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때처럼 청바지를 입으려다 참, 그래도 시험감독인데 좀 점잖게 입어줘야지싶어 원피스를 꺼내 입었습니다. 오늘 큰딸 중학교 기말시험 마지막 날인데요 저는 2학년 6반 교실에서 감독을 해야하거든요. 감독선생님은 앞에서 주도하시고 학부모는 뒤에 서서 감독하는 겁니다.

8시50분까지 일단 컴퓨터실로 모였습니다. 좀 있으니 교장 선생님께서 들어와 학부모감독제의 취지와 주의사항을 말씀하셨어요. 학생들이 시험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되면 그 과목은 영점 처리되면서 석차가 상당히 아래로 밀려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그러니 어머니들께서 잘 감독하시어 그부정행위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선생님께 신호를 하여 사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방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그런 점에서 앉아서 감독하지 마시고 서서 잘 도와달라고 하시네요. 전 그런 생각은 못하고 공정한 시험장의 분위기를 학부모가 볼 수도 있으면서 그런 일에 동참도 하라는 이중의 포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외에도 핸드폰을 반드시 끄고 진동으로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시네요. 어떤 어머니는 문자 확인하고 문자 보내고 그러는 통에 집중을 흐려놓았다는 말씀을 곁들이네요. 한 가지 더... 유독 한 학생의 문제지와 답지에만 시선을 꽂아 집중하시는 어머니들 없도록 주의해 달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집에 가서 그런 불평을 했나봐요. 그런 어머니 때문에 부담스러워 문제가 잘 안 읽어지더라구요..^^

시작 종에 울리고 배정 받은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1교시는 중국어 시간이더군요. 학생들은 비교적 쉬운지 금세 끝내놓고 엎드려 자는 아이도 있고 낙서를 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어요. 가만히 서 있으려니 다리도 아파오고 발도 부어오르고, 약간 힘들어지려고 했어요. 어라, 그런데 책상을 가만히 보니 앞뒤가 바뀌어 놓여있었어요. 그러니까 책상서랍이 학생들 배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반대로 돌려놓았더군요. 순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비리가 떠오르지 뭡니까.

그때 사회시험시간이었어요. 짝찌와 나는 한 책상(가로로 긴)을 썼는데 가운데에는 책가방을 올려놓게 되어있죠. 문제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요. 아리송한 어떤 문제의 답을 교과서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다는 확실한(?) 생각이 드는 게, 견딜 수 없이 손이 가렵기 시작하는 거에요. 가슴은 콩닥거리고 손은 자꾸만 책상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꼼지락거리구요. 몇분을 그렇게 갈등했나 모르겠어요. 선생님 얼굴을 닳도록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며, 결국 저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버리고 말았어요. 답을 찾아 적는 건 아주 잠깐동안의 일이었어요. 그러고 나서도 두근두근... 그런데 그게 나중에 보니 정답도 아니더라구요.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얼마나 허탈했던지요.

그동안 저도 시험을 무수히 치르고 시험감독도 몇 해전에 해본 적이 있지만(일하는 곳 주최 경시대회에서) 오늘 이렇게 중학생들 시험 치르는 모습을 쳐다보며 자꾸만 옛생각에 웃음이 삐죽삐죽 나왔어요. 인터넷 어디선가 보았는데 여학생이 허벅지에 잔뜩 써놓고 컨닝을 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대학교 때 마이크로필름처럼 만든 컨닝페이퍼가 돌아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전 그건 해보지 못했지만요. 그런 거 만들 시간에 그냥 책 한번 더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했드랬어요.

교장선생님의 부탁말씀이 공명합니다. 우리는 내버려두면 약간의 나쁜짓은 다 해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그런 점에서 불상사를 미리 막고 다함께 좋은 분위기로 가기 위한 일이니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큰딸은 시험 끝났다고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나가네요. 친구들이랑 노래방 갔다오겠답니다. ^^ 전 4교시 동안 서 있었더니 다리가 완전 퉁퉁 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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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6-2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합니다. 초딩때 딱 한번 컨닝했는데 틀린답이었다는 ㅠ.ㅠ 그래서 제 답썼는데 그것도 틀렸다는 ㅠ.ㅠ

프레이야 2006-06-2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저 쓰러집니다. 저보다 한 수 위십니다요^^

BRINY 2006-06-28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있던 중학교에서도 학부모 시험감독을 모셨는데, 한반에 3분정도 오시라고 부탁드리는 것도 일이었어요. 적극 협력하시는 어머니는 혼자서 3일 내내 오시기도 하시지만, 그게 참...지금 있는 학교는 아예 1학년은 1,2교시에 반씩 갈라서, 2,3학년은 3,4교시에 반씩 갈라 이동해서 시험봅니다. 교사들의 감독 부담은 늘어나지만, 심적으로는 편안해요.

치유 2006-06-2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백합니다..오학년때 그냥 시험은 아니고 수학 교과서 연습한후 다시 풀어서 선생님이 채점하시겠다고 칠판에 그대로 문제를 내 주시기에 다시 푸는것 귀찮아서 연습장에 풀어두었던것 그대로 술술 배껴서 냈어요..!@@!


조선인 2006-06-2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모가 시험감독도 해야 하나요? 전 왜 짜증이 나죠?

프레이야 2006-06-2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저도 처음엔 이거 뭐하는 짓이야, 그랬어요. 정말 살벌하구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뭐 그런 생각요. 근데 중학 2학년부터 학교시험이 고교입시시험이랑 마찬가지가 되다보니 말썽 나는 걸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 같아보여요. 정말 답답하긴 하죠. 사지선다형 문제 머리 싸쥐고 풀고 있는 아이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나더구만요. 좋게 생각하려는 저의 단순한 의도입니다..^^ 아직 발이 부어 퉁퉁해요 ㅎㅎ

sooninara 2006-06-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시간 서 있기..정말 힘들겠어요.
전 고등학교때까지는 컨닝을 안한것 같은데..대학가서는..ㅠ.ㅠ

비자림 2006-06-2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저도 오늘 감독했는데 님도 하셨네요.
그래도 지금 상당히 기분이 좋아요. 알딸딸. 동동주를 마시고 와서... 호호호

아영엄마 2006-06-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험감독도 해야 하는군요.. (다리 꼭꼭 주물러주셔요~)

해리포터7 2006-06-2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저두 이거 비밀을 낱낱히 밝혀드리는 바입니다.중학교 1학년때 뒤에 앉았던 조폭스런 ?친구가 애교섞인? 협박을 해 시험지 좀 보여줄려고 비켜앉았드랬죠.그러다 할배수학선생님께 책으로 두들겨 맞았슴다..친구를 나쁜길로 인도한다고.흐흑!!

프레이야 2006-06-2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ㅎㅎㅎ
아영엄마님, 애들 클수록 할 일 없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해리포터7님, 친구를 나쁜길로 인도한다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