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 우리 안의 트라우마 마주하기, 치유하기
김선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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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세상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알고보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늘어나는 게 많은 세상. 하루를 살다보면 별 일 아닌 것들도 별 일이 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줄 알다가도 위험에 닥친다.

나에게 직접 닥치지 않은 사고도, 내가 겪은 사고만 같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이며 또 다른 문제를 발생해 분통터지게도 한다. 엄마는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를 보고 절대 비행기는 못 탈 거 같다고 말한다. 타기만 심장이 두근두근 될 거 같다고. 그러다가 괜찮아질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고는 당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큰 일이 되어버린다.

군에 입대했던 큰 아이는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아 공황장애가 발생했고, 답답한 상황을 참지 못한다. 그녀석에는 무엇이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 늘 걱정이다. 이태원을 갈 때마다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을 마주할 때마다 그때 보았던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늘 마음이 아프다. 천안함 사고 발생 시 배 안에 있었던 내 동생은 동기를 모두 잃었다. 그때의 시간을 마주하면 눈물을 흘린다. 한동안은 큰 소리가 나는 것에 치를 떨도록 싫어했다. 잘 치료 받아야 했으나, 그마저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다. IMF, 세월호, 성폭력, 위안부 할머니, 아동학대, 폭력, 군부적응, 자립준비청년, 학교 폭력, 4.3, 전쟁.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다. 저마다 상처도 다르고 극복하려 하는 마음도 다르다. 트라우마는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자살 등 수많은 정신질환을 발현한다. 트라우마 치료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라우마>를 읽으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타인이 경험할 수 있는 아픔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상황과 사고, 그 안에서의 몸부림은 살고자 하는 처절한 고민이며 고뇌이다.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하는 수많은 행동들과 생각들은 생존하려고 하는, 회복하려고 하는 노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다는 것은 치유하고 회복해야 하는 것인데 그 지난한 과정이 쉽지 않음을, 단번에 될 수 없음을, 우리 모두 함께 극복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숙제임을 또 한 번 깨달으며.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했던 말을 적는다.

“저는 우리 모두가 상처받은 치유자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때론 상처를 받아서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아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트라우마나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들 또한 아픔을 스스로 애도하고 아파하며 치유 과정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Not all wounds are visible.” 모든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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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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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고 엄마에게 쓰는 편지였다.
긴 시간이 지나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의 이별 편지였다.

오래 애쓰고, 오래 견뎠을 한시영이라는 어린이를 생각했다. 엄마가 좋지만,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수십번, 수백번 생각했을 아이를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거나, 엄마가 돌아올까 기다리던 아이. 누군가의 전화에 불려나가 엄마를 부축해 데려오던 아이. 엄마가 술을 그만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아이. 제발 누군가가 이 현실을 끝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아이를.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하지만 모른척하고 싶은 엄마를 견디며 살아왔을 어린 아이, 청소년이 된 아이, 여성이 된 아이, 엄마가 된 아이. 내면 깊숙하게 엄마를 품고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고백서이자 긴 이별서, 그리고 편지였다.

엄마는 슬픔이 깊어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제때 치료하지 못해 긴 세월을 알콜중독자로 살다가 결국 술 때문에 건강을 잃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어린 아이일 때부터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있는 엄마를 기억하는 작가 곁에는 다행히, 할머니와 할아버지, 외삼촌, 사촌 언니와 사촌 오빠, 스쳐지나갔으나 엄마를 품어주던 어른들의 기억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무도 돌보지 않고, 모른척했다면 어땠을까. 반복되는 엄마의 음주와 장취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한 일상을, 감당하고 사는 내내 그녀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안심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엄마를 찾거나, 발견해야 하거나, 연락을 받거나, 뒤치닥거리를 했어야 할 순간에 그래도 누군가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감사할 일. 남편이 있어, 할머니가 있어, 친구들이 있어 견디며 나아갔을 한시영 작가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엄마와 이별을 정리하는 긴 편지를 읽었다.

이제는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시영 작가를 생각한다. 엄마로서 기쁨을 누리는 어떤 순간에, 살면서 육아의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에 엄마를 자꾸 떠올리게 되겠지. 원망도 하고, 이해도 하면서. 조금만 함께 견디면 안 되었을까 생각도 하면서.

엄마가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은 엄마가 나와 오래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겠지. 그 마음이 커지고 커질 수록 엄마가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겠지. 싫고 속상했던 추억, 상처받았던 시간의 글도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해서 좋았던 추억도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듯, 작가와 엄마와의 추억을 읽었다.

