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어찌?

 

 

황동규

 

 

복사꽃 조팝꽃 산벚꽃 싸리꽃

꽃 물결 때문에

길들이 온통 뒤엉켰구나.

그 길에 엉켜 앞뒤 못 보고

아파트의 찌든 살 한 덩이

떠돌지 않고 돌아왔다면

그대를 어찌?

 

가슴에 주렁주렁 꽃채 매단 큰 재 하나 넘으면

작은 재들 머리에 꽃동이 이고 떠돈다.

처음 보는 재도 낯익은 재 같아

벼랑 가까이 끌려가다 아슬아슬 놓여난다.

발 바로 앞에서 산까치 한 마리 현란히 난다.

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

그 날음에 눈 퍼뜩 떠져 벼랑 반보(半步) 앞

살 떨림 한번 격하게 격하게 그대 몸 훑지 않았다면

그대를 어찌?  

 

- <외계인> 황동규 시집, 중(문학과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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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3-0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대보름이라고 동해안 길들이 온통 뒤엉켰더군요.
왠지 뭔가 달님께 소원 비는 것도 온통 잡스러운 듯한 느낌에 기분이 별로였더랬죠.
아파트의 찌든 살 한 덩이, 사는 일이 이토록 잡스럽습니다. ㅎㅎ

이 봄, 건강하시고, 늘 웃음 가득하시길...

하늘바람 2010-03-0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이란 날기 시작하는 곳.
멋져요 작년이 벼랑이었다면 이제 올핸 날일만 남은 것같아요 님
멋진 시 감사해요.

비로그인 2010-03-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 반 보!


같은하늘 2010-03-0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 이란 글귀를 보니 한비야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좋은 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3-02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황동규 시인의 시는 가슴으로 와 닿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