이 되어주는 친구와 재경이라는 당돌한 여사친도 있다.
작가는 자현기계공고에 다니는 두현, 준수, 재경, 강태 그리고 정명진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 문경민의 소설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눈앞에 펼쳐지는 문장들이 매끈하게 다가온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용광로에 사람을 떨어뜨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끼여 죽게 만드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이 콜센터 직원을 자살에 내몰리도록 내버려두고, 현장 실습생이 배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가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허락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떠드는 거야. 뻔뻔하고 파렴치하게." (p.108)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개 같은 세상이 당신 편이어서
당신은 자기 말이 옳다고 믿는 거야!"
p.108 <나는 복어>
작가는 이렇게 사회의 모순만을 꼬집어내지는 않는다. 독자들이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일까? 아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는다. 살기 위해서다. 그런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이 있다.
누군가 청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문경민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복어>라는 제목과 웹툰을 떠올릴법한 캐릭터가 그려진 표지가 누군가에게는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어떤 이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소설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추구해왔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다면 바꾸어야 하고 그것이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부당함을 준다면 돌아봐야 한다.
슬픔과 좌절, 원한과 분노 속에서 자란 모든 이들이 다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는 것처럼 그것이 삶의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길 바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봄이 가고 어느덧 여름빛으로 바뀌려는 나뭇잎을 보며 희망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나는 복어>를 추천한다.
"한번 깨졌던 내 영혼은 정밀하게 깎아 낸 금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끔했다. 마음의 표면에 신선하고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일렁이는 이 마음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생각하는데, 불현듯 투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p.186)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나는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나는 쇠도 깎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p.187 <나는 복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