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구자현 외 옮김 / 중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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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너무나 유명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단면만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지, 늘 뭔가 부족했었다. 과학이론이라면 잘 모른다. 상대성이론이니 통일장이론이니, 함축된 이름 앞에서 일단 기가 죽는다. 유대인이며 학교 부적응아, 그러나 수학과 물리 과목에서만은 독보적이었으며, 미국으로 망명 후 핵무기를 만들 것을 건의하였다가 그것이 현실로 엄청난 폐해를 드러내자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후회하며 반전 반핵 운동을 버트란드 러셀과 함께 했다는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 가지 더 있다. 아인슈타인은 전문 바이얼리니스트 못지않은 바이얼린 연주 실력을 갖고 있어, 어느 강연에서는 강연을 뒤로 하고 바이얼린 연주부터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대단한 노력과 집중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시오니즘 운동의 공로로 이스라엘 대통령으로 추대되기도 했으나, 끝까지 사양했다고도 한다.

글은 사람을 말해 준다. 세상을, 사람을, 현상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눈을 말해 준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최소한의 양심을 말해준다. 또한 글은 사람의 성품을 말해주기도 한다. 물론 글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단정하려면 오류를 범하기 쉽지만, 속일 수 없는 실마리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세계관>은 아인슈타인 자신이 1950년대 초까지 여기저기 기고하였던 글과 갖가지 공식석상에서 하였던 연설문을 싣고 있는 책이다. 제 3자의 왜곡될 수 있는 관점이 아니라, 한 위대한 과학자가 쓴 글을 통해 그의 성찰을 듣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은 본질적으로 모든 형태의 억압과 권위로부터의 자유주의자였다. 이런 '~ism'은 우선 그의 교육관에 잘 나타난다. 암기위주의 학교교육을 체질적으로 거부하며 인간의 교육은 독자적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많은 학과과목에 짓눌려 아이들의 창의성이 말살되고 있음을 말하는 대목은 마치 그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끼게 했다. 그런 착각은 의무병역제에 대한 견해에서도 일어났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그는 주장하고 있었다. 군대사열 같은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경멸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평화주의자였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강대국은 군비축소를 위한 초국가적 세계정부를 하루빨리 만드는 일에 마음을 합해야 한다고 했다. 실현되기에는 강대국들의 이기적인 욕심과 경제논리가 너무 크지만, 그는 여러 연설과 편지에서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의무병역제는 이런 대업에 걸림돌이므로 용병제를 내세웠다. 군사력 공동 운용으로 각국의 안전보장이 크게 강화될 것이고, 불신과 긴장 대신 평화에 대한 확신이 점증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력를 공동으로 부여할 수 있는 참된 세계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기복신앙이 아닌, 전우주적 종교관을 지닌 신실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을 이루는 모든 것의 기저에는 고매한 도덕관이 있었다. 인간의 가치는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얼마만큼 줄 수 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며, 개인의 사회의식 마비를 지적했다. 사회에 대한 헌신으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개인의 책임의식을 길러주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되어야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개인의 사회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폐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의식을 주입시켜 물질적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평생 검소하게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안락과 행복이 아니라, '친절과 아름다움 그리고 진실'이라는 말이 그의 도덕관을 잘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가 영웅은 많지만 본 받을 만한 위인은 보기 어렵다고 했던가. 정치 경제 교육 종교 과학 다방면에서 빛나는 도덕관으로 대단한 통찰력을 보이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을 보고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과학이론에 대한 장은 보류해 두고라도, 책장을 넘기며 참 기쁜 시간이었고 머릿 속이 깨끗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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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음악회 신나는 음악 그림책 2
안드레아 호이어 글 그림, 유혜자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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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음악공연을 자주 가는 편이다. 아직 오페라는 보지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합창단이나 뮤지컬, 관현악단 연주회는 기회가 있으면 간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런 것들로 아이들의 삶이 좀더 풍요롭고, 아름답고 안정된 정서의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11살, 6살 두 딸아이는 관현악단의 연주가 시작되면 평소에는 볼 기회가 적은 악기들을 뚫어져라 보며 연주자들의 손동작까지 살핀다. 큰아이는 제법 자신의 귀로 음악을 감상하며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얼마 전 갔었던 시립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서 작은 아이는 하프의 모습에 매료된 듯했다. 콘트라베이스의 중후한 현의 소리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플룻을 배우고 있는 큰아이는 금빛 플룻만으로 훌륭한 소리를 뽑아내는 한 플룻티스트의 협주곡이 끝나자 힘찬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난 눈을 감고 연주를 듣기를 좋아한다. 시각을 닫으면 청각이 한층 예민해진다. 내 주위로 조화로운 소리의 병풍이 둘러쳐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피아노 배우기를 너무 즐거워하는 작은 아이는 앞으로 바이얼린을 하고 싶다고 틈만 나면 조른다. 이런 아이들에게 신나는 음악 그림책 시리즈 3권은 참 적절한 선물이다.

