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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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극한의 슬픔이 찾아온다면, 참을 수 없는 감정의 고통이 찾아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 누군가가 길을 떠난다. 눈먼 강아지 '와조'와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길을 떠난다. 모텔을 전전한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번호로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길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전한다. 연필로 꾹꾹 감정을 눌러담고, 일기를 쓰듯 말한다. 고시원에서 생활 중이던 367번 어머니의 불륜을 알게 된 239번 여고생, 자살을 하려 했던 이를 구하고 자신이 목매 죽으려 했던 운동화끈을 바꿔 맸던 32번,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비상한 자신의 기억력이 주소를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그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여행을 떠나 왔으니, 그의 답장을 기다려주는 이는 따로 있다. 그의 친구. 아침마다 그를 깨워 우편물이 왔는지 확인하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그는 한 장의 답장이라도 도착한다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아 3년 동안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말더듬이였던 그는, 타인의 앞에 나서서 매끄럽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속에서 훈련한 그만의 치료 방법. 말을 심하게 더듬어 모든 게 자신 없었던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우편배달부를 하게 된다. 우편배달부는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에, 엄마와 가족들이 그의 직업을 결정했다. 형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직업이니 멋지다고 추천했지만, 소식이란 나쁜 것, 좋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만을 전해주진 않았다. 아버지는 발명가였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마다 발명을 했고, 발명품을 소중히 여겼다. 장난감 가게를 운영했는데, 아버지는 형이나 여동생보다 그가 아버지의 장난감 가게를 이어 운영해주길 바랐다. 여동생은 공부도 잘했고 똘똘한 아이였지만, 외모로 판단하는 사회에 질려 얼굴을 고쳐나갔다. 결국,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도 사람들은 얼굴만 예쁜 사람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엄마, 아빠, 형, 동생에게도 편지를 쓴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 멀리멀리 보낸다. 그의 집으로.

모텔을 전전하며, 뚜벅이 여행을 하던 그에게 나타난 751번.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을 팔러 다니는 특이한 사람이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그를 도와주게 되어 여행을 함께 하게 되고 그는 그녀의 책을 파는 일을 돕기도 한다. 티격태격 싸우고, 한 방에서 같이 자기도 한다.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은 그녀였고, 와조를 돌봐주던 이도 그녀였다. 어느 날부터 여행 동지가 되어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삶과 길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의 여행 습관을 그녀 때문에 바꿔야 하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낭독도 하고 지하철에서 그녀의 책을 팔아주기도 했다. 누군가 함께 하기만 하면 잡음을 냈던 그녀는 점점 그에게 익숙해지고, 그를 편하게 느낀다. 그녀가 옆에 있는 게 싫지 않다. 

어느 날, 그와 그녀는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고, 그날 밤 고시원에 불이 나게 된다. 와조가 그가 자살하려 할 때 날뛰어 그를 구했던 것처럼, 그를 깨워 불구덩이에서 탈출시킨다. 뉴스에도 크게 보도될 정도로 큰불이었고, 많이 지쳐 있었던 와조는 힘겨워한다. 눈이 보이지 않던, 나이가 많았던 와조. 할아버지의 맹인견이었던 와조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고를 당한 후에 눈이 멀게 되었다. 와조를 부탁하던 할아버지, 와조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어 먼 길 여행을 함께 했던 와조. 이제 와조가 아프다니 그는 돌아갈 결심을 한다.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집이지만, 집이기에 받아들여야 하기에 돌아간다. 

텅빈 집, 고요한 집, 아무도 없는 집에 도착한 그. 3년 전 일들이 떠오르고, 또 발작을 일으킨다. 친구가 와서 떠드는 통에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혼자 남게 되면 어김없이 발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웃집 아줌마가 찾아 와 그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 들고 온 꾸러미. 온통 편지뿐이다. 그가 그렇게 기다렸던 답장은 그렇게 쌓여 있었다. 눈물이 난다. 편지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가 보낸 소식들은 헛된 것이 아니었고, 그가 기억한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짓 주소를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답장이 오지 않자 또 보낸 사람도 있었다. 

