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식 e는 줄곧 하나의 이야기를 해왔다. 여러 개처럼 보이는 이야기도, 사람이었고, 정의였고, 사회였고, 올바름이었다. 간결한 카피와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 울대가 뜨거워지며 짜릿한 눈물이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몇 줄 때문이었고, 짧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식 e 5>에는 사람들을 모았다. 기존의 폼은 유지했지만, 사이사이 테마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 실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터뷰는 사회와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인간'과 '인생'은 벗어날 수 없는 테마다. 그 안에는 '인권', '생활권', '생존권' 등 처절한 싸움이 담겨있다.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임에도 우리는 외면하고 사는 것들이 많다. 다른 방향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오늘을 묻게 했다. 

결국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무시되는 사회는 성장할 수 없다. 획일화된 생각과 독단적인 결정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는 것이다. 그저 로봇처럼 조종하는 대로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오늘과 내일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산거별 등반 전문산악인 김세준, 축구저널리스트 서형욱, 팝아티스트 낸시랭, 판화가 이철수, '노리단' 퍼포머 강희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공연연출가 탁현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인드라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스님, 뮤지션 한대수, 친환경에너지 발명가 황성순, '미디어몽구' 운영자 김정환,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 김영덕,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 '슬로 라이프 운동' 지도자 쓰이 신이치.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다른 목소리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다. 그들의 생각과 삶을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해 가능한 목소리다. 생각해봐야 할 목소리다.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문제의 발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가 제기되고 나면, 다른 목소리들은 멈출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목소리는,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 김영덕 씨의 목소리였다. 애원도 통하지 않고, 인권이 말살 당하고, 약자에게 불을 지르는 사회를 경험한 그녀의 처절한 목소리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었나? 그들이 찢어질 듯 외치는 악다구니가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그녀는 몰랐다고 내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냐고 했다. 한 가정이 산산조각나며 뿌리까지 흔들렸다. 단 하나의 사건, 단 하나의 결정, 단 하나의 외면 때문이었는데도 내가 아니니까 고개 돌리지 않았던가. 나는 부끄러운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그녀가 말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누구를 찍었냐고요? 내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녀의 뼈아픈 후회가 사무친다.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의 목소리는, 부끄럽게 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달랐을 뿐인데, 이유도 없이 욕을 먹고 동행한 여자까지도 치욕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다. 공권력은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그가 교수라는 말조차 믿지 않았다. 신분 위장일 거라며, 제대로 신원 조회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도 시민도 한통속이 되어 그의 피부색만으로 그를 차별했다. 그는 모멸감을 느끼고, 고소했다. 힘겨운 싸움이다. 그는 피곤하다. 이런 한국 사회가, 피부색으로 우월한 인종과 무시해야 할 인종을 나누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아야 할까?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있기에 우리는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그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우리의 사생활은 무사할 수 있을까? 그녀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청의 합법화라니 온 국민을 통째로 관리하겠다는 것인가. 목소리가 있지만, 목소리가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박원순 선생님은 자신은 도청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연한 그의 말이 난 두려웠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누군가와 떠드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면. 우리가 막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올바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이대로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우리 시대의 다른 목소리가 널리 널리 퍼지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나도 다른 목소리에 귀기울이길 바란다. 공부만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큰 울림이 있다. 상상의 세계란 없다. 현실이 될 수 있는 세계만 있을 뿐.
<지식 e 5>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다른 목소리의 힘은 그곳에서 나온다. 노력, 행동. 절망을 말하기엔 때 이르지 않은가? <지식 e 5>는 희망을 말하기에 묻는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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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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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당포 주인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다. 미심쩍은 게 많지만, 살인자를 밝혀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많은 심증, 하지만 관계된 이들마저 하나 둘 죽어 버리고 만다. 왜일까? 안갯속에 갇힌 살인은 개운치 않은 뒤끝을 남긴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죽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주머니 속에 있었던 백만엔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의문투성이인 사건은 흐지부지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시간을 건넌다.
눈설(雪) 이삭수(穗) 유키호, 그녀는 가난 속에서 살다, 엄마를 가스 중독사로 잃고 친척집에 입양된다. 어둠이 가득할 것 같은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아하다. 공부도 잘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그녀는 그것을 즐기며, 누구나 자신을 좋아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살해된 후 어둠에 휩싸인 료. 차갑고 냉정하며 잔인하고 섬뜩하다. 돈을 버는 수완이 좋지만, 정직하게 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에 집착한다. 그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그의 사업 아이템들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둘은 이상한 끈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며 알 수 없다. 그들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 것은 사사가키 형사뿐. 하지만, 형사도 수년간 그들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19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진실,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의문이 들고 오해를 살만한 사건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 차례도 없고 뒤엉킨 것 같은 조각들이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에 맞물리게 된다. 퍼즐 같은 것이다. 결국,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언제나 료와 유키호지만, 그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마주치는 장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료는 료대로 살아가고 유키호는 유키호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유키호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곤란한 상황이면 꼭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뒤에는 료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 수 있다.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하지만, 세상에 나서서 화려하게 사는 건 유키호, 그늘에 숨어 어둠을 짊어지는 것은 료다. 그 이유는 료의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실마리를 찾기까지는 독자도 긴 시간의 터널을 건너야 한다. 그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애타게 하기 작전이다. 금방이라도 살인자는 누구다라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사실, 그의 이야기에서 살인자는 중요하지 않다. 사건이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또 다른 그들의 삶이 초점이다.

