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세상 모든 과학의 경이로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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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오스의 자식이며 우리가 겪는 변화의 가장 심오한 구조는 붕괴이다. 근원에는 오직 부패, 거스를 수 없는 카오스의 파도만이 몰아친다. 모든 목적은 사라지고 방향만 남는다. 우주의 심장부를 깊고 냉정하게 들여다볼수록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냉엄함이다. - 피터 앳킨스 [두번째 법칙]-8쪽

신비주의는 진정한 과학이 합당히 선사해야 할 시적 경이로움에 대한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11쪽

윤리학자와 신학자들은 수정의 순간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때부터 비로소 영혼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나처럼 이런 말이 잘 와 닿지 않는 사람이라도 태어나기 9개월 전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길 만하다. 이 순간은 바로 일초전보다 당신의 의식이 갑자기 수억 배 더 분명해진 순간이다.-19쪽

감각을 무디게 하고 존재의 신비를 감추는 익숙함의 마취제, 평범함의 진정제라는 게 있다. 우리 중 시인이 될 수 없는 이들에겐 적어도 가끔 마취제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이 중요하다.-27쪽

우리 모두는 세포의 도시이고, 각 세포는 박테리아의 마을이다. 당신은 거대한 박테리아의 메토로폴리스다.-31쪽

우리가 느끼는 이 소중한 경이로움에 위협적인 존재는 가까 과학자들에 의한 탈취만이 아니다. 또 하나는 대중적 하향평준화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세번째 위협은 여러 종류의 유행에 민감한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다. 유행 편승주의자들은 과학이 단지 여러 문화적 믿음 중 하나로 어떤 문화적 미신보다 더도 덜도 유효하지 않다고 여긴다.-46쪽

고대 중국의 청나라인들은 손톱 한 개 또는 여러 개를 매우 길게 길러 어떤 수작업도 불가능하게끔 해서 스스로가 그런 유의 노동을 하기에는 너무 고상하고 고매하다는 점을 모두에게 분명히 보여 주려 했다고 한다. 이는 오만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열국인들에게도 잘 와 닿을 얘기다. 응용과학과 상행위에 대한 우리의 결벽증에 가까운 거부감은 세계 속에 영국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피터 메더워 경 [과학의 한계]중에서-67쪽

그러나 이제 나는 창문으로 보이는 저 정원의 색처럼 내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동일한 의미에서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뇌가 빛의 파장에 편의상 붙인 이름표로서 하나의 임의적 약속에 불과하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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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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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성의 법칙

 평범한 사람들은 빚 진 감정을 잘 견디지 못하는것 같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밥 한 끼를 얻어 먹으면, 그에 상응하는 또는 그보다 더 큰 어떤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법칙은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법칙은 원칙적인 면도 있겠지만, 심리적으로 압박 당하는 걸 보면, 본능적인 면도 있는것 같다. 다시 말해서 본능적으로 인간은 무언가 선물을 받게 되면 그와 대등한 또는 더 큰 무언가를 갚아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HKS라는 종교 단체의 기부금을 모금하는 행위는 이 상호성의 법칙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먼저 지나가는 행인에게 꽃한송이를 건넨다고 한다. 엉겁결에 받은 사람, 극구 거절하지만 강제로 받게 된 사람들, 또는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기쁘게 받은 사람들 모두 다 그 꽃을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기부를 하게 되고, HKS는 많은 돈을 기부 받아서 세를 키워 갔다고 한다.

 또 같은 맥락으로 상호 양보의 법칙도 있다. 아이들이 부모들한테 처음에 큰 돈을 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작은 금액을 달라고 할 경우, 아이도 양보했기 때문에 부모도 양보해서 작은 금액의 돈을 주는 경우와 같다. 가령 우리가 무언가 결재를 올리거나 견적을 낼 때도 깎일지도 모르니까 비싼 금액을 올리는 경우와도 같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도 이 원칙을 적용하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 일관성의 법칙

 가끔 다이어트나 금연을 결심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많은 사람 앞에서 다이어트나 금연 결심을 공표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선언함으로써 주변사람들이 도움을 구하고, 보다 자신의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다이어트나 금연과 같은 결심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자주 발견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언가 결심하고 대외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간혹 정치인들이 아무리 봐도 아닌 일을 가지고 치고 받고 싸우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들의 정책을 고수하려 애쓰는 것도 다 마찬가지 법칙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것 같다.