그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떠났다. 여행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소를 묻고, 번호로 기억해 편지를 보냈다. 그들의 답장을 기다리면 길에서 보냈던 3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오지 않는 편지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모두들 그에게 주소를 잘못 알려줬을지도 모른다는, 답장하고 싶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많은 상상 속에 아쉬워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자신이 정한 규칙과 원칙을 지키며 여행내내 매일 밤 잠들기 전 기억 속에 가둔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편지를 썼다. 매일 실망하면서도 매일 편지를 썼다. 그에게는 어떤 의식이었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말을 더듬던 그가 말을 더듬지 않게 된 것도, 집에 돌아와 발작이 멈추게 된 것도 편지 속의 주인공들과 그 편지들 때문이었다.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 슬픔의 먼지를 털고, 세상 속으로 나가려고 준비한다. 그동안 주저했던 일들을 이제는 해야 할 시간이다. 와조도 떠났고, 소중한 사람이 그를 떠나갔지만, 이제 다시 시작할 힘이 난다. 그가 보냈던 편지들에 대한 답이 그에게 힘을 준다.

몸부림쳐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 있다면, 억지로 고통을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훌쩍 떠나거나, 훌쩍 돌아오거나, 낯선이들을 만나 나를 소개해도 좋다. 그들의 인생 소식을 들으며, 내 고통과 상처를 잠시 잊을 수 있고, 그들의 인생 고통을 들으며 공감하며 치유할 수도 있다.
그가 받은 '편지'는 그가 삶을 다시 살아갈 '희망'이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순간, 모든 이들이 떠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에게는 모두가 생겼다. 길에서 만난 모두가 그의 인생의 모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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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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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다 아는 대망의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다. 그동안의 처절한 몸부림이 점수로 나오는 날. 온갖 스트레스와 억압된 자유와 선택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수치가 정확히 나오는 날. 수능날에는 관공서가 출근 시간을 늦추고, 부모들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하루를 보낸다. 수년간 공부한 것들을 종합하고 집중해서 단 한 번에 해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원하고 사회가 원하지만, 나도 원하는지 모르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비이상적인 교육열로 아이들이 고통받는 한국은, 아이들이 즐거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하긴, 조금만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도 명문대 못 가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온갖 비난 속에 시도조차 포기해야 하는 많은 교육자들. 사실, <핀란드 교실 혁명>은 부모들이 읽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뭐 개중 부모들은 잘하는 아이만 열심히 가르치면 되지 공부에 흥미 없는 아이 뭐하러 애써서 가르치느냐 하겠지만.

세계 최고 학력을 낳은 핀란드 교육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강요도, 고함도, 권위도, 억지도 없는 선생님과 함께 소수의 인원이 반을 이루고 자유로운 커리큘럼에 따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만 공부한다. 아이들은 할 공부를 끝내고 종이접기를 하거나, 수업시간에 뜨개질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잠을 자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학생들이 아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아니다. 그냥 우리 반 학생이다. 선생님은 빨리빨리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참을성 있고 끈기있게 아이들이 혼자 해낼 때까지 기다린다. 선생님은 아이의 공부가 협력자가 될 뿐, 지배자는 아니다.

핀란드의 교육철학은 '격차'를 없애는 것에서 출발한다. "교육의 질이 떨어져서도 안 되고, 아이의 배경이나 출신이 교육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됩니다." 정말 멋진 말이다. 명문대의 학생들이 강남, 고소득자 아이들로 채워지는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때는 말이다. 교육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핀란드.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만 한다면 수업 시간 내내 여자친구만 바라봐도 뭐라 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3년마다 PISA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기술과 지식에 대해 정책 지향적인 국제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핀란드의 아이들은 골고루 격차 없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시험도 없고, 학습 진도도 저마다 다르다. 방대한 지식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선행학습을 하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은 명민하며 똘똘하다.

우리의 교육이 똑똑한 아이들을 골라내고, 양성하는 교육이고, 탈락자를 골라내는 교육이라면, 핀란드의 교육은 스스로 하는 공부를 지향하고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느리더라도 상관없다. 교육은 삶의 원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구성주의 교육을 추구하는 핀란드의 교육에서는 '협동의 지식'이 우선이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속에서 더욱 충실한 지식을 만들어가는 핀란드 교육. 뜨개질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수업시간에 뜨개질을 하지만, 뜨개질 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그룹으로 뜨개질을 해서, 어떤 것을 만들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무언가를 만들기로 하고, 서로 나누어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정하고 나중에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협동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한다. 어려서 어설퍼 보여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협동해서 공부하는 게 핀란드 아이들이다.