이젠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테죠? 그리움도 있을 테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엄마를 사랑했기에 놓지 못했을 테죠. 지긋지긋하게 싫었어도 지키고 싶었을 테죠. 엄마는 아픈 것일 뿐이었는데, 아픈 것을 방치한 시간이 너무 너무 길어서, 엄마가 아픈 시간의 과정을 작가님이 혼자 오롯이 함께 하느라 많이 지쳤을 테죠. 스물 일곱 엄마를 잃고,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다시 생각할 용기를 낸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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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이끄는 자리 - 모두를 위한 의료와 보살피는 삶의 인류학
서보경 지음, 오숙은 옮김 / 반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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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는 국민을 무조건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까?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생명을 돌보는 일이라면 의료비가 없어 쩔쩔매거나, 보험이 없어 난감할 때 별다른 조건 없이 치료를 해줄 수 있을까?

태국 반팻병원의 의료 시스템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우리의 현실과 자주 비교하게 되었다.

✔️치료 환경은 차치하더라도 병원비가 없는 이들이 퇴원할 때 갚겠다는 서류에 사인은 하게 하지만 독촉하지 않는다.

✔️환자가 약을 먹거나 치료를 해야 할 시기에 연락해 확인해준다.

✔️국경을 넘어온 이방인에게도 자국민과 똑같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

✔️태국 국민들은 병원에 치료비를 갚을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얼마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되려면 의무적으로 공공의료시설에서 근무해야 한다.

✔️반팻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과 의사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는 이것만으로도 멋지다. 공공의료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의료시스템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태국의 공공의료가 이런 시스템이라는 걸 알고 놀라고 말았다.

현장에서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 가족, 의료진들의 인터뷰가 덧붙여져 있어 현실적인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단순히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반팻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생활상, 국민들의 현재 상황,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마음, 병을 대하는 태도.

아프게 되면 의료기관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고, 어떠한 부당한 상황에도 참게 된다. 비싼 의료비는 고사하고라도 의료기관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맞서는 것조차 불리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의료시스템에 수긍하며 살면서, 어떤 제도와 정책은 다행이라고 느끼고, 어떤 시스템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직은 나와 먼 일이라고 느끼면서.

<돌봄이 이끄는 자리>를 읽으며 다양한 시각이 열렸다. 물론 아츤 가족의 돌봄은 여성의 몫이 절대적으로 많고, 기다림과 느린 치료에도 바보같을 정도로 인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있었다. 의료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권리가 아니라 왕실의 자선과 베품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태국 국민들의 인식과 의식도 우리와 많이 달랐지만, 어쨌든 공공의료의 방향과 역할은 우리의 현실과 대입해 볼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개인적으로도 의문을 갖지 않고, 순응하듯 살아온 것에 반성하며. 다른 현장을 보여준 #돌봄이이끄는자리 에 감사하며.

#반비 #책 #좋은책 #공공의료 #서보경 #서평단 @banbi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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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 -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심리치료 모델, 영국 IAPT 탄생 이야기
리처드 레이어드.데이비드 클라크 지음, 솝희 옮김, 최진영 외 감수 / 아몬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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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 27.3명 OECD 국가 중 1위, 전 세계 4위. 누군가는 오늘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속절 없이.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정신건강을 지키는 것은 이제 더 많이 드러나야 하는 이슈다. 나만해도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이들 중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가 속속 떠오른다. 공황장애, 우울증, 조현병,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회불안장애. 증상도 다양하고, 갖가지 원인으로 인해 발현된 정신질환이다.

이런 책 저런 책 뒤져 읽으면서 늘 의문이었던 것들이, 왜 국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지 않는가였다. 개인의 의지로만 치부하고 있는가였다. 2년에 1번, 국가는 건강검진을 의무적으로 받게 한다. 청년들의 정신질환 이슈가 많아지면서 2025년도에는 국가건강검진 항목 중 청년 정신건강검진이 확대되었다. 2년에 1번 우울증 검사, 조기정신증 검사를 받게 한다. 진단을 한 후 치료를 하기 위한 제도의 변화일 텐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속이 시원하고 반가웠던 것은 정신질환의 이해를 돕는 해석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치료를 방치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과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 경제적으로 얼마나 득이 되는지에 대해 자세하고 꼼꼼하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이었다.

신체적 질병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지원되어 왔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논의는 이제야 시작된 실정. 분명히 치료가 되거나, 호전될 수 있는 질환임이 분명한데 사회적 편견과 인식, 주변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낮다. 이렇게 방치되어 버린 사람들은 점점 정신질환이 심해지고, 취업을 할 수 없게 되며 복지 의존도, 범죄는 점점 증가한다. 이에 더해 정신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신체질환도 증가해 결국 의료비용 증가로 귀결된다.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결국 큰 사회적 비용으로 떠 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에 반해 적극적인 치료를 나선다면 50% 이상이 치료되고, 나머지는 증상이 호전될 수 있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 치료 후 회복된 이들이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면 모두가 함께 떠안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는 것. 이런 의견들을 뒷받침하는 통계와 근거는 무엇보다 반가웠다.

