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소년 미네르바의 올빼미 1
윤정모 지음, 김종도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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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으로 끌려가기 싫어 19세의 학생은 무작정 2층의 창문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려, 그길로 산으로 들어간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피난길을 걸어걸어 내려오며 지금 들어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기만 한 아슬아슬한 일들을 겪으며 부산에 도착한다. 이 학생은 바로 이제 72세가 되신 아버지이다.

아버지께선 기억의 저 편에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며 바로 눈앞의 상황인양 몸을 부르르 떠셨다. 배가 너무 고파 남의 집 부엌 창문으로 손을 들이밀어 작은 남비 째 음식을 훔쳐 먹던 일, 하도 걸어서 발바닥의 허물이 벗겨지던 일, 몇차례고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일들을 풀어내시는 얼굴에 어린 슬픈 자욱을 잊을 수 없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제는 주름진 얼굴에 아련히 배어있다.

10대에 온몸으로 겪으신 아버지에게 전쟁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관념적인 전쟁과는 다르다. 불바다가 되어 번쩍이고 있는 바그다드, 늘씬한 몸체로 상공을 날며 폭격을 하는 미사일 부대를 보며, 사이버상의 모의 전쟁 같은 멋지다는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전쟁과 소년>은 전쟁의 참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작가는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며, 전쟁의 실상은 참혹하고 아픈 것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한다.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각도는 중요하다. 그런 만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작업은 반드시 해야한다. 전쟁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화는 이미 있지만, 이 책은 그 정황을 그리는 방법이 에둘러 가지 않고 좀더 사실적이다. 아버지에게서 겪었던 일들을 직접 듣는 것처럼, 충격을 덜기 위한 묘사의 완충제는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전쟁의 결과는 미화될 수도, 눈 감을 수도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어린이 스스로 보고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다. 전쟁이 남기는 상처는 세월이 지워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보이지 않게 깊숙하고 크게 자리하며, 또 오래 간다.

천년 문화의 고장 경주의 한 산골 마을을 무대로, 9살 남자아이가 치르는 전쟁은, 처음엔 심심하고 외로운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피난을 떠나고 동생을 낳으려고 하는 엄마 때문에 피난길을 떠날 수 없는 필동이와 엄마, 할머니에게 수상쩍은 말투의 7살 여자아이가 맡겨진다. 인민군의 딸 담선이와 며칠을 함께 하면서 필동이는, 전쟁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며 모든 것을 잃은 담선이에 비하면 자신은 한결 낫다는 생각으로 상처입은 사람을 품어주기까지 한다.

필동은 나이가 좀더 많은 것으로 설정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려 깊다. 어려운 시절을 서로 돕는 선한 마음으로 사는 필동이네 가족과 스님, 필동에게 싱긋 웃어 준 인민군 소년병, 죽은 엄마가 생각나 필동의 엄마에게 황어를 잡아다 갖다 주고 싶어하는 담선의 마음이 군인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마을의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에게 전쟁은 싸우고 죽여야 할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오히려 마음 다친 사람들을 걱정하고 손잡아주게 하는 것으로, <전쟁과 소년>은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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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들의 전쟁 - 천년동안 읽는 동화 반달문고 1
김진경 지음, 최달수 그림 / 문학동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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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천년 동안 읽는 동화 시리즈인 <목수들의 전쟁>은 몇가지 면에서 꽤 시선이 집중되는 동화이다. 목수라는 직업에서 우선 떠올릴 수 있는 생각(편안함, 장인, 소박함)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암흑덩어리가 어떤 관련이 있길래,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작품의 배경은 2500여년 전의 춘추전국시대로 노나라, 초나라가 주무대이다. 노나라의 공수반이라는 전설적인 목수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고 묵가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 묵자의 가르침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혼란한 시대에 난립하는 여러 사상들과 권력가들, 그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은 도외시된 채, 역사의 강물은 흘러간다. 그러한 상황은 현대에 그대로 옮겨 놓아도 별반 차이가 없다.

<목수들의 전쟁>은 명료하고 단순한 선으로 인물과 배경, 사건을 나열한다. 발단에서는 재주 많은 목수 노반의 발명품이 잘못 사용되어 부모을 잃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에피소드이다. 첨단기술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 그 피해는 얼마나 크고 참혹한 것인지 암시한다. 전개에서는 스승 묵자에게서 함께 배운 묵적이 목수들의 왕이 되어 노반을 찾아오고, 둘 사이에는 의견의 충돌이 일어난다. 아내와 함께 가장 강한 나라 초나라로 간 노반은 초나라 왕을 도와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많은 기구들을 발명한다. 그 중 '거'는 적군이 들어올 때 밀어내는 기구이며, '구'는 적군이 도망갈 때 잡아당기는 기구이다. 묵적은 이런 노반을 찾아가 담판 짓기 위해 초나라를 향한다. 묵적은 자신의 '거'는 '겸손함'이며 자신의 '구'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며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로 노반과 초나라왕을 설득한다. 모의 전쟁까기 벌이며 공격보다는 방어가 최상의 힘임을 반증한다.

