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화분에 앙상하게 자리하고 있는 매화나무가 있다. 눈이 채 녹지도 않고 있는 밖의 풍경이 무색하게도 매화나무는 꽃봉오리를 실컷 모아쥐고 있다. 고 작은 망울을 건드려보니, 단단한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태다.<내가 처음 가본 그림 박물관> 시리즈의 첫번째인 이 책은, 제목에 나와 있듯, 백지 위의 호랑나비 한마리로 시작하여 계절 따라 꽃과 벌레가 등장한다. 꽃에 얽힌 슬픈 전설도 가까이서 들려주는 입말로 쓰여진 이야기 전체의 흐름과 잘 섞인다.'언 땅 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가 이 박물관의 마지막 볼거리다. 조선시대 화가 전기의 '매화 핀 초가집'은 나무마다 핀 눈꽃을 닮았다. 봄날 호랑나비로 시작한 이야기는 또다시 봄이 멀지 않다는 걸 알리는 매화로 끝을 맺는다. 나비 한 마리, 매미 한 마리에도 의미를 두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소중히 여기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우리의 그림들에 잘 담겨있다. 돌고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유와 순리를 발견하는 지혜도 엿볼 수 있고. 우리 것에 덜 친한 요즈음의 어른 아이들 모두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면 시나브로 맑은 기운이 스며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꽉 다문 매화 꽃봉오리가 언제 열리나, 오늘도 들여다 보며 서성인다. 때가 되면 터질 것을......
넓은 들판에 혼자 사는 사자는 친구가 없어 너무 외로웠어요. 친구를 사귀고 싶어 고슴도치를 보고는 갈기를 곤두세우고 다가가고, 양을 보고는 갈기를 동글동글 말아 양털처럼 보이게 하여 다가가고, 사슴을 만나서는 갈기에 나뭇가지를 꽂아 뿔을 만들고 몸에는 흰무늬를 그려 넣었어요. 웃으며 친구가 되고 싶어 다가가는 사자를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놀라 달아나버렸어요. 마침내 화가 난 사자는 무서운 소리로 울부짖고 더 이상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답니다. 소나기가 내려 흠뻑 젖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자를 찾아온 건 다름아닌, 놀라 달아났던 친구들이었어요. 사자는 어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다네요.삼박자의 리듬감 실은 이야기 구성이 깔끔하고, 밝고 선명한 그림도 유아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하네요. 특히 화면 가득한 사자의, 친구가 되고파 꾸민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 정이가요. 애쓰는 외토리 사자가 정말 불쌍하지요. 나를 적당히 꾸민 모습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하고 순박한 모습이 좋지요. 또 그걸 그대로 봐주는 친구가 진실한 친구이기도 하구요. 나를 진솔하게 드러낼 때 우린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네요.
최윤정의 글은 겸손하지만 단호하다. 나름의 참신한 시각을 꼭 붙잡고 시종일관 그 시선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에 이어 두번째 어린이책 비평서라고 할 수 있는 <슬픈 거인>이라는 제목 자체가 나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 일으킨다.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주고 싶은 생각이 어린이 책을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동무로 선택하게된 동기도 바슷하다고 할까. 작가의 목소리 중, 페미니즘에 대한 것은 커가는 나의 딸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그런 바람직한 책들을 손에 쥐어주며. 책울 선별하여 주고픈 나의 마음을 무색하게 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였다. 그곳 도서관에는 권장도서 목록같은 건 애당초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골라 읽는다고 한다. 권장도서 목록에라도 의존하여 좋은 책을 골라 주려는 우리네에 비하면, 너무 부러운 도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완역이 아닌 번역 작품이 얼마나 위험한 사탕 발림인가는 구체적 사례들을 짚어가며 그 유해성을 폭로한다. 명작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무지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독후감상문이나 내용요약등의 책의 언어화를 채근하곤 했던 내가 한방 야단을 맞은 셈이다. 아이들이 주위의 말을 듣기만 하다 어느 순간 저장된 언어들이 입을 통하여 쏟아져 나오듯, 독서와 독후활동도 그러한 관계로 본다. 정말 '독서지도'의 어려움과 위험은 여기에 있다고 피력해 놓은 마지막 장의 견해는 깊이 공감이 되면서, 또 다시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작가의 다음 목소리가 기대된다. 좀더 미래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어린이 책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어린이 책 한 권을 들고 앉는다. 동화 작가들이 어린이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한다는 생각으로 동화를 써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맴돈다.
