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TBN 교통방송에서 부산점자도서관으로 낭독봉사자 인터뷰 요청이 와서 내가 하게 되었다. 

(2년 전에도 같은 리포터가 같은 요청을 했는데 내가 마다했었다. 아무튼 방송은 다음날 아침 프로그램에서

십분 정도 나왔다)  한참동안 여러가지 물음에 편안하게 대답하고 웃고 기분좋게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여울물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빼앗겼다. 그보다 더 한 건 마지막에 저장하는 단계에서

그나마 녹음한 분량을 날려버리는 실수를 했다. 급히 나오려다 무언가를 잘못 눌렀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제는 그 부분부터 다시 녹음했다. 그런데 중간쯤 컴퓨터가 오작동을 하는 만행이...

그 부분에 마가 끼었나.ㅎㅎ 괜찮다. 세번 읽으니 더 좋았다. 그 부분이란 11시간째로 접어든 6A 파일.

서일수가 옥사정에게 거래를 넣어 이신통과 함께 천지도인 박도희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서일수는 천종급 산삼 세 뿌리와 책을 수습하여 일천 부를 찍을 수 있도록 하라는 책임을 맡는다.

인쇄된 '천지도경'과 장지에 언문으로 필사한 '천지인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는 그들 두사람.

 

 

 그들은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등잔불을 돋우어 밝히고 각자 돌아앉아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천지인가'는 언문으로 지은 가사로 몇 장이 안 되는 것이라

 잠시 동안에 읽었지만, '도경'은 한 대장부의 평생의 뜻을 밝힌 것이어서 곱씹어 읽어야만 하였다. 

  (223쪽)

 

 녹음시작 2012, 12, 21 (총 495쪽, 현재 293쪽까지 녹음)

 

 

 

 

서일수가 산삼을 팔기 위해 의원을 찾아갔는데 의원이 재미있는 말을 한다.

(그 약방은 이신통이 전기수로 인기를 얻는 장소이기도 하다. 의원이 이신통의 전기수 노릇을 원한다.)

누구 부탁을 받고 하는 일이니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서일수에게 그 의원 왈,

 

의원을 하려면 환자의 병환에 관하여는 물론이고 사고파는 약재에 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합네다.

우리가 약방에 모여 손님들과 흰소리나 지껄이는 것도 안 할 소리를 속에 담아놓기 위함이니

그리 알아주면 좋겠소.   (227쪽)

 

 

 

흰소리나 늘어놓고 농담같지도 않은 농담(사실 진정한 농담은 상당히 지적인 영역이다)이나 뱉는 사람이 때론 무섭다.

그 겹겹의 속에는 무슨 말과 생각을 담아놓고 겉보기만 좋은 블라인드를 치고는 남의 속을 찌를 듯 견주는 것인지.

한 마디라도 진심이 느껴지는 말은 누가 들어도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을 가진다.

그런 게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이 낫지 않을까. 그러는 나도 지금 안 할 소리를 속에 담아놓기 위해

어쩌면 다른 말들을 하고 있는 셈일까. 흰소리까지는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하는 것.

그게 살아가는 일 중 기쁘게 감수해야 할 일이란 걸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어쨌든,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 키터리지'가 녹음도서로 완성되었다. 어제 파일을 받았다.

순서대로 해야하지만 이것부터 부탁드렸더니 책임자가 그렇게 해주었다.

말을 글을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일은 집중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의미 있는 일, 의미 있는 말, 의미 있는 관계에만 열정을 다하고도 생은 모자라지 않을까.

사랑하는 일 한 가지에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정말이지 고민하고 반성하며 열심을 다했던,

선하고 순수하고 신선했던 열정을 환기하며 아주 오래전 파릇했던 시절에 만년필로 끄적였던

일기장 스프링 노트를 덮는데 살폿 미소가 지어진다.

글벗 언니의 말처럼 "올해는 착하게 살기로 했어. 삐지지 말고." 이말이 정답이지.^^

그동안 그분 스스로 속을 좀 볶아댔던 걸 아는지라 그말이 참 사랑스러웠다.