공자로 대표되는 유가사상은 노반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이기주의이다. 지구촌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가족, 국가, 민족, 인종을 초월한 겸애의 사상이다. 인류애, 박애 정신은 세계평화를 부르짖는 이 시대에 절대 필요하다. 전쟁을 합리화하는 것은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힘없는 사람들)을 눈감고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노반과 묵적의 오랜 생각의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꾸준히 참을성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고, 확신으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해 보이는 묵적이야말로 희생을 최대한 줄이는 지혜로운 전략가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나아가 지구촌 다른 어느 곳에서도 힘의 논리만을 내세워서는 악순환일 뿐이다. <목수들의 전쟁>에서 목수는 오늘날의 첨단과학기술자로 대변된다. 무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천문학적 비용이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의 자본으로 지원되는 상상은 어리석은 것인가?

이 동화는 손에 잡힐 듯 명확한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 다섯 장으로 분류되어 복잡하지 않게 전개되는 사건, 그리고 2500여년 전 중국이라는 호기심 끄는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읽히면서도 곰곰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들이, 행간을 묵직하게 하는, 주제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의 눈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 세계관을 정립해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점에서 이 책은 맛과 영양분이 잘 어우러져 있다. 단지 46쪽의 '옥쇄'는 '옥새'가 되어야 바르게 쓰인 낱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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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 - 비디오 테이프
(주)아이타스카 스튜디오 제작 / 인피니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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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난다. 소박하고 투박한 흙빛의 배경에 볼품 없는 강아지똥, 거친 채색의 풍경에 내리 꽂히는 빗줄기, 그리고 잘게 부서져 흙의 일부가 되어 민들레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 생명의 경이로움. 소재나 주제, 그에 어울리는 그림까지... 화려하고 반질반질한 그림책과는 달리 권정생의 <강아지똥>은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에서부터 부족한듯 편안하고 수수하여 겸허함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이 만든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더럽고 보잘것 없는 강아지똥을 주인공으로 하여 말하고 있다. 이 한마디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웅크리고 있다. 아이가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감에 따라 한 가지 이야기씩 더 해 주는 것도 좋겠다. 생명이란 돌고 도는 것, 더불어 사는 자연의 이치, 내 몸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 꿈을 키우며 사는 삶 그리고 인간만이 자연의 주인은 아니라는 것까지 말이다.

이제 그림책 <강아지똥>이 클레이 에니메이션으로 탄생했고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재생종이로 만든 상자의 느낌이 우선 좋다. 30분 정도의 짧은 상영시간이나 대사의 전달이 나이 어린 아이들 눈높이에 마춤이다. 에니메이션은 생동감 나는 흙색과 곱게 물감을 풀어 만든 것 같은 짙은 사파이어 색의 밤하늘이 대조를 이루어 소박함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강아지똥과 흙덩이, 감나무잎, 민들레잎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강아지똥과 함께 세상을 알아간다.

더불어, 자신을 알아가며 자신을 귀하게 쓰는 법을 배운다. 그건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때 알게 되는 '나의 쓰임'이다.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서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서 있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그래서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우리도 강아지똥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강아지똥의 조그만 눈망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은 이제 감격의 그것이다. 민들레 홀씨들이 바람에 정처없이 날아갈 때 강아지똥은 흙과 하나 되어 예쁜 꽃을 피울 꿈에 젖어 낮게 엎드려 있다. 낮아지기. 낮아져서 높은 곳으로 꿈을 한껏 피워 올리기.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참 맑게 한다. 자연스럽고 생동감 나는 등장인물들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배경과 잘 어우러져 원작의 감동을 되살리는 데 손색이 없다. 강아지똥을 마치 인형처럼 안고 자고 싶다고 할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앙증맞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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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선물 - 한 어린 삶이 보낸 마지막 한 해
머라이어 하우스덴 지음, 김라합 옮김 / 해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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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내게 그 자체로 신이 주신 선물이다. 그 선물이 때로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가슴 아리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선물로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 곤히 잠든 두 딸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왔을까? 이런 귀여운 것이' 하며 낮에 아이에게 성급하게 꾸짖었던 일을 반성한다.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다듬게 하고, 나를 나아가게 한다. 아이의 모든 것에서 나를 비춰보게 되며 아이로 인해 나는 오늘도 한걸음 물러설 줄도 안다.