모든 일은 철저한 계획이다. 빈틈없다. 유키호는 밝고 따뜻한 곳에서 계획을 따라 움직인다. 그녀는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필요 없어지면 버릴 수 있다. 자기편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녀의 방법은 하나다. 료. 바로 료가 방법이다.
그녀는 돈에 집착한다. 그녀의 불행은 돈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국, 그녀는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서도 돈에 대한 욕심을 거두지 않는다. 료도 돈에 집착한다. 하지만, 료의 집착은 유키호의 집착과는 다르다. 그의 행복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돈에 집착한다.

백야행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이 말한다. 유키호가 아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유키호는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의 행복의 기운을 빨아먹고, 그들을 내팽개친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불행을 겪고 있었기에 더이상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행복해질 수 있다면, 누가 다치든 죽든 사라지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웃는 낯이다. 섬뜩하게 잔인하다.
료의 인생은 언제나 어둠이다. 그가 웃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림자에 가린 잿빛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불행하게 하지만, 그건 자신의 행복을 바라서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일일 뿐. 그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면 할수록 자신이 불행해져 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관없다. 유키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녀에게 밝은 날들을 주어야 하기에 그는 언제나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녀의 백야행이 계속될 때까지.
극단적인 그들의 방식은 사랑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다. 항상 밝은 빛을 보고 사는 유키호, 한 번쯤 밝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료. 자기들만의 유리상자를 만든 채 섞이진 않으나, 함께한다. 이상한 일이다. 끝까지 말이다.

사사가키는 그들의 행적을 끝까지 추적한다. 사사가키의 추적은 독자의 추적이다. 사사가키의 추적이 끝나야 독자의 의문도 풀리는 것이다. 의문이 풀려도 그들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추적의 마지막, 냉정한 유키호의 눈빛이 눈에 보인다.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계속 선물을 받아야 한다는 것처럼 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이용해 끝까지 이기적이다. 어쩌면, 상처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지 모른다. 그녀가 상처받고 있을 때 아무도 자신 따위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료에게까지라니. 게이노는 인간 본성의 어디쯤을 건드리려고 했던 것일까?

어둠과 밝음은 적절히 섞여야한다. 극단적일 때는 무엇이든 문제가 생긴다. 그들의 극단은 많은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만큼 강력했다.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꿨으니 말이다.

손예진과 고수가 출여한 백야행은 어떨까? 그들은 유키호와 료의 극단적인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삶을 잘 표현해 냈을까? 책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질까? 어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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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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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돼지꿈>에서도 그랬든, 오정희는 <가을 여자>에서도 농익은 농담을 시작한다. 삶을 살아가며 갑자기 찾아오는 농담 같은 이야기, 환상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솔직 담백한 이야기다. 시간의 무늬를 더듬더듬 겪어온 이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누군가의 아니 우리의 삶이 여기 담겨 있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착각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진실을 알아버리고 픽하고 헛웃음만 나올 때도 있다. 착각하고 살았던 순간이 행복했느니 하면서 말이다.
'첫눈 오던 날', '비 오는 날의 펜팔'은 누구나 한 번쯤 했던 착각과 이어지며 삶의 농담처럼 씁쓸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그나마 귀엽기까지 하다.

'멋 또는 존재증명'에서 느껴지는 허영의 쓸쓸함, 자신의 아이들은 내팽개친 채 열심히 봉사 다니는 엄마가 나오는 '어떤 자원 봉사', 죽은 아버지를 다른 방식으로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방생', 프로정신이 가득한 어린 음악가의 위트를 느낄 수 있는 '어느 음악가의 어린 시절', 부모의 행동을 깨우치는 농담 '요즘 아이들'. 여자들의 오지랖 넓은 상상 '독립선언', 진실을 모를 때가 행복한 '골동품', 병아리 소동으로 아이들의 인생의 짐을 알게 된 '병아리' 등 일상의 농담들이 가득하다.

