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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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누구인가?"

 어쩌면, 타인에게 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이곳, 여기를 보여주고, 말 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개인들은 모두 자신이 특별하며, 남과 다른 존재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어느정도의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다. 같은 곳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다른곳에 속한 사람들과는 또 다른 그들만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속한 여기, 이곳은 나 자신의 분신들의 집합체임에 다름없다.

 

 오콩코에게 우무오피아는 그런 곳이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선 꼭 설명해야 할 여기, 이곳. 나고 자라고 죽어야 할 곳. 그래서, 우연히 같은 부족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마을로 쫓겨 가, 그곳에서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지만 우무오피아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오콩코에게 존재감을 부여해 주는 곳은 '우무오피아'뿐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나 집단의 바램과 달리 세상은 항상 행복했던 시절 그대로 존재해 주지 않는다. 공평하게도 나쁜 시절이 지나가듯이 좋은 시절도 지나가 버린다. 7년이 지나서 돌아온 우무오피아. 오콩코에겐 그렇게도 그리웠던 곳, 그곳 이외에선 어느 곳에서도 존재 이유를 찾지 못했던 곳이었지만, 어느새 그곳도 변해 버렸다.  변함 없는 그 곳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오콩코였지만, 변해버린 그 곳에서는 자기부정과 세상탓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부정당하던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오콩코에게 결국은 세상이 변해 버려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는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들의 세상을 꾸려나가는 많은 민족들의 삶을 급격하게 뒤 흔들어 놓았다. 오콩코의 그곳 우무오피아의 변화 이유도 유럽 기독교의 전파였다. 기존 원주민의 가치관은 모두 쓸어 내 버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강요하려 했었던 열강들의 행태는 식민지 국민들의 비극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였다. 오콩코가 평생 따랐던 그의 부족의 가치관은 급격히 흔들렸고, 서구인들의 무력 앞에서는 그야말로 무기력했다.

 

 오콩코의 우무오피아는 소설 속 세상이지만, 우리 자신의 현실도 우무오피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과거의 꿈들은 미래에 유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래는 장미빛이라기 보다는 안개속과 같다.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난 그다지 만나보지 못했다. 즉흥적인 즐거움들이 횡행하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여기, 이곳이 나 자신을 말해 준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 이곳은 임시거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원히 거주하게 될 임시거처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슬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으면서 많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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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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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갖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들도 그들의 역사를 갖고 있을 것이고, 식물, 심지어 돌멩이 하나도 그들이 현재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인간은 언어를 발명해 냈고, 그로 인해 오랜시간 보존이 가능했다는것,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아주 오래된 일들을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동물과 식물, 광물 역시 역사를 가지고는 있겠지만, 그들의 역사는 현재의 존재들에겐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의 피 속 또는 몸 속 어딘가 얌전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언어를 통해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보고 배우며,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미래를 유추해 내기까지 한다. 역사는 어찌보면, 인간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역사왜곡은 너무나도 빈번히 자행되고, 문제가 되고, 또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일테다.

 

 이 책의 역사적 사건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왜곡된 사건들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겠지만, 아마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소위 빨갱이라고 불려지던 좌파들을 제외하곤 별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갖지 못하던 얘기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리라는 것은 항상 우두머리 집단을 갖을 수 밖에 없는듯 싶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일컬어 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사람들은 국민의 하인인 대통령, 국회의원을 마치 옛시대의 왕이나 고관대작들로 여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자신이 그렇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국민이 또는 무리의 대다수가 그 체제에 대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반발하지 못하도록 역사를 왜곡하고, 누락시킨다. 그래서 민중이 압제자나 독재자에 항거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 찾는 역사적 사건들이나, 그들 편리한 대로 설정해 버린 진실을 파헤친 양심적인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이라든지, 하는 얘기들은 누락시키거나 변형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12년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 책에 나온 얘기들에 관해 심사숙고 해 볼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 역사책에 나와있더라도 한줄정도로, 아마 스쳐 지나가듯이 읽은 기억밖에 없을 것이다.  

 

 유시민은 이런 책이 더 이상 이슈화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고 얘기한다. 역사적인 모든 사건이 정당하게 평가되고, 많은 사람들의 토론에 의해 의미가 벗겨지고, 왜곡되거나 누락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굴곡진 역사의 구비구비를 걸어오는 동안 너무도 강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듯하다.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에선 빨갱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곤 한다. 아직도 친일파나 친일파의 후손들은 너무나 떵떵거리며 일반대중보다 물질적으로도 잘 살고, 계층적으로도 일반대중을 지배하는 입장에 놓여 있기도 하다.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 치를 떨고, 일본은 여전히 우리에게 어떤 사과도 하지 않는다.

