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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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서전은 거울과 같아서 나는 항상 자서전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본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을 거울을 통해서 본다. 그들이 내 관점에서 나를 선전하고 나를 우쭐하게 하고 나를 치켜세우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자서전에 싣는다. - 

위 인용글은, 인생의 순간적인 일을 60만 단어 이상으로 확장하는 게 자서전 쓰기의 목표라고 말했던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자서전쓰기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유쾌하고 자신만만한 그는 뻔뻔하리만큼 즐거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트웨인의 이 글귀가 떠오른 건 <내 젊은 날의 숲>과 같은 방식의 자서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야기를 주변인물의 이야기로 우회하여 하는 방식을 말한다.

김훈의 신작 <내 젊은 날의 숲>은 주인공인 조연주라는 미혼여성의 자서전(어느 날 그녀가 그걸 쓴다면) 안에 들어갈 한 꼭지가 될 수 있는  글이다. 어쩌면 작가가 性을 바꾸어 화자가 되어 있는 연주는 자서전을 쓰되 트웨인처럼 통쾌발랄하지 않다. 수줍고 소심하고 약간은 우울하다. 그러나 담담하다. 본인의 이야기나 본인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은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인연의 끈으로 질기게 엮인 사람들을 통해서다.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상처,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을 보여준다. 아니 자신을 '본다'. 보여준다고 해서 상대가 다 보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해서 상대를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잘 볼 수 있고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 중의 하나로 이렇게 무던하고 느린 방식을 채택한 작가의 불안하게 길게 휜 눈빛을 떠올려본다. 원고지를 밀고가는 답답한 몽당연필이나 풍경을 밀고가는 묵직한 자전거처럼 우둔하지만 강직한 사랑과 희망의 '밀고나감'이 결미와 작가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다시 서울을 향해 액셀을 힘껏 밟는 연주의 발끝에 실려있다.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 중생의 말로 '사랑'이라고 쓸 때, 그 두 글자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와 결핍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겁 많은 나는 저어했던 모양이다. 그러하되, 다시 돌이켜보면, 그토록 덧없는 것들이 이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에 한 뼘의 근거지를 만들고 은신처를 파기 위해서는 사랑을 거듭 말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사랑이야말로 이 덧없는 것들의 중대사업이 아닐 것인가. ......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  - 작가의 말 중  
   

작가는 하덕규의 노래 중 끝부분의 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고백했다. 제목을 먼저 생산하고 거기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나로 들어앉혔다고 한다. 로맨틱한 이야기도 심금을 울리는 대목도 없이, 건조하고 냉랭한 분위기로 일관되는 작품속에서 역시 김훈다운 사유의 세계와 명품 문장들은 모종의 전율을 선사한다. 서사의 힘이 약하다는 평가에도, 그를 내치지 못하는 매력은 그런 것에도 있지 않을지. 강직한 문체는 모성을 자극하는 여리고 순함에 대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초연한 이해와 냉랭함을 가장한 온기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작품속 김중위가 조연주에게 뼈 세밀화를 부탁하러 왔을 때 채택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소심하게 변죽을 울리는 방식인데 다급하고 절실할수록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고통을 암시하는 듯하면서 늪으로 돌을 던져 오리를 놀라게 하는 방식이었다.'(152쪽)  그 효과가 배가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소심한 방식이긴 하다.

'탯줄을 끌고 태어나는(94쪽)' 포유류의 슬픈 인연과 생명의 '쟁쟁쟁'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희망에 대한 조연주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둘러싸고 나를 키워왔고 나를 좀먹고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럼에도 나를 보듬어주는, 또한 내가 상처 입히는 그 모든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없다. 내 생명에 대한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그걸 설명하는 일이 과연 유효하고 절실한 일일까. 인연, 사실은 '인연의 부재'를 이야기 하고 있는 작품 속 인연들은 허섭하다. 세상의 밑바닥을 긁어서 가족을 입히고 먹인 아버지, 부부의 질긴 연을 끊지 못하고 '그 인간'이라는 익명성과 구체성의 중간에 남편을 두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어머니, 유전적인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父子, 신우와 안실장, 미래의 사랑을 기대하며 오늘 어줍잖은 명함을 건네는 청년 김중위, 그리고 만주벌판에서 한반도 작은 땅에 건너와 덧없이 무너진 야망과 욕망의 대명사, 좆내논이라 불리는 늙은 말 한 마리. 이 모든 인연의 결핍이 꽃과 잎과 사람의 뼈를 세밀화로 그려내는 차갑고도 따스한 여자 조연주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세상과 맺은 인연을 말해준다. 작품 속 일관된 하나의 은유는 아버지인데 그의 역할은 '미안하다'와 '죽었다'로 요약된다. 그것은 '나'의 생명의 사실이기도 하고 그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는 아버지의 존재를 극명하게 증명해준다.  아버지의 뼈를 갈아서 밥에 섞어 새들에게 뿌려주고 나서 그녀는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넓고, 눈에 걸리는 것이 없는 무인지경으로 보였다.'(339쪽)고 했다.    