이런 아이에게 치명적인 병이 찾아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면, 과연 나라면 어떤 모습으로 그 상황을 맞이할까? 죽음을 미화하며? 아니면 자신과 가족을 들볶으며? 아니면 신을 책망하며?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이 한 순간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이 책 속의 엄마는 그런 상황을 진실의 눈으로 성실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좀더 충실해지는 길로 승화시킨다.

한나의 엄마 머라이어는 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 엄마이다. 하지만 머라이어게게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삶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예기치 못한 고통의 장애물 건너에 있는 평온함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 눈은 바로 한나의 눈과 다르지 않다. 죽음을 온몸으로 예감하고 있는 한 어린 생명과 그 죽음을 뜬눈으로 지키며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일순간 동시에 느끼는 그 평온함. 그 평온함에서 벋어나오는 자신감은 모든 두려움이나 쓸쓸함을 지워버리고도 남을 만한 확고한 자의식이다.

당당하고 아름답게 짧은 생을 살다간 한나의 빨간구두는 타인의 시선을 그만 의식하라고,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선물로 전하고 있다. 한나의 빨간구두는 이미 세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인생의 변화를 가져온 사람은 엄마인 머라이어이다.

한나의 병을 알게된 후의 1년과 한나가 때가 되어 가고 난 후의 7년 동안의 일들을 자신의 기억과 인식에 의존하여 그야말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책을 읽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일렁임이 일었다. 어린 생명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나 크고도 중요한 선물을 엄마에게 주었다. 충만한 삶을 사는 것, 온전히 자신으로 사는 것, 고통이나 두려움을 넘어서 있는 평온을 느끼는 내면의 힘.

'그 평온은 내 안에서 계속 깊이를 더해갔다.'
'요즘의 내 삶은 답 없는 물음을 안고 사는 것을 즐겁게 여길 만큼 원숙해 있다.'

놓아줌과 던져둠이 넉넉한 미소와 행복의 원천임을 아는 세월의 원숙함을, 나도 온몸으로 익히고 싶다. 이제는 세아이와 함께, 아니 네아이와 함께 서로를 사랑하고 기억하며 사는 머라이어는, 믿고 싶지 않았을 상실감과 아픔을 통해,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재발견하고, 성숙시켰다. 그런 힘을 준 것은 아이라는 선물이다. 특별하게도, 어리고 짧지만 순간을 충실하게 살다간 한나가 남기고 간 빨간 구두의 반짝이는 이미지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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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해방의 날 - 초등 3.4학년 온누리동화 10
A.노르덴 글, A.핀케넬레 그림, 경기대학교 아동-청소년 문학연구실 옮김 / 온누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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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창작동화를 접할 때면 느끼는 매력은, 훈계나 설교조가 아니면서, 아이 스스로 뭔가 깨달으며 그것이 자신의 생활 속에 녹아든다는 점이다. <잔소리 해방의 날>도 마찬가지로, 먼저 아이의 발칙한(?) 제안이 그다지 거슬리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선뜻 나오며 또 엄마 아빠에게 받아들여진다.

얼마전 아이로부터 '잔소리 좀 그만 해'라는 말을 듣고 아찔해지며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나의 말들이 아이에게는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면 이제 정말 말을 줄여야, 아니 골라 해야 할까 보다. 아이에게 하루동안 하는 말들의 목록을 만들어보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많을 것 같다. 정작 해야할 말들은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서로 벽만 쌓고 있는 건 아닌지. 서로에게 좀더 집중하는 시간으로 그 시간들을 메꾸어야하지 않을까.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의 간섭으로부터 하루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아이는 하루동안의 '잔소리 해방의 날'을 허락받고 뭔가 엄마가 알면 허락하지 않을 만한 일들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무작정 실천에 옯겨보지만 예상대로 풀리지만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이의 순진하고 착한 마음이 '이래서 아이들은 예뻐'라는 생각이 들게 하며 기쁨을 준다. 아이들 본래의 선한 심성은 잔소리가 없을 때 더 빛을 발하는가 보다.

엄마 아빠의 믿음과 속 깊은 사랑은 언제나 아이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또한 마음대로 벗어나 심술을 부리다가도 그 사랑의 힘으로 안정되고 마음 또한 커간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의 눈으로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만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 동화를 읽고, '잔소리 안 하는 날'을 하루쯤 정해서 실천해보는 건 어떨지. 아이들은 '잔소리 해방의 날'에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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