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도 학교에 가야 한다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세르주 블로흐 그림, 김진경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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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할 때가 있다. 이유를 물어보는 엄마에게 아이는, 따분하다고 말하곤 한다. 무엇이 따분할까? 지겨운 수학문제, 반복되는 학습과 일과, 귀찮게 하는 남학생... 하지만 과학실험이 들었거나 특별한 수업이 있을 땐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활과 활기찬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덩어리로 보면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삶은 하루하루가 각자에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선물포장을 뜯듯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하루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두 공주가 학교에, 유치원에 가야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냥 나의 시간을 갖자고, 남들도 다 가니까 가는 거라고 말해버리기엔 뭔가 중요한 것이 숨어있지 싶다. 더불어 지내며 배우고 떠들고 놀고 뒹굴며 아이들이 얻는 것은 집에서 혼자 지내며 얻는 것들에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특히 또래들)과의 관계맺기는 시간지킴, 합당한 차림새 같은 사소한 에티켓에서부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성의 근본이 되는 많은 부분들까지, 스스로 터득해나가야하는 소중한 지혜다.

이 조그만 책의 주인공, 몰락한 왕가의 귀여운 공주는 동굴과도 같은 침침한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 아파트라는 이상하게 생긴 집에서 사는 게 더 좋다. 드레스를 부풀리게 하는 거북한 속치마를 입고 유리구두를 신는 것보다 시장에서 산 편안한 옷과 운동화를 신는 게 더 좋다. 그리고 아침마다 같은 시각에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이상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더없이 좋다. 자신에게 깍듯이 대하는 사람들만 보았을 공주는 자신에게 '바보' 또는 '밥통'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좋다. 그 말이 듣기에도 좋은 눈치다. 공주 덕분에 왕과 왕비도 세상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딸들도 '우리 귀여운 공주님!'이란 말을 듣고 자란다는 것도 알게된다. 하지만 호기심 많고 영특한 공주는 황금빛 빛나는 왕관만은 가슴 깊이 간직하며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을 잃지 않는다.

학교는 아이가 엄마라는 제 1의 세상에서 조금씩 벗어나 사회성을 기르는 첫발을 디디는 제 2의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침마다 가슴이 뛴다. 어깨에 맨 가방에 아이의 소중한 꿈과 기억들이 소롯이 담겨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아이 덕분에 나도 또다른 세상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떨리고 감사하다. 이 책의 공주와 왕과 왕비처럼, 내가 아니라 아이가 나를 이끌어가는 그래서 나를 성숙하게하는 존재라 생각된다. 사랑스런 공주님! 내일 또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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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등이 가려워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세르주 블로흐 그림, 이은민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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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면 나는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큰아이 학교 도서실 도우미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3시간동안 계속 일이 있는 건 아니라, 틈 나면 몇 권의 어린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또다른 소득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어린 학생에게 책 한 권을 골라주는 것도 뿌듯하다.

<공주는 등이 가려워>는 기증도서 책장을 분류, 정리하다 발견한 얇은 책이다. '난 책 읽기가 좋아' 시리즈였다. 일단 이 책의 작가 수잔 모건스턴의 기발하고 통통 튀는 발상이 부럽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이야기 속에 담긴 얕지 않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작가였다. 이 책은 세상 모든 공주, 이 세상의 딸들에게 주는 책이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 모든 어린이, 어른들이 보아도 웃다가 고개 끄덕일 책이다. 삽화도 기막히게 재치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집약적이다. 그리고 상징적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손이 닿지않는 등부분에 물린 모기라는 괴물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괴물은 하필 공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물어 고통을 준다. 세상의 멋져보이는 - 멋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겉멋에 든 - 온갖 부류의 왕자들을 만나며 공주는 등을 긁어달라고 하지만 매번 실망과 분노만 돌아온다. 어느 날,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마음을 달래려 책방에 간다. 그 곳에서 만난 또또왕자는 단번에 공주가 가려워하는 곳을 선선하게 긁어주고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 마지막 명 구절, 인생은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라고...

