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달에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2
박미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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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살고 있는 ‘나’와 같이 다른 세계의 ‘나’가 있다면 어떨까? 어딘가에서 나와 다른 나가 살고 있다면? 그런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 같았지만, 읽고 보니 ’나‘를 빼앗기고 잃어버린 ’나’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 같았다.

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나? ’나‘는 ‘나‘로 살고 있나? 생각한다. ’나‘라는 문제에 봉착하면, 늘 어렵다. 이 세계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나’가 아닐까?

아빠의 요구와 기준에 늘 맞춰야 하는 시은이. 시은이는 청소년기에 부모의 요구에 따라 부단히 노력하는 작고 여린 아이다. 아빠가 힘을 써서 들여보낸 최고 엘리트 학교, 미술로 정해 놓은 진로. 그게 꼭 진리이고 답인 것처럼 아빠의 기준에 맞추다 지쳐 버리는 아이. 그리고 서서히 ‘나’를 잃는 아이.
답답한 청소년기 시절의 아빠와의 투닥거림이라면 평범했을지 모르나, 이 이야기에는 SF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게다가 진짜 시은이는 죽고, 평행세계에서 온 시은이가 기억을 거세당한채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비밀마저 신비롭다. 나는 ’시은‘이 맞지만,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시은‘은 아니라는 비밀. 그 비밀을 깨닫게 해주려는 오빠, 비밀을 알게된 시은이를 어쩌다보니 돕게 된 해준. 비밀을 알게된 후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시은이의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숨막히는 강요가 존재하는 지금 우리의 세계와 맞닿는다.

성적도, 재능도 최고인 오빠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하는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시은이. 아빠가 원하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어떠한 부정도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는 시은이.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 해준이를 외면하는 시은이. 아빠를 속이기 위해 어떠한 거짓말도 할 준비가 있는 시은이. 시은이의 절박함은 버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진실을 알았으나,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노력하지만, 단번에 해낼 수 없다. 두 번째 시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들은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진짜 ‘나‘다.

기억을 찾은 게 더 지옥같았을지 모르는 시은이의 마지막 선택은 ’나’를 찾겠다는 선택이었다. 내 삶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다는, 거짓된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은이의 선택은 예상 밖이어서 놀랐고,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나’답게 사는 일이 어려운 시대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를 생각하게 되는 하루하루.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세계를 바꿀 게 아니라 날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시은이의 말에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늘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시은이의 마지막 메시지와 선택이 인상 깊었다.

<두 번째 달에게>는 시은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거짓으로 둘러쌓인,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을 강요받으며 살던 ’나’가 어떤 ’나‘로 살기 원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또 다른 세계에서 시은이가 ’나‘를 잃지 않고 맞서 싸워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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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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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은 어느 날 땅으로 떨어진 달과 자식을 잃은 늑대와 부모를 잃은 아이가 서로를 지키는 이야기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달에게 소원을 빌지만, 달은 그런 사람들이 지겹다. 어느 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달은 소멸을 꿈꾸었지만, 우연히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식을 잃은 늑대 카나와 전쟁으로 죽게 된 엄마의 품에서 발견된 아이를 만난다. 자식을 살리기 위래 다른 무리로 떠나보낸 늑대 카나는 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우려 하고, 아이는 살기 위해 카나의 품으로 파고든다. 하늘에서는 그 누구의 소원도 들어주지 않던 달이 카나와 함께 아이를 돌본다. 지루했던 일생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는 듯.

모두에게 적인 멧돼지 무리의 위협을 피해 셋은 호수를 건너 풍요로운 섬에 도달한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달과 늑대 카나. 각자의 규칙을 세우고, 아이가 살아가도록, 생존하도록 온힘을 다한다. 그것이 마치 그들의 사명이라는 듯. 카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고, 달은 아이의 생존을 위해 생명들을 연구한다. 풀과 나무, 씨앗을 공부하고 실험의 고통은 자신이 짊어지던 달.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환경에서 지키고 싶어하듯 카나와 달은 각자의 능력과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보호한다. 그것만이 이순간 전부인듯.

