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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일본 다도의 지극한 경지는 그들의 광기 어린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정신적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전국시대, 다도의 대성자로 일컬어 지는 센 리큐.
- 내 일생은
그저 한 잔의 차를 정적 속에서 즐기는 일에만 부심해왔다. 이 천지에 살아 있는 지복을 차 한 잔으로 맛볼 수 있도록 고안을 거듭해 왔다.
- 나는 오로지 아름다운 것 앞에서만 머리를 조아린다. -11쪽
천부적으로 타고난 절대적인 미에 대한 감각과 다도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남자.
- 참으로 성가신 사내다.
한낱 다두인 주제에 그렇게 다루기 어려울 수가 없었다.
드러나게 정사에 참견하기라도 한다면 억누를 방도가 있겠건만, 그 사내는 절대 주제넘게 나서지 않았다. 밉살스러울 정도로 사람의 미묘한 심리를 잘 알고, 실수 없이 행동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천지의 중심이라도 되는 양 오만불손한 얼굴을 했다. 본인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따금 그런 표정이 드러나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사내는 천하제일의 다두다. - 128쪽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런 리큐에게 심사가 뒤틀린다. 천재에게 항상 위협이 되는 질투와 시기가 이 곳에도 있다.
이 이야기의 구성 역시 독특하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
처음 이야기는 히데요시에게 처벌 받아 할복하는 리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다음은 할복전날, 그 다음은 열닷새 전, 그렇게 계속 이야기는 과거를 향해 치닫는다. 끝까지 품에서 내 놓지 않는 녹유향합에 대한 비밀을 품고서.
한때 큰 유행을 이끌었던 일본의 젠스탈일. 그 완벽하고 치밀한 분할과 정적, 그로 인한 공간적 긴장감. 그 긴장감에 미적 완성을 더해 주는 듯한 조선의 투박한듯 자연스러운 막사발. 이 소설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모든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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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결코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도구든, 행다든, 다인은 항상 목숨을 걸고 절묘한 경지를 추구합니다. 찻숟가락에 박힌 마디의 위치가 한 치라도 어긋나면 성에 차지 않고, 행다중에 놓은 뚜껑 받침의 위치가 다다미 눈 하나만큼이라도 어긋나면 내심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야말로 다도의 바닥없는 바닥, 아름다움의 개미지옥. 한번 붙들리면 수명마저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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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개가 모자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