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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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17쪽

 

 아마도 누구나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엄마'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랑 동시대에 나와 같은 지방의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더욱더. 심지어 사투리마저도 낯설지 않았으니까. 서울에 올라와서 낯설은 모습중 하나는 가정주부들이 아무 할 일도 없는 한가한 순간들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우리엄마가 한낮에 방에 한시간 이상을 누워계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어딘가로 움직이시고, 항상 무엇인가를 무언가를 하고 계시던 우리엄마. 서울에서 내려왔던 작은엄마는 우리엄마가 참 부지런하시다고 했다. 우리엄마가 없으면 우리집 살림이 유지가 되지 않을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릴때는 엄마가 세상 전부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에 대한 생각은 눈에 띄기 시작한 주름살과 함께 조금은 아련한 슬픔을 띄곤 했다. 더구나 멀리 떨어져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어선 지금은 항상 옆에서 함께 하지 못함이 안타깝고 서글프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엄마의 인생에 대해 왜 나는 한번도 궁금해 해본적이 없는지 의아했다. 아마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나는 언제나 내 생각만 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어린시절 어떤생각을 했는지, 무얼 하고 놀았는지, 무엇때문에 고민을 했는지 나는 하나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나와 내 동생들을 길러 내면서 어떤점이 힘들었을지, 혹시나 아빠가 엄마 속을 썩히신 적은 없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엄마앞에 있어서만은 나는 무척이나 이기적인 존재였던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안에 엄마는 실종되고 나서 가족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큰 딸의 기억속의 엄마, 큰 아들의 기억속의 엄마, 아버지의 기억속의 엄마. 각각의 그녀는 동일인물인듯 하면서도 각각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을법 하다. 그리고 엄마의 기억속의 자신. 그 역시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어째서 타인의 기억에는 귀 기울이려 애쓰면서도, 정작 우리 엄마의 기억은 궁금해 하지도 않으며 살아갈까? 어쩌면 우리는 엄마가 너무도 가까워서 다 알고 있다고 속단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막상 타인과의 관계에 사용하는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가 얼마나 엄마에 대해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을 엄마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이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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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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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그녀의 책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가 읽은 그녀의 첫번째 책이다. 그녀는 원래 이런저런 활동으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이름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처음에 난 그녀가 중국사람인줄로만 알았다.  여하튼 내가 읽은 그녀의 첫번째 책 안에는 안락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모르고 있는 일들이 가득하다.

 

 긴급구호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생경하다. 우리가 태어난 시절만 해도 '보릿고개'란 단어가 실생활과 밀접했다고는 하지만, 나에겐 밥을 굶었거나, 밥이 모자라 허기가 져서 살았던 기억은 없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기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얘기해 주는 것을 듣고서도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날, 몇달을 제대로 된 한끼 식사를 하지 못한 아이들의 신체기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정상적인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 모습을 보며, '정말 기아가 무서운 거네.'라는 잠시잠깐의 생각밖에 해 본 적이 없다. 먹을거에 있어서만은 항상 풍족하게 살아왔던 습관이 빈곤한 사람들이 겪는 기아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에겐 남의 일이지만,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불균등하게 사용하고 있다는걸 생각해 본다면, 잘 먹고 잘 입는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의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굶주리고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건, 결코 그 나라들이 자원이 부족하거나 게으른 탓은 전혀 아니다. 대부분의 기아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휩쓸려, 걔중에서도 소수는 잘먹고 잘 살고 있지만, 거의 대다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할 수 없는 빈곤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까운 예로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다. 6.25 전쟁 전만 해도 남한보다 더 자원도 많고 산업기반시설도 발전했던 북한이지만, 잘못된 정치적 선택과 억압으로 인해, 이젠 빈곤국이 되었다. 결코 국민들이 게으르거나 그 곳의 자원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대다수 남반구 나라의 기아는 또한 선진국들의 탓도 크다. 국민총생산에 맞먹는 또는 그보다 더 큰 빚을 선진국들에게 가지고 있는 그들 남반구 나라들은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그들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고, 삶은 더욱더 빈곤해 지기만 한다. 존 퍼킨스의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면, 그 빚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로 교묘하게 옭아맨 덫에 걸려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세상의 지식인들이 빈곤국들의 부채탕감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선진국들은 그런 얘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UN 식량 담당관이었던 '장 지글러'가 쓴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는 책을 보면, 지구상의 식량의 총합은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충분히 남는다고 한다. 결국은 분배의 문제이고, 운 좋고 힘 있는 사람들이 식량을 다 차지하고 있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빈곤국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긴급구호는 빈곤한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것이기도 하고, 잘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한들,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긴급구호팀장으로 세계 빈민들을 돌보는 모습은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한다. 비록 나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 만족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어렴풋한 소망을 갖기도 한다. (낯선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두렵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기만한 해서 혼자 있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내가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어쩌면 나도 무언가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 사실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좋아하는 아름답고 단아한 느낌들을 내고 있진 않다. 오히려, 그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듯, 솔직하고 명랑하고 명쾌한 듯 하다. 예쁘게 다듬어지지 않은 석기시대 악세사리들을 보는 느낌. 처음에는 그래서 그녀의 문장들에서 우락부락함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읽어가는 내내, 그 내용과 어우러져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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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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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그것은 어쩌면 유한한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내심 생각해 오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무한성이 보장된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무진장 많고, 미뤄두기는 우리의 특기 아닌가? 갑자기 이런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해 대는건, 이 책이 E=mc2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이 책의 컨셉은 E=mc2의 일대기를 전기의 형식을 빌려 얘기하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는 많이 보고 듣지만, 물리학 공식을 주인공으로하는 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난생 처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공식도 그 자신의 삶이 마감지어질 것이며, 그 이전에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을 할까? 공식에 의도라는게 존재 할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세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수백, 수천, 수만, 수억가지일테니까.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잡지에서 본 카메론 디아즈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리미어]라는 잡지에서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디아즈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했다. 디아즈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E=mc2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 그리고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디아즈는 "농담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E=mc2"은 위와 같다. 모두들 이 공식을 들어보았고, 어디선가 (가령, 물리 교과서 같은 책에서) 한번쯤은 보았다. 그리고, 현재 이 지구상에 이 공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심스럽다.