1권 <나와 오페라 극장> -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날,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관람하고 무대 뒤의 구석구석을 돌며 한 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어떤 준비와 과정을 거치는지 상세하게 보게 된다. 마치 마술사의 손처럼 연출되는 무대배경과 의상, 무대감독과 무용수들이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도 본다. 무대에 선 배우가 대사나 동작을 잊어버렸을 때, 작은 소리로 알려주는 일을 하는 '프롬프터'는 무대 위의 이상한 상자 속에 들어가 숨은 역할을 한다.

2권 <나와 음악회> - 관현악단의 첼리스트인 삼촌을 따라 아이는 관현악단의 멋진 연주를 듣고 115명의 단원들이 제 몸처럼 소중히 여기는 악기들을 만난다. 소리가 제일 정확한 오보에가 '도' 소리를 내면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그 음에 맞춰 소리를 조절한다는 것 같은 자상한 설명도 듣고, 타악기의 소리에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불러내어보기도 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연습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웅장한 관현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아이는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그렇게 고양된 감정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은은하게 비추는 그믐달과 총총이 박힌 별들 같다.

3권 <나와 음악학교>는 생일을 맞은 파울에게 멋진 생일선물을 하는 할머니의 편지로 시작한다. 늘 배우고 싶어했던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진짜 멋진 할머니. 먼저 음악학교를 찾아간 파울은 자상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여러가지 종류의 악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는다. 리코더만 해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커다란 베이스 리코더에서 아주 작은 클라이네 소프라니노 리코더까지. 실제로 바로크음악정기연주회에서 리코더 독주를 들은 적이 있다. 맑은 새소리가 비가 개이고 이슬을 머금은 나무 이파리들 사이로 새어나오는 듯 했다. 목가적인 편안한 느낌이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펼치는 정기공연까지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온 파울은 달콤한 잠에 빠진다. 많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현악단 한 가운데서 연주를 하는 꿈을 꾸며 파울은 앞으로 어떤 악기를 배울지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일까?

세권 모두 아이에게 음악을 가까이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어른들이 있다.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어른의 마음이 내비친다. 주먹코에 주근깨 투성이 얼굴의 아이들과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어른들의 얼굴을 포함해 그림 전체가 자상하고 따뜻하다. 몇 차례 감상했던 국악 관현악단의 연주가 생각난다. 서양음악 못지 않게 그 아름다움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우리 악기의 애끓는 소리와 운치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색다른 힘이 있다. 서양음악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 음악 그림책 시리즈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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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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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여년쯤 후면 돌아가고픈 곳은 어디일까? 유년의 기억이 묻어있는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 완전히 몰라보게 되었고 무주구천동 계곡물 못지않게 하얀 물거품을 뱉으며 쏟아져내리던 그 물도 이젠 다 메말라버렸다. 열두살 때 두 동생과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의 배경은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별로 자상하지 못했던 아빠가 우리 삼남매를 데리고 소풍을 가서 징검다리도 손잡아 건네주시고 옹기종이 사진도 함께 찍었던 유일한 기억의 장소이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이제는 고희를 넘기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가슴 한 구석이 무겁다. 아버지는 내 '존재의 씨앗'이며, 잠깐의 단란했던 그 시간만으로도 아버지의 다른 부정적인 부분이 거의 묻혀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 똥깅이처럼 나는, '아버지'로 시작하여 '귀향연습'으로 끝맺는 이 책을 읽으며 줄곧 아버지를 생각했다

<변방에 우짖는 새>로 이름을 들었던 현기영 작가를 책으로 처음 만났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유년과 사춘기 적 기억을 더듬어 쓴 자전적 소설이다. 독자에게 찻잔을 앞에 두고 들려주듯한 어투와 양해를 구하고 샛길로 잠시 갔다가 양해를 구하고 돌아오는 이야기 방식도, 그저 개인의 역사를 마주하고 듣는 것 같다. 해 묵은 기억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미화되기도, 과장되기도 축소되기도 하며, 예를 들어 일상의 대화까지 소상히 건져올릴 수는 없을 정도로 모호한 안개와도 같은 것일 게다. 그런 면에서 안개가 구체적인 활자로 탄생하려면 작가의 소설적 기법이 활용되어야 될 것이다.

