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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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이란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독특하여 원제를 보니, 活着이었다. 내 몸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 그것이 삶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자,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음이다. 어떤 듣기 좋은 화려한 삶의 목표도, 살아가면서 예고없이 찾아와 할퀴고 달아나는 삶의 장난질과도 같은 것 앞에서는 그것이 진정 목표로서의 몫을 못한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을 위해 우리는 살고 있고 살아 갈 뿐임을 통감하게 된다.

숙명론자의 한탄과는 다른 여운을 주는 이 소설은,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며 인생의 파도를 타고 흘러흘러 온 한 촌부의 육성이다. 그에게 삶은 관대하지만도, 날카롭지만도 않다. 영문도 모른 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울고 웃는 힘없는 민초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잡초와도 같은 생명력으로 비굴한 삶을 택하는 찌든 모습이 나약하기보다는 강인하다. 우리를 있게 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여 이제는 굽은 등허리에 연민어린 시선을 주고 싶다.

촌부에게 있어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목표이기도 하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행도 불행도 모두 끌어안아야 할 삶의 일부이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가슴을 치며, 맞이하는 모습은 퇴색된 얼굴을 하고 낮은 곳으로 구르는 낙엽마냥 허허롭다. 작가가 희화적으로 그려놓은 불청객들이 오히려 진실된 삶의 방식으로 와닿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정처없이 떠밀려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길에서 여러번 만나는 상실감들은 기쁜 기억들의 조각으로 인해, 촌부의 삶을 '그런 대로 괜찮았다고' 여기게 한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웅다웅 이리 채이고 저리 부대끼다 보면 누구든 자기 운명만큼 배상받을 수 있게 마련이라네.' 촌부의 이 말은 자신의 험난한 삶과의 손잡기이며 살아가면서 얻는 예기치 못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들에 대한 작은 감사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비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주름살 깊이 패인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성숙함이며 고귀함이다. 이 세상 누구의 삶도 고귀하지 않은 것은 없으리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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