 

3. 사회적 증거의 법칙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탓인지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언가 다른 사람과 다른 돌발행동을 할 경우, 다른 사람의 행동을 먼저 주시한다고 한다. 가령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자질구레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의 경우, 물건 판매를 늘리기 위해 2인1조가 되어 판매하는 사람 외에 다른 한 사람은 물건을 구매하는 시발점을 끊어 준다. 그러면 그 전에는 주춤하던 사람들도 함께 물건 구매를 주저하지 않게 된다. 결국 사람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함께 선택하려 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좋다 하는 것을 함께 좋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영화나 음식점의 입소문은 모두 이와같은 심리적인 법칙 탓이다.

 

4. 호감의 법칙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은 거절하기가 힘들다. 친한 사람의 부탁도 마찬가지다.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보험상품을 들거나 물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또 이왕 사는거 아는 사람한테 사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유리하는 사실은 이제 굳이 비밀도 아니다. 우리나라만도 성형외과에 비만 클리닉등이 대성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주고, 호감형의 외모 역시 사람을 설득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5. 권위의 법칙

 텔레비젼에 나온 의학박사가 말 한 정보를 타인에게 전하면서 의심을 품어 본 적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박사나 의사등을 사칭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권위자의 말 한마디를 굉장히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제품 광고시, 전문가를 내세운 광고전략도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다. "어제 텔레비젼에서 ㅇㅇㅇ박사가 한 말에 의하면,..."이런 말을 듣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6. 희귀성의 법칙

 쇼핑가서 살피던 물건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때, 충동적으로 구매하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간혹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이성이 다른 사람에게 간다고 할때, 안타까워진다는 감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별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세상에 몇 개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설득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고 단단한 마음이 여러가지 요인들에 의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전엔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기도 하고,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수정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필요한 일을 필요 없다고 결론 내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게 된 요인들.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그런 심리적 작용이 몇가지 법칙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분석한다. 그게 위의 여섯가지 법칙이다. 각각의 법칙들은 보는 즉시 이해가 될 만큼, 우리도 잘 깨닫고 있는 법칙들이기도 하다. 단지 우리는 그 각각의 법칙을 파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모두 연결짓거나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잘 정리된 법칙을 아는 것과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긴 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라는것은 알면서도 그게 변이된 다른 상황에 놓였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 경우와 똑같은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경우도 많다.

 

 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은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23쪽

 

 위의 여섯가지 법칙은 인간이 여러세대를 거쳐 살아 오면서 여러가지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올바른 형태의 심리적 법칙을 무의식적으로 형성해 낸 것이라는게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주장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 오만가지 일들을 모두 논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면, 인간의 너무나 큰 스트레스로 두뇌가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겪어서 알겠지만 선택이라는 것은 쉽게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어느 정도의 보편화된 일에서는 자동화된 마음의 작용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면 꼭 갚아야 한다거나, 내가 선택한 사상이나 결심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라거나, 세상 사람 대다수가 하는 선택에 나의 선택을 보태거나, 전문가의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거나 희귀한 것에 대한 열망등의 자동화된 마음의 작용이 생겨난 것일거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마음의 작용이 누군가에게 악용되어 우리가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으로 피해를 입지 않게 하는게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이 책을 쓴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때만 해도 흔하고 흔한 처세술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몇년의 세월을 보내고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지금은 미리 읽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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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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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진보한다는 것은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23쪽

우리는 그런 상호성의 법칙을 어른이 되기 훨씬 전부터 깨닫는 듯하다. 어느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보냈다. 그는 아이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 시제를 연습시키기 위해 시험문제를 냈다고 했다. '나는 준다'의 미래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어느 학생이 이런 답안을 제출했다. '나는 받는다.' 그 아이가 미래 시제에 대한 문법적 규칙에는 틀린 답을 썼다 하더라도 사회적 규칙의 입장에서는 분명 정답이었다.-60쪽

인류 사회의 선물을 주고 받는 과정에는 세 가지 종류의 의무가 있는데, 그것들은 선물을 주어야 하는 의무, 선물을 받아야만 하는 의무, 그리고 받은 선물에 언젠가는 보답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마르셸 모스-68쪽

이 새로운 법칙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 혹인 일관되게 보이도록 행동하려 하는, 거의 맹목적인 욕구를 말한다. 일단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이나 입장과 일치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러한 부담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전에 취한 선택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106쪽

일관성의 법칙은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여 대처해야 할 복잡다단한 일상 생활을 비교적 편리하고도 효율적으로 그리고 손쉽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따라서 자동화된 일관성을 제어한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레이놀즈경이 '사람들은 생각하는 번거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일관성의 도움에 의해 우리는 쉴새없이 생각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일관성의 테이프를 소중히 가슴에 안고서 이 세상으로 당당히 나아가서 많은 생각의 수고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110쪽

모두 비슷하게 생각할 때에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월터 리프만-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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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1집 보편적인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 루오바뮤직(Luova Music)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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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유쾌한 소설책을 읽을 적이 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인생은 "삼미 슈퍼 스타즈의 ~"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책엔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고,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그 구절에 유난히도 감동했었다.
 

