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놀이 - 우리들의 작문교실 003 우리들의 작문교실 14
현길언 지음, 이우범 그림 / 계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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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쟁놀이>는 지금도 지구상에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전쟁에 대하여,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인가와 얼마나 참혹한가를 차분히 들려준다. 8세의 어린 아이가 바라보는 전쟁이란 피상적인 것이며, 군인이란 그저 멋있고 부러운 대상이다. 칼을 차고 총을 가진 군인이 왜 전쟁에 나가 죽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에서 이기면 맛있는 떡을 먹을 수 있어 좋고 일본군 징병으로 간 삼촌이 죽어 돌아온 후, 신사에 삼촌의 사진이 걸리고 우쭐댈 수 있어 좋다.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해도 일본군을 하는 아이는 죽지 않는다고 여기고 미군 역할을 하는 아이의 총에 맞아 죽어야하는 역할을 납득하지 못한다.

아이는 남의 새덫에 걸린 새를 몰래 훔쳐 달아난다. 그러다 새덫의 주인에게 들켜 호되게 꿀밤을 맞는다. 부끄러움에 아이는 마음을 끓이다 열병을 앓는다. 작가는 이러한 에피소드를 일제강점기의 일본을 빗대어 장치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일본이 전쟁에 패한 직후의 일련의 일들로, 그 허구성과 비참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전쟁에 패한 일본군의 모습은 이전의 근사함은 자취를 감추고 초췌하기 이를 데 없다. 신사는 불타고 삼촌의 얼굴이 그 불길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영웅시 되었던 삼촌의 사진은 학교 복도 벽에서 떨어져 흙발자국으로 뭉개져있다. 그 사진을 주워들고 남이 볼까 얼른 빠져나오는 아이의 가슴은 이제 무엇으로 채워질까?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보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형과 아이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 그 벽만 바라보고 그것이 진짜라고 여겼던 우매함. 감옥과도 같은 암담한 시대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이들의 영혼. 철없는 아이가 품고있었던 생각이 두려움과 시기의 대상이기만 했던 형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아이는 핏줄의 동질감을 느낀다. 아이를 이해하고 정신을 깨우쳐주는 것은 신사도 군인도 아닌 형제이다. 허상이 아니라, 형이 잡아주는 따스한 손과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이다. 헛된 탑을 쌓느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은 '전쟁놀이'에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되돌릴 수 없이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모든 것을 앗아가는 전쟁의 실체를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희미하게 발견하는 아이, 그 아이의 성장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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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늑대
미노 밀라노 지음 / 지경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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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잘 짜여진 구성을 하고있는 이 책은 이탈리아의 작가가 쓴 동화이다. 80대 할아버지와 10대의 소년이 만나 서로 겪게 되는 경험은, 뜻밖의 것이었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기나긴 세월의 강이 흘러 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같은 인상, 그것은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겸허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기쁜 만남이었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야생의 눈망울을 지닌 강인한 할아버지 마리오 칼리, 도시에서 부유하지만 단순하고 판에 박힌 생활을 하는 엔초. 인생의 구비구비를 돌아 인생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라고 말하는 마리오가 서먹해 하는 엔초를 데리고 가는 곳은 다름아니라, 숲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멧돼지 발자국, 토끼 발자국 그리고 거대한 숲의 침묵소리를 듣게하며 숲의 비밀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회색빛 도시의 엔초에게 숲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100년을, 300년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위대함이며 우직함이다. 마치 여든 네살의 마리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운 시를 상기하며 숲의 안개에 주는 시선이다. 그 시선에는 삶을 순리대로 살고자 하는 황혼의 바람이 동심과 함께 묻어나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마리오 할아버지는 폰테로사 숲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숲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사람이 되고자 단단히 결심한 터이다. 이는 '마지막 늑대'가 되어 숲을 지키고자 하는 온건하지만 강철같이 굳은 의지이다. 엔초가 마지막 늑대를 발견하고도 못 본채 한 것은 늑대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눈은 마리오 할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엔초는 늑대를 찾으러 숲을 헤매 다니면서 바로 마리오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린다. 절대로 숲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지가 미욱하게 보이는 것은 바깥 사람들의 잣대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숲을 이용하려고만 드는 그들과 숲을 그대로 간직하며 그로부터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마리오 할아버지의 가치관은, 분별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어떤 사람은 숲과 인간이 친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인간이 나무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필요할 때 잘라 내어 버리듯이, 숲은 어린아이를 가엾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겁 없이 오두막에서 멀어지면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훼손당한 자연의 폐해가 돌아오는 곳은 결국 우리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지금, 숲은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 여기에서부터 모든 관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나올 수 있겠다. 세대를 초월한 가치의 이해, 야생의 것들과의 교감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 돌아갈 자연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허겁지겁 천편일률적인 삶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숨 쉬고 돌아가라는 여유로움을 전한다. '인생은 복잡한거야'라고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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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신나는 책읽기 4
임정자 지음, 이형진 그림 / 창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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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집에는 모두 다섯 편의 판타지가 실려있다. 배경은 도시이며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도시의 평범한 아이들이다. 삭막한 회색빛 도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상상들이 무척 신기하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는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다. 말하자면, 낙지가 익고 있는 냄비의 뚜껑, 지하실, 아파트 계단, 놀이터의 물웅덩이 그리고 버려진 흰곰 인형 같은 것들이다.

