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어찌?
황동규
복사꽃 조팝꽃 산벚꽃 싸리꽃
꽃 물결 때문에
길들이 온통 뒤엉켰구나.
그 길에 엉켜 앞뒤 못 보고
아파트의 찌든 살 한 덩이
떠돌지 않고 돌아왔다면
그대를 어찌?
가슴에 주렁주렁 꽃채 매단 큰 재 하나 넘으면
작은 재들 머리에 꽃동이 이고 떠돈다.
처음 보는 재도 낯익은 재 같아
벼랑 가까이 끌려가다 아슬아슬 놓여난다.
발 바로 앞에서 산까치 한 마리 현란히 난다.
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
그 날음에 눈 퍼뜩 떠져 벼랑 반보(半步) 앞
살 떨림 한번 격하게 격하게 그대 몸 훑지 않았다면
그대를 어찌?
- <외계인> 황동규 시집, 중(문학과지성)