또한 각 정신질환은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쉽고 믿을만한 설명,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책 IAPT(심리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의 방향과 실행, 결과와 반성은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정책에 대한 큰 그림까지 그려주는 것 같아 좋았다.

여기에 더해 정신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거시적인 관점까지. 지난친 경쟁에 놓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정신질환을 겪게 되는 비율이 높다. 과도한 압박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상황들은 정신질환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된다. 사회가 불안정하다면 가정 안에서의 안정도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정신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금쪽 같은 내 새끼>에서 보게 되는 아이들의 태도나 부모의 태도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강박 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때때로 모든 게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 책은 정신질환을 중심으로 사회, 가정, 교육 등 전체적인 통찰을 깨닫게 해준다.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해준다. 심리치료는 왜 국가적으로 나서서 해야하는 정책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되는 또 예방하게 되는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어쩌면 이런 답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누군가의 경험,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조심해야 할 것, 의사의 관점으로 어떤 것을 조심하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신질환의 이야기를 보아왔다면 이 책은 전체를 아우르는 말을 한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준다.

정신질환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키를 얻었으면 좋겠다. 신체질환의 치료만큼 정신질환의 치료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책으로 더 깊숙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파하고 있다. 고통을 숨기려고 노력하다가 방법을 잘 몰라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치료될 거라는 믿음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더 악화되고 만다.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는 치료. 그리고 치료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국가가 있다면, 죽음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 정신질환 치료를 너무 무겁게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해 준,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해 준,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을 갖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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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 - 고립되고 은둔한 이들과 나눈 10년의 대화
김혜원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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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고립시키고 은둔하는 한 친구를 알고 있다. 온라인 너머로 얼굴을 보았고, 가끔 메시지를 주고 받았을 뿐 만나보진 못했다. 연락을 할 때마다 늘 예의 바르다. 유년기에는 활기찬 인싸였다고 들었는데, 스스로를 가둬버린 그녀석의 마음은 어디쯤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알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짙은 안개가 있어,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읽고 나니 은톨이들이 문을 열고 나와 세상을 마주하는 일은 큰 용기를 내는 일임을,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관계가 있어야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힘들고 지칠 때 우리가 돌아가 쉬고 싶은 곳은 결국 온기가 흐르는 사람 곁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나니, 힘들고 지쳐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시간은 상처의 깊음, 무력함, 지쳐버린 마음이 더 거대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과 단절을 택한 아이에게 “왜 그러냐,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말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내모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가족들의 심정도 이해하게 된다.

은톨이들에게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줄 ’믿음’이 가장 필요한 것을 알지만, 수많은 상황 속에서 무조건 희망을 품는 믿음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현실적이며 공감되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알아가기 전에, 세상이 원하는 시계에 맞춰 살아가거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버티다가 세상과의 단절, 관계와의 단절을 택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나를 알아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된 청년들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가족도, 친구도,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될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 안을 껍데기 삼아 숨어버리는 것. 내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외로움을 택하는 게 얼마나 두렵고 힘겨운 일일지.

김혜원 교수를 찾아온 이들은 그래도 세상 안에 다시 들어가보고 싶다고 작은 용기를 내어본 친구들이겠지. 가족들에게 등떠밀려 나왔다고 해도, 그 발걸음이 용기겠지.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고 믿는 상담자의 역할이 꽤 경이로웠다. 나를 토해내는 경험, 기다려지는 경험,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들이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었을 테니. “나”라는 존재에 대하 함께 고민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놀라운 경험일 테니.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잘 모르는 시대인 듯하다. 나를 알기 보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적응하고 맞추느라 지치는 시간이 많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아이들이 많은 건, 당황하게 괴는 건,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사회의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읽으며, 여전히 우리는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라고 말하기보다 ’해야 한다’를 더 빠르게 선택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기다려주겠다’보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과 기대의 마음을 얹는 말들이 더 빠르고 쉽게 오간다는 걸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함께 걷는 방법을 배운다면, 다그치는 말보다 믿어주는 말을 더 나눈다면. 나조차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본다면을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어서, 상처받고 상처주고 외면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응원하는 말들이 누군가를 살리기도 란더. 저마다 다른 마음의 표정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몰라서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쌓여온 은톨이들의 시간들을 풀어낼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랬다. 나이가 먹었다고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쉽게 평가하고 수근거리기보다는 잘 모르는 것들은 배워가면 좋겠다. 고립되고 은둔한 이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게 좀 더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웅크린 마음이 방 안에 있다>를 공부하듯 읽었다.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오해하고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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