전국적인 폭설로 피해가 크다는 뉴스를 접해도, 이 곳 부산은 눈이 오리라 생각에 넣지도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꿈이 아니었어요. 13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그것도 전화 한 통을 받고서야 베란다 밖을 내다 보니... 그야말로 은세계...하늘에선 아직도 솜뭉치를 뜯어 날리는 것 같은 하얀 눈이 포근포근 내려 쌓이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은 벌써 나가서 눈사람 만들거라며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채 신발을 신고 있고요. 단단히 끼어 입히고 나가, 눈썰매도 타고 눈뭉치도 만들고 사진도 찍어주고... 볼이 바알갛게 얼어서 집에 들어와 <눈사람 아저씨>를 펴들고 아이들이랑 앉았어요.<눈사람 아저씨>는 글자없는 그림책이예요. 만화 컷처럼 나눈, 크고 작은 네모 칸의 그림이 장면마다 눈을 뗄 수 없게 하지요. 마치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글이 없으니까 그림에 푹 빠질 수 있는 걸 더 허용하기도 하구요. '글자가 없어서 참 좋다' 다 보고 난 후 8살 아이가 한 말이예요. 눈사람 아저씨의 손을 잡고 주인공 아이가 밤하늘을 나는 장면은 환상적이죠. 3살 작은 아이는 이 장면에서 눈을 못 떼요. 밤새 눈사람 아저씨가 추운데 밖에서 잘 있나 걱정되어 내다 보는 아이의 마음이 곱기도 하지요. 하루종일 눈과 함께 노느라 곤했던지 그날 밤 잠든 아이들은 코까지 골더군요. 그 날, '눈사람 아저씨'를 만들진 못했지만, 꿈에서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또 눈사람 아저씨랑 어떤 신나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엷은 미소도 띄우고 있었구요. '엄마 눈이 나한테로 막 뛰어와요.' 작은 아이가 낮에 제게 한 말이예요. 시인같은 고 작은 입에 살짝 입맞추고 <눈사람 아저씨>를 머리맡에 가만히 놓아 주었어요.
'아기돼지 삼형제'? 다 아는 얘긴데 하고 넘어가면 아주 중요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실수를 하는겁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여태껏 돼지 삼형제의 입장에선만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던 그 옛날의 신문 기사가 늑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내용이었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책의 앞뒤 표지는 신문 기사로 온통 덮혀있구요. 이야기를 다 듣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늑대가 '커다랗고 고약한' 성품이 아니지요.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고 친구에게 설탕을 나누어 줄 줄도 아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런데, 돼지 삼형제는 늑대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문도 안 열어주고 늑대와 할머니에게 좋지 않은 말까지 해버리죠. 하필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돼지가 부른 경찰들이 달려오고, 감기에 걸려 재채기가 나와 허술하게 지어놓은 돼지의 집이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보게된 경찰과 기자들은 독자의 흥미를 끄는 쪽으로만 기사를 내 보냅니다. 늑대의 진짜 사정과 진심을 들어 줄 귀는 아무 곳에도 없지요. 옛이야기를 재창작하여, 기발하게 구성해 놓은 발상과 그림을 너무 재미있어하며 웃다가 끝에 가면 '아하!!'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겁니다. 진실 앞에 눈 감아 버리고 왜곡되거나 표면적인 사실만으로 채워진 신문기사를 보고살아온 우리 세대가 아닌가요. 지금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에 시선을 줄 때는, 입장과 각도를 달리 해가며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려는 노력과 안목이 필요합니다.어린이들이 책을 접할 때도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 그림책은, 그래서 연령층도 그 폭이 넓어도 되게구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