이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적 구성을 하고 있다. 세상과 불화한 아버지의 육신을 손수 만지며 이제는 자신에게 돌아올 죽음이라는 손님을 차분히 맞으려는 황혼의 영혼이 작가이자 주인공이다. 정신적으로 늘 가까이 있지 못한 아버지의 존재가 이제 빈껍데기만으로 남아, 그러나 자신의 영혼에 벗어버릴 수 없는 생의 그림자로 따라 붙은 채,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그 길은 밥먹듯이 찾아온 배고픔과 역사적 폭력이 짓누르고 치유될 수 없을 지도 모를 상처를 남기고 간 흔적이다. 제주의 고통스런 과거와 그때마다 굴하지 않고 버티는 민초들, 제주의 비상한 신화와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이 펼쳐진다. 내가 용두암을 가 본지 14년이 되었다. 그곳에서 발가벗고 놀았던 유년의 아이들 모습, 처음으로 여체를 보고 흥분했던 사춘기의 기억이, 시커멓고 구멍이 숭숭 난 현무암처럼 생생하다.

작가는 자신을 성장시킨 것들에 감사하며 그런 것들을 하나씩 되짚어 자신에게 묻고 있다. 아픈 역사에 대한 책임을, 변해버린 자연의 모습과 친구의 모습을, 문학과 독서의 영향, 그리고 변화무쌍한 성장의 길에서도 변하지 않고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 성장의 방정식'에 있는 '항수(恒數)'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을 작가는 '생성 최초의 것, 그 무엇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 했다.

뜨거운 불씨같기도 하고 안온한 모태같기도 한, 나를 내보낸 품으로 돌아가려는 주인공이 제주도로 명명한 '자연'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작가는 성장소설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로 기억은 멈추어있다- 을 통해 유독 심했던 열병과 격정으로 아버지를 상처입게 한 것을 슬퍼하고 있다. 불안정한 생의 고개를 넘어 담담하게 귀향을(혹은 죽음을) 연습하는 주인공의 흰 머리카락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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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영하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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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로맹 가리와 헤밍웨이가 생각났다. 우리가 생을 선택하여 시작한 게 아니라면 죽음은 선택하여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이 있지 않나. 베르테르, 로맹 가리, 헤밍웨이... 이들의 선택된 죽음을 생각해보았다. 이런 죽음이, 얼마 전 생활고를 비관하여 딸을 먼저 아파트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고 자신도 뛰어내린 한 젋은 엄마의 죽음과 다를까? 고생하는 부모는 안중에 없고 엄청난 카드빚과 사치 낭비로 생을 탕진하는 젊은 아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한 부부는 어떤가? 정황은 다르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기저는 보통 사람들의 몰이해에 있다. 좀 참고 살아갈 것이지, 쯧쯧, 그 용기로 살려고 애쓸것이지, 라고 또 한번 관습적인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것인가.

베르테르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살은 정신의 열병을 앓다가 도저히 못 견뎌 숨이 끊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열병을 앓다가 죽은 이에게 좀더 참고 열을 견뎌볼 것이지, 라고 혀를 차는 건 극단적인 몰이해의 단면이라고 했다. 베르테르는 젊다. 그는 기존의 격식과 관습을 중시하는 모든 양상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의 권총자살은 현실의 도피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또다른 생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가식과 편견으로 타인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양자택일의 흑백논리를 베르테르는 혐오했다. 알베르트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의 논리로는, 자살이란 관습에 어긋나는, 부도덕한 행동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선택은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가식이나 편견으로 위장하거나 상처 주지 않고, 고스란히 아름다운 것으로 간직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젊은 베르테르는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친구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감정에 전적으로 많은 힘을 실어준다. 사람들은 그의 지성과 재능을 그가 가지고 있는 본성보다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베르테르 자신은 그가 가진 감정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오로지 감정만이 모든 힘의 원천, 모든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라네. 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내 감정만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네.' ~ 145쪽

