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비룡소의 그림동화 60
아나이스 보즐라드 글.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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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나뭇가지 위에 하릴없이 앉아 무심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파랑 나라의 왕자 파비앙이었다. 표지의 제목부터가 아주 직설적이다. 둘러가거나 부드러운 표현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전쟁'을 가지고 어떻게 어린이에게 접근할까? 어떤 색채로 그려낼까? 하는 호기심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독특한 그림을 만나게 된다.

빨강, 파랑, 노랑의 옷과 깃발로 온통 무장하고 있는 각각 세 나라의 사람들 외에, 배경은 단순하고 가는 선만으로 황량한 벌판과 궁전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이 훨씬 마음 속에 살아서 들어오는 효과를 준다. '전쟁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빨강과 파랑 나라의 전쟁이 오래 전부터 이유도 모른 채 계속되고 있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빨강 나라의 왕자 쥘과 파랑 나라의 왕자 파비앙의 결투에서 처럼 전쟁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파비앙의 지혜로, 그들이 서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은 그저 평화로울 따름이다. 작가는 서로의 색깔 따윈 살아가는 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개개인의 색깔들이 어울려 오히려 하나의 멋진 그림을 이루고 있다.

전쟁이 끝난 것을 확인한 후에서야 파비앙은 노랑 나라의 왕을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한다. 있지도 않은 군대 이야기가 나올 때는 그 왕이 아주 많이 웃었다고 한다. 덧없이 죽어간 이름도 모르는 군인들과 어처구니 없이 죽은 쥘 왕자를 위해서는 눈물을 흘렸다고도 한다.

지구상에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는 전쟁으로 이유도 모른채 수없이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전쟁이 그리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간단명료한 구조로 그려낸 전쟁이라는 이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들은 색깔들이 주는 인상만큼이나 선명하게 마음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의 본성을 비틀어 놓는지, 전쟁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파괴행위인지 그리고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평화를 지키려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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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웅진 세계그림책 14
클로드 부종 지음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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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마녀도 다른 마녀들과 다르지 않게 미녀를 보면 심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다른 점은 미녀를 죽이려 들거나 추한 모습으로 변하게 만드는 대신, 자신에게 마법을 걸어 그런 미녀가 되려고 하는 점이다.

어느날, 마녀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예뻐지는 마법의 수프를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했다면 마녀가 미녀로 되었을텐데. 불쌍하게도 마법의 수프는 실패로 끝나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작은 마녀들이 일곱이나 생기는 바람에, 마녀는 배고프다고 소리치는 그들을 먹이느나 무척 바쁘다.

소재도 발상도 그리고 아주 뜻밖의 결말도, 우습기도하고 즐겁다.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악한 마녀가 아니라, 어딘지 어리숙해 도와주고 싶은 마녀다. 일곱명의 작은 마녀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마녀의 모습이,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엄마의 모습같다. 이 유쾌한 그림책을 보고 큰아이는 '내 모습이 좋아!'라는 제목으로 그 날의 일기를 쓰기도 했다. 한바탕 웃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드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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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전화박스 아이북클럽 7
도다 가즈요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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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있어 어머니는 전부이다. 어머니와 자식의 인연 만큼 슬픈 것이 있을까? 나는 책 제목으로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버릇이 있다. 여우의 전화박스?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두개의 단어가 복잡하게 내 머리속에서 맴돌다 강제결합을 시켜 보기도 했다. 부드럽고 은은한 색채의 그림이 여우와 아이의 맑은 눈을 돋보이게 한다.

<여우의 전화박스>에서 전화박스는 아이와 엄마를 이어주는 다리일 뿐만 아니라, 아기여우를 잃은 엄마 여우의 꺼져가는 마음에 등불을 다시 밝혀주는 구원자와도 같다. 작은 남자 아이의 모습에서 죽은 아기 여우를 떠올리며 아기 여우를 완전히 보내지 못하고 애닯아 하고 있는 것은, 보통 엄마 여우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장 난 전화 대신 엄마 여우는 자신이 전화기가 되는 요술과도 같은 기적을 이루어, 아기 여우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제는 아기 여우와의 슬픈 끈을 놓아야 할 때이다. 아이가 기쁘면 엄마도 기쁘다는 말은 엄마의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하나의 기적. 고장난 전화박스의 불이 켜지며 엄마 여우는 살며시 수화기를 집어든다. '그래, 우리 아기는 언제까지나 엄마 마음속에서 엄마랑 함께 살고 있는 걸.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혼자서도 견딜 수 있어......' 이제는 담담하게 아기 여우를 보내며, 오히려 영원히 함께 사는 애틋한 인연이 슬퍼 뭉클했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물을 반짝였을까? 그냥 묻지 않았다.