또한, 핀란드 교사들은 자율성과 전문적인 권한이 있다. 자신의 반 아이들을 자신의 학습 방법대로 가르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아이들의 스케쥴을 조절한다. 한 반에 2, 3학년이 함께 공부해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다. 진도가 빠른 아이는 빠른 아이대로 3학년 수업에 맞춰갈 수 있고, 진도가 느린 3학년은 2학년 학습을 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가 지진아라고 하지 않고, 빠르다고 우쭐해 하지 않는다. 그냥 조금 더 빨리 알고, 조금 더 느리게 알 뿐 어쨌든 다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학생들과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렇게 되니 교육에서 상호 작용은 활발하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 두려워 않는다. 억압된 풍경에서 선생님의 비위를 맞추며 공부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과는 사뭇 비교되는 광경이다. 공부 스트레스도 심한데 선생님의 성격까지 맞추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비뚤어지게 되면 그 이유를 학생에게 돌린다. 사실 아이가 비뚤어진 감정을 갖고, 엇나가는 행동을 하는 것에는 어른들이 가장 큰 이유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학창시절, 성격 더러운 선생님에게 별명을 붙이고, 담임 선생님은 '담탱이'라고 비하하며 선생님의 매와 힘에 순응하고 움직일 때가 많았다. 종소리가 나면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받아야 하고,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면 복도행이었다. 수업시간에 내 기분보다는 선생님의 기분에 좌지우지되었고, 혹시 모르는 문제를 풀라고 하지 않을까 창피당하게 될까 봐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게 우리 교실 풍경이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좁은 교실에서 우글우글 수업을 받다 보면,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게 되며 외면하게 된다. 참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출을 하고, 학교를 떠난다. 평균에서 이탈하는 게 두려운 부모들은 자식을 다그치고, 모든 게 자식 탓인냥 선생님에게 굽신 된다. 부당한 처우를 받고도 학교에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자식이 혹 다른 피해나 입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가르치고 싶은 깨인 선생님도 공부 잘하는, 돈 많은 부모의 항의로 압박을 받는다. 자신의 경력이 손상되길 바라지 않기에, 보통 선생님처럼 행동하려고 애쓰지만, 사실 선생님이라는 지위로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대학' 때문이다. '대학'에 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고, 명문대를 가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며 사회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교육에는 '여유'가 없고, '억압'과 '집착'만 있다. 학교는 특수고를 몇 명이나 보냈는지, 명문대를 얼마나 보냈는지 수치화하고 자랑한다. 하지만, 핀란드의 교육은 생각 자체가 다르기에 모두가 평등하고 재미있게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여유롭고 편안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서로 수업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경계'를 만들지 않고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는 아이는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답을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참 따뜻하다.

행복한 공부를 하는 교실 풍경. 공부를 하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아이는 없는 것 같다. 과제를 끝나면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아이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 속에서, 아이는 교육이 부담스럽다고 느끼지 않고 학교를 즐거운 놀이터 정도로 생각한다.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으니 수업이 끝나도 학교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급식도 채식하는 아이와 이슬람교 아이, 다른 인종의 아이를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 하나만 보아도 핀란드에서 어떤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행복하고, 배우는 아이들도 행복한, 그랬더니 세계 최고의 학력을 낳는 핀란드가 되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적용되기 힘든 교육도 있을 것이며, 핀란드만 무조건 따라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는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기다려주고 생각해줄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숨 가쁘게 공부한 한국의 아이들은 숨 가쁘게 진로를 결정하고, 숨 가쁘게 취업 준비를 한다. 공부가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을 위한 도구인 듯, 모른 채 끌려왔다가 허탈에서 자기의 길을 잃기도 한다. 핀란드는 기초 교육이 끝나고 고등 교육이 끝나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사회 경험을 할 수 있거나, 전문학교에서 원하는 길을 찾기도 한다. '대학'이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공부의 이유이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다.

학부모들이 직접 교육에 달려들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공부를 하도록 방향을 모색한다.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장학사도 장관도 대통령도 교육의 병폐를 어쩌지 못하고 방관한다. 그들이 그렇게 자랐기에 밟고 올라갔기에 그들은 그게 맞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부모는 허리 휘게 돈을 벌어 자식의 교육에 쓰느라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가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라 좋다 싫다 말도 못한다.

