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똥 - 비디오 테이프
(주)아이타스카 스튜디오 제작 / 인피니스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강아지똥>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난다. 소박하고 투박한 흙빛의 배경에 볼품 없는 강아지똥, 거친 채색의 풍경에 내리 꽂히는 빗줄기, 그리고 잘게 부서져 흙의 일부가 되어 민들레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 생명의 경이로움. 소재나 주제, 그에 어울리는 그림까지... 화려하고 반질반질한 그림책과는 달리 권정생의 <강아지똥>은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에서부터 부족한듯 편안하고 수수하여 겸허함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이 만든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더럽고 보잘것 없는 강아지똥을 주인공으로 하여 말하고 있다. 이 한마디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웅크리고 있다. 아이가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감에 따라 한 가지 이야기씩 더 해 주는 것도 좋겠다. 생명이란 돌고 도는 것, 더불어 사는 자연의 이치, 내 몸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 꿈을 키우며 사는 삶 그리고 인간만이 자연의 주인은 아니라는 것까지 말이다.

이제 그림책 <강아지똥>이 클레이 에니메이션으로 탄생했고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재생종이로 만든 상자의 느낌이 우선 좋다. 30분 정도의 짧은 상영시간이나 대사의 전달이 나이 어린 아이들 눈높이에 마춤이다. 에니메이션은 생동감 나는 흙색과 곱게 물감을 풀어 만든 것 같은 짙은 사파이어 색의 밤하늘이 대조를 이루어 소박함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강아지똥과 흙덩이, 감나무잎, 민들레잎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강아지똥과 함께 세상을 알아간다.

더불어, 자신을 알아가며 자신을 귀하게 쓰는 법을 배운다. 그건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때 알게 되는 '나의 쓰임'이다.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서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서 있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그래서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우리도 강아지똥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강아지똥의 조그만 눈망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은 이제 감격의 그것이다. 민들레 홀씨들이 바람에 정처없이 날아갈 때 강아지똥은 흙과 하나 되어 예쁜 꽃을 피울 꿈에 젖어 낮게 엎드려 있다. 낮아지기. 낮아져서 높은 곳으로 꿈을 한껏 피워 올리기.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참 맑게 한다. 자연스럽고 생동감 나는 등장인물들이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배경과 잘 어우러져 원작의 감동을 되살리는 데 손색이 없다. 강아지똥을 마치 인형처럼 안고 자고 싶다고 할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앙증맞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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