카나와 달의 배려로, 카나와 달의 용기로 아이는 자란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그들이 희생한 생의 시간. 카나가 제 새끼를 자의적으로 잃고 버텨온 것은 인간 아이 덕분이었다. 소멸되고 싶은 달이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인간 아이 덕분이었다. 서로 다른 그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상실과 상처와 무의미함을 넘어섰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는 일은 경이롭다. 인간은 동물을 해하려 하고, 동물은 인간을 피해 생존하려 하는 세상이지만, <울지 않는 달>에서는 동물이 인간의 생명을 지켜내려하고 아직 제 몸을 지킬만큼 자라지 못한 작고 나약한 인간은 동물에게 제 모든 생의 가르침을 맡긴다. 늘 달에게 소원을 비는 수많은 인간들의 목소리, 달에게 닿았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달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 괜찮길 바라는 마음, 오롯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아간다. 감정을 느껴나간다. 그에게 빌고 빌었던 사람들의 바람들은 닿지 않았지만, 카나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달이 바라게 된 수많은 마음들을 깨닫게 된다.

카나와 아이 곁에서 빛을 내던 달,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던 달의 시간은 늘 아름다웠다. 한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는 늑대 카나와 달의 동지애는 어디에 가닿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는 섬에서 자란 그날들을 기억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돌보고, 무사히 자랄 수 있도록 달과 늑대 카나가 한마음이 되어 불어넣은 숨결들. 말 없이 나누어 가졌던 시간들은 ‘사랑’의 흔적으로 남았다. 깊은 사랑이었다.

살리기 위해 낳자마자 바삐 새끼를 끊어낸 마음을 다스리며 인간을 키웠을 카나. 그의 곁을 지키며 희생과 사랑의 경이로움을 목격한 달. 부모의 품보다 길었던 늑대와 달의 품에서 모정을 느꼈을 아이. 그들의 여정이 소중하다.

우리가 작고 나약한 것들을 지키려 할 때, 목소리를 낼 때, 그것이 식물이거나 동물이거나,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누군가이거나,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어떤 이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어떤 시간과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지키려드는 카나가 될 것인가,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군림하려 드는 멧돼지가 될 것인가. 다른 것들에 스며들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달이 될 것인가. 수많은 선택지에서 자신들의 선택지를 만들어낸 달과 늑대의 마음이 오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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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시렁 - 등산이 싫은 사람들의 마운틴 클럽
윤성중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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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인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생각을 해보니 막 좋아하는 사람 같지는 않다. 정상에서 맛보는 쾌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오르는 내내 숨이 차는 건 좀 싫은 것 같다. 내가 등산을 갈 때는 날씨가 좋은 날, 막걸리가 좀 땡기는 주말. 숨이 차게 오르곤 마시는 막걸리는 꿀맛. 물론 딱 한 잔이어야 한다. 산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생각 없이 마셨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이제 막 12살이 된 막내는 등산을 갈 때마다 후회하면서도 꼬시면 넘어오는데, 아차산에는 산을 오르는 길목마다 아이스크림 파는 분들이 계신다. 헥헥대고 올라가서 먹는 포기하고 싶을 때 먹는 아이스크림이 꿀맛이라나.

숲은 또 좋다. 제주도에서 걷는 숲길, 북한산 둘레길도 제법 좋다. 나무가 가득한 곳을 걷다 보면 분노가 사라지는 것 같다. 갑자기 세계 평화가 온 것 같은 기분. 숲은 특히 비가 내릴 때, 혹은 빛이 좋을 때가 좋다. 그렇다고 지리산 종주를 한다거나 겨울 한라산에 오를만한 용기는 나지 않는다. 적당히 동네에서 가까운 아차산 정도가 쉽고 빠르고,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정도다.

<등산 시렁>은 등산이 싫은 사람들을 꼬셔서 산에 데려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써야 하는 코너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 사람 저 사람 꼬셔서 산에 데려간다. 이것도 재주다. 싫은데 같이 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가 좋거나 궁금하기 때문에 못 이기는척 가주는 게 아닐까? 월간 <산>에서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랑도 가고, 시인이랑도 가고, 경쟁사 직원이랑도 가고, 사진기자랑도 간다. 패션잡지 기자랑 산에 올라가 낭독회도 하고, 산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소규모 사생대회를 열기도 한다. 산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함께 간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시간 동안 이야기는 계속되고, 속마음도 알게 되고, 서로 몰랐던 것들도 알아간다.

