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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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은 은유를 헤아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사만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 외엔 없다. 빛과 어두움. 그러니,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거지. - 23p

 
   

 승, 보라, 바바, 로랑은 각자의 운명에서 지그재그로 만난다. 운명과 욕망, 알 수 없는 이끌림 사이에서 서로의 삶을 걷고 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사는 승, 그 '찾음' 때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보라, 아름다운 보라를 곁에 두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는' 바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로랑. 그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다.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 149p  
   

자신이 찾는 것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승'과 '로랑'. 그 사이에 끼인 두 아이 '보라'와 '바바'. 아름다움을 찾다고 죽음에 이르는 '로랑'과 그 아름다운 욕망을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아내와 친구를 찾는 '승'. 그들이 찾는 것은 결국, 그들의 삶이 되어 버린다. 삶을 좀먹는 '찾음' 속에서 존재 이유가 '찾는 것'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멈출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 한 가지를 위해 달리지만, 그것이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상황.


   
  인간은 결국 원하는 걸 갖기 위해, 그걸 선택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만들어내곤 하지. 우선 자기부터 설득해야 하니까. - 218p  
   


결국, 로랑은 로랑대로 승은 승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것도 돈을 쏟아 붓는 것도, 딸을 방치하는 것도 합리화한다. 불법 거래도 혈육의 아픔도 원하는 하나 때문에 다 합리화 되는 것이다. 사막이 감추고 있는 것들은, 그들의 욕망만이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봐야 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감정마저 감춰버린다. 그들이 진정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없는 것. '위로'.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무엇은 위로 하나 남기지 않고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위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해줄 수 있는 '위로'를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그들.

'보라', '바바'도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프리카로 흘러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고, 혼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빠. 그 곁에는 '바바'가 있다. 아빠의 매질과 너무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노동'. 그 고통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온 '보라'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어떤 물건 때문에 알게 된 보라, 바바, 로랑. 로랑은 그 물건을 감추는 수단으로 바바를 택하고, 그 대가로 로랑의 정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된 보라와 바바. 보라와 바바는 길바닥 삶과 다른 그의 삶의 배경에 놀라워하지만, 결국 아름다움을 탐하다 죽어버린 로랑에게 연민을 갖는다. 

   
  신문 기삿거리가 될 만큼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와 있는 동안 좀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텐데. 사소하지만 나누는 순간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 252p  
   

이런 보라의 독백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가슴이 아리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어본 것이 언제인지. 외로움 안에 갇히면서, 사막에 홀로 갇힌 듯 외로워진 보라. 그런 보라가 누군가의 손목을 붙잡고 어설픈 타투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물건 때문에 보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바바. 바바는 그 추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향한다.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보라가 사라지는 것은 바바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고, 바바는 보라를 찾아 헤매고 싶지는 않다. 곁에 두고,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함께 채우고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렇게 그의 갈망과 나의 갈망이 부딪치는 순간이 있구나.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이란 어떤 장소 속에서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겠지. - 233p  
   

바바의 독백은 보라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주지만, 승과 로랑의 '찾음'에 대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를 얻고 싶었던 승의 갈망, 승을 유혹해 부를 얻고자 했던 친구의 갈망, 승을 버리고 친구와 떠나고 싶었던 아내의 갈망, 애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로랑의 갈망, 엄마를 찾고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보라의 갈망. 그 갈망 속에는 시간, 시간 속의 장소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고통. 그 고통은 사막의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하다.

그들이 '찾기' 위해 '쫓았던 것들'. 사막의 신기루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것들. 그들의 욕망은 결국, 사막을 이기지 못했다. 사막의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욕망들은 결국 잡히지 않은 채 사라졌다. 승이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찾아다닌 것은 허상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보라의 기다림은 바바와 함께 사라지고, 아무리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로랑의 욕망은 숙명처럼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삶에서 독한 황폐를 겪은 그들은, 각자의 사막에 중독되어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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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 2010-12-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아프리카의 별을 읽고 있어요, 책이 무지 읽고 싶은데 오늘 책을 안가져와서, 잠시나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서 리뷰들을 읽어 보고 있어요, 님의 리뷰 넘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책이 더 읽고 싶어 지네요, 빨리 집에 가야겠어요 *^^*

청춘의반신상 2010-12-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봐주셔다니 고맙습니다. ^ ^ 개인적이로 정미경 작가를 좋아해요. 좋은 감동 느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