 

며칠 전 수술한 동서에게 갔다온 후 어제는 격려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런 답장으로 행복을 준다.

"형님도 절대 아프면 안 되요. 운동하고 마음을 좋게 가져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미워하지 말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잘 할 수 있죠. 하트 뿅뿅뿅뿅(왜 4개인지는 몰라도, 하트가 여긴 안 찍혀서^^)"

좋은 말, 좋은 마음, 좋은 관계의 힘!!!  내가 먼저 마음 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

입안 가득 예가체프 향이 밝다. 2월엔 운동도 시작할까 한다.

 

 

절반 정도 읽은 <여울물 소리>가 끝나면 다음 소설들을 읽을 예정이다.

찜해두고 있으니 설렌다. 어서어서 읽고 싶다.

 

 

 도서관 책꽂이에서 찜.

 

 

  구매해두고 기다리고 있음.

 

 

 움베르트 에코의 신작 장편소설 1,2 권 구매완료.

 

 

성석제의 신작 장편, 중고샵 장바구니행~

 

 선물로 받고는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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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1-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덕분에 많은 청각장애우들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거죠. 늘 존경스럽고, 멋지세요.^^

프레이야 2013-01-24 20:05   좋아요 0 | URL
이 봉사활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어서 더 관심 가질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아요.
수용할 수 있는 시설도 늘리면 좋겠구요. 저는 무조건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
제가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에게도 좋구요.^^ 섬님, 늘 좋은 말씀 고마워요^^

다락방 2013-01-2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올리브 키터리지.
새벽 세시와 올리브 키터리지를 낭독하는 프레이야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저는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해볼까 싶어서 마이크를 사두었는데, 당최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몰라서 포기했어요. 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올리브 키터리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새벽 세시를 살릴 자신이 없어요, 저는.)
그런데 프레이야님은 새벽 세시와 올리브 키터리지를 모두(!) 낭독하셨네요. 박수 쳐드리고 싶어요.

프레이야 2013-01-24 20:22   좋아요 0 | URL
히히~ 너무 좋았지요. '일곱번째파도'도요. 1차 편집 다 되어가요.
에미 목소리는 그런대로 만족한데 레오가 좀 어려워요. 남자 목소리라 좀 한계가..
그러고나서 녹음도서로 나오려면 또 시일이 걸릴 거지만요.
팟캐스트, 빨간책방 가끔 들으면 정말 그런 것 해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다락방님도 포기했던 거 다시 살려요!! 들어보고 싶어요. ^^

2013-01-24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1-2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책을 세 번씩이나 녹음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프레님, 녹음도서라는 생소한 용어도 프레님 덕에 알게 되네요.
것도 올리브 키터리지라니...
프레님 덕에 올리브 키터리지 권했더니 대부분 환장(?)했어요.
내 엄마, 미래의 내 이야기라고, 눈물, 콧물, 미소가 범벅이 되는 책이라고 좋아하네요.
프레님께 새삼 고마움을^^*

프레이야 2013-01-24 21:47   좋아요 0 | URL
우힛~ 환장을요!! 표지도 우아하구요. ㅎㅎ
'강'에서 올리브는 지금의 제 엄마 나이에요. 정말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구요.
'불안'에서 올리브는 얼마나 연약하던지요.
'범죄자'에서 레베카는 자신을 버린 옛남자친구 제니스가 했던 말을 떠올려요.
-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없으면 생각을 지켜볼 게 아니라 행동을 지켜보아야 한다."
레베카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지켜보더군요. ^^

'브리다'에서 읽은 문구도 생각나요.
-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을 바꾼다는 건 내면에 존재하는 것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지."
행동(형식)을 바꾸면 내용도 바뀐다는 뜻, 맞겠지요? ^^

마녀고양이 2013-01-2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 있는 일, 의미 있는 말, 의미 있는 관계...
이런 것들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안 되는게 현실이니,
이 역시 수용하려고 요즘은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흰소리가 필요한가봐요. 삶의 여유같기도 하구요.

녹음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맘이 따스해져요.

2013-01-2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5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