이것은 산이 주는 신비로움인지, 윤성중 작가의 독특한 코드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성향도 한몫하는 것 같다. 별 것 아니라고 함께 해보자는 등산 제안은 평소에 관심 없었지만 해볼 수도 있는 일, 해봐도 좋은 일이 되는 것 같다. 산은 무해하다. 물론 위험한 산도 있지만, 산 속에는 생명들이 모여 산다. 서로 다투지 않고. 산을 유해하게 하는 것은 사람일 뿐. 무해한 산은 언제든 오라고 우뚝 서있다. 올테면 와. 언제든지 만나줄 테니. 뭐 그런?

작가는 누군가의 고민을 듣기도 하고, 성취를 맛보게 하며, 의미를 찾아 주기도 한다. 산을 함께 올랐을 뿐인데. 신기한 일이다. <등산 시렁>은 등산을 한 에피소드들도 있지만, 작가의 엉뚱하고 유쾌 발랄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등산복 브랜드에 전화하고 부탁새 매장에서 판매 체험을 해보고, 산악회를 뽑는 대학에 만학도인척하며 면접을 본 후 사실을 밝히고 인터뷰를 해보고, 꼬뮨 드 서울 멤버들과 남산 달리기를 해보고, 아내의 브라톱을 입고 뒷산을 달려가는, 골 때리는 이야기들이 방긋방긋 나타난다. 낄낄대고 웃다가 그의 도전과 실험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이 책이 시종일관 산에 오르고, 산의 풍경을 묘사하고, 국내에 있는 산들을 찬양하며 소개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어쩌라고. 안 궁금해.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갑자기 ‘풉!’하고 웃다가 ‘나도 이번주는 등산 가볼까?‘ 어느새 동화되어 함께 등산을 갈 사람을 머릿속으로 물색하게 되는 신비로움이 있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도 좀 가봐? 들썩거리다 다짐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또 하나의 재미는 삽화다. 작가가 이야기마다 그려 넣은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투박한 선과 화려한 색 조화에 놀라기도 하다가, 이건 그림인가 낙서인가 싶기도 하지만 묘하게 이야기의 장면들과 어울려 만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도 글도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이 담겨 있는데 꿍꿍이 없는 솔직함으로 달리고, 등산하고, 사람을 만나는 사람일 것 같았다. 좋아서 하는 사람 같다. 쓰고, 달리고, 등산하고 모두.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그와 간다면 산이 괜찮아 거 같다. 산을 오른다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고,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러 간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슬렁슬렁 따라가다보면 정상에 오르게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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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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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을 자주 마주하는 이의 일상은 어떨까,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이던 책 <죽음 공부>.
건강한 삶도 있지만, 아픈 삶도 있다. 박광우 의사는 신경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로 말기암과 파킨스병에 관심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암과 파킨스병을 가진 사람이다. 똑같은 암이라도 증상과 징후는 모두 달랐다. 일상도 다르고, 가족들이나 환자의 건강상태나 성향에 따라 마지막도, 암을 맞딱드리는 상황도 다 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기암, 암, 유방암, 위암, 폐암으로 치환되는 게 얼마나 납작한 말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암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했다. 고통이 느껴질만큼 끔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이러한 통과의례는 없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이겨낼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힌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도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라면, 끊임 없이 나를 쫓아오고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럽다면 존엄사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더 또렷해졌다.

생의 집착과 간절함은 병을 만나고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살것처럼 굴다가, 병을 만나고 죽음을 마주하게 되어서야 더 간절해지는 생. 어떻게 죽는 게 나은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방법을 찾는 생. 그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나면 더 생각이 많아졌다.