가치관이 같다는 건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성격은 오히려 다른 것이 분위기를 더 좋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 가치를 두고 사는 부분이 다르다면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떠다니는 사이만 될 뿐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말은 벽에 부딪혀 되돌아와 내 가슴을 공허하게 때리고, 변죽만 울리다 정작 내보이고 위로받고 싶은 곳은 쓸쓸하게 혼자 남아있는 그런 경우가 있다. 가려운 곳이 어딘지 말하는 지혜도, 또 그곳을 눈치채고 긁어줄 수 있는 지혜도 겸비하면 좋겠다.

등이 가려운 공주가 마음에 맞는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책방이다. 역시 가치관이 같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의 동반자로 적합하다. 겉멋보다는 내면이 꽉 찬 사람을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살기를, 세상의 험난한 바다를 헤쳐나갈 딸들을 보며 나의 염려와 바람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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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0
폴 젤린스키 그림, 앤 이삭스 지음,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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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은 유럽연합군에 의해 1814년 엘바섬으로 귀양 간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군사를 일으켰지만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에게 패한 해이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되고 나폴레옹은 1821년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는다.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된 년도인지, 1815년 8월1일은 안젤리카가 태어난 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이 날 태어났단다. 힘도 세고 용감하고 재치있는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상황도 구해주는 '늪의 천사'이다. 크지도 않고 힘도 세지 않아 억울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라면, 이 커다란 그림책을 펼쳐 드는 순간 굉장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나무결이 고스란히 살아나있는 종이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갈색조의 채색이 자연스럽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과장되어있어 계속 탄성이 터져나온다. 도끼를 들고 뚝딱뚝딱 오두막을 만드는 두살 안젤리카의 모습도 그렇고 엄청나게 덩치 큰 곰과 벌이는 사생결단의 전투는 하늘과 땅의 전쟁을 방불케한다. 회오리바람자락을 잡아 꼬아서 밧줄을 만들고 하늘로 매다꽂은 곰의 자국이 큰곰자리 별자리가 되는, 약간은 황당하달 수 있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아이들 눈으로 보면 놀라움 그 자체이다. 나의 막힌 상상력의 물꼬도 터주어 함께 신나는 경험을 했다.

안젤리카는 그렇게 힘도 세고 통도 크고 마음도 넓고 재치도 있다. 동네의 남자들이 제 힘만 믿고 덤비다 곰에게 당한 갖가지 그림도 재미있다. 이불이나 꿰메고 음식이나 만들지, 라며 비아냥거리던 남자들이 안젤리카가 잡은 곰으로 만든 음식으로 잔치를 벌이게 될 줄은 몰랐지.

작가는 이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헌사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아마도 어머니와 아내의 큰 힘에 감사하는 마음을 대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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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 - 어린이 판소리 그림책
이육남 그림, 이현순 글, 김동원 감수 / 초방책방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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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에 이어 이 판소리 그림책은 또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6학년 아이의 창이라 그런지 심청가를 한 아이보다 음성에 힘이 있다. 아니리 부분의 대사도 어찌나 재미있게 뽑던지. 그저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런데 심청가에서 보다는 어려운 말이 많이 나와 뒷편에 수록한 뜻풀이를 꼭 참고하면 좋겠다. CD의 재생시간은 심청가와 마찬가지로 꼭 20분이었다. 그리 오래지도 짧지도 않은 것이 아이들과 함께 듣기에 마춤이다.

<수궁가>의 또 다른 재미는 그림보기에 있다. 동물 민화 풍의 그림이 연결되어 그려져있는 병풍을 보는 것 같다. 동물들은 하나같이 그 특징이 잘 그려져있고 인상도 풍부하다. 용왕은 정말 용으로 휘감겨있는 듯 그린 것도 특이하다. 맘껏 상상해 볼 수 있는 배경이라, 아이들과 함께 이 판소리의 공간적 배경을 그림이나 조형으로 표현해 보아도 좋겠다. 물 밖과 물 속의 다른 모습은 물론이고, 각자의 상상에 맡겨 기상천외한 진풍경들이 표현되어도 괜찮겠다.

