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13
제니퍼 이처스 그림, 샘 맥브래트니 글, 김서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섯 살 작은 아이는 3년째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다니게 되었어요. 열흘 후면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이죠. 며칠 전 마지막 날, 선생님과 친구들이 예쁘게 꾸미고 쓴 편지들을 하트모양 한 묶음으로 가지고 와서는 보고 또 보고 하더군요. 오늘 아침엔 유난히 말이 없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길래, 무슨 생각하니?, 물으니까 친구랑 유치원 놀이터에서 그네 타고 놀았던 생각해, 대답하더군요. 아이랑 맘에 맞아 잘 놀았던 남자친구가 있었거든요. 친구와 헤어져 다른 유치원 다니려니 섭섭한가 봐요. 아이에게 친구랑 놀았던 기억들이 한 장 한 장 그림책의 장면처럼 혹은 사진처럼 마음의 앨범에 남을 것 같아요.

<미안해>의 그림은 정말 사진 같아요. 소포트포커스 사진처럼 곱고 아름다워요. 기억처럼 아른아른하면서도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참 포근해요. 좋은 추억의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같아요. 달콤하게 살살 녹는 솜사탕 같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는 정적이면서 동적이에요. 아이들의 표정이 마치 옆에서 바라보듯 살아있어요. 아이들의 숨기지 못하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비쳐요. 거울처럼 맑아서 그대로 다 보여요.

두 아이가 하는 놀이는 여느 아이들이랑 비슷해요. 학교놀이, 병원놀이, 엄마 아빠 놀이, 물장난, 날마다 만나서 놀아도 지겹지 않아요. 그러다 소리지르고 싸우기도 하지요. 이제 다시는 그 아이랑 놀지 않을 거야, 우리 아이도 잘 하는 말이에요. 그 친구가 제일 좋다고 할 땐 언제고, 토라져서 들어오며 눈물을 글썽이지요. 그래도 그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듯, 잘 놀지요. 사실은 같이 안 놀면 심심하니까 그런 말 한 걸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자기가 안 놀아주면 친구가 섭섭해한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미안해 라는 말을 잘 해요. 사랑해 라는 말이 1위라면 미안해는 2위쯤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아요.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과 분위기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지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함께 놀면서 배워나가는 것이겠지요. '미안해' '나도 미안해'를 상상하는 마지막 장면의 그림은, 두 아이의 행복한 표정으로 마음이 온통 환해져요. 여자아이는 너무 귀엽고 남자아이는 겸연쩍은 듯 익살맞은 표정이에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한 올까지 아이의 마음처럼 여리고 보드랍고 거짓없답니다.

얘야, 네가 먼저 '미안해'라고 말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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