 

 역사는 지그재그 행보를 하지만, 그래도 더디게나마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한다. 나 역시 그 말을 믿고 있지만, 그 발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그 과거의 사건들에서 교훈을 얻고, 인간들의 행동양상을 깨닫고, 현재 우리의 행동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혜로워질때, 세상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발전은 인간의식의 발전과 다름 아니다고 본다. 그리고 아직도 인간 의식의 발전에 제동이 걸려 있는 만큼 이 책은 유효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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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세상 모든 과학의 경이로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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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독특한 병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 중 하나인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하늘의 평상시답지 않은 움직임은 세상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예언을 행하고, 빛의 굴절로 나타나는 무지개에서 황금단지를 가진 요정을 보며, 달의 분화구 얼룩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발견해 내곤 해왔다. 하지만 지난 세기 과학의 발명은 너무나 눈부신 속도로 진보했고, 이제 우리는 세상엔 그런 환상이 없다는것을 이성으로 알고 있다. 혹자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얘기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무지개가 왜 생겨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원리를 이용해서 손 쉽게 무지개를 만들어 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이 현재의 별들이 아닌 머나먼 과거의 별들임을 안다. 지금 그 별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그 자신의 모습들이다. 달에서 절구에 방아를 찧는 토끼는 분화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임도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도 알고 있다. 우리의 인식너무 세상이 얼마만큼 큰지 정확하게 대답하지는 못하지만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은 더이상 날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의 중심을 돌고 있을 뿐이다.

 

 '과학'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은 보잘것 없어졌고, 우리가 모르는 세상은 점점 더 커져 가기 시작했으며, 더이상 요정이나 환상같은 낭만은 사라져 버린듯하다. 자신이 최고의 피조물인양 당당했던 인간에게 이것을 얼마나 치욕적이면 충격적이었을까? 더구나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 자부심은 노력만으로 다시 얻기엔 세상의 크기는 너무나 거대하고 인간은 너무나 작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윤리학자와 신학자들은 수정의 순간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때부터 비로소 영혼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나처럼 이런 말이 잘 와 닿지 않는 사람이라도 태어나기 9개월 전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길 만하다. 이 순간은 바로 일초전보다 당신의 의식이 갑자기 수억 배 더 분명해진 순간이다. – 19쪽
 

