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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태우며 노동 현장의 절실함을 온몸으로 외쳤던 게 언제였던가? 노동 현장은 1970년대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는가? 표면적으로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 안의 사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자꾸 쏟아지는 물음들. 한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을 궁금하게 만들게 한 이 책의 힘은 대단했다.
노동현장의 진실을 보기 위해, 대학생들은 위장 잠입을 했고 그 때문에 대학생들이 쫓기던 시절이 있었다. 숨기려 하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처절한 싸움. 그것은 진실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쩌면, 그때가 더 인간다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4천원 인생>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표면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실상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는, 자본이 준 번지르르한 포장에 쉽게 속곤 한다.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 이면에 관심이 없다. 그게 정말 현실이다.
용감한 기자 넷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뛰어 들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는 준비했던 것일까? 그 용기도, 생각도 대단하다. 생각만 있고, 용기내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그들이 준비한 프로젝트가 경이롭기만 하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것은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또 다른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더 소중하다.
이 책에서는 4가지의 노동일기가 등장한다. 아줌마들의 식당 노동일기, 젊은이들의 마트 노동일기, 불법 체류자의 노동 일기, 공장에서의 노동일기. 어떤 노동이 더 강도가 세다, 더 힘들다라고 말할 수 없다. 모두가 고통 받으면서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이 쉬운 것은 아니다. 사무실에 앉아 하는 노동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고, 외부에서 하는 노동도 또 다른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차이가 있다. 인간다운 대접. 노동을 하는 이들을 부속품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대우. 노동의 대가는 터무니 없었다.
기자들은 한 달 동안 노동을 체험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벗어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 것이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턱 막혀옴을 느낀다. 기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본,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한 현실이었다.
아줌마의 노동
식당일이 끝나면 집안일이 시작되는 아줌마 노동자. 빈곤의 악순환에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돈 때문에 덜 배운 아이들은, 엄마의 뒤를 따라 식당일을 찾아 나선다. 돌고 도는 것까지 더해서 제대로 아프지도 못한다. 휴일은 한 달에 2번,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는 식당일. 고약한 사장은 잠시 앉아있는 짬도 주지 않는다. 북적대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나르고, 물컵을 나르고, 반찬을 나르고. 바빠서 잠시 잊으면 손님들은 그녀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12시간의 노동. 그녀들은 은행 일을 볼 짬도, 아파서 병원에 갈 짬도 없다. 떳떳하게 휴일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녀들은 사회의 약자, 하지만 식당에 온 사람들에게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거기다 사장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굴욕적인 대우도 참아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고깃집에서 빨리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던 내 모습을. 그녀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내며 화냈던 내 모습을. 그녀들의 고달픈 감정 노동에 한 몫한 내 자신을.
젊은이들의 노동
마트는 일상화된 곳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으며, 쾌적한 곳에서 장을 볼 수 있으며, 곳곳에 선 이들이 나를 대우해주는 곳이다. 대형 자본은 ‘마트’라는 거대 소비 시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소비자들과 노동자들은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난다. 마트만 이기는 시스템. 업체들은 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업체들에 고용된 젊은이들은 마트의 결정에 의해 노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하루 종일 서서 물건을 사라고 외쳐도, 소비자들은 그들을 없는 이 취급한다. 생각해보니, 마트에 가면 물건을 파는 이보다 물건에만 관심이 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자리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속속 자리를 채우고 있다. 부당한 대우와 환경에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자책할 뿐. 하지만, 그 부당한 시스템에 톡톡한 몫을 한 것이 바로 우리이다. 그리고, 자본이다. 노동하는 청년들은 사회의 피해자이다.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었어야 하는 것, 좀 더 인간답게 대우 받으며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줬어야 할 몫이란 말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형마트 곳곳에 서있는 그들은, 마트라는 자본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
불법 사람의 노동
온갖 궂은 일은 다하는 노동자들. 열악한 노동 환경은 고사하고, 단속의 불안까지 감당해야 한다. 부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그들은 마음 편하게 노동하고 싶다. 그것이 정말 큰 욕심일까? 불법 체류해 낳은 아이는,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추방당한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찾아오는 경찰들, 그들을 피해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 10년 이상을 한국에 체류하고도 자신들이 일하는 지역을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과연 단속되어야만 하는 존재일까? 죽도록 일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까? 피곤에 지쳐 자신들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만 같다.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고맙게 활용하면서도, 부당하게 착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루 12시간 노동, 일주일 6일 동안 잔업.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유해물질들을 켜켜이 몸 속에 쌓이고, 죽도록 돈 벌고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갔을 때는 병과 죽음이 그들을 반긴다. 인간답게 사는 것, 인권을 외치는 우리들은 결국 위선자였던 것이다. 조립식 작은 방에서 한 잔 술과 텔레비전으로 인생을 달래는 그들의 시간.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도 챙기지 못하는 마당에, 왜 불법으로 체류하는 그들의 인권까지 챙겨야 하냐고 소리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알려 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누릴 자격도 없다.
기계적인 노동
사람이 기계가 되는 시간. 대화도 없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 가만히 서서 자기 라인에서 해야 할 일만 반복적으로 하면 된다. 보람도 없고, 누가 잘한다고 칭찬해주지도 않는다. 자존감도 없고, 멍 때리는 시간만 늘어난다. 자기를 버리는 시간. 기계가 되어 반복된 일만 하는 시간. 바로 기계적인 노동을 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공장의 기계가 된다. 그렇다고, 정규직과 파견직의 대우가 그렇게 파격적인 것도 아니다. 공장의 기계가 되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잔업, 철야의 반복. 시급 4000원짜리 직장인에게 연애는 사치며, 벌어도 남는 게 없다. 그조차도 파견을 주선한 업체에서 주선 비라는 명목으로 착취해 간다. 하루 만에 질린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인격 대 인격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계 대 기계, 공장의 부속품으로 만나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들고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사치이며, 시간 낭비이다.
기자들이 ‘몸으로 때우며’ 보여준 노동. 몰랐다고, 이런지는 몰랐다고 말해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면서 외면하는 노동의 현주소이며, 진실이다. 그들은 기사를 연재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피드백을 했고, 그 관심만으로도 변할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들의 노력과 고된 시간들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