'공부해라'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했다.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읽고 싶을 때 읽고 쓰고 싶을 때 썼다. 우리 부모님이 자유 교육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사는 게 바쁘셔서 공부해라는 말도 책보라는 말도 안 하셨다. 남들만큼 지원해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셨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난 부모님한테 감사하다.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뛰어나게 잘하진 않았지만, 욕심도 부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을 걱정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하고 싶어서 할 수 있을까? 문득, 핀란드의 교실 풍경이 부럽다. 부모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가 먼저 변해야 아이에게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많은 과제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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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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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갑자기 떠난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한 OK김, 막장 드라마 작가에 표절의 오명까지 뒤집어쓴 나작가,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사채를 쓰고 쫓겨 다녀야 했던 박벤처, 감 떨어진 포토그래퍼에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게 된 원포토.
OJ김여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OJ'에서 만나게 된 이들. 누군가를 찾는 이, 머리를 식히려고 떠나온 이, 누군가를 지우려고 떠나온 이 사연도 가지각색. 하지만, 그들은 OJ 여사의 참견 속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 

삶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했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면, 뭐든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도대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맞는 곳인지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게 힘들어질 때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깨달음, 문화, 음식, 낯선 세계 속에 타인, 그리운 일상. 떠나보면 알지 못하는 여유와 자유까지도 우리는 어딘가를 갔을 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그녀를 찾아 미친 듯이 지구 반 바퀴를 돈 OK김. 그는 그녀를 찾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만, 겹겹이 쌓인 난관에 마음만 탄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OJ여사는 대체 입을 열 줄 모르고, 엿듣기도 불사하며 그녀를 찾아 나선다. 9일간 그녀를 찾아 헤매며, 그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상처, 그녀가 떠나온 이유, 알고 싶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던 것들. 그는 망설인다. 과연, 나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찾으려 했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일까? 망설이는 그의 등짝을 치며 그녀에게 달려가라는 OJ여사. 그는 그녀를 찾으러 부에노아이레스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그가 찾게 된 것은 그 이상이었다.

쓰고 싶었던 드라마는 종래 쓰지 못하고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가 된 노작가. 이번에 만든 드라마는 심지어 표절 시비까지 걸렸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도 욕을 먹으며 살았기에, 사람이 두려웠고 사람이 불편했다. 모든 걸 내던지고 부에노아이레스로 왔건만 지갑을 잃고, 어떤 여자의 도움으로 게스트하우스OJ에 당도한다.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었는데, OJ여사는 사람을 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사라져버릴 것 같은 원포토를 만난다. 둘이 함께 아르헨티나를 돌며 노작가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거리며 라면을 먹는 박벤처. OJ여사 아들 아리엘과 아르헨티나를 심드렁하게 즐긴다. 그는 가족을 등지고 아르헨티나로 떠나온 중년의 남자. 사업이 망하기도 했지만, 아내의 등쌀에 아이들 교육비로 수많은 돈을 미국으로 보내며, 고시원으로까지 쫓겨나게 됐다. 기러기 아빠로 살며, 아이들은 지원해야 했기에, 사채까지 쓰게 됐고 어느 날 펑하고 터져버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의 시름은 깊어 가지만, OJ여사는 그가 가족을 등지고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떠나보내야 했던 원포토. 그녀를 만나고 삶의 힘을 얻었는데, 그녀를 잃고 삶의 힘을 잃는다. 잊기 위해, 버리기 위해 찾아온 아르헨티나. 죽을 것만 같다. 한 때는 자신에게 찍히기 위해 모델이 줄을 섰고, 사진을 배우겠다며 간도 쓸개도 뺀 아이들이 줄을 섰지만 이제는 감 떨어진 사진작가라는 오명에 B급도 되지 못한다. 사진 찍는 일도 두려워졌다. 그에게 남은 게 없다. 하지만, 그의 절망 뒤에는 또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찾거나, 헤매이거나,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아르헨티나를 여행한다. 밤 문화에 미쳐있는 젊은이들이 가득찬 클럽을 구경하기도 하고, 열정적인 탱고쇼에 매료되기도 한다. 거대한 크기에 움직이는 꽃 조형물 플로라리스 헤네리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기도 하고 부에노아이레스의 신흥 부촌 푸에르토 마데로에서 멋진 야경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거대한 빙벽과 무엇이든 삼킬 것 같은 폭포. 그들이 지나치고, 머무르는 그곳들은 변화와 용기를 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세상의 끝 우체국에 섰을 때 끝보다 시작이 보이던 여행길.