 우리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수백, 수천개의 존재중 우리 자신이 의식을 갖게 된 것. 다른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이 의식을 갖게 된 것. 과학으로 밝혀진 진실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난 의식을 갖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세상은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 또한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든 개인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우리의 세계는 다음세대에게 DNA를 통계 인계된다. 우리의 일부를 가진 나의 후손에게도 그만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별빛은 이제 더 이상 낭만적인 빛의 점들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빛을 통해 우주의 존재를 확인한다. 검은 밤 하늘 너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수억, 수조 배 큰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별빛속에 스며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느끼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더 큰 진실이 덜 낭만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힘겨운 책이었다. 쉽게 씌여진 책이라는 출판사의 광고문구가 무색하게 읽는 내내 자꾸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맴돌아 제대로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편,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으며 구토감과 욕지기가 드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새삼스레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그저 학습과목 중 하나였던 '과학'. 하지만 그 속에는 내가 모르던, 무한한 우주가 존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논리적이고 딱딱하고 건조한 냄새를 풍기지만 그 안에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은 아는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알지 못하는 것들은 봐도 자신의 세계안에 들어차지 못하고 흘러서 사라져 버린다. 더 많이 알고, 알고자 애쓰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알고자 전혀 애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풍부한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종종 잊거나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곤 한다. 사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풍부하고 다양하고 즐거운 세계에 살 것인지, 빈약하고 그저그런 무미건조한 세계에 살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여기, 과학이 결코 세상을 건조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오히려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이 쓴 책 한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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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양철북 청소년 교양 8
이하영 지음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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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한국에서 태어난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일 저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 쪽의 우간다나 소말리야 등지에서 태어났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아님 지금쯤 온갖 질병에 걸려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밥 한끼 배불리 먹지 못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배 고플 걱정은 별달리 없고,(아직도 배 고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럭저럭 삶을 유지하고 있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삶이 마냥 풍족하고 희망적이지 않은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왜 우리나라는 이처럼 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이지 별달리 알고 있는것도 없고,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 살아야 하는 모습은 응당 이런게 아니겠는가?'란 생각을 많이 했다. 어린시절부터 받아 온 반공교육의 효과로 사회주의 국가 하면 공산당만 떠올리는 나에겐 스웨덴을 사회주의 국가라 일컫는 것이 처음엔 어리둥절 했다. 나중에서야 그게 복지정책의 최선화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열다섯 살이라는 하영이가 써서 그런지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학교 생활과 관련이 있다. 사회적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스웨덴 사람들은 과도한 경쟁과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서 우리나라랑은 대조적이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뿐이다. 공부도 여유롭게 한다. 일주일에 두개 이상의 시험을 볼 수 없게 학교 정책적으로 정해져 있고, 예체능 과목 점수가 모자르면 수학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진학에 어렵움을 겪는다. 수업시간보다도 쉬는 시간이 더 길고, 남을 이기고 앞으로 나가려 하기보다는 '모두 같이 잘하자.'를 이루기 위해 협동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모든 수업은 그룹을 이뤄서 과제를 수행해 나간다. 학교 수업료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모두 무료고, 성적보다는 인성을 위해 하루종일 상담만 해 주는 전담 선생님이 따로 있을 정도다. 단 한명의 외국인 아이라도 통역 선생님을 붙여줘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사람들과 협동하고 여유로운 어른으로 자라는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최고로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하나 가지고 있지 못 한 걸 보면, 어린시절부터 공부만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가지지 않는것이 사실임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나 말해서 이젠 진부한 생각이긴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보다 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질은 창의력과 협동심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스웨덴의 학교 모델은 성공적이지만, 경쟁을 가르치고 성공만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학교 모델은 장기적으로 위험한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학교모델뿐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 모델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자라 온 스웨덴 국민의 가치관이 발현된 덕이 클 것이다. 그 반대편이 방식을 자라 온 우리가 스웨덴과 비슷한 모델을 선택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부를 쥐고 있지 못하는 나로서는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난 조금 회의적인 모양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결국은 더 좋은쪽으로 변화할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야 할 테고.

 

**가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밖에 할 수 없다는게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치부터 바꾸기 위해 투표라도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걸까? 답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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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Mr. Know 세계문학 45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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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당사자들은 너무 진지한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그 상황이 너무나 우스워 보이는 일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어리석은 인식 탓이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사 자체가 몽땅 그런 이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론 진지하고 엄숙해 보이지만, 그 이면은 우스꽝스러울 뿐인 것이다.

 

 내게 체호프 단편을 읽는다는 일은 솔직히 힘에 겨웠다. 이미 현대적인 매체들과 현대문학등에 길들여진 내게 체호프 단편을 읽는 일은 설탕이 잔뜩 입혀진 도넛을 먹다가 갑자기 식빵을 물어뜯는 기분이랄까? 이미 달디단 입맛에 갇혀 있는 나는 더 강한 단맛이 아닌 맛에는 별 반응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난 배가 불러 있는 것인지도.

 

 흔히들 고전은 세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오랫동안 사랑 받는다고들 알고 있다. (체호프의 단편들이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지성과 인식, 가치관은 그런 고전들에 반발심 또는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함직하다. 물론 모든 고전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체호프의 단편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고전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것 뿐이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체호프의 단편의 정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던 것 뿐이다. 

 

 나는 체호프 단편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이름들은 쎈소리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고 세자리나 된 데다가 처음엔 성으로 지명하다가 다음에 미들네임으로 지명하기도 해서, 번번이 스토리를 놓치고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 일쑤였다. 느린 이야기 전개는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익숙한 내게는 답답함을 주었고, 등장인물중에 내가 사모하게 될 만한 매력적인 인물은 전혀 등장해 주지 않아서 그것 또한 아쉬웠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읽고 나서 느껴지던 것 중 하나는 유머였다. 등장인물들에겐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고 또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제 3자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게 느껴지는 것은 우스꽝스러움 이었다. 우스꽝스러움은 다른말로 유머라고 생각한다. 체호프는 이 세상이 사람의 삶이 유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유머만이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이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여하튼.

 

 비록 체호프의 단편들이 내겐 그 명성만큼 깊은 감명을 주진 못했지만, 체호프의 문학사적인 위치는 결코 적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성과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체호프 단편들을 즐기고 감명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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