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에서 편찬한 <부처님의 생애>를 녹음중이다.
회원신청도서인데 절반쯤 했다.
발음하기 어려운(우스운^^) 고유명사가 많은데 전체적 내용이 좋다. 
괴로움은 그 원인이 반드시 있는 법, 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인연의 번뇌는 계속 되리.
"사랑과 은혜는 근심과 슬픔의 근원이다."


퇴원하는 엄마를 보러 작은딸이랑 오전에 갔다.
혈뇨는 멈추었지만 주사도 더 맞아야하고 궤양은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할 거다. 아이를 두고 점자도서관에서 녹음하고 다시 갔더니
외손녀가 오랜만에 왔다고 장봐서 고기 구워줬나 본데, 당신은 잘 먹지 않는 음식이다.
얼굴이 창백해보인다. 일곱살짜리 손자가 더 놀아달라고 할머니를 보채고 있었다.ㅠ


어제는 토미 바이어의 "행복에 관한 짧은 이야기"중 오독한 단어가 있는 문장만 골라
수정녹음을 했는데, 처음 읽을 때 내가 밑줄 그어놓았던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제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욕망과 넋을 잃은 찬탄과 고통스러운 그리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일부라는 믿음이다.
우리가 있어야할 장소, 있어야할 시간에 있으며,
같은 상황을 괴로워하고 같은 일로 웃고 상대의 느낌을 알고
상대에게 힘든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는 믿음.
 

- 144쪽

 
   

 동시에,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도 일차편집 시작했다. 서사보다 역시 김훈의 글은 재독할 때 문장에 더 기울어진다.
그중 또 내가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이 파고든다. 

   
 

포승줄에 묶여서 고속도로를 여섯 시간 실려가면 남해안의 교도소가 나오듯이,
천국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혹시라도 그와 유사한 마을이 있다면 사람이 여자의 자궁 속에 점지되어 탯줄로 연결되거나
사람끼리 몸을 섞어서 사람을 빚고 또 낳는 인연이 소멸된 자리가 아닐까.
옛사람들이 孝를 그토록 힘주어 말한 까닭은 점지된 자리를 버리고 낳은 줄을 끊어내려는 충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서 불끈거리고 있는 운명을 보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세라는 낯선 시간의 나라가 있다면 거기서는 포유류로 태어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7쪽

 
   

기숙사에서 큰딸을 데리고 나와 어둠이 짙게 깔린 겨울의 황량한 거리를 달려왔다.
서로 말도 잘 안 하는 두 딸을 태우고 나혼자 여기 말 걸었다 저기 말 걸었다 그러며..ㅎ  

배철수가 '비정성시'를 말하는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전생이나 후생이라는 낯선 시간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었을까?
왜 생물이나 무생물만 생각했을까, 나도 음악이나 그림, 아니면 그냥 북소리, 아니면 그냥 춤이었으면...춤... 
'나'가 아닌 어느 자유로운 영혼이 추는 춤이었으면...
익숙한 모든 것들과 진정 이별할 수 있을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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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1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건강하셔야 할텐데......내 젊은 날의 숲 아직 읽지 않았는데 님은 재독 하시는 군요.
서로 말도 잘 안하는 두 딸 데리고 오면서 이쪽저쪽 말거는 님의 모습.
가끔은 엄마가 아이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니까요. ㅎㅎ
떨어져 있었다고 내외하나 보네요.

프레이야 2011-01-15 17:34   좋아요 0 | URL
잘이 아니라 아예 안 하는 편이네요ㅠ
그 원인을 전 알지만 좋아지지가 않아요.
엄마는 나아지실 거에요. 고맙습니다.^^
녹음할 때 한 번 일차 편집하면서 재독, 이렇게 하니 더 좋아요.^^

무스탕 2011-01-1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하루빨리 건강해 지셔야 할텐데요..
정성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지성정성은 그저 떠들고 싸우고 낄낄거리고 씨끄러워요 -_-
만약 다음생에 뭔가로 태어나실것 같으면 제 곁으로 오심을 심각히 고려해 보세요 :)

프레이야 2011-01-15 17:36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고맙습니다. 나이질 거에요.
남자아이들이라 더 그런가요? 살가운 풍경이에요.
사실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은 생각없지만 ㅋ 태어나면 춤으로 태어나
무스탕님 속으로 들어갈게요.ㅎㅎ

blanca 2011-01-15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유류로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그냥 이 페이퍼를 읽으니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다시 살고 싶은 시간들이 있답니다. 되짚으며 고치고 또 고치고 싶어요. 어머님 건강을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11-01-15 21:37   좋아요 0 | URL
아, 다시 살고 싶은 시간이요.. 저도 있어요.
블랑카님 마음 정말 고마워요^^

hnine 2011-01-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이 소멸된 자리, 인연이 소멸된 자리...

고백하자면 저도 클때 제 여동생이랑 별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워낙 성격도 틀린데다가 늘 비교하며 야단치시는 부모님도 한몫 하셨던 것 같고요. 그런데요, 자매 사이는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커보니까 그마저도 서로 공유하는 추억담이 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더라고요.

어머니께서 퇴원하셨다니 다행이어요. 아무래도 낯선 병원보다 내집이 편하실거예요. 그런데 집에 오시면 아무래도 몸을 더 쓰게 되실테니 더 주의를 많이 하셔야겠지요.

이 글은, 조금은 서글퍼요...

프레이야 2011-01-15 22:53   좋아요 0 | URL
네, 인연은 서글퍼요. 호연이든 악연이든 피해갈 수 없이 점지된 것이겠죠.
우리집 두 딸도 크면 그리 될까요? 전 여동생이랑 같이 나이들어가는 처지에 저보다 어른스러워
마음으로 늘 든든해 하거든요. ^^
엄마는 몸을 아끼고 돌보지 않는 편이라 그게 걱정이에요.
나인님, 고맙습니다.^^

2011-01-16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