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4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한 시대의 아픈 이야기가, 아주 서정적인 맑은 수묵화를 배경으로, 가슴에 아련한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는 느낌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이 뭔 지도 모르면서 낯선 어른을 따라가는 누이가 마지막으로 먹고 가는 건 한 그릇의 감자밥이다.

돌이의 눈에 비치는 단장한 누이의 모습은, 꾸미지 않은 순박한 모습의 누이를 도저히 잊지 못할 그리움으로 진하게 남길 뿐이다. 때묻은 누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돌이의 가슴을 달래주는 건, 송아지의 탄생이다. 새 생명의 태어남이란 이렇게 경이롭고 환희에 차오르는 무엇인가 보다.

묵묵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돌이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어깨는 늘 짓누르는 무엇으로 무거워보이고 침묵으로 모든 걸 견뎌내는 깊은 산 속 나무와도 같다. 이런 느낌은 말수 적은 모습으로 담담히 버티고있는, 이 책의 그림이 주는 느낌과도 닮아있다. 그렇게 없는 듯 뒤에서 서있는 힘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렉! 비룡소의 그림동화 64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비룡소 / 200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슈렉은 윌리엄 스타이그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친구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꼭 자신들이 내면과 닮아있는 친구말이다. 아이들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런 속성을 보여주는 데 한치의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슈렉의 행동방식이 밉지 않다.

가는 곳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라면 슈렉을 피해 달아나지만, 슈렉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는 짖궂음이 마치 세살 아이같다. 슈렉은 오직 자신의 짝인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공주만을 찾으러 거침없이 나아간다. 자신이 바라는 것만 향해 돌진한다.

<슈렉!>에는 못생긴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더 못생기고, 더 지저분하고, 더 짖궂은' 초록색 괴물 슈렉을 비롯하여 마녀, 터무니없이 큰 용, 뱀, 못생긴 공주 그리고 둘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고 있는 악어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밀쳐내는 것들이 여기에서는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다.

우리의 눈에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는 슈렉과 못생긴 공주가 서로 애정의 눈빛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마음 속 어두운 동굴에 살고있는 근질근질한 무엇을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라고 은근히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시처럼 노래처럼, 둘은 마냥 행복하다. '너무나 못생겼기에' 둘은 서로 사랑한다. 그 표현도 코를 덥썩 물거나 귀를 꽉 깨무는 것이다.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고 새들이 노래하며 날아다니는 동산에서 귀여운 얼굴의 아이들이 빙글빙글 춤추며 노니는 장면이 있다. 슈렉이 잠시 정신을 잃고 잠이 든 동안 꾼 악몽의 장면이다. 아이들은 자꾸만 슈렉을 껴안고 뽀뽀를 하려고 한다. 잠에서 깬 슈렉이 하는 말. '나쁜 꿈을 꾼 것뿐이야. ......아주 끔찍한 꿈이었어!' 이는 어른들의 고정된 생각을 다소 바꾸어 줄 수 있는 장면이자 작가의 위트가 유쾌하게 반짝이는 부분이었다. 슈렉이 나가는 길 양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눕혀 길을 내주는 나무와 꽃들은 또 어떤지...

시적이면서도 거침없이 내뱉은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로 씌여진 글과 생략할 건 생략하고 윤곽을 살려 '못생기게'(!) 그린 그림들이 작가의 기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싫은 사람에게 실컷 욕을 해댄 것 처럼, 슈렉이 하는 말과 행동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보고나면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지와 빵집주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57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200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혜로운 명판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옛이야기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어쩌면 평이하다할 이야기가 이 그림책에서는 풍성하고 유머러스하게 살아난다.

갈색톤의 풍부한 색감이 따스하기도 하고 화려한 옷 색깔이 생기를 주기도 한다. 그림의 배경은 아주 이국적이라 할 수 있다. 사막과 낙타가 그렇고 샌지가 머물렀던 집의 아랫 층에 있는 빵가게의 풍경이 그렇다. 모두 갈색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종류의 빵과 사람들의 피부색까지 갈색이다. 머리에 두른 터번과 구렛나루의 시커먼 수염, 야자수 뒤로 보이는 돔 지붕의 건물들.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며 뭔가 이야기가 숨어서 꿈틀대고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볼 수 있는 코키 폴 특유의 유머가 재미있기도 하다.
아랫 층에서 올라오는 빵냄새를 더 잘 맡으려고 샌지가 코에 끼우고 있는 기계는 기발하다. 나중에 보니, 발명가 친구의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이었다. 은닢 다섯 냥이 그릇 속에 떨어지는 소리를 차례로 다른 흉내말로 표현한 것은 사실적이다. 짤랑, 딸랑, 딸그락, 땡그랑, 떨그덕. 동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빵집 주인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음흉스럽게 드러나보이는 허연 이빨. '이제 저 은닢은 내 거야'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 잘 살아있다.