그들 모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멍하니 헤매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와 OJ여사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 그들이 힘을 내게 한다. OJ여사도 남편이 떠난 후, 그를 기다리며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아들을 키웠다. 그 또한 상처에 가득하고 힘든 삶을 살았을 테지만, 아르헨티나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9일간의 여행, 그리고 선택, 누군가는 무엇을 버렸고 누군가는 어떤 것을 찾았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기 전에는 괴로웠고, 고통스러웠고, 상처투성이였지만 다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기억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몸속으로 퍼져 기운을 준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작가가 찍은 사진, 명소에 대한 설명이 섞인 자전적이며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다. 그녀가 떠난 여행에서 얻었던 것들에 인물을 만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넣어 만든 이야기다. 인물에 대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현실처럼, 혹은 거짓처럼 아르헨티나를 짚어갈 수 있다. 흔해 빠진 여행 소개책보다는, 픽션을 가미한 여행 소설쯤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또한 만신창이가 되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지만, 돌아올 때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힘을 얻었다'라는 사실적인 이야기보다, 각각의 인물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OJ여사의 말에 따라가며 힘을 얻는 모습이 더 설득력 있는 여행담을 만들어낸 것 같다.

여행 후에 반드시 남겨야 할 것.
담아온 추억들을 삶의 현장에 투영시키기!
찾아온 무언가가 현실에서 느껴질 때 우리는 이미 또 다른 여행지에 서 있다.
- 268p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담아온 추억들을 그녀의 현장에 투영시켜,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만신창이가 되었던 마음을 위로받고 돌아와, 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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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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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물이 위험수위를 넘는다. 사람들이 패싸움을 벌인다. 살자고, 다른 지역에 물이 차올라도 모른 척 모래가마니를 쌓는다. 물이 사람을 위협한다. 그 와중에 사회부 기자 문정수는 기사 거리를 찾아 배고픈 개마냥 침수 지역을 어슬렁거린다. 비릿한 물비린내가 그를 가득 채운다.

타이웨이 교수의 <시간 너머로>의 출간에 참여한 노목희, 고향 창야의 저수지 뚝방 붕괴사고를 보며 과거의 어떤 이를 회상한다. 노학연대 집행부였던 장철수, 그는 연마공의 추모집회에서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라는 추도사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추도사와 걸맞게 비루하고 치사하게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취를 감춘다.

초등학생은 개에 물려 죽는다. 방치당한 채, 자기집 개에 물려 죽는다. 철거 지역에 사는 아이였다. 강제철거 빈민지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톱뉴스가 된다. 죽은 아이의 엄마는 나타나지 않고, 문정수는 죽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 '해망'으로 간다. 그에게 또 다른 기억이 있는 해망. 그곳에는 아이의 죽음을 알고도 나서지 못한 여자 오금자가 있다.

인명구조특공조장 소방위 박옥출은 화재 현장에서 보석을 훔친다. 뒤늦게 보석이 사라졌다는 게 밝혀지지만 그는 입을 다문다. 브로커에게 장물을 팔아넘기고, 신장이 나쁘다는 핑계로 명예롭게 퇴직한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문정수. 하지만, 박옥출은 그에게 함구할 것을 요구한다. 문정수는 알면서도 모른척한다. 박옥출은 해망으로 향한다. 어떤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

잘, 더, 좀, 또, 꼭, 좋아, 싫어 같은 외마디 한국말을 좋아하는 후에는 해망의 바다에서 특별한 것을 건져낸다. 8년 동안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 들이 쏟아낸 포탄 껍데기와 탄두가 널려 있는 바다는 쇳덩어리를 품고 있다. 해망의 펄 속에서 쇳덩어리를 건져내는 후에. 그녀는 한국에서 무엇을 건지고 싶었던 것일까.

방조제에서 한 아이가 크레인에 깔려 죽는다.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무시하고 방조제 건설에 정신이 없었던 해망. 그 사이에서 17세 여학생이 깔려 죽는다.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바다 곁에서 논과 밭을 일구며 사는 방천석. 딸의 죽음으로 여론이 시끄럽다. 시민단체가 공사 반대운동에 불을 당기고 한 아이의 죽음은 가족들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전략적으로 이용된다. 마을 사람의 바람대로 당분간 보상금을 받지 않도록 한다. 침묵하지만, 그는 행동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

해망을 밥 먹듯이 드나들게 된 문정수, 새벽에 찾아오는 그를 조용히 도닥이는 노목희, 후에와 쇳덩어리를 찾아 헤매는 노목희의 선배 장철수, 후에와 장철수와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된 오금자, 오금자에게 집과 논, 밭을 빌려주고 보상금을 받아 떠난 방천석, 포탄과 탄두를 거둬드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 박옥출, 박옥출의 고철 사업 때문에 쇳덩어리 찾는 일을 못하게 되어 장기 밀매를 한 장철수, 그 장기를 받은 박옥출.