<수궁가>는 역시 토끼가 주인공이다. 간사하다하는 토끼는 얼마나 임기응변에 강하며, 배짱도 있고 밉지 않은 허풍도 있는지. 가만 들여다보면 씩 웃음이 나는 인물이다. 동물의 왕이라 생각하는 사자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힘 없고 작지만 말 잘 하는 토끼가 왕이 되니, 이 역시도 통쾌하다. 영리한 꾀로 용왕을 속이고 자신을 죽을 곳으로 꾀어 간 자라를 조롱하고 달아나는 토끼를 보는 것이 유쾌하다. '창'으로 들으면 기분이 고조되어 흥이 더욱 살아난다.

이 그림책은 연령을 구분할 필요가 없이 함께 듣고 보면 좋겠다. 각자의 마음의 눈과 귀로 보고 듣기에 부족함 없이 배려되어 있다. 해설과 창 부분의 글을 색깔을 달리 하여 적어 둔 것도 그렇고, 뒷 부분 풀이에 진양조, 중몰이 같은 가락을 구분해 둔 것도 그렇고, 창과 아니리를 구분할 수 있게 '아니리'라고 적어둔 것도 그렇다. 가객이 하는 대사 부분인 아니리가 썩 맛깔스럽고 상기된 마음을 잠시 가다듬어가는 막간도 되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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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미소 난 책읽기가 좋아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 비룡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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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별 여섯 개를 주고 싶은 책이다. 호기심이 생기는 제목만큼, 다 읽고 나면, 그 신선한 충격으로 한동안 머릿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어린이 책을 한 권이라도 쓰지 않고는 진정한 작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 크리스 도네르는 <내 친구는 국가기밀>에서 처음 알았다. <말의 미소>는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진행과 반전, 거리낌없는 사실적 묘사, 희망을 주는 결말이 단숨에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의 화자는, 의외로, 중간에 등장하는 수의사이다. 동물의 생명을 다루는 한 젊은 수의사를 통해 작가는 목숨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인간의 이기심을 말하고 싶어한다. 희망이란 보이지 않고 황폐해져가는 시골 마을의 어른들, 아이들 그리고 힘을 잃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학교. 이곳의 선생님이 이들에게 희망이란 걸 심어주기 위한 발상은, 말을 한 마리 사서 기르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관심과 협조는 애시당초 어려운 것이었고 아이들의 저금통과 선생님의 거금을 합친 돈 삼천오백프랑으로 늙고 병든 경주마 한 필을 사들인다. 기운 없어 보이는 그 말이 보이는 희미한 미소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철처히 이기적이다.

아! 이럴 수가! 동물은 웃지 않는다고 한다. 말이 장폐색증으로 고통스러워 일그러뜨리는 입가의 움직임을 제멋대로 '미소'로 해석한 것이다. 어디 말뿐이겠나. 요즘 많이도 기르는, 아니 함께 사는 애완강아지 같은 경우도 다르지 않겠지. 미소를 보내는 말을 데리고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던 아이들 앞에서 말은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여기서 화자인 수의사가 [나]로 등장한다.

[나]는 고통으로 죽어가는 동물을 보아도 값싼 감정의 동요 따윈 한 번도 없었던 냉철한 인간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 말이 운동장 한 가운데 푹 쓰러져 가뿐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여태껏 일지 않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걸 느낀다. 운동장에서 즉시 행하는 수술 장면은, 미화하지도, 적당히 가리지도 않은 채 묘사되어, 목숨 있는 것들의 몸이란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렇게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한 것이란 생각을 모름지기 하게 한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긴 창자처럼. 살려고 하는 열망, 살아야겠다는 의지, 그런 것들로 쓰러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서게 만든다.

수술이 끝나고 이제 말은 웃지 않는다. 말은 고통을 이기고 제 힘으로 일어선다.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런 장면에서도 작가는 적당히 거리 두고 보기를 권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그 안에 너무 깊이 들어 앉아 있으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감상주의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우리 동화의 정서와 달라서 신선하다.

건강을 되찾은 말은 다시는 웃음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말의 미소가 아니라 말의 뜨거운 창자를 본 아이들의 웃음으로, 황폐해진 마을과 어른들의 마음에 희망이 다시 찾아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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