'하느님! 당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을 가지기 이전과 그 이성을 다시 잃어버린 후가 아니면 행복하게 될 수 없도록 운명을 만드셨나요!' ~ 177쪽

베르테르는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선택을 했다. 기존의 격식과 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습이 배제된, 열정과 감정(보다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으로 산 신인간상이다. 그 행동(표면적으로는 로테를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며 '죽음의 술잔'에 입을 댄다. 당시 계몽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여주는 젊은이답게 큰소리를 친다. 자살이라는 소극적인 반격으로 더 이상의 구차한 위선과 무서운 대중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아름다운 감정과 행복을 지킨 베르테르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적극적이다.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 책을 표면적인 사랑의 이야기로만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괴테가 이십대에 쓴 이 책에는 작가의 우울함과 젊음의 열정이 내비친다. 그 후 고전주의로 돌아간 작가이고 보면, 베르테르를 다시 만나며, 이성보다 감정에 충실했던 젊은 시절(이십대)이 그립기도 하다. 어떤 종류이든 정신의 열병을 앓는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란 쉽게 비난할 수도, 동정할 수도, 찬양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난 벌써 관습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그런 나를 모순덩어리,어중이떠중이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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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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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향수 하나를 고를 때처럼 <향수>라는 제목의, 표지가 예쁜 책을 만났다. 부제는 '향수'에서 가질 수 있는 첫느낌과는 달리 다소 섬뜩하고 자극적이다. 모두 4부로 나뉘어있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굳이 4부로 나눌 필요가 없었다는 듯이 술술술 빠른 속도로 풀려나온다. 털실뭉치에서 실이 막힘 없이 풀려나오는 것처럼 문체도 간결하고 잘 읽힌다. 여러 계층(귀족, 시민계급, 빈민)에 대해 각각 비꼬고 있는 어투도 재미있다. 향기를 피우는 것 같은 예쁜 꽃과 풀이름도 나온다.

우울하고 고독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는 '향수'를 소재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진다. 18세기 프랑스의 혐오스러운 천재들 중의 하나인 그르누이는 '자신의 천재성과 명예욕'을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에 발휘한다.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으니 덧없다 할 수 있지만, 후각으로 감지된 기억은 다른 감각에 의존한 기억보다 오히려 그 생명력이 질기다. 그런 면에서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는 끈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타고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모성에 굶주리는 운명을 짋어진, 기이하고 참혹한 인간 그르누이. 그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향해 한눈 팔지 않고 손 뻗을 수 있을 만큼 아이같다. 때론 순진무구하고 때론 충분히 사악하다. 때론 가련하고 때론 충분히 힘이 세다.

그르누이가 여느 아이와 다른 점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보호의 감정(본능적인 모성)을 유발하는 특유의 냄새가 몸에서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르누이가 세상을 탐색해가는 도구는 냄새이다. 천부적인 후각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빨아들인다. 그런 자가, 자신을 유기살해하려다 발각되어 어머니가 참수를 당한 광장에서, 어머니를 느끼고 그리워하는 방식은 바다의 냄새를 통해서이다. 바다는 '냄새라기보다는 하나의 호흡, 모든 냄새들의 끝인 마지막 호흡과 같은' 것이며 '바다의 냄새 속을 날아다니다가 그걸 들이마시면서 용해되는 일'을 즐겨 상상한다. 이 꿈은 자궁으로의 회귀이며 모성애의 갈구이다.

아직은 자신의 천재성을 확실히 모르는 이 아이의 즐거운 상상은 나중에 청순한 소녀의 살인으로 이어진다. 강한 흡인력을 가진, 사랑을 유발하는 그 냄새만을 취하려는 그르누이에게 살인이 죄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그 미묘한 향기만을 찾아 자신의 향기로 취한 그르누이는 마치 신이라도 된 듯,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이끌어내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단 한 곳이 있으니,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 향수를 몸에 바르고도 느낄 수가 없으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동시에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는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느끼는 보편적인 갈증을 향수를 통해 풀고자 한 그르누이는 우리의 숨겨진 얼굴 같기도 하다.

'그레브 광장에 서서 바람에 실려오는 한 가닥 바다 냄새를 코로 거듭 들이마시고 있는 그르누이에게 멀리 서쪽에 있는 진짜 바다. 그 커다란 대양을 보고 그 냄새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일생 동안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58쪽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는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처음으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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