집으로 가서 죽고 싶은 사람, 살고 싶어서 가족을 괴롭히며 악다구니를 쓰고 막대한 빚을 남겨두고 가는 사람, 삶의 의지를 찾게 하려고 임종이 다가온 것을 숨기는 가족, 어떻게든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간호에 전념하는 남편, 종교적 신념 때문에 초기에 암을 치료하지 않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30대 여성, 일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사람, 병으로 고통에 지쳐가던 동거인이 죽여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친구, 엄마가 낫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 가족.

이 책에는 병과 죽음을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이자 의사가 만나온 죽음에 문턱에 있거나, 죽음으로 가는 환자들의 가족들, 당사자, 주변 사람들. 큰 병 앞에서 남은 일상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통증이 자주 찾아올 때, 일상을 조금 더 버텨보려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버텨나갈 때, 다가올 고통이 두려워 치료조차 거부하다 더 큰 고통을 마주할 때, 등을 굽히지도 못하고, 몸을 펴지도 못하고 누워서 잠을 자지도 못하는 통증에 시달려야 할 때. 이러한 때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갑자기 찾아온 고통 앞에서, 통증 앞에서 나는 의연할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있게 쓰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죽음까지 가는 길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다. 병을 막고, 수명을 늘리고, 길고 길어지는 기대수명에 죽음도 두려움이 된다. 고통 없이, 너무 길지 않게, 병에 걸려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일 테지.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그런 기대를 하며 살아가지만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시간이 있을 때, 지금, 현재를 잘 누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상상해보고 고민하며 읽었던 책. 다양한 돌봄에 대해 논의되고, 주변에 부모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에 대한 결정도 생각을 해두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느낀다.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도 죽음과 병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너무도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진실을 자주 잊고 산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가는 것부터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죽음 공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순간이 닥쳤을 때, 이만하면 잘 살아서 괜찮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생과 좋은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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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내 몸을 공부할 때 -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여성이 알아야 할 몸과 마음 이야기
박혜연 지음 / 아몬드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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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를 떠올려보면 누구도 몸에 대해, 여성으로서 맞딱드리거나 닥칠 수 있는 어떤 상황에 대해, 성적인 지식에 대해, 잘못된 인식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터부시하는 성에 대한 이야기. 금기라도 되는 듯 성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외면했다. 친구와도 자유롭게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였고,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내 몸에 대해 알아갔던 것 같다.

왜 우리는 알아야 할 것들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창피해하고, 주저하고 솔직하지 못할까. 더불어 진짜 생각해야 할 것들은 알아서 알아내라는 식이다.

남자와의 성관계를 가질 때 요구하거나 지켜야 할 기본적인 정보도 잘 교육되지 않고, 임신이 된 이후에야 여성의 ‘처신’에 대해 말하고 무지함을 꾸짖는다.

임신을 하면 변화하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변할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 피임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는 어떤 몸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가 있는지. 수많은 질문들은 아래아래로 묻어둔다.

첫 생리를 했을 때, 그 시기가 유년기였다. 소식을 들었던 친척 어른이 “이제 고생 문이 열렸네”라고 건넸던 말이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혹시 내가 잘못된 상황에 처한건지 당혹스러웠고, 엄마도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배우지 못했으니 경험으로 전하는 말들이었을 텐데 그또한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내려오고 내려온 올바르지 않은 태도들.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해도 여성의 몸에 대해 여전히 잘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스무 살, 내 몸을 공부할 때>가 그래서 반갑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상황이거나 질문하기 어려울 때, 이야기를 나누기 불편한 마음이 들 때, 이해가 안 될 때 이 책을 꺼내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잘 모르면,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을 때 혹은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 닥쳤을 때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누군가에게 말했다가 험담을 할까봐, 혹은 창피한 마음에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더 큰 일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몸의 변화는 마음까지 변화시킨다. 내 몸을 잘 지키려면 내 몸을, 내 마음을 잘 아는 게 먼저다. 잘 모를 때는 잘 아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그렇다면 이 책을 열고 궁금한 것을 묻자.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알려주지 않는,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사회가 잘못되었을 뿐. 우리가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알 수 있도록. 성적과 진로만 이야기하지 말고,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이야기를 자꾸 나누면 좋겠다.

#스무살내몸을공부할때 #아몬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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