그들은 해망과 함께 시간과 사연으로 얽혀있다. 모든 인물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상황과 마주치거나,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상황에 상처받기도 한다. 서로가 얽히고 섥혀있지만, 서로를 알듯 말듯 잘 알지 못한다. 

소금을 만들어내는 펄처럼, 바람에 날린 소금을 먹어 힘을 쓰지 못하는 땅덩어리처럼 어딘지 모두가 힘들다 못해 비루하다. 시간 너머에 도달하지 못하고, 시간을 등에 업고 겨우겨우 살아간다. 하지만, 끝내 다투던 시간에 자신의 기운을 싣는다. 노목희는 북디자이너 과정을 배우러 스웨덴으로, 문정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오금자는 아들의 보상금을 받고 다시 살아보려, 장기매매를 했던 장철수는 그 돈으로 후에에게 약간의 자유를 선물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읽는 내내 팍팍하다. 우울한 바다 속을 헤엄친다고 할까?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꾹 참는다. 이 모든 것들. 우리는 잘 참아내고, 잘 이겨내고 건너가고 있다. 시간 너머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종내 시간을 너머로 가기 위해 이렇게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게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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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너 - 다음 세대를 지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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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영세가 말하는 이매지너란 감성적 능력이 발달한 우뇌형 인간으로서, 강력한 상상의 힘으로 미래의 가치를 현실의 성공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디자인의 시대를 주도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크리에이터들을 이매지너(Imaginer)라고 부른다.   


'디자인하다'라는 말은 이제, 상품을 넘어서, 관계, 이야기, 사람 등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 그만큼 '디자인'은 삶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디자인은 어떤 것을 재정립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인들도 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관심은 문화로도 뻗어나간다. 사람들은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더라도 디자인을 중시한다. '디자인'은 비슷한 커피 맛까지 더 맛있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작은 그림과 커피잔에 감동하며, 심지어 메뉴판에도 감동한다. 스푼과 물컵 하나도 카페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 '디자인'을 무시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김영세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다. 그는 많은 히트 상품을 냈고, 사람들을 잡아끄는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이매지너>라는 책 속에는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가치와 방향, 일상에서의 노력 등이 담겨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김영세가 되기를 꿈꾸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김영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영세처럼 될 수 있는 작은 팁들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디자인 키워드는 생활(lifestyle), 문화(culture), 공간(space). 그리고 사람을 중심에 된다. 또한 그것들을 모두 연결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이 책을 살펴보면, 그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은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비 라인'의 MP3 플레이어를 만들었고, 아내의 한마디에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 디자인을 완성했다. 디자인에 대한 애정, 관심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애정이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또한, 사랑하는 것들은 그에게 자석처럼 들러붙어 프로젝트로 재탄생했다. 디자이너는 세상에 못 할 디자인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는 공공 자전거 디자인, 가구, 생활용품 디자인 등 디자인을 대중화하려는 노력도 계속해 나갔다.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는 회사는 많다. 하지만,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어내야 할지 모른다. 김영세는 말한다. 디자인 경영이라고 해서, 회사의 대표들이 외국에 나가서 디자인을 구경하고 온 후 디자인에 참견하고 자기 맘대로 휘두르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창의성은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또한, 이야기가 활발한 집단에서 창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얻을 수 없다.

상상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고, 현실 가능하게 한다. 김영세는 그것을 믿는 사람 같다. 그의 회사 '이노 디자인'에서 그것들을 이루어 내고자 한다. 그의 그런 노력들이 대중 속의 디자인, 디자인 위의 디자인, 디자인 속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묻고, 방법을 생각하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그의 신념이 많은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그의 손에서 탄생된 디자인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다. 

<이매지너>에서 그가 말하는 것들은, 다른 책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매지너>에 실린 그의 디자인들과 디자인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그의 이야기다. 자신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믿는 김영세는 꿈속에서도 디자인을 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많은 것이 현실이 되었고, 그를 주목받게 만들었다. 

그는 그가 말한 디자인의 39가지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이다. 상상하는 것을 그리고, 타인이 일상에서 관심을 갖는 것을 관찰하고 디자인해 현실화한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계에 업적을 남겼다. 디자인은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디자인의 세계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특별한 이매지너는 싫다. 보통 속에서, 보통을 누리는 사람들이 이매지너가 되어 특권이 아닌, 진정성이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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