상상력과는 단절된 듯한 갇힌 공간에서 거의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 도시의 아이들, 거의 비슷한 소리를 듣고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팬터지는 갑갑함을 풀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를 자주 드는 엄마,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 집에서는 뛰지 말라고 늘 주의 주는 엄마, 일하는 엄마를 두어 비가와도 우산을 갖다 줄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이 신나는 팬터지의 세계와 함께, 그것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흐뭇하다.

동심을 잃어버린 엄마를 이해하고, 일하느라 바쁜 중에 자장가를 들려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하시던 엄마를 위해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소로 가는 아이는 또 얼마나 예쁜지. 아이에게 있어 엄마는 세상이다. 엄마를 통해 아이는 이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한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증오하게 되는 것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름대로 아이다운 욕구를 해소하며 그것을 억압하는 엄마와 화해해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좀더 튼실한 울이 되어 주고 싶다. 익살맞은 그림에 상상의 힘이 스물대는 것같은 삽화를 보는 것도 퍽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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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고 싶은 비밀 신나는 책읽기 5
황선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창비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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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실제로 두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생활 속에서 글의 소재를 적절히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생활과 동떨어지지도 않고 피상적이지도 않은 원인과 결말이 늘 자연스럽게 와 닿는 점이 장점이다. <들키고 싶은 비밀>은 <초대받은 아이들>에 이어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그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들 같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가정과 가족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항상 평형을 이루고 있는 저울처럼 그려내고 있다. 진정 아름다운 가정은 가족 누구 한사람의 희생이나 독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엄마도 아빠도 형도 동생도 제 몫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나직이 털어놓는다. '한 핏줄이기 때문에 가족인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핏줄입니다'라는 어떤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약점까지 조건없이 감싸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나의 모든 비밀을 들키고 싶은 것이리라. 이빨보다 깊은 뿌리, 그것은 바로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의 마음이다. 형만 좋아한다고 생각한 은결이는 치주염을 앓고 계신 아빠 이빨의 깊은 뿌리를 보고, 그만큼이나 깊은 아빠의 사랑을 어렴풋이 느낀다. 자신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가는 형의 따스함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랑으로 아이는 쑥쑥 자라는 것이리라.

어릴 적 한번쯤은 가져보았음직한 경험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려내고 있는지... 더하지도 보태지도 않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작은 마음의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이의 그림같은 김유대의 그림도 주인공 은결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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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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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이란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독특하여 원제를 보니, 活着이었다. 내 몸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 그것이 삶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자,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음이다. 어떤 듣기 좋은 화려한 삶의 목표도, 살아가면서 예고없이 찾아와 할퀴고 달아나는 삶의 장난질과도 같은 것 앞에서는 그것이 진정 목표로서의 몫을 못한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을 위해 우리는 살고 있고 살아 갈 뿐임을 통감하게 된다.

숙명론자의 한탄과는 다른 여운을 주는 이 소설은,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며 인생의 파도를 타고 흘러흘러 온 한 촌부의 육성이다. 그에게 삶은 관대하지만도, 날카롭지만도 않다. 영문도 모른 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울고 웃는 힘없는 민초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으로 비굴한 삶을 택하는 찌든 모습이 나약하기보다는 강인하다. 우리를 있게 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여 이제는 굽은 등허리에 연민어린 시선을 주고 싶다.

촌부에게 있어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목표이기도 하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행도 불행도 모두 끌어안아야 할 삶의 일부이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가슴을 치며, 맞이하는 모습은 퇴색된 얼굴을 하고 낮은 곳으로 구르는 낙엽마냥 허허롭다. 작가가 희화적으로 그려놓은 불청객들이 오히려 진실된 삶의 방식으로 와닿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정처없이 떠밀려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에서 여러번 만나는 상실감들은 기쁜 기억들의 조각으로 인해, 촌부의 삶을 '그런 대로 괜찮았다고' 여기게 한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웅다웅 이리 채이고 저리 부대끼다 보면 누구든 자기 운명만큼 배상받을 수 있게 마련이라네.' 촌부의 이 말은 자신의 험난한 삶과의 손잡기이며 살아가면서 얻는 예기치 못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들에 대한 작은 감사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비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주름살 깊이 패인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성숙함이며 고귀함이다. 이 세상 누구의 삶도 고귀하지 않은 것은 없으리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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