엄마 여우는 이제 다른 생명과의 교감으로 자기의 삶이 또 다른 가치를 발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우리네 슬픔을 이기는 것도 세상과의 끊임없는 대화로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들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향해 말을 많이 걸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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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와 푹신이 내 친구는 그림책
하야시 아키코 지음 / 한림출판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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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야시 아키코가 그리는 아이의 얼굴을 좋아한다. 꽉 깨물어 주고 싶은 통통하고 발그레한 두 볼과 귀염성스러운 표정을 보면 누구든 나처럼 반하고 말 것이다.

이 그림책에는 이런 얼굴의 주인공 은지와 그에 못지 않게 앙증맞은 봉제 인형 푹신이가 등장한다. 푹신이! 정말 이름에서 오는 느낌 그대로 정이 많은 아기 여우 인형이다. 은지에게는 이것이 인형 이상의 의미로 나날을 함께 하는 동반자이다.

은지가 태어나길 기다리며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준 푹신이는 은지의 침대 맡에서 벌써 은지를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의 마음이 담뿍 담겨있다. 내 아이가 태어날 날을 꼽으며 아기의 이부자리를 미리 마련해 주셨던 친정 어머니가 떠오른다.

은지가 차츰 튼튼한 아이로 자라감에 따라 푹신이의 몸은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어느날, 튿어진 푹신이의 한쪽 팔을 고쳐주기 위해 은지는 푹신이를 데리고 둘만의 길을 떠난다. 모래언덕을 넘어 할머니 댁으로 가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도시락을 먹고 푹신이를 잃어버릴 뻔한 어려운 일을 꿋꿋이 견뎌낸 은지는 푹신이를 등에 업고 넉넉한 할머니의 품에 안긴다. 세 명이 목욕을 하는 장면은 모험이 끝난 뒤의 안식처럼 편안하고 훈훈하다.

집으로 잘 돌아오기까지 할머니 이외의 다른 어른은 볼 수 없다. 생략할 부분은 과감이 생략하고 주된 인물과 그들이 겪는 이야기로 집약했다. 훨씬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맛이 낫다. 개가 푹신이를 입에 물고 달아나는 장면에 연이어 은지가 뒤따라 뛰어가는 장면에서, 네살 작은 아이는 안타까워하며 '물고 가면 안 돼.' 라고 소리친다. 은지를 가리키며 '나 닮았어'라고도 한다.

그렇게 금방 감정이입이 되는 맑은 심성을 잃지 말기를...... 인형에게 말걸기를 오늘도 그치지 않는 세상의 모든 '은지'와 그런 '은지'를 키우는 엄마들이 함께 보면 좋겠다. 그런데 '은지가 들고 있는 초록색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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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야, 악어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45
페터 니클 글, 비네테 슈뢰더 그림, 허은미 옮김 / 비룡소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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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액자에 담아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그림이 우선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의 액자 그림들이 냉소적이며 끔찍한 기분이 드는 이야기와 묘하게 어울립니다. 지구상에 멸종해가고 있는 동물들이 많다고 하지요.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인간 위주가 아니었나 되짚어보게 합니다. <악어야, 악어야>는 악어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나일강 가에서 쉬고 있던 초록빛 악어 한 마리가 귀부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근사한 물건'이 많다는 악어 가게를 찾아갑니다. 그 가게를 들어선 악어의 눈물을 보세요. 악어가 쓸 만한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악어 가죽으로 만든 물건만 그득합니다! 이 눈물은, 다음 그림에서 가게 여종업원을 한 입에 삼켜버리는 장면에서 더 처절합니다. '참을 수 없는 모묙'을 느낀 악어의 눈물입니다.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기분 좋게, 악어는 나일강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을 삼킨 후 악어의 이런 감정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빗대어 조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목숨있는 것은 모두 소중하다고, 그래서 함부로 그 생명을 파괴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본 아이라면, 백화점에 고가품으로 진열되어 있는 악어 가죽 핸드백을 가리키며 엄마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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