그런데 여행 중인 샌지가 어떻게 친구들에게 은닢을 빌릴 수 있었을까? 다섯 명의 친구는 아마도 샌지가 여행 중 사귄 친구일 것이다. 직업도 연령도 성별도 다 달라 보이는 다섯 명의 친구가 웃는 얼굴로 은닢 한 냥씩을 샌지에게 빌려준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니, 밖에서 이 친구들은 손을 내밀고 샌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 발명가로 보였던 한 친구는 없고 대신 애꾸눈 해적이 서 있다. 좀 아리송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이제 빵집 주인도 샌지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는 명재판관의 이야기가 아니라, 샌지가 하는 여행 그리고 여행에서 얻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샌지는 젊었을 때, 거친 바다를 만나고 뜨겁고 넓은 사막을 지나기도 하며 여행을 많이 했다. 전설의 도시 후라치아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빵냄새와 함께 얻은 것은 지혜로움 그리고 다소 욕심이 많지만 밉지만은 않은 새 친구.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서 가고 있는 빵집 주인을 바라보는 샌지의 표정이 그런 마음을 말해준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 온 샌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포알 심프 비룡소의 그림동화 67
존 버닝햄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까맣고 못생긴 개 심프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하고 떠돌이 신세가 된다. 단지 좋은 인상을 주는 외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혀 가치없는 존재가 된다. 약점까지도 장점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자리를 버젓이 찾아가는 심프의 이야기가 단순하지만 흥미롭게 펼쳐진다.

말과 글이 모두 너무 모자라 힘든 아이가 하나 있다. 착하게 생긴 얼굴이 친구들에게 밀려있으면서도 따라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은 아이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이 아이가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다리를 쭉쭉 뻗어 앞으로 내달리는 아이의 얼굴은 자신감과 적당한 승부욕으로 퍽 멋져 보였다. '그래 저거야.' 아이는 그 자리에서 최고였다. 난 힘껏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막 벌렁대면서 말이다.

자신의 빛나는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하고 선 밖에서 빙빙 돌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너무도 많다고, 그러니 꿈을 한껏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심프의 얼어붙은 마음을 토닥여 준 어릿광대 아저씨의 역할을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상투적인 어구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모든 아이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삶의 주인공이고 싶다. 무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어릿광대나 새까맣고 못생긴 떠돌이 개 심프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주인공으로 박수받기를 늘 소망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대포알 한 방으로 대변하는 작가의 어린이다움이 엉뚱한만큼 참신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 북경이야기 1, 전학년문고 3015 베틀북 리딩클럽 17
린하이윈 지음, 관웨이싱 그림, 방철환 옮김 / 베틀북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도 그렇지만, 난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왜인지 설명을 하라면 못하겠지만, 그저 끝간 데 모르게 나의 시야를 끌어 당기고 있는 푸르른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시리도록 빛을 발하고 있는 바다를 빨려들듯이 바라보고 섰던 때가 있었다.

나는 '바다를 보러 간다'. 바다를 보러 갈 때마다, 나는 무수한 시간들과 헤어짐을 고하고 난 후였다. 사진을 찍듯 내 인상에 박혀있는 시간들. 그런 것들에 손을 흔들어 주었든, 아니든, 시간은 어김없이 나를 뒤로 한 채, 또다른 만남을 위해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북경 이야기>를 두 권의 수채화같은 이야기로 엮은 잉쯔의 성장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감을 주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음직한 열에 들뜬 마음 속 숨은 이야기를 가만히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같은 문체와 그에 걸맞는 수채화들이 주는 감동은, 잔잔한 호수 위로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와도 같았다.

수채화! 관웨이싱의 그림 속에 한결같이 도사리고 있는 생명력은 부드러운 듯 강한 것이었다. 내게 작별을 고하고 지나가버린 아련한 시간들을 조용히 불러내는 것 같았다. 성장의 비밀은 아직도 나의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과의 헤어짐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한다.

'시간을 위한 상자'라는 도예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결코 시간을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책에 담겨있는 시간들은 네모 상자 속의 그것이 아니라, 아무런 형체도 없이 시나브로 제 향기를 피우는 무채색 연기와도 같다.

짝사랑과도 같이 '어리숙하면서도'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어린 시절이라는 시간들이 아닐까. 가지가지 색과 모양으로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지금은 모두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시간들. 예고없이 헤어짐을 고했던 그런 시간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을 더 살아볼 만한 것으로 만드는 힘이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