 오늘 문득 든 생각 중 하나는 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들을 내가 왜 좋아하는가?였다. 빠른 비트와 랩, 인상적인 가사 더하기 파격적이면서 현란한 의상등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시피한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이런 음악은 내게 편안한 쉼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

 

 힘을 빼고 가만가만 편안하게 부르는 보컬과 편안한 멜로디.

 어쨋든 내겐 완소 음악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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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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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전 날 우후에 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동네 카페에 들어가서 좌석 안내를 받지도 않고 낸 맘대로 자리에 가서 앉았던 것이다.(중략) 어쨋든 카페 안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해서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좌석 안내 담당 매니저'가 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자리를 찾아 앉으셨군요."

 "네. 옷도 직접 입는답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저 표지판을 보지 못하셨나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좌석 안내를 받으실 때까지 기다려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표지판을 가리켰다.

 나는 그 까페에 150번은 출입하였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각도에서 그 표지판을 봐왔다. 하지만 모르는 체하기로 했다.

 "오! 저런, 못봤네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쪽 파타의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매우 바쁘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내 자리에서 사방 15미터 이내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표지판에 적혀 있는 규칙을 따르지 않았고, 따라서 잠시 동안 벌을 서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31~32쪽

 

 붐비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저 대목에서 얼마나 킥킥대며 웃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옷도 직접 입는 다는 저 대목. 그러고 보니 처음 읽었던 그의 책 "나를 부른 숲"에서도 한참이나 킥킥거렸던 구절이 있었다. 끈도 주지않고 방수도 되지 않는 배낭을 250달러나 주고 구입하는 장면에서 "배낭에 밑창은 붙어 있기나 한 거요?"라고 묻는 장면. 그 책 이후로 빌 브라이슨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참 재미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좀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른이 되어 20년동안 영국에서 살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간 빌 브라이슨의 체험을 주간잡지 부록의 칼럼에 기고한 내용들이다. 그러고 보니 원제 "I'm stranger here myself"가 훨씬 책의 제목으로 어울린다.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이었지만, 20년을 영국에 살다 돌아온 빌 브라이슨에게 미국은 낯설음 투성이다. 완전한 외국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완전한 미국인이라 하기에도 뭔가 부족한듯한 빌 브라이슨은 이것저것 겪고 체험하면서, 어린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만연된 편의주의를 특유의 유쾌한 어투로 비난하기도 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장난스럽게 조롱하기도 하고, 미국의 훌륭한 점에 대해 감탄하기도 한다.

 

 눈 앞에 보이는 놀이공원을 가는데도 보행자를 위한 길이 없어서, 자동차를 타고 가거나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미국의 현실. "다이빙대에서는 발을 한 번만 구르시오"라고 써 붙일 만큼 규칙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제대로 된 설명보다는 계속되는 바톤터치를 해대는 소비자 상담전화. 쇼핑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미국인들. 똑같은 아침식사용 씨리얼만도 수십, 수백개를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정크 푸드의 천국. 직장에서의 감시뿐 아니라 옷가게의 탈의실에 대한 감시까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실태등. 빌 브라이슨이 지적하는 미국에 대한것들이 사실 보는 내내 낯설지만은 않았다. 몇가지는 해당사항이 아닐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유쾌한 분노를 하는 빌브라이슨의 글들은 사실 우리 자신을 통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산과 강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을 지내온 내용이라서, 미국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읽는 사람에겐 실망스러운 책일 것 같다. 그것보다는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입담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가끔 즐겁게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당하게 권할 만한 책일 것이다. 그런 즐거움과 함께 덤으로 얻는 것은, 미국이라는 이름을 빌려 표현되었지만, 현재 내 주변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는 불합리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 또 하나 기억에 남던 재밌는 일화, 

 일 년쯤 전에 미국의 항공사들은 점증하는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승객들에게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 같은 사실을 나는 집에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처음 알았다. (중략) 마침내 나는 지갑 뒤편에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아이오와 주 운전면허증을 발견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군요.”
직원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비행기를 몰지 않도록 하죠.” - 32-3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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