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등이 가려워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세르주 블로흐 그림, 이은민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평점 :
절판


금요일이면 나는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큰아이 학교 도서실 도우미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3시간동안 계속 일이 있는 건 아니라, 틈 나면 몇 권의 어린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또다른 소득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어린 학생에게 책 한 권을 골라주는 것도 뿌듯하다.

<공주는 등이 가려워>는 기증도서 책장을 분류, 정리하다 발견한 얇은 책이다. '난 책 읽기가 좋아' 시리즈였다. 일단 이 책의 작가 수잔 모건스턴의 기발하고 통통 튀는 발상이 부럽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이야기 속에 담긴 얕지 않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작가였다. 이 책은 세상 모든 공주, 이 세상의 딸들에게 주는 책이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 모든 어린이, 어른들이 보아도 웃다가 고개 끄덕일 책이다. 삽화도 기막히게 재치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집약적이다. 그리고 상징적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손이 닿지않는 등부분에 물린 모기라는 괴물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괴물은 하필 공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물어 고통을 준다. 세상의 멋져보이는 - 멋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겉멋에 든 - 온갖 부류의 왕자들을 만나며 공주는 등을 긁어달라고 하지만 매번 실망과 분노만 돌아온다. 어느 날,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마음을 달래려 책방에 간다. 그 곳에서 만난 또또왕자는 단번에 공주가 가려워하는 곳을 선선하게 긁어주고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 마지막 명 구절, 인생은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라고...

가치관이 같다는 건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성격은 오히려 다른 것이 분위기를 더 좋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 가치를 두고 사는 부분이 다르다면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떠다니는 사이만 될 뿐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말은 벽에 부딪혀 되돌아와 내 가슴을 공허하게 때리고, 변죽만 울리다 정작 내보이고 위로받고 싶은 곳은 쓸쓸하게 혼자 남아있는 그런 경우가 있다. 가려운 곳이 어딘지 말하는 지혜도, 또 그곳을 눈치채고 긁어줄 수 있는 지혜도 겸비하면 좋겠다.

등이 가려운 공주가 마음에 맞는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책방이다. 역시 가치관이 같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의 동반자로 적합하다. 겉멋보다는 내면이 꽉 찬 사람을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살기를, 세상의 험난한 바다를 헤쳐나갈 딸들을 보며 나의 염려와 바람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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