묵은 시간들을 걸어온 인생이라면, 어디서 보았을까? 어디에서 들었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그녀만의 문체로 담백하고 간결하게 풀어낸다. 삶의 우화에서 눈물과 웃음, 사랑과 이별을 보게 되며 삶 속의 소품 하나가 인생의 중요한 의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생각하지 못하고 지난 온 시간들에서 인생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가끔은 거짓말도 하고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외부로 열린 눈이 닫히고 내면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시기라는 '가을'. 어떤 이야기들로 내면의 문을 열게 한다. 내면이 뭐 그리 진중하고, 심각하며, 고귀한 것인가? 시시한 사건도 내면의 움직임을 일으키는데 말이다. 자식의 연애를 의심하며 소홀했던 부부가 연애할 때처럼 가까워진다면,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의 부피와 가늠하다가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눈치 없어 보이는 시어머니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느껴진다면, 알게 되는 그때 우리의 내면의 움직임은 결국, 인생과 삶의 움직임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삶 속의 농익은 농담. 돌아보면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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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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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식견문록>에서 재기 발랄한 문체를 뽐냈던 요네하라 마리의 <미녀냐 추녀냐>는 통역의 세계에 관한 내용이다. 언뜻 보기에 제목이 왜 저리 생뚱맞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미녀'와 '추녀'가 어떤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의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갖게 되는 직업은 몇 개나 될까?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쌓은 노하우로 승승장구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직업을 바꾸다 보니 처음에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은 모두 다를 테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생활하게 되니,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범주에는 통역사도 포함된다.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였다. 그녀가 주로 한 일은 러시아어 동시통역. 어릴 때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고, 도쿄로 와서도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했다. 그녀의 성장 환경은 그녀가 러시아어를 동시통역하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미녀냐 추녀냐>에는 그녀가 현장을 뛰면서 쌓은 지식과 어려움 재미있는 에피소드, 방법론 등이 어렵지 않게 쓰여 있다.

옐친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담대했던 그녀는, 간결하고 정갈한 통역으로도 유명했다. 한 기자는 요네하라 마리가 통역 부스에 앉아 있으면, 안심을 했다고 하며, 옐친 대통령이 일본 사람들을 욕하다가도 그녀가 나타나면 '마리, 마리'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다고 하니 그녀는 단순히 통역사만으로 존재한 것은 아닌 듯싶다.

그녀는 통역과 번역을 들어, 통역에 대해서 설명한다. 언어를 바꿔 사람이 알아듣게 하는 것은 번역과 통역이 있지만, 시간적 조건이나 환경이 너무도 달라 통역과 번역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할 때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자료를 찾아 해결할 수 있지만, 초를 다투는 통역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겨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통역사가 완벽하게 누군가의 말을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연설을 하거나 강연을 할 때 용어적인 말이 많이 첨가된다. 용어적인 말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음, 그렇다면 말이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인데요, 말하자면 말이지요, 저, 그게" 등 요점을 전달하는 데 방해되는 얼버무림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말을 다 통역하자고 들면, 결국은 요점은 모호해지고 듣는 사람은 도대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통역사를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하기도 하고,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고, 또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며 통역해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단다.
통역사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통역해야 할 일도 생기기 때문에, 의학, 과학, 공학 등 전혀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의 용어를 공부해야 할 때도 있다. 어쨌든,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며, 기지와 재치도 발휘해야 한다.

