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던 박경리선생이 1955년 등단 후 자신의 작품을 두고 '전쟁 미망인의 신변이야기'라는 폄하까지 들어야했을 때 그 화를 어떻게 억눌렀을까, 딸 김영주의 회고담이 잔잔히 이어질 때 그녀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들었다. 입을 굳게 닫고 꾹꾹 누르고 있다가 한번씩 창자가 끊어질듯이 울곤 하셨다는, 그 말을 할 때...
어젯밤 10시 55분, 모 티비 채널에서 스페셜로 하는 박경리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내 어머니, 박경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청상으로 홀로 키운 딸 김영주가 나레이터가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건 선입견이었다. 박완서, 오정희, 공지영을 비롯해 무수한 문인들, 사위 김지하, 외손 원보, 땅위의 풀, 까치 한 마리까지에도 선생은 '어머니'였다. 나는 10분 정도 지나서 막걸리를 두어 잔 했다. 왜 그랬는지, 그냥 혼자 마시고 싶어졌다.
흑백사진들, 김지하가 출소하던 해 1975년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훈의 증언, 당시 신문기사 등 많은 자료들이 나오는 중, 선생이 외손자를 업고 엄동설한 가파른 공기속을 지나는 모습과 잔디밭에서 아이와 놀아주던 모습은 강직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던 어줍잖은 내 마음에 말할 파장을 일으켰다. 유방암 수술 후 붕대를 감고 앉아 글을 쓰며 그 고통을 정면에서 극복하려했던 새파랗게 날 선 정신에 대한 이야기, 1969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토지 집필을 이유로 은거하듯 외부와 담을 쌓고 살았던 당시의 증언들이 이어지며, 치열한 작가정신과 고통을 주는 삶에 대한 애증 너머의 통제력이 한없이 경외스러웠다.
특히 눈을 겸손하게 내리깔고 자분자분 회고하던 박완서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토지 집필로 칩거 중 수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을 냉정한 말로 돌려보냈던 걸 두고, 왜 그렇게까지 하셨냐고 반문했을 때, 선생은 '박선생, 그렇게 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가 없어.'라고 일축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박완서는 이렇게 결론 지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쓸쓸함과 절대고독의 시간을 확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통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숙명적으로 미완성에 그칠 수밖에 없는 언어 - 박경리 선생도 인정했듯이 - 를 어떻게 완성의 경지로 해석하여 끌어올리느냐의 문제, 늘 내겐 숙제다. 쓰고 말하는 자의 몫보다 읽고 듣는 자의 몫이 아닐까. 그러니 잘 읽고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또 생각에 그치고 말아야할까.
쓸쓸하다고 외롭다고 투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 그 고독의 울타리 안에 자신을 철저히 가두고 그걸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의존적이고 외로움에 쉽게 자신을 내어주는, '나'를 놓아버리기 일쑤인 내가 부끄럽다.
 |
|
|
|
왜 쓰는가, 하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통합니다. 그것은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 물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합니다. 삶의 터전이며 조건반사인 현실은, 그러나 완전한 것이 못되고 또한 현실은 토막 낸 한 단면도 아니며 반복도 아니며 끝없는 연속, 새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순간마다 같은 수 없는 사물과 시간 속에서 우리 생명들의 삶은 반복되어 왔고 왜 사는가 물어왔습니다.
- 작가는 왜 쓰는가, 중 <작가세계> 1994 가을, [가설을 위한 망상] 114쪽
|
|
|
|
 |
'왜 쓰는가'와 '왜 사는가'가 동의어라면, 쓸쓸함과 고독의 시간을 스스로 확보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삶의 능력이 아닐까, 새겨본다.
이혼녀였던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며 어떠한 부재감을 승화한 '큰어머니'로서의 작가, 그가 쓴 '어머니'라는 시다. 채마밭을 가꾸는 수수하고 두툼한 손등을 닮았다.
어머니 / 박경리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 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daum 이미지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