 

 질량은 c2=448,900,000,000,000,000 mph(mile per hour)이라는 숫자를 상수로 갖는 에너지로 변경될 수 있다는 이 공식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과학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인슈타인은 별다른 실험도 아닌, 깊은 사색을 통하여 이 공식을 만들어 냈고, 이 공식은 자체적으로 힘을 가지고 성장해,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져 인류 최대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이끌어냈다.

 

 사실 지난 세기에는 E=mc2이란 공식이 가장 핫hot한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공식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고, 우리는 잠재적으로 지구상에 모든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깔고 앉아 있는 꼴이 되었으며, 효율성 높은 에너지원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그로 인해 방사능 유출의 문제점 또한 갖게 되었다. 또 그 동안 궁금하게만 여겼던 우주 생성 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밝혀냄과 동시에 또, 우리 지구의 최종적인 종착지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식은 지극히 간단했지만, 그 공식이 내포하고 있는 힘은 우리 세계를 너무나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과학이라는 것은 어린시절부터 내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 용어들은 마법의 주문 같은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과학적 재능은 그다지 갖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학이란 분야와 과학을 잘 아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해는 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은 여느 과학책들과는 달리 이해하기 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책을 읽고 있던 당시는 모든 내용들을 훤히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알고있다 자신했지만, 읽고 난 후에 기억은 모두 흐릿해졌다. 지금도 책을 읽던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서 두뇌의 모든 뉴런들이 아우성치는 듯 하였지만, 지금은 에너지와 질량의 관계와 빛의속도제곱의 상수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성과일런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E=mc2으로 추측되어진 우주의 형성과정에 대한 설명에 나름대로의 나의 상상을 더해 본다.

