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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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전 날 우후에 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동네 카페에 들어가서 좌석 안내를 받지도 않고 낸 맘대로 자리에 가서 앉았던 것이다.(중략) 어쨋든 카페 안은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해서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좌석 안내 담당 매니저'가 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자리를 찾아 앉으셨군요."

 "네. 옷도 직접 입는답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저 표지판을 보지 못하셨나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좌석 안내를 받으실 때까지 기다려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표지판을 가리켰다.

 나는 그 까페에 150번은 출입하였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각도에서 그 표지판을 봐왔다. 하지만 모르는 체하기로 했다.

 "오! 저런, 못봤네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쪽 파타의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매우 바쁘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내 자리에서 사방 15미터 이내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표지판에 적혀 있는 규칙을 따르지 않았고, 따라서 잠시 동안 벌을 서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31~32쪽

 

 붐비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저 대목에서 얼마나 킥킥대며 웃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옷도 직접 입는 다는 저 대목. 그러고 보니 처음 읽었던 그의 책 "나를 부른 숲"에서도 한참이나 킥킥거렸던 구절이 있었다. 끈도 주지않고 방수도 되지 않는 배낭을 250달러나 주고 구입하는 장면에서 "배낭에 밑창은 붙어 있기나 한 거요?"라고 묻는 장면. 그 책 이후로 빌 브라이슨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참 재미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좀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른이 되어 20년동안 영국에서 살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간 빌 브라이슨의 체험을 주간잡지 부록의 칼럼에 기고한 내용들이다. 그러고 보니 원제 "I'm stranger here myself"가 훨씬 책의 제목으로 어울린다.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이었지만, 20년을 영국에 살다 돌아온 빌 브라이슨에게 미국은 낯설음 투성이다. 완전한 외국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완전한 미국인이라 하기에도 뭔가 부족한듯한 빌 브라이슨은 이것저것 겪고 체험하면서, 어린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만연된 편의주의를 특유의 유쾌한 어투로 비난하기도 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장난스럽게 조롱하기도 하고, 미국의 훌륭한 점에 대해 감탄하기도 한다.

 

 눈 앞에 보이는 놀이공원을 가는데도 보행자를 위한 길이 없어서, 자동차를 타고 가거나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미국의 현실. "다이빙대에서는 발을 한 번만 구르시오"라고 써 붙일 만큼 규칙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제대로 된 설명보다는 계속되는 바톤터치를 해대는 소비자 상담전화. 쇼핑을 하기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미국인들. 똑같은 아침식사용 씨리얼만도 수십, 수백개를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정크 푸드의 천국. 직장에서의 감시뿐 아니라 옷가게의 탈의실에 대한 감시까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실태등. 빌 브라이슨이 지적하는 미국에 대한것들이 사실 보는 내내 낯설지만은 않았다. 몇가지는 해당사항이 아닐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유쾌한 분노를 하는 빌브라이슨의 글들은 사실 우리 자신을 통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산과 강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을 지내온 내용이라서, 미국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읽는 사람에겐 실망스러운 책일 것 같다. 그것보다는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입담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가끔 즐겁게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당하게 권할 만한 책일 것이다. 그런 즐거움과 함께 덤으로 얻는 것은, 미국이라는 이름을 빌려 표현되었지만, 현재 내 주변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는 불합리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 또 하나 기억에 남던 재밌는 일화, 

 일 년쯤 전에 미국의 항공사들은 점증하는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승객들에게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 같은 사실을 나는 집에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처음 알았다. (중략) 마침내 나는 지갑 뒤편에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아이오와 주 운전면허증을 발견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군요.”
직원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비행기를 몰지 않도록 하죠.” - 32-3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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