통역사들은 자기들끼리 통역사를 '미녀와 추녀'로 분류하는데, 원문에 충실하고 원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좌표축으로 정숙함을 측정하고, 원문을 잘못 전달하고 있거나 원문에 어긋난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정돈된 정도, 편안하게 들리는 정도에 따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때는 ;추녀'라고 분류해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로 분류한다.
다들 '정숙한 미녀'를 선호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황에 따라 '부정한 미녀'가 선호되기도 하고, '정숙한 추녀'가 선호가 된다고 하니 말이다. 지나친 '정숙'도 상황에 따라서는 큰 죄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어떤 분야나 '정도(正道)'만 걷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다른 통역사들의 에피소드와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으며, 경험을 통해 배워나갔다. 그리고, 이 책이 통역이란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물론, 통역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말하는 통역은 말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두 자기만의 문화와 생활이 있으니, 그것을 잘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게 통역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통역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라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통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통역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그 '현장'은 매번 바뀌고, 어떤 '현장'에서 통역을 해야 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통역사는 매춘부와 같다는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론을 펼치기도 했지만, 자신이 일하는 곳은 항상 다른 '현장'이기에 통역사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결론도 내어 놓는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곤두세워야 하고, '연사'가 매번 달라 그들의 말투나 발언 습관에 적응해야 할 때도 있고, 난감한 상황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통역사라는 직업에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매력에 압도되어 있었다. 분, 초를 다투는 일이지만, 언제나 즐겁게 일을 해냈고, 알아주는 통역사였지만 통역 전날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거나, 긴장의 고통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통역사라는 직업을 놓지 않았다. 아마도 행복했던 것 같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일, 애환, 노하우에 대해 차곡차곡 정리한 <미녀냐 추녀냐>는 단순한 에세이라고만 보기는 곤란하다. 그녀는 이 책에서 통역사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다독이고 있으며, 돌파구를 찾아낼 방법들을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통역사라는 직업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읽는 이가 통역사라도 된 것처럼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할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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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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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 버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엄마를 잃어 버렸다. 엄마가 글자를 알았다면 찾아오시지 않았을까? 전화번호라도, 주소라도 기억하고 있었다면 엄마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기억은 조금씩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를 흐릿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 상황에 엄마를 잃어 버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오,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지만, 많은 가정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다. 마중을 나갔더라면, 아버지가 좀 더 어머니를 챙겼더라면, 택시를 타고 오셨더라면... 이미 일어난 일에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엄마를 잃고 나니 가족들은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를 잃고 나니 기억이 나다니, 이건 무엇일까? 엄마는 가족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못 배웠어도 자식은 배우게 하고 싶었고, 아버지의 방황에도 자식 때문에 돌아왔다. 엄마의 품 안에 있던 자식들은 모두 떠나갔고, 엄마의 둥지가 필요하지 않은 자식들은 엄마를 잊어간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더듬더듬 기억나는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엄마는 우리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다. 자식들이 필요한 것을 살피고, 거두고, 이야기를 듣고, 인생을 동행하기도 한다. 모든 기운을 가족에게 쏟은 후, 나이가 들어도 가족 걱정에 자기를 챙기는 데에는 야박한 게 엄마일 것이다. 모든 것을 주고도, 미안해하던 엄마. 그 엄마를 기억하고 있자니 엄마는 도대체 누구였는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
자식이 기억하는 엄마는 불행해 보인다. 함께 있었지만, 엄마는 불행했던 것 같다. 고모에게 구박받고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그런 상황에 자식 넷을 키웠고, 자식 하나를 가슴에 묻었다. 엄마는 밥하고 일하고 끝도 없는 하루를 보냈으며, 자신을 위해 누린 것이 있었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식의 꿈이 엄마의 꿈이었고, 자식의 안전이 엄마의 안전이었다. 그런 엄마인데, 이제야 왜 엄마가 떠오르는 걸까?

우리는, 엄마를 지켜줬어야 했다. 엄마의 건강과, 엄마의 행복과, 엄마의 안위를 지켜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수년간, 많은 시간을 엄마는 버티어냈는데, 단 한 번도 고맙다던지, 그게 사랑이었다던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안타깝기만 하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면, 그런 마음들은 며칠 만에 정리되고 훌훌 털어버리겠지. 정든 엄마를 정리하고, 어딘가에 흩뿌려질 엄마를 위해 행복을 빌겠지. 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리고 난 후이기에, 예사롭지 않다. 모든 감정이 말이다.

엄마는 돌아온다. 하지만, 누구도 엄마가 돌아온 걸 느끼지 못한다. 엄마는 결국, 자기 방식대로 돌아온다. 마지막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어 한다. 이미 많은 것을 버렸던 엄마는, 단 한 가지의 소원만이 있을 뿐이다. 훨훨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엄마는, 과연 우리가 아는 엄마일까? 우리가 아는 엄마가 엄마의 다일까? 우리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자주 기억하는가. 엄마를 잊고 사는 시간 동안 엄마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엄마는 왜 다 쏟아붓고도, 잊혀져만 가는가. 엄마는 왜 '인간'이라는 존재로 기억되지 못하고, '엄마'라는 존재로 머물고 마는가.

'엄마'에 관한 화두는 끝나지 않았다. 잃고 난 후에 기억나는 처절한 존재로 끝난다면, 어이없지 않은가. 세상을 향해 말한다. 엄마들을 부탁해.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엄마들을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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