 태초에 에너지의 장으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있었다. 불안전한 에너지의 흐름은 군데군데 강하게 압축되어 질량을 가진 물질들을 만들어 냈다. 그것들은 행성이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태양이 되었고, 유난히 수소가 많았던 그 별은 얼마 후 수소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내며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을 받아 여러 별들도 변화를 겪기 시작하였다. 지구도 내부적으로는 말랑말랑한 유동체를 품고, 겉으로는 딱딱한 대륙의 껍질을 가지고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들며, 어느 순간 생명체가 탄생했다. 그 중에는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인류가 탄생하였다. 태양은 수소란 연료를 모두 다 사용하고, 다시 압축과 폭발을 계속하다 다시 헬륨이란 연료로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그만큼 질량이 작아진 태양은 더이상 인력이 세지 않아, 몇개의 행성을 놓아버리게 되었다. 운이 나쁘면 지구는 태양과 멀어져 온통 꽁꽁 얼어붙은 행성이 되던지. 아니면 결국은 헬륨마저도 다 사용해버리고 압축하다 블랙홀이 되어 버린 태양의 구멍으로 흡수되어 버리던지. 결국 우주의 모든 별들은 블랙홀로 빠져들어, 세상은 다시 에너지의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에너지 장이 과거와 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류는 이런 우주의 일생에 있어 너무나 작은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어쩌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는 끈질긴 DNA와 언어의 전달로 우주 형성의 비밀을 어렴풋이 깨달은 최초의 생명체 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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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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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라우징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는 사멸해가는 언어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6,500개 언어 중 절반이 50년에서 100년 이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우리 인류에게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모든 언어에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고유한 지식,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각의 언어는 그 자체로서 인간의 소통 능력이 진화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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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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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화된 문명이 지구의 대부분을 잠식해 버린 현재. 원시사회의 원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현대인들은 멸시와 동경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작은 질병에도 속수무책으로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를 거부하고, 한편으론 자연과 동화되어  과도한 경쟁과 업무에 시달리지 않으며 평화롭게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부러워 하면서. 그렇다고 그 사회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현대 사회로 이끌어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마찬가지로 현대화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의 사회를 동경한다 해도 그 삶 속으로 뛰어 들기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중적인 인류의 감정이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결정 짓는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그들을 현대화 시키기 위해 애쓰고, 한편에서는 그들의 삶을 보호하자고 주장한다.

 

 다니엘 에버렛은 아마존 내 마이시강 유역에 살고 있는 피다한족들을 선교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다. 현재는 400명 가량 남아있는 피다한 족들은 현대문명을 접하면서도 절대 현대화되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원주민들이다. 사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전혀 다르고, 그들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수 많은 원주민들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세상에 내 놓고 있지만, 피다한 족은 그 동안 알려진 그 어느 부족과도 달랐던 것 같다. 인류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죽음의 의식도 피다한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창조주나 세상의 시작에 대한 인식 또한 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사실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는 그들은 그래서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혹자들은 이런 자세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현재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자족하면 살아가는것.

 

 이런 피다한 족들에게 다니엘의 선교활동이 잘 통할리 없다. 그들의 언어를 어렵사리 배워 마가복음을 번역, 녹음 하지만 피다한족들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사실 원죄의 개념과 내세의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교인을 개도하는 기독교의 원리가 피다한족에게 애초부터 통할리가 없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이 죄악의 개념을 갖고 있을리도 없거니와 설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들 자체의 걸름망인 추방으로 그들은 가혹한 벌을 받는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는 그들에게 내세에 대해 지옥 갈까 하는 두려움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거기다 더하여 직접경험한 것만을 가치롭게 쳐 주는 그들의 인식은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성경의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

 

 다니엘 에버렛은 피다한족과 함께 살며, 자신이 살아 온 환경과 체화한 문화에 따라 가치관과 인식방법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책 곳곳에서 지적한다.

 비록 그들과 거래를 하며 살아가는 까보끌루들은 피다한족을 인간이 아닌 미개한 유인원으로 여기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시선은 애정을 넘어서 동경과 존경으로 변해간다. 결국 선교를 목적으로 피다한족을 찾았던 그의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론으로 돌아서게 된다. 기독교 안에서 공고했던 그의 가족은 그로 인해 해체되지만, 그의 정신은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것을 하나의 가치관 안에서 묶으려 드는 종교 앞에서  피다한 족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가치관만을 받아들임을 선언할 줄 안다.  책 뒷장에 나온 광고 문구처럼 신도 없고, 진리에 대한 강박도 없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피다한족들.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던 다니엘이 무신론으로 돌아선 건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은 유한하다. 이 견고한 진리에 대한 강박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붙잡고 싶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것을 놓아버릴 수 있을때, 마침내 삶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피다한족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들던 생각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에, 다른 종족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피다한족들의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커다란 하나의 메시지인것 같기도 하다.

 

** 이 책의 상당부분은 언어에 대해 할애되어 있다. 세상 어느 언어와도 비슷하지 않은 피다한어를 배우기 위한 다니엘의 노력과 그 언어들에 대한 설명. 언어로 따로 분류된 장에는 피다한 언어가 다른 언어들과 전혀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언어학적 이론의 논쟁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언어학 이론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게 사실이다.그리고, 이 책의 제목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의 의미는 책을 읽기 전에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는데, 피다한족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잘 자.", "내꿈꿔."하는 것처럼 하는 밤 인사라고 한다. 아마도 밤에 너무 깊이 잠들면 위험해지는 삶을 사는 피다한 족 사람들의 문화속에서 탄생한 인사일거라는 저자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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