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대의 아픈 이야기가, 아주 서정적인 맑은 수묵화를 배경으로, 가슴에 아련한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는 느낌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시집이 뭔 지도 모르면서 낯선 어른을 따라가는 누이가 마지막으로 먹고 가는 건 한 그릇의 감자밥이다. 돌이의 눈에 비치는 단장한 누이의 모습은, 꾸미지 않은 순박한 모습의 누이를 도저히 잊지 못할 그리움으로 진하게 남길 뿐이다. 때묻은 누이의 베개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돌이의 가슴을 달래주는 건, 송아지의 탄생이다. 새 생명의 태어남이란 이렇게 경이롭고 환희에 차오르는 무엇인가 보다. 묵묵히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돌이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어깨는 늘 짓누르는 무엇으로 무거워보이고 침묵으로 모든 걸 견뎌내는 깊은 산 속 나무와도 같다. 이런 느낌은 말수 적은 모습으로 담담히 버티고있는, 이 책의 그림이 주는 느낌과도 닮아있다. 그렇게 없는 듯 뒤에서 서있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