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늑대
미노 밀라노 지음 / 지경사 / 1998년 3월
평점 :
절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잘 짜여진 구성을 하고있는 이 책은 이탈리아의 작가가 쓴 동화이다. 80대 할아버지와 10대의 소년이 만나 서로 겪게 되는 경험은, 뜻밖의 것이었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기나긴 세월의 강이 흘러 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같은 인상, 그것은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겸허한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기쁜 만남이었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야생의 눈망울을 지닌 강인한 할아버지 마리오 칼리, 도시에서 부유하지만 단순하고 판에 박힌 생활을 하는 엔초. 인생의 구비구비를 돌아 인생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라고 말하는 마리오가 서먹해 하는 엔초를 데리고 가는 곳은 다름아니라, 숲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멧돼지 발자국, 토끼 발자국 그리고 거대한 숲의 침묵소리를 듣게하며 숲의 비밀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회색빛 도시의 엔초에게 숲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100년을, 300년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위대함이며 우직함이다. 마치 여든 네살의 마리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운 시를 상기하며 숲의 안개에 주는 시선이다. 그 시선에는 삶을 순리대로 살고자 하는 황혼의 바람이 동심과 함께 묻어나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마리오 할아버지는 폰테로사 숲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숲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사람이 되고자 단단히 결심한 터이다. 이는 '마지막 늑대'가 되어 숲을 지키고자 하는 온건하지만 강철같이 굳은 의지이다. 엔초가 마지막 늑대를 발견하고도 못 본채 한 것은 늑대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눈은 마리오 할아버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엔초는 늑대를 찾으러 숲을 헤매 다니면서 바로 마리오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린다. 절대로 숲을 떠나지 않으려는 의지가 미욱하게 보이는 것은 바깥 사람들의 잣대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숲을 이용하려고만 드는 그들과 숲을 그대로 간직하며 그로부터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마리오 할아버지의 가치관은, 분별없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어떤 사람은 숲과 인간이 친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인간이 나무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필요할 때 잘라 내어 버리듯이, 숲은 어린아이를 가엾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겁 없이 오두막에서 멀어지면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훼손당한 자연의 폐해가 돌아오는 곳은 결국 우리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린 지금, 숲은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 여기에서부터 모든 관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나올 수 있겠다. 세대를 초월한 가치의 이해, 야생의 것들과의 교감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 돌아갈 자연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허겁지겁 천편일률적인 삶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숨 쉬고 돌아가라는 여유로움을 전한다. '인생은 복잡한거야'라고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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