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지와 빵집주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57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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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명판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옛이야기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어쩌면 평이하다할 이야기가 이 그림책에서는 풍성하고 유머러스하게 살아난다.

갈색톤의 풍부한 색감이 따스하기도 하고 화려한 옷 색깔이 생기를 주기도 한다. 그림의 배경은 아주 이국적이라 할 수 있다. 사막과 낙타가 그렇고 샌지가 머물렀던 집의 아랫 층에 있는 빵가게의 풍경이 그렇다. 모두 갈색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종류의 빵과 사람들의 피부색까지 갈색이다. 머리에 두른 터번과 구렛나루의 시커먼 수염, 야자수 뒤로 보이는 돔 지붕의 건물들.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며 뭔가 이야기가 숨어서 꿈틀대고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볼 수 있는 코키 폴 특유의 유머가 재미있기도 하다.
아랫 층에서 올라오는 빵냄새를 더 잘 맡으려고 샌지가 코에 끼우고 있는 기계는 기발하다. 나중에 보니, 발명가 친구의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이었다. 은닢 다섯 냥이 그릇 속에 떨어지는 소리를 차례로 다른 흉내말로 표현한 것은 사실적이다. 짤랑, 딸랑, 딸그락, 땡그랑, 떨그덕. 동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빵집 주인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음흉스럽게 드러나보이는 허연 이빨. '이제 저 은닢은 내 거야'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 잘 살아있다.

그런데 여행 중인 샌지가 어떻게 친구들에게 은닢을 빌릴 수 있었을까? 다섯 명의 친구는 아마도 샌지가 여행 중 사귄 친구일 것이다. 직업도 연령도 성별도 다 달라 보이는 다섯 명의 친구가 웃는 얼굴로 은닢 한 냥씩을 샌지에게 빌려준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니, 밖에서 이 친구들은 손을 내밀고 샌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 발명가로 보였던 한 친구는 없고 대신 애꾸눈 해적이 서 있다. 좀 아리송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이제 빵집 주인도 샌지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는 명재판관의 이야기가 아니라, 샌지가 하는 여행 그리고 여행에서 얻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샌지는 젊었을 때, 거친 바다를 만나고 뜨겁고 넓은 사막을 지나기도 하며 여행을 많이 했다. 전설의 도시 후라치아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빵냄새와 함께 얻은 것은 지혜로움 그리고 다소 욕심이 많지만 밉지만은 않은 새 친구.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서 가고 있는 빵집 주인을 바라보는 샌지의 표정이 그런 마음을 말해준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삶을 살아 온 샌지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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