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선물 - 한 어린 삶이 보낸 마지막 한 해
머라이어 하우스덴 지음, 김라합 옮김 / 해냄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는 내게 그 자체로 신이 주신 선물이다. 그 선물이 때로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가슴 아리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선물로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 곤히 잠든 두 딸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왔을까? 이런 귀여운 것이' 하며 낮에 아이에게 성급하게 꾸짖었던 일을 반성한다.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다듬게 하고, 나를 나아가게 한다. 아이의 모든 것에서 나를 비춰보게 되며 아이로 인해 나는 오늘도 한걸음 물러설 줄도 안다.

이런 아이에게 치명적인 병이 찾아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면, 과연 나라면 어떤 모습으로 그 상황을 맞이할까? 죽음을 미화하며? 아니면 자신과 가족을 들볶으며? 아니면 신을 책망하며?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이 한 순간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이 책 속의 엄마는 그런 상황을 진실의 눈으로 성실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좀더 충실해지는 길로 승화시킨다.

한나의 엄마 머라이어는 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 엄마이다. 하지만 머라이어게게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삶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예기치 못한 고통의 장애물 건너에 있는 평온함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 눈은 바로 한나의 눈과 다르지 않다. 죽음을 온몸으로 예감하고 있는 한 어린 생명과 그 죽음을 뜬눈으로 지키며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일순간 동시에 느끼는 그 평온함. 그 평온함에서 벋어나오는 자신감은 모든 두려움이나 쓸쓸함을 지워버리고도 남을 만한 확고한 자의식이다.

당당하고 아름답게 짧은 생을 살다간 한나의 빨간구두는 타인의 시선을 그만 의식하라고,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선물로 전하고 있다. 한나의 빨간구두는 이미 세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인생의 변화를 가져온 사람은 엄마인 머라이어이다.

한나의 병을 알게된 후의 1년과 한나가 때가 되어 가고 난 후의 7년 동안의 일들을 자신의 기억과 인식에 의존하여 그야말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책을 읽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일렁임이 일었다. 어린 생명의 죽음은 어쩌면 너무나 크고도 중요한 선물을 엄마에게 주었다. 충만한 삶을 사는 것, 온전히 자신으로 사는 것, 고통이나 두려움을 넘어서 있는 평온을 느끼는 내면의 힘.

'그 평온은 내 안에서 계속 깊이를 더해갔다.'
'요즘의 내 삶은 답 없는 물음을 안고 사는 것을 즐겁게 여길 만큼 원숙해 있다.'

놓아줌과 던져둠이 넉넉한 미소와 행복의 원천임을 아는 세월의 원숙함을, 나도 온몸으로 익히고 싶다. 이제는 세아이와 함께, 아니 네아이와 함께 서로를 사랑하고 기억하며 사는 머라이어는, 믿고 싶지 않았을 상실감과 아픔을 통해,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재발견하고, 성숙시켰다. 그런 힘을 준 것은 아이라는 선물이다. 특별하게도, 어리고 짧지만 순간을 충실하게 살다간 한나가 남기고 간 빨간 구두의 반짝이는 이미지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