사람의 태생적인 결핍성은 소멸과 생성의 고리를 순환하는 생명의 나무들과 그것들이 이루는 초연한 숲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숲에는 시간이 흐른다. 숲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하지만 다르지 않기도 하다. '인연이라기보다는 인연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핍감'이 숲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탯줄이 아니라 씨앗으로 태어나 '혈육이 없어서 인륜이 없고 탯줄이 없어서 젖을 빨지 않는 것이 나무의 복'이라고 수목원의 안요한 실장이 말하는 '것 같다고' 한 조연주는 가을 서어나무 숲 속에서 '숲에는 피의 인연이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소멸과 생성이라는 생명의 사실이 그려낸 형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자신의 몸이 구현하고 있는 건 그런 숲의 시간이라는 것.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뼈를 그 '숲'에서 제가끔의 소리로 일제히 울어대는 새들에게 나눠준다. 숲을 부러워하는 마음에는 욕망과 시기심이 깔려있고 그걸 냉랭하게 바라보는 연주의 마음은 인연의 결핍감이 낳은 것인데, 그 숲에서 어느 정도의 충만감을 얻어가는 과정이 세밀화를 그리는 과정과 그 풍경의 특별한 묘사에 은근히 배어있다. 연주의 심리묘사는 세밀화를 그리기 위한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숲에서,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 앞에 있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세밀화는 그 기웃거림의 흔적이었다. (120쪽)

 
   

단편집 <강산무진>에서도 그렇듯 전문적 직업을 묘사하는 데 집요하고 치열한 작가는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 조연주를 통해 생명의 사실과 생명의 진실을 특별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성은 오히려 진실성을 매복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민통선 전방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당시의 유해를 보고 세밀화를 그려내는 일은 꽃과 잎을 그려내는 일만큼 생명의 사실을 그려내는 지난한 작업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매장하지 못한 '상추쌈을 먹고 싶다'는 편지 속 어느 군인의 절규처럼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도 없지만 쉽사리 말하여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의 사실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 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80쪽)'이다. 수목원의 안실장이 굳이 사진이 아닌 세밀화를 고집하는 이유다. 작품 속 월별로 민들레나 패랭이꽃 등 계절의 꽃을 세밀화로 그려내기 위한 연주의 시선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가령 '도라지꽃은 흐린 날 물안개 속에서 쟁쟁쟁 소리가 날 듯한데, 패랭이꽃은 햇빛 속에서 쟁쟁쟁 소리가 난다.'  

쟁쟁쟁, 소리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어린 신우의 빛나는 가마에서도 들린다. 연주는 그런 생명의 사실을 눈으로 귀로 확인한다. 아버지가 있으되 부재와 결핍의 세월을 사는 그 아이를 통해 자신을 보고 그 아이가 안실장처럼 더 커져버리기 전에 서울로 가서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어 하는 그녀, 한 번의 우회전으로 폐쇄성 짙은 숲에 들어갔듯이 이제 한 번의 좌회전으로 그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인연의 부재와 사랑의 결핍으로 머뭇거리며 어쩌면 행복한 방황을 하던 숲의 안쪽에서 탈주한 그녀는 숲의 바깥에서 다시 또 다른 부재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과 희망에 대한 가느다란 불빛을 앞세우고 액셀을 밟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있다. 부재감에서 존재감으로 결핍감에서 충만감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내 젊은 날의 숲'은 그렇게 열려 있는 게 아닐까. 부재를 말할수록 비루하지만 소중한 존재감이, 결핍을 말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느 정도의 충만감을 우리는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때론 투정 부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아 웃음 한 번 씨익 웃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삶으로. 

