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미소 난 책읽기가 좋아
크리스 도네르 글, 필립 뒤마 그림, 김경온 옮김 / 비룡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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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별 여섯 개를 주고 싶은 책이다. 호기심이 생기는 제목만큼, 다 읽고 나면, 그 신선한 충격으로 한동안 머릿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어린이 책을 한 권이라도 쓰지 않고는 진정한 작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 크리스 도네르는 <내 친구는 국가기밀>에서 처음 알았다. <말의 미소>는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진행과 반전, 거리낌없는 사실적 묘사, 희망을 주는 결말이 단숨에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의 화자는, 의외로, 중간에 등장하는 수의사이다. 동물의 생명을 다루는 한 젊은 수의사를 통해 작가는 목숨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인간의 이기심을 말하고 싶어한다. 희망이란 보이지 않고 황폐해져가는 시골 마을의 어른들, 아이들 그리고 힘을 잃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학교. 이곳의 선생님이 이들에게 희망이란 걸 심어주기 위한 발상은, 말을 한 마리 사서 기르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관심과 협조는 애시당초 어려운 것이었고 아이들의 저금통과 선생님의 거금을 합친 돈 삼천오백프랑으로 늙고 병든 경주마 한 필을 사들인다. 기운 없어 보이는 그 말이 보이는 희미한 미소를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철처히 이기적이다.

아! 이럴 수가! 동물은 웃지 않는다고 한다. 말이 장폐색증으로 고통스러워 일그러뜨리는 입가의 움직임을 제멋대로 '미소'로 해석한 것이다. 어디 말뿐이겠나. 요즘 많이도 기르는, 아니 함께 사는 애완강아지 같은 경우도 다르지 않겠지. 미소를 보내는 말을 데리고 이리 끌고 저리 끌고 하던 아이들 앞에서 말은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여기서 화자인 수의사가 [나]로 등장한다.

[나]는 고통으로 죽어가는 동물을 보아도 값싼 감정의 동요 따윈 한 번도 없었던 냉철한 인간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 말이 운동장 한 가운데 푹 쓰러져 가뿐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여태껏 일지 않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걸 느낀다. 운동장에서 즉시 행하는 수술 장면은, 미화하지도, 적당히 가리지도 않은 채 묘사되어, 목숨 있는 것들의 몸이란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렇게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한 것이란 생각을 모름지기 하게 한다. 뜨겁게 김이 오르는 긴 창자처럼. 살려고 하는 열망, 살아야겠다는 의지, 그런 것들로 쓰러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서게 만든다.

수술이 끝나고 이제 말은 웃지 않는다. 말은 고통을 이기고 제 힘으로 일어선다.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런 장면에서도 작가는 적당히 거리 두고 보기를 권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그 안에 너무 깊이 들어 앉아 있으면 본질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감상주의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우리 동화의 정서와 달라서 신선하다.

건강을 되찾은 말은 다시는 웃음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말의 미소가 아니라 말의 뜨거운 창자를 본 아이들의 웃음으로, 황폐해진 마을과 어른들의 마음에 희망이 다시 찾아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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