말년에 실명하며 눈앞의 것들이 멀어져가는 체험을 한 보르헤스가 <보르헤스와 나>에서 쓴  문장은 <내 젊은 날의 숲>과 관련해서 더욱 분명한 위로가 된다. - 나는 명백하게 소멸할 운명을 가지고 있고 단지 나 자신의 어떤 순간들만이 남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 아닌가. 나의 삶은 덧없는 것이 되고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은 망각 또는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게 되는 것이다. -

김훈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신간을 선물해주신 순오기님에게 감사드린다. 오늘 낭독녹음을 마쳤고 내일부터는 회원신청도서인 <부처님의 생애>를 녹음 시작할 거다. 급한 것이라고 특별히 부탁받아 다른 책 점찍어 둔 걸 미루고 이 책부터 빨리 녹음하련다. 생명의 사실에 대해, 부처와 관련하여 김훈 작가의 말에서 인상깊은 대목이 있어 적어둔다. 어떠한 것에 대한 말이든, 말은 결국 덧없고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위대하고도 가련한 '아버지'를 태우고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승천한 늙은 말처럼. 애초에 존재성이 모호했던 그 늙고 말라비틀어진 말처럼.

   
 

- 부처가 생명의 기원을 말하지 않은 것은 과학적 허영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산천과 농경지와 포구의 생선시장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창조나 진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가설일 터이다.(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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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3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야 언니, 좋은 리뷰예요.
숲이란게 참 많은 은유를 가진거 같아요. 돌이켜보니 정말 그렇네요.
일정 부분에 대한 부재와 결핍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행복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내부의 구멍을 못 보고 외부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공허한 욕망으로 치닫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말이예요.

저 요즘 <술과 장미의 나날>이란 에세이를 읽는데,
술 이야기 읽으며 언니 생각 했어요. 요즘도 와인과 막걸리 즐기시나요? ^^

프레이야 2010-12-23 20:56   좋아요 0 | URL
결핍을 스스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을 때 행복감이 지속되겠지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ㅎㅎㅎ 술과 장미의 나날, 검색해봐야쥐.

같은하늘 2010-12-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순오기님 페이퍼에서 본적이 있는데, 강산무진에서도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셨다더니...
여기서도 그런가 보군요. 혹시 전생이 여성분이셨을라나요? ㅎㅎ
이렇게 멋진 리뷰 앞에서 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1人~~~

메리 크리스마스여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0-12-25 09:34   좋아요 0 | URL
네, '언니의 폐경'에서 특히 그래요.
여기선 그리 세밀히 묘사했다기보다 변죽을 울리는 묘한 방식이에요.
여성성이 강하게 내재해있지 않을까 싶기도..ㅋ
오늘 크리스마스네요, 그러고보니.
점점 이런 날에는 별 의미가 두어지지 않네요.^^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아이들이랑 보내세요. 같은하늘님

섬사이 2010-12-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가 생명의 기원을 말하지 않은 것은 과학적 허영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장 정말 좋네요.
요즘 저도 '결핍'이라는 말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요,
때론 내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도 모른채 살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애써 결핍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어느날 화들짝 놀라서 정신차리고 보니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는 게 있더라구요. ^^
프레이야님의 크리스마스에 행복과 즐거움이 '결핍'되는 일은 없겠지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철철 흘러넘치도록이요~~^^

프레이야 2010-12-25 09:35   좋아요 0 | URL
무엇이 결핍되어있는 모른채 살았던 같다는 말에 동감이에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그걸 깨닫는 순간 가지고 있는 것도 많구나 생각하게 돼요.^^
섬사이님도 오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2010-12-24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12-2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마크 트웨인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에요. 자서전을 읽어보려 했었는데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서전. 프레이야님 서평을 읽어 저의 감상이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인연. 순간, 마크 트웨인과 보르헤스의 말들. 아....너무 와닿아요. 프레이야님, 크리스마스 행복하게 보내셨죠? 정작 눈은 오늘 펄펄 왔어요.

프레이야 2010-12-28 02:48   좋아요 0 | URL
어린 분홍공주 돌보며 양서를 골고루 빨리 읽어내시는 블랑카님 늘 흠모하고 있는 거 아세요?^^
오늘 거긴(서울?) 눈이 왔나요?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고 흐렸지만 포근했어요.
사람의 진심을 느낀 하루여서 행복했어요.
영화 '황해'도 봤는데 생각을 좀 정리해야될 영화에요.
여운이 특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